무림 속의 엑스트라 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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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8화
38화. 묵천신검 (1)
남궁이화는 유명한 무림 세가의 출신이다.
그것도 검을 주로 쓰는 가문. 당연히 무극서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 알려진 무극서생의 일화는 제한적이다. 활동 시기가 짧고 지역 또한 좁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를 접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당연히 대부분 소문일 뿐이고 그 진위조차 불분명하다.
남궁이화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앞의 사내를 바라봤다. 저 사람이 한 시절을 풍미했다는 무극서생인가.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는 어떻게 왔죠? 지금 이곳은 손님을 받지 않을 텐데요.”
묵직한 대답이 들려왔다.
“이곳을 도와주라는 전갈을 받고 왔다. 손을 보태기 위해서니까 경계할 필요 없다.”
무극서생의 대답에 남궁이화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구묵하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본인이 그렇다고 하니 그녀가 뭐라 할 일은 아니었다.
저벅- 저벅-
무극서생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그녀는 슬그머니 자리를 내줬다.
그러자 그녀의 옆에 선 무극서생이 물끄러미 천수신장을 응시했다.
남궁이화는 약간 경계심을 높인 상태로 무극서생을 힐끔거렸다. 분위기로만 보면 엄청난 고수인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최강고수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그녀로서는 다소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 굳이 물고 늘어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 질문을 막고 있을 뿐.
정작 무흔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자칫 남궁이화에게 정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그녀 옆에 다가선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만들어지고 있는 묵천신검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저 신검 때문이었으니. 물론 내일 매끄럽게 뭔가를 하려면 남궁이화의 눈도장을 찍어두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란 이유도 있긴 했다.
그의 눈에 비친 묵천신검은 놀라웠다.
거무튀튀한 검신은 그의 마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그는 날을 갈고 있는 천수신장에게서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했다.
한참 갈던 검날을 물에 씻은 천수신장이 이윽고 시선을 들었다. 빤히 쳐다보고 있는 두 사람을 힐끔 살피던 천수신장의 시선이 무흔이 들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천수신장이 손을 내밀었다.
“검을 줘보게.”
무흔은 머뭇거리다가 검집에서 검을 빼서 넘겼다.
그의 검을 쓱 훑어본 천수신장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날이 빠졌군. 갈아줄까?”
무흔이 가진 검은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검이다. 거기에 검법을 연마한다고 아무 곳에서 막 휘둘렀으니 검 상태가 좋을 리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무흔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됐소. 어차피 내일 쓰고 나면 또 빠질 검날이오.”
검날이 날카로울수록 유리하겠지만, 어차피 싸구려 검이니 마찬가지란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의 거부에 천수신장이 다시 검을 넘겼다.
이번에는 무흔이 물었다.
“그 검은 언제 완성되오?”
“내일일세.”
“그 작자들이 그 검을 노리고 내일 오는 게요?”
“글쎄…… 어차피 명검은 임자가 있는 법. 누가 주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다소 태평스러운 말에 무흔은 안면을 굳혔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십니까?”
구묵하였다. 남궁이화 옆에 죽립을 쓴 낯선 사람이 서 있으니 기겁해서 물어왔다.
“이 사람요?”
남궁이화가 뒤를 돌아보며 먼저 반응했다.
그녀는 옆자리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깜짝 놀랐다.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
언제 사라졌는지 무극서생이 사라지고 없었다. 남궁이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구묵하를 바라봤다.
구묵하도 죽립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방금 그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남궁이화가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무극서생이라던데요? 도와주라는 전갈을 받고 왔다고……. 모르는 분이신가요?”
“아!”
물론 구묵하는 무극서생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이곳에 도와주러 올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바로 무림맹에서 만났던 무흔이 보낸 사람일 것이다.
그는 속으로 무흔에게 감사를 표했다.
“혹시 무극서생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구묵하가 물었다.
남궁이화가 자신이 알고 있는 간략한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는 이십여 년 전 중원을 누빈 검객이죠. 정사지간의 인물로 당시는 그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고 해요. 엄청난 고수죠. 그가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는지 모르지만, 정말 그가 무극서생이라면 엄청난 도움이 될 것 같긴 해요.”
그녀의 말에 구묵하는 입을 쩍 벌렸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일 이곳에서 벌어질 전투는 염려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에서 검을 갈고 있던 천수신장의 손이 잠시 멎었다.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무극서생이라…….”
***
구가장의 지붕 높은 곳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달빛이 내리쬐는 밤인데도 검은 그림자의 형체는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다. 온몸을 흑의로 감싼 데다 어두침침한 죽립마저 덮어써서 눈에 뜨일만한 밝은 부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검은 인영은 지붕 상단의 용마루에 걸터앉아 몸을 눕히고 있었다. 바로 무극서생으로 변신한 무흔이었다.
“흠, 설마 모르겠지?”
무흔은 남궁이화가 알아채지 않았을지 염려됐다.
그는 구묵하가 나타나자 바로 몸을 날려 지붕 위로 올라왔다. 굳이 구묵하와 이야기를 나눌 필요는 없었다. 남궁이화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구묵하는 그가 무흔이 말했던 그 사람임을 알아차릴 거니까.
쓸데없이 많은 대화는 오히려 정체를 발각당할 위험만 높아진다.
“크크, 돌아가네.”
그는 남궁이화와 구묵하가 다시 본채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아마 저들은 내일 적의 공습에 대비하여 작전을 수립할 것이다. 무흔은 굳이 그 작전에 엮일 생각이 없었다. 적에게서 구가장을 보호하는 것은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일이니까.
그는 지금 천수신장이 만들고 있는 묵천신검에 온통 정신이 팔려있었다. 즉,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묵천신검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고 획득하는 것이다. 그다음 목표는 천수신장을 살리는 일이다.
나머지는 그가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알아서 해 주겠지.
과거 소설에서 풍운쌍마 둘과 용봉대원 넷이 혈투를 벌였었다.
그 결과는 용봉대원의 승리였다. 그것만으로 본다면 풍운쌍마의 무공은 용봉대원 개인을 웃돈다. 아마 지난번에 만났던 적황쌍마와 비등한 수준이 아닐까. 당연히 무흔 자신도 그들을 일대일로 대적하기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온다.
“후우.”
무흔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풍운쌍마와 용봉대원 둘이 부딪힌다면 상황은 쉽지 않다. 자칫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다.
“설마 주인공이 죽을까.”
장후성은 남주다. GOD 작가가 절대 죽일 리가 없다.
무흔이 믿고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는 오로지 이곳 작업장에서 천수신장의 보호만 신경 쓸 것이다. 그에게 잘 보이면 묵천신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소 속 보이는 짓이기는 하지만 이곳에서 고생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면 얻어야 한다.
무흔은 자신의 몸에 잠재된 내력을 운기했다.
현재 그의 내공은 대략 일갑자. 결코 적은 내공은 아니다. 하지만 강호를 호령하는 최강고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장후성과 남궁이화도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융해되지 않은 내력 응어리가 단전 부근에 존재했다. 천년적화초 절반과 심령망혼사 절반이다. 그동안 그는 이 응어리를 융해시켜보려고 했으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단지 장기적인 과제로 남겨두었다.
언젠가 이 남은 응어리를 모두 융해시키게 되면 그는 명실상부한 최강고수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무흔은 나른한 기분을 느끼며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천단비화신공이 제법 그의 몸에 익숙해진 기분이다.
***
보름달이 떴다.
풍운쌍마가 명시했던 그 날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구가장은 초비상 상태에 빠져들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장원에 거주하던 하인들을 잠시 마을로 대피시켰다. 남은 사람은 구묵하와 천수신장 뿐이다.
구묵하는 천수신장을 대피시키려 했으나 그는 한사코 거부했다. 당일 묵천신검 제작을 마무리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아들에게 위험을 전가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본채 대청 앞마당에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장원 전체에 내려앉았다.
“올까?”
“오겠지. 우리가 대기하고 있다고 안 올 녀석들이면 그런 식으로 위협하지 않았겠지.”
남궁이화의 질문에 장후성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남궁이화가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말했다.
“적들 말고. 내가 어제 만났다던 무극서생 말야.”
“아! 진짜 무극서생 맞아?”
“기세로는…….”
“이십 년 만에 다시 출현. 그것도 이곳에서. 뭔가 좀 공교롭네.”
장후성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런가…… 가짜인가?”
남궁이화가 쓴웃음을 삼켰다.
무극서생의 도움은 생각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끼이익-
장원의 육중한 대문이 열렸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모두 일곱이나 됐다.
선두에 선 자는 모두 다섯. 얼핏 보기에도 만만찮은 고수였다. 손에는 검과 도를 비롯해 봉과 채찍까지 다양한 무기를 들었다.
장후성은 안색을 찌푸렸다.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왔다.
남궁이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갑자기 장내에 스며드는 진한 마기에 흠칫 몸을 떨었다.
“마, 마교?”
순간 팔곡산에서 부딪쳤던 마교 소교주와 흑사방에서 혈투를 벌였던 적황쌍마를 떠올렸다. 하나같이 그녀의 능력을 벗어나는 자들이 아니었던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서 있는 다섯 마교인의 무공이 그리 높지 않아 해볼 만하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흐흐, 너희 둘? 가소롭군.”
다섯 마인의 뒤로 그들을 향해 중얼거리며 등장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그 둘을 접하는 순간 절로 입에서 헉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저 둘이 풍운쌍마였군.”
그날 흑사방에서 본 적황쌍마에 비견할 고수 둘이 여유롭게 장원으로 들어왔다.
옷차림도 별호를 닮았다. 청색과 진회색이 두드러진 특이한 옷차림이었다. 사실상 저 둘은 일대일로는 상대가 불가능한 고수임을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알아챘다.
쉽지 않다! 풍운쌍마가 가세하면 목숨을 건사하기도 쉽지 않을 상황임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기가 죽을 두 사람이 아니었다.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검을 꽉 틀어쥐고 호승심을 불태웠다.
“천수신장은 어디 있나? 신검 준비는 됐나?”
풍운쌍마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장후성의 뒤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구묵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께선 타협을 거부하셨다.”
풍운쌍마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흐흐, 상관없다. 새로 만든 검을 가져가면 그뿐이니. 목숨을 건지기 싫은가 보군. 애송이 둘! 너희도 그냥 물러서는 게 어떠냐?”
풍운쌍마의 얼굴에는 그들을 깔본 티가 역력했다.
허나 정파의 후기지수인 장후성이 위축될 리가 없었다.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 덤벼라.”
두 사람이 경계심을 불태웠으나 정작 풍운쌍마의 안면에서는 가소로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다섯이 천천히 장원 내부로 들어와서 장후성과 남궁이화를 포위했다.
순간 눈빛을 교환한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검이 불을 뿜었다. 상대가 막 진세를 완성할 찰나 기습한 것이다.
느긋하게 수적 우세를 믿고 포위하던 다섯 마교인이 황급히 무기를 들고 검을 막았다.
서걱-
장후성의 검이 한 녀석의 허리를 스쳐 지나갔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거동에 적지 않게 영향을 주는 타격이었다. 남궁이화도 비슷한 전과를 거뒀다. 전력 열세를 약간은 만회하는 성과였다.
채챙-
다섯 방향에서 연이어 공격이 들어오자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신형이 급하게 움직이며 검막을 펼쳤다. 목숨을 건 전투가 벌어졌다.
다행히 초반 기습 덕에 두 사람은 팽팽한 전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남궁이화는 전력을 다해 다섯 마교인의 공격을 깨트리면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망하고 있는 풍운쌍마를 주시했다. 이곳에서 최강이라 할 저 둘이 전투에 개입하는 순간 이 싸움의 균형이 바로 무너지니까.
문제는 적들 또한 이런 전황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젠장.”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입술을 꽉 깨물며 검을 휘둘렀다. 이대로는 구가장을 구하기는커녕 그들이 위험할 판이었다.
그때 남궁이화는 자신들에게 남은 최후의 패를 떠올렸다.
바로 무극서생! 어제 보았던 그가 진짜라면? 그래도 풍운쌍마는 어려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