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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35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5화

35화. 풍사검객의 신표 (1)

 

 

 

무림맹으로 돌아온 무흔은 진풍, 대호와 함께 서옹을 만났다.

서옹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정자에 누워 배를 긁으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흘흘, 예상보다 빨리 왔구나.”

서옹은 그들의 도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무흔이 나서서 보고하려는 순간 진풍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

“신화문주에게 서찰을 전했습니다.”

“흐음, 답장은 없고?”

“없었습니다.”

“알았다.”

서옹이 귀찮은 듯 그들에게 물러가라고 손을 휘휘 저었다.

신화문의 이상한 조짐을 전하려던 무흔은 절로 말문이 턱 막혔다.

진풍은 아예 그곳에서의 일 자체를 보고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서옹의 신신당부를 어기고 엉뚱한 사람에게 서찰을 전했다는 잘못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진풍의 의도에 무흔은 쓴웃음을 흘렸다.

그때 돌아서려던 진풍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런데 무흔은 서찰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엥?”

서옹의 시선이 무흔에게 돌아갔다.

갑자기 무흔도 할 말이 사라졌다. 서찰을 전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그 이상한 상황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심령망혼사 내단과 관련된 내용은 입도 뻥긋할 수 없다.

서옹은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 듯 그를 팍 째려보고는 다시 물러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낮잠을 자려고 정자에 몸을 쭉 펴는 서옹을 보며 무흔 일행은 몸을 돌렸다. 그렇게 막 그들이 막사로 돌아가려 할 때 갑자기 서옹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흔! 넌 절편 사러 가야지. 너 없는 동안 먹고 싶어 혼났다.”

무흔의 몸이 굳어짐과 동시에 진풍이 킥킥 웃으며 사라졌다. 홀로 남은 무흔이 안면을 찡그리며 다시 서옹 앞에 대기했다.

배를 벅벅 긁던 서옹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를 유심히 살폈다.

“흘흘, 넌 온천욕이라도 하고 왔냐? 신수가 훤해졌어.”

“아니, 어르신. 고생해서 남루해진 제 행색이 안 보이신단 말입니까?”

무흔은 억울한 마음에 한탄했다.

서옹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돌렸다.

“그건 됐고. 넌 왜 서찰을 안 전했냐?”

“실은 전했습니다.”

무흔은 주변을 둘러보고 엿듣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뭔 소리냐?”

“실은 문주가 말씀하신 것과 다르더라고요.”

무흔은 간략하게 신화문 사태를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던 서옹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평소 모든 일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서옹의 성격을 고려하면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의 말이 모두 끝났을 때 서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흘흘, 어쩐지 지난번에 서찰을 보냈을 때는 녀석이 돌아오지 않더라고.”

“아니! 그걸 아시면서 저를 보내셨습니까?”

“네 녀석과 진풍이라면 돌아올 줄 알았어. 평소 뺀질거리는 걸 보면 말이지.”

“예? 제가 뺀질이라고요?”

무흔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서옹에게 항의했다.

배를 긁던 손으로 이번에는 코를 후비적거리는 서옹을 향해 무흔이 은근슬쩍 물었다.

“그런데 서찰에는 뭐가 적혀 있었습니까?”

“흘흘, 별거 아니다. 안부 인사와…….”

대답해주려던 서옹이 멈칫했다.

그러더니 잠시 무흔의 표정을 살피고는 서옹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요즘 마교의 움직임이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네 녀석의 말을 들어보면 신화문은 이미 마교 잔당에 오염된 모양이구나.”

“아! 거기 가는 동안 숭무문도 만났었는데 그들도 조금…….”

무흔은 여정 도중에 만났던 숭무문 사람과 그들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생각을 전했다.

“그놈들도 비슷한 상황인가 보군. 쯧쯧.”

서옹이 혀를 찼다. 그 모습만 보면 천하태평으로 보였지만 무흔은 왠지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를 진지함을 읽었다.

서옹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마교랑 사마련이 연합하는 낌새가 비치는군. 큰일이야.”

무흔은 당금 무림의 정세를 대번에 간파하는 서옹의 정확한 시각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역시 이래서 늙은 생강이 맵다.

원래 마교는 중원 외곽에 자리한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렇다고 새외에 속하는 이민족은 아니었지만 전통적인 개념의 중원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마교의 무공 또한 기존 정사의 범위를 벗어난 형태였다. 엄밀하게는 같은 줄기였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무림인들의 인식은 그러했다.

이런 분위기는 마교를 무림맹이나 사마련에서 벗어난 제 삼의 존재로 간주하게 했다. 덕분에 사실상 같은 뿌리이자 같은 성격인 마교와 사마련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적어도 백 년 전에 만혈대에서 벌어졌던 정마대전 때까지는 그러했다.

만혈대에서 큰 타격을 입었던 마교는 그 후 대외적인 활동을 자제해왔다.

그런 분위기가 최근 달라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마교와 사마련의 연합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물론 무흔은 그 내막과 앞으로의 전개까지 대충 알고 있다. 덕분에 서옹의 중얼거림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서옹의 탁월한 시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흔이 내심 감탄하고 있을 때 서옹이 허리춤을 뒤적거리면서 동전을 꺼냈다.

“옜다, 인석아. 절편이나 사 오거라.”

더는 할 말이 없는 듯 서옹이 그를 물렸다. 무흔은 동전을 받고 인사를 한 후 물러났다.

 

***

 

오랜만에 들린 시장은 평소처럼 활기찼다.

그동안 신화곡이란 계곡과 산길만을 바삐 오갔던지라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은 신선한 흥미를 안겨줬다. 원래대로라면 곧장 떡집으로 직행했겠지만 오늘따라 여유가 생긴 무흔은 시장을 배회했다.

여유롭게 걷다 보니 모든 장면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보통 때 보지 못하던 자잘한 삶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이 동네가 낯선 그에게 무척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길가에 당과를 파는 노점이 보였다.

입맛이 동한 그는 당과를 하나 사서 입에 물었다. 역시 군것질은 진리였다. 당과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그의 눈에 시장을 활보하는 네 남자가 보였다.

개봉사걸. 예전에 진풍의 사주를 받아 그를 방해하려다 혼쭐이 났던 녀석들이었다. 아는 사람을 만나니 반가웠다.

녀석들을 놀래주려고 뒤따라 가다 보니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 녀석들이 뭔가 작당하는 것이 느껴졌다.

앞서가던 개봉사걸이 놀이패를 구경하는 한 청년을 쭉 둘러쌌다. 청년은 시장 한가운데에서 묘기를 부리는 놀이패의 공연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환호성을 지르는 틈에 서로 눈빛을 교환한 개봉사걸이 청년의 몸에 쓱 붙었다가 떨어졌다.

“이런!”

뒤에서 지켜보던 무흔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눈에 개봉사걸이 청년의 품에서 전낭을 슬쩍하는 장면이 들어온 것이다. 과거라면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일이 지금은 똑똑히 보였다.

“이것도 내공 탓인가?”

갑자기 늘어난 내공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던 무흔은 금방 그 원인을 알아냈다.

원인은 바로 손목에 적힌 만변귀공 5/12란 수치. 만변귀공에 역용술만 포함된 것이 아니다. 소매치기 같은 온갖 잡다한 기술도 섞여 있었다. 그렇기에 만변귀공을 익힌 무흔은 자연스럽게 소매치기나 도둑질 기술에서 뛰어난 숙련도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허, 거참.”

뜻하지 않은 사실에 그는 실소를 터트렸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될지 아닐지 의문이긴 했으나 눈앞의 소매치기범을 그냥 둘 수 없었다.

그 사이 개봉사걸은 목적을 달성한 후 낄낄대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무흔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서 한 녀석의 뒤통수를 확 후려갈겼다.

빡!

“누구냐!”

개봉사걸이 버럭 화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

“나다. 이놈들아.”

무흔이 피식 웃으며 녀석들에게 눈알을 부라렸다.

그에 무흔을 발견한 개봉사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더니 넙죽 고개를 숙였다.

“형님 오셨습니까.”

이 자식들이 나이가 얼마인데 형님이라니. 외모로 따지면 적어도 무흔이 십 년은 더 어렸다.

“뭐 하냐?”

“시장 바닥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상인들이 안심하고 물건을 팔고 있는지 확인해야죠.”

“너희가 있는 게 도리어 안심이 안 돼.”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 구역 아닙니까.”

파락호 녀석들에게 무슨 구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무흔은 녀석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사고 치지 마라.”

“당연하죠.”

다시 넙죽 절을 한 녀석들이 눈짓을 교환하고는 바삐 저쪽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무흔은 자신의 품속에 손을 넣었다. 전낭이 손에 잡혔다. 개봉사걸이 청년에게서 훔쳤던 그 전낭이 어느새 무흔의 품으로 들어와 있었다.

“햐, 이 기술만 있으면 굶어 죽지는 않겠네.”

새삼 만변귀공의 첫 장에 적혀 있던 만변노사의 넋두리가 떠올랐다.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무흔은 전낭을 돌려주려고 놀이패가 있던 곳으로 다시 갔다.

여전히 신나는 공연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그 청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전낭을 갖게 된 무흔은 난감해졌다.

“이거 도둑이 된 기분인데?”

청년을 찾게 되면 돌려줄 생각을 하고 무흔은 시장으로 나온 목적을 떠올렸다.

그래 떡이었다.

오랜만에 떡집에 들린 무흔을 주인아주머니가 웬일이냐며 환대했다. 오늘따라 떡국을 공짜로 대접하신다나.

따끈한 떡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자리를 찾는 가운데 익숙한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개봉사걸에게 전낭을 털렸던 그 청년이었다. 청년이 한쪽 구석에 앉아 떡국을 먹고 있었다. 시장바닥에서 열심히 찾았더니 정작 여기에서 밥을 먹고 있다니. 반가움에 청년에게 달려가려던 무흔은 그 직전에서 멈춘 다음 부근의 빈자리에 앉았다.

무흔은 떡국을 먹고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흠, 돈이 없을 텐데?’

문득 염려됐다. 동시에 청년이 전낭을 잃어버린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무흔은 잠자코 청년을 지켜보며 떡국을 먹었다. 청년은 시장했던 탓인지 무흔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이윽고 떡국을 다 먹은 청년이 품을 뒤졌다. 당연히 전낭이 있을 리 없다. 그제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의 안색이 시커멓게 변했다.

‘쯔쯔.’

무흔은 내심 혀를 찼다.

청년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눈치챈 주인아주머니가 다가왔다.

“이보게, 총각!”

“예?”

“돈이 없나 봐?”

“아, 그, 그게 있었는데…… 분명히 있었는데…….”

당황한 청년의 입에서 변명이 새어 나왔다. 주인아주머니의 눈썹이 쌍심지가 됐다. 몇 차례 품을 더듬던 청년이 결국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푹 숙였다.

“어떻게 할래? 응?”

주인아주머니가 다그칠 때 무흔이 나섰다.

“저분 음식값, 저한테 달아놓으세요.”

“응? 무흔이 왜?”

“전 괜찮아요. 밥 사드렸다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알았어.”

어쨌든 밥값을 받게 된 주인아주머니가 순순히 물러났다.

그를 힐끔 본 청년이 그의 자리로 와서 꾸벅 인사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흔은 청년에게 앞자리를 가리켰다. 청년이 자리에 앉자 그는 전낭을 넘겼다.

“제대로 다 있는지 확인해보세요.”

전낭을 본 청년의 눈이 뜨악 벌어졌다.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무흔이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아까 장터 한중간에서 놀이패 공연 봤었죠? 그때 소매치기 일당이 전낭을 털어가더군요. 제가 쫓아가서 빼앗아왔죠. 돌려드리려고 했는데 공연장에 없어 찾아다녔습니다.”

무흔의 설명에 청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한 표정이었다. 청년이 황급히 전낭을 열고 내용물을 탁자에 우르르 쏟았다.

구리 동전과 은자가 꽤 많았다.

조심성 없이 누구나 볼 수 있는 이런 장소에서 내용물을 쏟는 청년의 행동도 어이가 없긴 했다. 저러니 전낭을 도둑맞아도 눈치채지 못하지.

“다행히 전부 다 있네요. 감사합니다. 돈도 돈이지만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서…….”

청년의 말에 무심코 무흔은 탁자 위에 쏟아진 물건들에 시선을 보냈다. 각종 동전과 호패. 특별한 것이 어디 있냐고 눈을 돌리려는 찰나.

동전은 동전인데 특이한 것이 보였다. 아니, 엄밀하게는 그냥 동전이 맞았다.

평범한 은자 한 냥이었는데, 특이한 점은 둥근 은자의 귀퉁이가 예리하게 잘려있다는 점이다.

이를 본 무흔은 바로 고수가 내력을 이용해서 자른 은자란 사실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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