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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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4화
34화. 심령망혼사 (3)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신화문주가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사람에게 호통쳤다. 이미 제거하기로 한 이상 도망친 한 명까지 완벽하게 없애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에 진풍과 대호 두 사람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로 그들이 아는 바는 없다.
분노한 신화문주가 눈짓을 하자 옆에 서 있던 시시라던 여제자가 검을 뺐다.
스르릉-
시시가 뚜벅뚜벅 다가와서 진풍의 목에 검을 댔다. 겉모습은 예쁘장했으나 외부로 시퍼런 서슬이 어렸다.
“말해라!”
“모, 몰라요. 그 자식이랑 나는 아무 상관 없어요. 아! 씨, 그 자식 이렇게 사고 칠 줄 알았어. 저 녀석이 걔랑 더 가까워요!”
진풍이 옆에 잡혀 있는 대호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웠다. 급하니 본심이 튀어나온다.
시시가 가소롭다는 듯 웃더니 이번에는 대호에게 다가갔다.
“네놈이 안단 말이지?”
그에 대호가 그녀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는 어젯밤까지 분명히 함께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보니 없더군. 당신들이 이미 잡아 가두어 놓고 우리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것 아닌가? 그가 어디에 있는지는 우리가 더 궁금하다.”
시시의 눈빛이 사납게 변하며 대호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목에 선명한 붉은 선이 그어지며 피가 살며시 배어 나왔다.
“어디에 있지?”
대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신화문주가 가소롭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원래 모난 돌 옆에 있다가 정 맞는 법이야. 친구 잘못도 책임질 줄 알아야지.”
신화문주의 서늘한 목소리가 장내에 떨어졌다.
진풍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무, 문주님! 제발! 제, 제가 반드시 그 녀석을 찾아오겠…….”
시시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네놈이 먼저 죽고 싶은가 보구나.”
그녀가 막 진풍에게 검을 들이밀려고 할 때였다.
쿠쿵!
갑자기 문주 뒤쪽에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아래로 뚝 떨어졌다. 나무의 부러진 부분은 검으로 벤 듯 매끈했다.
“누구냐?”
문주 옆에 있던 호위무사들이 다급하게 문주를 보호했다.
모두가 술렁이는 가운데 나무 뒤쪽에서 한 사나이가 걸어 나왔다.
평범한 낡은 옷을 입은 호리호리한 중년인이었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머리에는 죽립을 썼다. 죽립 아래로는 입술만 간신히 드러나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여기가 신화문인가?”
목소리 역시 걸걸하고 음산했다. 죽립인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유랑검객과 비슷함에도 그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 죽립인에게서 풍기는 위압적인 기운 때문이었다.
이런 순간에도 용기를 내는 수하가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그렇다. 신화문이다. 당신은 누구냐?”
신화문 무사 하나가 용감하게 소리쳤다.
그에 천천히 주위를 쓱 살피던 죽립인이 말했다.
“나는 북악신군을 만나러 왔다.”
북악신군이란 말이 나오자 신화문주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감히 네놈이 전대 문주님을?”
호위무사들이 분개하며 검을 뽑아 들려는 순간 신화문주가 부하들의 흥분을 진정시켰다.
“당신은 누군가? 내가 바로 현 문주다.”
“나? 흐흐…… 북악신군에게 묵은 빚이 있는 사람이지. 지금부터 무려 십여 년 전, 들어봤나?”
신화문주는 죽립 틈 사이로 힐끗 느껴지는 사나이의 가공할 눈빛에 몸이 절로 위축됐다.
“십 년? 누구냐?”
신화문주는 손짓으로 부하들에게 포위를 지시하며 다시 물었다.
“음, 무……극서생이다.”
무흔은 자신도 모르게 본명을 말하려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말을 돌렸다. 덕분에 무흔이 무극서생으로 바뀌었다.
바로 무극서생의 전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무극서생?”
당연히 그 누구도 들어본 바가 없었다. 신화문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안면을 찌푸렸다.
“넌 들어본 적 있나?”
신화문주가 주변을 지키고 있는 장로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웅성거리던 장로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다.
“서, 설마?”
“아는 별호인가?”
“이십 년 전에 강호를 진동시켰던…… 그 무극서생?”
장로 한 사람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자, 그제야 기억 난 듯 다른 장로들마저 수군거렸다.
“허억!”
장로들 사이에서 동시에 신음에 가까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 이십 년 전, 강호를 진동시켰던 정사지간의 인물……. 한때 적수가 없었다던…….”
“검의 달인! 그 누구에게도 패한 적이 없다던…….”
“앞을 가로막는 자는 모두 썰었다는 인면수심의…….”
장로들이 토해내는 무극서생의 기억은 놀라웠다.
신화문주를 포함해서 장로들 모두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정작 당황한 사람은 무흔이었다.
‘설마? 무극서생이 실존 인물이었어?’
공교롭게도 급조해서 지어냈던 별호가 한때 강호를 뒤흔들었던 인물이었던 모양이었다. 다행히 그의 당황한 표정은 죽립에 가려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다.
신화문주의 안면에 점점 질린 표정이 드리워지자 용기를 낸 장로 가운데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네놈은 누구길래 감히 무극서생을 사칭하는 거냐?”
장로가 문주에게 제대로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 듯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무흔은 검을 앞으로 겨누며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허허, 본좌를 앞에 두고 사칭이라니.”
어차피 말을 교환할수록 손해 보는 것은 무흔이었다.
무림에 뛰어든 시간이 불과 몇 달인 그가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을 말로 상대할 재간이 없다. 당연히 무력시위로 돌파하는 것이 유리했다.
무흔이 발검 자세를 취하자 장로 하나가 앞을 막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사기꾼!”
그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무흔의 검이 번뜩이며 순식간에 변화를 일으켰다.
잔백수라십이검의 제 일식이 펼쳐졌다.
잔백수라십이검은 일반적인 정파의 무공과는 차별화된 지극히 잔혹한 검법이었다. 사실상 정사지간의 무공이다.
검의 잔영이 신화문 장로를 휘감았다. 내공이 실린 잔백수라검법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채챙!
장로의 검이 뚝 부러지며 저편으로 휙 날아갔다.
무흔의 검은 상대의 검을 부러트림과 동시에 이미 장로의 가슴팍을 몇 차례 난도질한 후였다.
“허억!”
장로가 가슴에 피를 뿜으며 뒤로 넘어지자 자연스럽게 무흔의 검이 상대의 목을 겨눴다.
무흔 역시 잔백수라십이검의 위력에 깜짝 놀랐다. 몇 차례 연습 삼아 초식을 휘둘러보기는 했지만 실전에서 위력을 확인한 것은 처음이었다.
장로가 신음을 터트리며 싹싹 빌었다.
“사, 살려주시오. 지, 진짜 무극서생인가 보오.”
무흔은 자신감을 얻었다. 공력이 실린 잔백수라십이검은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위력을 보였다. 그렇다면 완전히 기를 죽여 놓아 볼까.
신화문주를 비롯해서 모든 문도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때 무흔은 천천히 다시 내력을 끌어올렸다.
고오오오-
무흔의 주위로 거대한 기의 흐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심상찮은 기의 흐름을 직감한 신화문주의 안면에 감탄이 일었다.
‘이, 이놈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었어. 정말 전설의 그 무극서생인가 보다.’
그때 무흔의 눈이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팔각정 전각으로 돌아갔다.
“하압!”
무흔은 가벼운 기합과 함께 공공십팔보를 펼쳤다. 그러자 그의 신형이 팔각정 위로 번개처럼 쏘아나갔다.
아! 보라.
번쩍!
무흔의 신형이 한 마리의 비조처럼 팔각정 앞에서 어른거리더니 검의 끝에서 뇌전이 작렬했다. 검의 끝에서 마치 하늘이 붕괴될 것 같은 기운을 토해냈다.
비천삼검의 제 삼식. 그가 적황쌍마를 상대할 때 펼쳤던 최후의 절초! 온 세상의 강함을 끌어모은 뇌전이 팔각정 위로 내리찍었다.
콰아아-앙!
가공할 신위! 일 갑자를 넘나드는 내공이 집약된 비천삼검의 위력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르르르-
팔각정 전체가 마치 두부처럼 으깨어지며 붕괴됐다. 대기가 요동치며 먼지와 돌가루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강기의 파편이 신화곡을 뒤흔들었다.
“어어……!”
신화문주와 그 문하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처음 보는 엄청난 신위에 정신을 제대로 차리는 자가 드물었다.
그런데 정작 무흔도 무너진 팔각정을 보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단순히 익힌 것 중 가장 강한 초식을 일갑자의 내공을 투입하여 전력으로 펼쳐본 것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위력이 구현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다니.
파편과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한바탕 검의 위력이 휩쓸고 간 장내에 뒤를 이어 고요만이 내려앉았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한 무흔은 목에 힘을 팍 주고 천천히 시선을 신화문주에게 돌렸다.
강렬한 기세에 완전히 압도된 신화문주가 벌벌 떨며 무릎을 꿇었다. 문주가 무릎을 꿇자 문도들 역시 하나둘 바닥에 엎드렸다. 그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무흔은 중앙으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너, 아까 뭐라고 했어? 친구 잘못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고 했지? 나에게 대든 장로 책임은 문주가 져야 하는 거 아냐?”
“허억! 제,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북악신군은 어디에 있느냐?”
무흔의 질문에 신화문주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조아렸다.
“노, 노 선배님에게 무례를 끼쳐 죄,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북악신군께서는 폐관에 들어가셔서 만나 뵐 수 없습니다. 노 선배께서는 폐관 수련 중인 자를 만날 수 없다는 강호의 도리를 기억하시고 더 이상의 핍박을 멈추어주십시오.”
잡다하게 붙였으나 결국 그 뜻은 항복이란 말이었다.
“흥.”
무흔은 신화문주의 앞으로 다가가서 목소리를 높였다.
“흐흐, 그럼 폐관이 끝날 때가 언제란 말인가?”
“저희도 모릅니다만 벌써 폐관에 들어가신 지 이 년이 넘었습니다.”
북악신군을 감금한 때가 이 년 전이란 말일 것이다.
괘씸한 이들을 혼쭐내고 싶었으나 자칫 정체가 발각될 위험이 있는 데다, 이들과 사생결단을 낼 처지도 아니었다. 그는 더 압박할 생각이 없었다.
무흔은 신화문주를 노려봤다. 죽립이 가리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뻗어 나온 살기가 신화문주를 압박했다.
움찔.
신화문주가 몸을 움츠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아량을 베풀어 주옵소서.”
무흔은 묵직한 목소리로 그들을 압박했다.
“이 년 후에 내가 다시 올 것이다. 그때까지 북악신군에게 기다리고 있으라고 전하라. 북악신군이 없다면 그 즉시 너희들에게 그 죄를 물을 것이다.”
혹시나 신화문주가 북악신군에게 가할지도 모를 위해를 사전에 차단했다.
“아,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신화문주가 대답했다.
더는 무흔을 막아서는 자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진풍과 대호를 구하는 일이다.
무흔은 걸음을 옮겨 광장의 중앙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진풍과 대호의 옆을 지나칠 때였다.
“대, 대협! 저,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다급한 진풍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발이 묶인 진풍이 그를 향해 구해달라고 사정했다.
무극서생으로 변신하고 이 자리에 나타난 목적이 뭔가. 진풍과 대호를 구하려고 한 것 아니었던가. 그는 모르는 척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흠, 넌 누구냐?”
“무,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대화가 추가되면 오히려 골치 아프다. 무흔은 진풍과 대호를 쓱 훑어본 다음 신화문주에게 지시했다.
“풀어줘라!”
“네?”
무흔의 말에 신화문주는 깜짝 놀랐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부하 한 명이 두 사람의 포박을 풀었다.
그제야 자유의 몸이 된 진풍과 대호가 꽁지가 빠지라 도망쳤다.
신화문주를 비롯한 문도들은 혹시나 무극서생의 심기를 건드릴까 우려하여 감히 일어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무극서생이 사라질 때까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무흔은 신화문의 영역을 벗어나자 발걸음을 빨리했다. 다행히 그를 따라오는 녀석들은 없었다.
무극서생이라…… 본의 아니게 실존 인물을 가장했지만 어차피 이십 년 전 은퇴한 기인이라면 상관없지 않을까. 그는 무극서생이란 별호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강호를 누빌 수 있는 좋은 신분이 새로 생겨난 셈이다.
‘그래, 무극서생! 정파도 사파도 아닌 인물이자 지극히 패도적인 성격을 지닌 전대 기인! 앞으로 골치 아픈 일에는 무극서생의 신분을 이용하자.’
무극서생은 그가 이 세계의 사건에 개입할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는 무극서생이란 신분으로 강호를 누비게 될 앞날을 그리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