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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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2화
33화. 심령망혼사 (2)
“허억!”
무흔은 기겁해서 연거푸 뒤로 물러났다.
그를 노려보며 눈을 깜박이는 심령망혼사의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스스스스-
구렁이가 땅을 비벼대는 소음이 들리면서 거대한 몸이 꿈틀거렸다.
“으아아악!”
무흔은 재빨리 뒤로 도망쳐 동굴 벽 뒤로 숨었다.
그는 검이 왜 구렁이에게 먹혀들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거의 천년을 산 영물인 심령망혼사의 외피는 마치 철갑을 두른 것처럼 딱딱한 비늘로 덮여 있었다. 당연히 무흔이 별생각 없이 만만히 보고 내려친 칼질에 흠집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벽 뒤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허억!”
심령망혼사가 그가 숨은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존재를 확인한 구렁이가 천천히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가까이 다가왔다.
후다닥-
무흔은 깜짝 놀라 급하게 밖으로 뛰었다.
그런데 한참 뛰다가 생각해보니 이렇게 뛸 문제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심령망혼사를 잡으러 오지 않았던가.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또 심령망혼사의 흉측한 외모에 기가 질려서 대충 검을 휘두르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무흔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심기일전한 재차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심령망혼사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여타 구렁이와는 달리 붉은 눈동자가 그의 몸을 사시나무처럼 휘둘리게 했다.
“흐아, 꿈에 나타날까 두렵군.”
투덜거리면서도 무흔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여러 번 싸우게 되면 불리했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단 한 번의 칼질로 녀석을 도륙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떠오르는 검법은…….
“잔백수라십이검이다. 십이식 가운데 구렁이를 잡기에 제일 좋은 초식은…….”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십이식이 모두 그려졌다.
스스스스-
먹이를 노리며 긴 혀를 날름거리는 심령망혼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하앗!”
무흔은 동굴 벽을 박차며 신형을 허공으로 날렸다. 마치 비조처럼 그는 구렁이와의 간격을 좁히며 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그의 몸이 심령망혼사에 불과 한 자 가까이 다가간 순간 심령망혼사의 입이 쩍 벌어지며 꿈틀대는 혓바닥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동시에 그의 검이 가공할 내공을 품고 잔백수라십이검의 검초를 그었다.
검광이 살벌하게 휘몰아치며 구렁이의 눈을 내리찍었다.
푸욱-
물컹한 느낌과 함께 검 끝이 심령망혼사의 눈동자 하나를 꿰뚫었다.
크아아악-
심령망혼사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꿈틀댔다. 눈에는 검이 박혀있었다. 심령망혼사의 움직임 때문에 동굴이 마치 폭약을 맞은 것처럼 흔들렸다.
동굴이 무너질까 봐 두려웠다.
크우우우-
심령망혼사의 울음소리가 계속되는 동안 무흔은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거대한 구렁이가 전신을 뒤틀며 몸부림치는 장면은 장관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한동안 난리 치던 심령망혼사의 몸부림이 점차 잦아들었다.
무흔은 공공십팔보를 발휘해서 허공을 격하고 구렁이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는 손을 뻗어 눈에 박힌 검을 잡았다. 그는 심령망혼사의 머리를 발로 차고 다시 허공으로 튀어 오르면서 힘차게 검을 뽑았다.
푸악-
구렁이의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무흔은 동굴 천장을 발로 차고 재차 심령망혼사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심령망혼사의 콧김이 내뿜어지면서 무흔의 접근을 피하려는 몸부림이 시작됐다.
그때 무흔은 눈앞의 심령망혼사를 향해 다시 잔백수라십이검을 펼쳤다.
푸욱-
이번에는 반대편 눈으로 검이 들어갔다. 사실상 두 눈을 모두 망가트린 강력한 한 수였다.
무흔은 가볍게 심령망혼사의 머리 위에 발을 디디며 검을 뽑았다. 처음에는 징그러워 가까이 가지도 못하겠더니 지금은 검을 지르고 발을 디딜 만큼 대담해졌다.
크아악-
머리에 무흔이 앉은 것을 감지한 심령망혼사가 입을 쩍 벌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 순간.
무흔은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의 검이 구렁이의 벌린 입속에 콱 박혔다. 전력을 다한 그의 검은 입속으로 들어가 턱을 뚫고 다시 밖으로 삐져나왔다.
쿠아아악-
심령망혼사가 울음과 함께 한차례 심한 발버둥을 치더니 잠시 후 마침내 움직임이 잠잠해졌다.
“후아, 죽었나?”
옆에 착지한 무흔은 바닥에 쓰러진 심령망혼사를 살폈다.
어쨌든 그의 승리였다.
그는 머리에 박힌 검을 쥐고는 내공을 주입하고서 검을 쭉 그었다. 심령망혼사의 아가리가 쭉 찢어졌다. 의외로 구렁이의 표면은 딱딱하고 단단한 부분이 있는 반면 다소 덜 딱딱한 영역도 존재했다.
구렁이의 머리에서 비릿한 냄새와 함께 누런 뇌수가 흘러나오자 무흔은 기겁했다.
“아! 내단을 먹으라고 했지?”
내단이 어디에 있는지 알 재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심령망혼사의 머리를 검으로 토막 냈다. 사실상 뱀의 껍질을 벗기고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흐악! 징그러!”
여전히 심령망혼사는 목숨이 붙어 있는 듯 미세한 떨림을 일으켰다.
물론 위협적이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자 그것마저도 점차 움직임이 멎었다.
반면 무흔은 징그러운 구렁이의 머리 부분을 해체하며 울상이 됐다.
“흐아, 내단이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어느새 구렁이의 점액이 검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마침내 검 끝에 딱딱한 무엇이 느껴졌다.
무흔은 검을 움직여 해당 부위의 껍질을 도려냈다. 하얀 구렁이의 속살 중간에 붉은 달걀 모양의 물체가 드러났다.
“이거다!”
무흔은 눈을 질끈 감고 심령망혼사의 내단을 꺼냈다.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단을 손으로 받았다. 내단에서 따뜻한 열기가 느껴졌다.
“이걸 바로 먹으라고 했지?”
끈적거리는 구렁이의 점액이 붙어 있는 것이 도저히 먹을 상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단을 보고 있자니 저녁 먹은 것이 그대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천년적화초가 훨씬 나았다.
이건 하늘이 내린 시련이다.
“으으으…… 그래도 일갑자!”
눈을 꾹 감고 백단영을 떠올리며 눈을 떠서 내단을 봤다.
결국 무흔은 다시 눈을 질끈 감고는 내단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컥!”
맛이고 뭐고 따질 틈도 없이 입속이 불이 난 듯 화끈해졌다. 그는 내단을 꿀꺽 삼켰다.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흘러 들어갔다.
다음 순간.
“으악!”
그는 몸속에 불덩이가 들어간 것 같은 열기에 비명을 질렀다.
천년적화초 때와 다른 점은? 주위에 물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져 비틀거리다가 간신히 심법을 떠올렸다. 천년적화초를 먹고 심법으로 내기를 다스리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재빨리 가부좌를 틀고 천단비화신공의 구결을 떠올렸다.
내부를 달구던 뜨거운 기운이 서서히 잡히기 시작했다.
예전 천년적화초의 경우에는 그가 감당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에게는 천단비화신공이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부를 휘젓는 기운을 유도하며 전신 혈맥을 통해 기운을 순차적으로 이동시켰다.
내단에서 쏟아지는 기운이 엄청났다. 그는 단번에 이 모든 기운을 흡수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천년적화초 때처럼 기운의 절반을 흡수하고, 나머지 절반은 단전 부근에 모았다.
그의 몸 내부에 천년적화초와 심령망혼사의 내력 절반이 뭉쳐진 거대한 응어리가 생겨났다. 이 응어리에 담긴 기운은 나중에 재차 흡수를 시도할 생각이다.
운공을 마친 무흔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
화섭자가 모두 타버려서 동굴 내부가 매우 어두웠으나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낮만큼은 아니지만 사물을 구분할 만큼의 밝기로 보였다. 적어도 전보다 한 단계 발전한 수준이다.
“확실히 몸이 다르네.”
몸이 깃털만큼 가벼워졌다.
그는 마지막으로 심령망혼사의 시체를 향해 잠시 묵념을 했다. 어쨌든 그의 내공 증진에 엄청 도움을 주었으니까 저승에서나마 편히 살라고 명복을 빌어줬다.
그는 다시 검을 쥐고 동굴 밖으로 향했다. 손잡이에 묻은 끈적거림이 기분 나빴다. 얼른 손부터 씻고 입도 헹궈야겠다.
***
무흔은 햇살을 맞으며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야밤에 깜깜한 시각에 올라왔었는데 지금은 해가 중천에 떴다. 심령망혼사를 잡느라 시간을 끌은 데다 거기에 내단을 먹고 융해시키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지막에는 북악신군을 데리고 내려가려고 설전을 벌이다가 더 시간을 끌게 됐다. 무흔은 몸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내력에 자신의 내공이 최소한 일갑자는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는 그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그렇기에 그는 북악신군에게 함께 가자고 권했다. 북악신군은 거부했다.
“나는 제자 벽해결을 여기서 기다리겠다. 해결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절대 여기를 떠날 생각이 없으니 혼자서 내려가라.”
결국 북악신군의 고집을 꺾지 못한 무흔은 홀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동굴을 나와 보니 햇빛에 눈을 뜨기 힘들 시각이었다.
무흔은 동료인 대호와 진풍이 걱정됐다. 신화문주 쪽에서 그들을 없애겠다고 작정하고 있음을 알기에 더욱 마음이 불안했다. 진풍과 대호의 무공이라 해봐야 산적에게나 먹힐 뿐 무림 문파에 비벼볼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신화문은 중원에서 꽤 위세를 떨쳐온 문파다.
한참을 내려가니 전각이 보였다.
“어?”
숙소로 접근하던 무흔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전각 옆으로 숨었다.
계곡 한쪽에 자리한 비교적 평탄한 연무장에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신화문 문도들이 연무장을 쭉 둘러서 있고 연무장 앞쪽 제단에는 신화문주의 모습이 보였다.
놀랍게도 연무장 한가운데는 그의 동료인 진풍과 대호가 포박당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깜짝 놀란 무흔은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봤다.
“다른 한 놈은 어디로 갔느냐?”
신화문주가 고성을 터트렸다.
“저희는 모릅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없었습니다.”
그에 진풍이 고개를 조아리며 항변했다.
“네놈들은 기밀을 빼돌리려고 이곳에 온 것이 분명하다. 그놈은 이미 기밀을 빼서 도망쳤고.”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무림맹에서 보낸 사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믿느냐? 서찰이 조작되었는지 어떻게 아느냐?”
신화문주가 두 사람을 첩자로 몰아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신화문 문도들은 당연히 문주의 말을 받아들였다.
“저…… 저는 곤륜파 제자입니다. 옆에 있는 이 동료와는 다릅니다. 저는 믿을 수 있는 사람…….”
“네놈의 말을 더 믿지 못하겠구나!”
진풍의 대답은 바로 거부됐다.
무흔이 보기엔 저렇게 대답하는 진풍도 한심했지만, 어쨌든 저들이 이미 진풍과 대호를 죽이려고 작정한 이상 저런 변명은 오히려 명을 재촉한다고 생각했다.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신화문주의 심문이 계속됐다.
“그는 무흔이란 자이고 신화곡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를 언제까지 봤지?”
“어젯밤에 같이 잠들었습니다.”
진풍이 어떻게든 살아보고자 대답했다.
신화문주의 안면이 찌푸려졌다.
무흔은 그 표정의 숨은 뜻을 읽었다. 셋 다 있으면 바로 죽일 텐데 한 놈이 사라졌으니 곤란하다는 거다.
무흔은 이 사건에 엮인 대호에게 미안했다. 진풍이야 뭐 그가 굳이 미안해할 이유가 없다. 어쨌든 신화문주가 두 사람을 곧바로 죽이기 힘들다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급하지 않다.
신화문주의 무공 수위를 알 수 없지만 무흔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는 적어도 일갑자에 육박하는 내공과 최상승 무공이 있으니까. 전대 문주인 북악신군이라면 모르지만 갓 문주 직에 오른 햇병아리 문주쯤이야.
튀어나가려던 무흔의 신형이 급격히 정지했다.
생각해보니 강해진 무공을 드러내면 곤란했다. 게다가 여기서 사고 치면 자칫 앞으로 예속 부대에 머물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 시펄. 무흔 그 자식 때문에……. 저를 풀어주시면 그 자식을 반드시 잡아 대령하겠습니다.”
진풍의 하소연에 무흔은 피식 웃었다.
무흔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작은 전각으로 들어갔다. 이미 모두 연무장으로 나간 상태라 건물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그곳에서 평범한 옷가지를 찾았다. 이곳에서 동료를 구하려면 무흔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무흔은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마침 벽에 죽립도 걸려 있었기에 그는 주저 없이 죽립을 썼다.
두두둑-
그리고 만변귀공을 일으키자 몸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며 체형이 변했다.
신비한 역용술이 발휘된 것이다. 평소의 그보다 한 뼘가량 키가 커지고 호리호리한 체격으로 바뀌었다. 안면 역시 쳥년에서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인으로 변신했다.
실로 놀라운 만변귀공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