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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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31화
32화. 심령망혼사 (1)
그나마 동굴 내부에는 횃불이 밝혀져 있어 사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흔은 북악신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를 발견한 북악신군의 안면에 놀라는 빛이 떠오르기를 잠시 다시 관심 없다는 듯 건량을 씹기 시작했다.
“어르신.”
무흔은 조용히 그를 불렀다.
북악신군은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했다. 북악신군이 움직일 때마다 손과 발목에 묶인 쇠사슬이 거북한 소음을 울렸다.
“북악신군 주천룡 어르신 맞습니까?”
다시 무흔이 다그쳤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시선은 무흔을 향하지 않았다.
마지막 무기를 꺼낼 시간이다. 그는 품속에서 서찰을 뒤졌다.
“서풍 어르신의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갑자기 북악신군이 행동이 멎었다. 하지만 시선이 그를 향하지는 않았다.
무흔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전 오늘 무림맹에서 왔습니다. 무림맹이 보낸 서찰은 둘입니다. 하나는 벽해결에게, 다른 하나는 당신에게. 안타깝게도 벽해결에게 전해져야 할 서찰은 신화문주에게 가버렸지만 당신에게 전할 서찰은 아직 무사합니다. 바로 이곳에 있어요.”
그제야 서서히 북악신군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무흔은 손에 쥔 서찰을 조심해서 북악신군 앞에 놓았다.
“바로 이겁니다.”
봉인이 뜯어지지 않은 서찰이 북악신군 앞에 놓였다.
북악신군이 말없이 서찰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동굴 내에 침묵이 흐르고 무흔은 초조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봤다.
서찰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북악신군의 시선이 다시 무흔 쪽으로 향했다.
잠시 그를 살피던 북악신군이 간신히 입술을 뗐다. 기운이 빠져 불명확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넌 누구냐?”
“전 무림맹에서 온 무흔입니다.”
“무흔이라… 사문은?”
“백가상단입니다.”
“상단? 무림세가가 아니고?”
“예.”
무흔은 간략하게 대답했다.
이런 판국에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되묻고 싶었으나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서옹과는 어떤 관계냐?”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노인과의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서옹 어르신은 현재 무림맹에서 용봉대 예속부대의 대주를 맡고 계십니다. 전 예속 부대원이고요.”
노인의 눈빛에 살짝 실망이 어린 듯했다. 노인은 다시 앞에 놓인 서찰을 바라봤다.
잠시 후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하나는 벽해결에게 온 거라고?”
“서옹 어르신께서는 신화문주가 벽해결이라고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신화문주에게 전하라고 한 것인데 알고 보니 벽해결이 아니더군요.”
무흔은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래……. 서옹이라면 그렇게 알고 있을 법하지.”
“그 편지의 내용은?”
“저희는 모릅니다.”
그의 막힘없는 대답이 북악신군의 의심을 걷어낸 것일까. 북악신군이 떨리는 손으로 서찰을 잡았다.
무흔은 한쪽 옆에 서서 조용히 지켜봤다.
잠시 숨을 고르던 북악신군이 마침내 서찰을 열었다. 서찰을 읽는 노인의 안면이 감회에 젖었다.
이윽고 노인이 서찰을 접은 후 무흔에게 건넸다.
“이걸 저기에 태워주게.”
무흔은 서찰을 받아 횃불에 태웠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종이는 재가 됐다.
임무를 완수한 무흔은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당연히 다시 돌아가는 것이 정상이긴 한데, 쇠사슬에 매인 노인을 내버려 두고 가자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노인을 구해서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참 노인을 바라보던 무흔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막 돌아서려는 찰나 북악신군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여보게.”
“예?”
“나를 도와줄 수 있나?”
무흔은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노인이 불쌍해 보인다고 해서 그가 구출할 수는 없었다. 그가 이 노인을 데리고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었으니까.
“구해드리는 것은 힘들 것 같습니다. 현재 그들의 움직임으로 봐서 제 한 목숨 건사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알고 있네.”
북악신군이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간단한 부탁은 들어드릴 수 있을 듯합니다.”
무흔은 너무 매정하게 구는 것 같아 약간의 여지를 남겼다.
그의 견해로는 현재 이 노인은 사실상 무공이 전폐된 상태였다. 과거에는 노인이 일파의 문주로서 얼마나 위세를 떨쳤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 노인에게서는 조금의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노인을 이곳에 감금시킨 자들이 내공을 폐했을 것이다.
어쨌든 노인의 행색이 너무나 불쌍했기에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노인의 표정이 일순간 안정이 찾아왔다.
“자, 이리로 와서 내 말 들어보게나.”
무흔은 순순히 부근에 있는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내 비록 지금은 힘없는 노인네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지. 한때는 서옹이랑 강호를 누비면서 악한을 잡아 죽이는 협객행을 하기도 했었다네…….”
북악신군의 긴 과거사가 이어졌다.
강호 무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영웅행이었다. 무림에서 명예를 쌓고 사문으로 돌아간 북악신군은 문주로 등극했다. 이후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가 이어졌으나 말년에 이르러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평소 차기 문주로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벽해결을 내정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를 알게 된 아들 주왕호가 문주 자리를 탐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공식 석상에서 차기 문주로 벽해결을 지명하자 이때부터 주왕호의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주왕호는 외부 세력과 결탁하여 문주 자리를 호시탐탐 노렸다.
북악신군은 주왕호가 결탁한 외부 세력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정파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마련이었다.
그때 북악신군이 외부 세력에 대해 조사했다는 걸 안 주왕호가 먼저 반기를 들었다.
반란의 밤. 주왕호가 주입한 산공독과 미혼약에 북악신군은 저항하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차기 문주로 내정되었던 벽해결은 간신히 목숨을 구해 도망쳤다.
그날 이후 주왕호는 스스로 문주에 등극했으며 북악신군의 측근 장로를 모두 처형했다. 결국 북악신군은 무공이 전폐되어 신화곡의 깊은 동굴에 갇혔다. 그것이 바로 지금 상황이다.
“제자 벽해결이 반드시 돌아올 것이네. 비록 지금은 힘이 없어 구하러 오지 못하지만 힘을 기르고 나면 신화문을 재건하기 위해 분명히 돌아올 것이네.”
북악신군은 제자였던 벽해결에게 굳건한 믿음을 보였다.
무흔은 그의 과거사를 듣고 할 말을 잃었다. 사문의 부흥을 위해 아들을 내쳐야만 했던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들에게 배신당한 아버지. 그 질곡의 세월을 어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부탁하실 것이 무엇입니까?”
“보다시피 나는 얼마 살지 못할 거야. 나에게는 신화문의 비전 무공이 적힌 비급이 있어. 비급이 보관된 장소를 벽해결에게 알려주게나. 벽해결이 주왕호를 제거하고 신화문을 일으키려면 이 비급이 필요할 테니까. 내가 직접 전해주고 싶지만 하늘이 허용하지 않는구나.”
“제가 벽해결을 어떻게 만납니까?”
“벽해결은 분명히 무림맹을 찾아갈 걸세. 그때 말해주면 되네.”
무흔이 생각해도 북악신군이 살아 있는 동안 제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만큼 노인의 상태는 위중했다.
결국 무흔은 좋은 일 한다고 생각하고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비급은 어디에 있습니까?”
“비급은 여기에 없어. 이곳 신화곡 삼 봉에 올라가면…….”
북악신군이 비급이 묻힌 장소를 이야기해주었다.
“이 장소를 벽해결에게 알려주면 되네. 절대 아들 주왕호에게 발설하면 안 돼. 그놈도 지금 이 비급을 찾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거든. 이것만은 명심해주게.”
“알겠습니다.”
무흔은 명확히 선언했다.
그도 부모를 이렇게 만든 현재의 문주에게 좋은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아 무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또 다시 북악신군이 저지했다. 무흔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북악신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에게 보답해주고 싶네.”
“괜찮습니다. 별일 아닌데요. 오히려 제가 늦게 갈수록 들킬 확률만 높아집니다.”
무흔은 사양하려 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다 죽어가는 노인에게 뭔가를 받기도 꺼려졌다.
“그러지 말게. 내가 고마워서 주는 거니까. 물론 자네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겠지만.”
북악신군이 시선을 동굴 깊숙한 곳으로 돌렸다.
“이 동굴 내부에는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네. 정확하게는 심령망혼사란 놈인데 어린애 몸통 굵기에 길이가 십 장가량 되는 거대한 뱀이야.”
“헉!”
무흔은 어마어마한 뱀 크기에 경악했다.
“그놈이 대략 천년을 살다 보니 몸속에 내단을 품고 있어. 그놈을 잡아 내단을 취하게. 적어도 일갑자 이상의 공력을 얻을 거네.”
“으아, 전 싫습니다.”
무흔은 끔찍한 모습이 그려지자 몸을 움츠리며 손을 내저었다.
“허허, 싫다니!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천고의 영약이거늘. 단 심령망혼사를 죽이자마자 바로 내단을 먹어야 해. 시간이 지나면 급속도로 효력이 떨어지거든.”
“아, 괜찮습니다.”
무흔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여보게, 생각해봐. 내가 죽고 나면 주왕호 그 호래자식이 심령망혼사를 취하지 않겠나? 그럼 그 자식은 엄청난 고수로 거듭나게 될 거야. 난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심령망혼사를 무흔에게 주고 싶다기보다는 주왕호에게 주기 싫은 것이다.
무흔도 고민했다.
먹으면 적어도 일갑자! 지난번에 먹은 천년적화초에 버금가는 영약이다. 문제는 뱀이다. 끔찍한 뱀을 누가 보고 싶을까. 아무리 스스로 고수가 되겠다고 결심을 했다지만…….
“자네 평생에 이런 기회는 없을 거야.”
물론 소설 천향무후의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에게 이런 기회가 없진 않다.
하지만 그런 기회들은 잘못 건드리면 큰 흐름을 바꿀 여지가 있다. 반면 이 심령망혼사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영약이다.
무흔은 자신의 검을 쓱 쳐다보고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칼 앞에선 천 년 묵은 이무기라도 뱀 새끼일 뿐이지.
“알겠습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
무흔은 횃불 하나를 들고 동굴을 탐험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폭이 좁아지고 갈래 길이 많아졌으며 경사도 가팔라졌다.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어 무흔은 가장 넓은 길로만 내려갔다.
다행스럽게도 내부에 습기가 많지는 않아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지 않았다.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얼마나 전진했을까?
그는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
쉬이익- 쉭-
뭔가 거대한 생명체가 숨을 쉬는 그런 소리였다.
순간 절로 몸이 오그라들었으나 무흔은 간신히 가슴을 쭉 폈다. 그는 적당한 곳에 횃불을 놓은 다음 검을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헉!”
순간 무흔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신음을 간신히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무시무시한 녀석이 코앞에 등장한 것이다.
쉬이익- 쉭-
거대한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잠이 들어있었다.
누런 얼룩무늬가 온몸에 박힌 구렁이였다.
천년이나 되었다더니 거대한 크기는 단연 위압적이었다. 사람 정도는 한입에 삼킬 그런 무시무시한 놈이었다. 숨을 쉴 때마다 거대한 몸체가 부풀었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으아아,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놈이네.”
무흔은 섬찟 스며드는 공포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근처까지 접근했건만 놈은 완전히 잠이 든 것인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용기가 솟아올랐다.
“잠이 든 사이에 죽여버려야겠어!”
내심 작전을 설계한 무흔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징그러운 뱀의 비늘을 한참 노려보다가 검을 들었다.
“한방이다!”
그는 거대한 뱀의 몸통에 검을 찔렀다. 푹 들어가는 손맛을 기대했건만 결과는 달랐다.
쨍!
마치 금속에 검을 내려친 것처럼 날카로운 소음이 울렸다.
“응?”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잠자코 있던 구렁이가 꿈틀거렸다.
동시에 어둠 속에 붉은 두 개의 눈동자가 등장했다. 심령망혼사가 잠에서 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