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65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65화
65화. 비무 대회 (1)
용봉대에서는 일 년에 한 차례 비무 대회를 열게 되어 있었다.
휴가 기간이 끝난 직후에 잡혀 있는 이 비무 대회는 서른 명의 대원들 모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했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사실상 용봉대 최강자로 인정을 받는 것이기에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자연스럽게 입만 열면 비무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화, 더 강해진 것 같아.”
아침부터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아보는 남궁이화를 향해 백단영이 말했다.
남궁이화는 진지한 표정으로 검을 찔렀다가 당겼다가를 반복하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아직 멀었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 해.”
“우승을 노리는 거지?”
백단영은 장후성과 남궁이화를 비교해봤다.
그녀가 보는 두 사람의 실력은 막상막하.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우열이 갈린다고 할 정도로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남궁이화가 검을 휙휙 휘둘러 한차례 초식을 연습한 다음 재차 발검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당연하잖냐. 참여하면 무조건 우승을 노려야지.”
“장후성 소협이 가장 위협적이야?”
“장 소협 말고 또 있어. 현공 스님도 만만치 않아.”
소림 출신인 현공 역시 그 무공의 고절함이 익히 알려져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백단영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궁이화의 옆에서 자신도 연습할 채비를 했다.
남궁이화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장 소협이 아니야.”
“그럼?”
“난 그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목표가 생겼거든.”
“누구? 남궁세가 가주? 아니면 무림맹주?”
백단영은 얼핏 떠오르는 인물을 나열했다. 젊은 후기지수가 현 무림의 최강자를 목표로 삼고 열심히 수련하는 일은 이상한 현상이 아니었다.
다시 한차례 검을 휘두른 남궁이화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니, 다른 사람.”
백단영은 남궁이화가 목표로 삼은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누굴까? 마음에 꼭 드는 강자인가 보네.”
“얼마 전에 만났거든. 아직은 내가 그 사람에 미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꼭 따라잡을 거야.”
“얼마 전?”
백단영은 머리를 굴려봤지만 누구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최근에 화산에 다녀올 때도 그녀와 항상 붙어 다녔으나 별달리 만났을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데?”
“무극서생.”
“응?”
갑작스럽게 나온 별호에 백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날 대붕산채에서 봤어. 녹림팔괴가 한방에 쓸려나가더라. 대단하지 않냐.”
“그날 너랑 장 소협이 활약했던 것 아냐?”
“아냐, 무극서생이 모든 걸 다 해줬어.”
남궁이화가 털어놓은 진실에 백단영은 매우 놀랐다.
“이번만이 아냐. 예전에 구가장에서도 만났었는데……, 정말 대단하더라. 단 일검에 하늘이 쪼개지는 기분이었으니까. 나도 그런 무공을 익혀서 그 사람이랑 겨뤄보고 싶어.”
자신이 목격했던 무극서생의 무위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따라잡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보니 무척 감명 깊었나 보다.
“그래, 목표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
백단영은 그녀를 북돋아 주면서 무극서생을 떠올렸다.
운경각에서 무림사란 책을 읽어봤기에 무극서생이 누구인지 금방 떠올랐다.
“은거한 사람이지?”
“나도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자주 만나지더라.”
“다시 무림에 재 출도 했나?”
백단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예전에 무흔이 질문했던 내용이 생각났다. 그도 무극서생을 물었고, 당시 그녀는 책에서 봤던 내용을 답해주었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백단영은 웃으며 찜찜함을 털어냈다.
***
비무 대회 대진표가 공고됐다.
식당 앞에 붙은 대진표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무흔 역시 대진표에 관심이 많았다.
무려 백단영이 출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백단영이 우승을 바라볼 실력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잘 해주기를 바랐으니까. 쉬운 상대와 만나면 지금 상태에서는 꽤 순위가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해봤다.
“저건 누워 떡 먹기네.”
“누워서 떡 먹으면 체한다.”
무흔은 대진표 앞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진풍과 그 일당이었다. 어째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진풍이 대진표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감평을 하고 있었다. 무흔의 시선이 진풍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글자에 멎었다. 백단영이었다.
그때 마침 무흔을 발견한 진풍이 빈정거리며 도발했다.
“무흔, 너희 아가씨는 좋겠다. 이건 부전승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백단영의 첫 상대자는 해남에 있는 유명 문파인 해남검문에서 왔다는 유연향이란 여걸이었다. 무흔은 그녀를 검을 능숙하게 다루는 깜찍한 여인으로 기억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백단영에게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라 예상됐다. 그렇다 해도 저렇게 대놓고 말하면 기분이 나쁘다.
“모두 다 어려워. 전부 쟁쟁한 사람들이니까.”
무흔이 원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하자 진풍이 더욱 노골적으로 쏘아붙였다.
“뭐가 쟁쟁하냐. 해남검문? 거기 쩌리잖아. 저런 문파 문하생과 붙어서도 지면 밥을 먹지 말아야지. 하기야 예전에 매화곡에도 졌으니…….”
진풍이 신이 나서 백단영을 깎아내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누구야!”
진풍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뒤를 돌아보니 한 떼의 소녀들이 진을 치고 서 있었다. 진풍은 그 중심에서 그를 노려보는 여인을 보고는 다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뭐라고요? 쩌리?”
화를 내는 여인은 해남검문에서 올라온 유연향, 바로 백단영과 첫판에서 겨눌 상대이자 진풍이 깎아내리던 여자다.
“허억!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다 들었는데!”
철퍼덕!
유연향의 손이 휙 돌아가며 진풍의 뺨에 불이 났다.
갑작스러운 손놀림에 피하지도 못한 진풍이 뺨을 얼싸안고 고개를 푹 숙였다.
“너! 구진광 소협 사제인 진풍이라고 했지? 한 번만 더 내 사문을 비난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사생결단을 내고 만다. 곤륜이면 다 되는 줄 알아?”
유연향이 씩씩대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옆에 있던 동료 여인들도 진풍을 손가락질하며 비난했다.
진풍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반박조차 못 하고 찌그러졌다.
무흔은 그 장면에 피식 웃었다.
진풍이 남해검문에 특별한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단지 백단영을 비난할 건더기를 찾다 보니 말이 그렇게 나왔을 뿐.
이래서 평소에 말을 가려서 하고 남을 비난하지 말아야 하건만. 언제쯤에나 철이 들는지.
간신히 고개를 들고 사죄하는 진풍에게 무흔은 조용히 비웃음을 날려줬다.
진풍을 혼낸 후 유연향을 비롯한 그 동료가 막사 뒤쪽으로 이동했다.
백단영과 싸워야 할 상대란 생각에 무흔은 조용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는 막사 옆에 숨어 여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아아, 생각할수록 열받네. 감히 예속 부대원이 나를 비난해?”
유연향이 화가 풀리지 않은 듯 계속 씩씩댔다.
“그 자식이 곤륜파라 그래. 거대 문파 소속이라 자만심이 쩌는 거지.”
“맞아, 어째 거대 문파 소속은 하나같이 다 저 모양인지 몰라. 인품이라고는 새 발의 피만큼도 없어.”
주변에 있는 소녀들의 원성이 합창으로 들려왔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유연향 주위에 몰려있는 소녀들은 무천문, 승룡문 등 군소 방파 출신들이었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군소 방파는 아니다. 단지 구대 문파나 오대세가에 미치지 못할 따름일 뿐.
무흔은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면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진풍을 보면서 명문 정파의 갑질을 자주 경험했기에 그녀들의 심정에 동조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그로서도 다소 의외였다.
“그런데 앞으로 어떡하지? 이번 비무에서 실력이 다 들통 나면…….”
대화에서 새로운 고민거리가 튀어나왔다.
용봉대에 속한 여인은 모두 열 명.
이들은 구대문파와 오대세가 소속인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로 이분화되어 있었다. 특별히 누가 나누진 않았으나 자연스럽게 그렇게 무리가 지어졌다. 명문 쪽은 남궁이화와 모용예가 주축이었고 아닌 쪽은 유연향을 비롯한 지금 이곳에 모인 소녀들이 주축이다.
“으으, 비무대회 이딴 거 안 했으면 좋겠어.”
“또 저쪽만 기고만장하겠네.”
“그런데 백단영 그년은 대체 뭐냐? 명문도 아니면서 왜 저쪽 무리에서 얼쩡대냐고.”
갑자기 백단영에게 비난의 화살이 퍼부어졌다.
사실 백단영은 무가가 아닌 상단 쪽이라 어느 쪽에도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그녀를 잘 이끌어주는 바람에 명문 쪽 자제들과 함께 어울리게 됐다.
그렇다 보니 지금 이곳에 모인 그녀들에게 있어서 백단영은 정말 꼴 보기 싫은 그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그년은 자기도 명문인 줄 알아. 까마귀가 백로 옆에 있다고 희게 변하지 않는데 말이지.”
무흔은 갑작스러운 그녀들의 비난에 백단영의 고충을 다시 인식했다. 그녀가 진정한 고수가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이런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그로서는 그녀가 굴하지 않고 계속 힘내주기를 바랄 뿐이다.
“연향아, 네가 이번에 단영이를 완전히 밟아줘야 해. 그년이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깨우칠 수 있게. 알지?”
“맞아, 장 소협에게 꼬리 치는 모습 안 봤으면 좋겠어.”
무흔은 그녀들의 시기심과 패거리 문화에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그의 눈에 막사 위쪽으로 비를 가리기 위해 쳐놓은 장포막이 보였다. 지면과 수평으로 비를 막기 위해 쳐놓은 장막에 마침 어제 내린 비 때문에 물이 많이 고여 있었다. 그 장막 아래에서 지금 유연향 패거리가 몰려서 험담 중이다.
백단영의 험담을 늘어놓고 있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뭣보다 그녀들은 명문대파 출신에게 받았던 멸시를 자신보다 더 비천한 출신에게 화풀이하고 있었으니까.
무흔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대략적인 거리를 가늠했다. 위치는 적당했다.
문제는 그의 내공과 기력 제어 수준. 허공섭물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절정고수라면 어렵지 않게 저 장막을 처리하겠지만 현재의 무흔에게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무흔은 자신을 믿었다.
최근 귀의의 도움으로 내공이 급증했고 그가 익힌 무공 역시 절정 수준에 부합했다. 실제로 그가 죽인 마교인들은 충분히 절정을 넘어선 자들이 아닌가. 다만 아직 허공섭물을 시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
무흔이 손을 뻗고 외부로 기력을 방출했다.
물이 담겨 축 늘어진 장막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그에 무흔은 내력을 더욱 끌어올리며 장막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여전히 장막은 꼼짝도 하지 않았으나 그는 끈질기게 기운을 외부로 뿜어내며 장막을 어루만지는 상상을 했다.
기분 탓일까? 순간 장막에 담긴 물의 표면에서 잔물결이 일어나는 느낌이 왔다. 무흔은 다시 정신을 집중시켜 재차 시도했다.
스으윽-
장막이 그의 의도대로 천천히 움직였다. 허공섭물이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번 장막을 움직이게 되자 그때부터는 요령이 생겨 손쉽게 가능해졌다. 그의 의도에 따라 장막이 한쪽으로 기울며 담겨 있는 물이 폭포수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촤아악-
“으악!”
“뭐야? 누구야?”
쏟아지는 물 폭탄에 유연향을 비롯한 여인들이 난리가 났다. 모두 물에 흠뻑 젖어 비 맞은 생쥐 꼴이 되었다.
“으앙, 나 어떡해.”
여인들이 울상이 되어 서로를 쳐다봤다.
당연히 그녀들은 누군가가 일부러 장막을 기울여 물을 쏟았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하늘만 원망할 뿐이었다.
무흔은 야단법석을 떠는 그녀들을 뒤로하고 조용히 물러났다. 그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걸렸다.
***
비무 대회 일정과 대진표가 발표된 후 백단영은 무공연마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녀는 자신이 구대문파 쪽이든 군소방파 쪽이든 어디에도 끼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인정받는 가장 좋은 해법은 어떻게든 비무 대회에서 성과를 거두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히 첫 상대는 해볼 만했다.
매화곡의 제자라던 은옥상에게 패배하면서 입었던 자존심 상처를 만회할 기회였다. 마침 내력도 상승했고, 연검도 손에 익숙해져 쉽게 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휙휙-
연습만이 살 길이라며 백단영은 연무장 구석에서 열심히 수련했다.
그때 그녀의 앞으로 한 무리의 소녀들이 몰려왔다. 바로 그녀와 상대하게 된 유연향과 그 무리였다. 그런데 그녀들의 표정에서 적의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