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5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9화
59화. 패천문 (1)
낙양에서 이하(伊河)를 따라 하루 정도 남으로 내려가면 용문산과 향산이라는 석회암 암산이 있다.
이곳에는 천 년 전에 석회암 절벽과 동굴 내부를 깎아 만든 수많은 불상과 종교 벽화가 산재해 있다. 두 개의 산 일대에 석회암 동굴만 무려 수천 개. 셀 수 없이 많은 각 동굴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달이 없는 밤.
사람들이 즐겨 찾는 향산의 반대편 비탈을 어둠을 타고 한 죽립인이 오르고 있었다. 바로 무흔이 변신한 무극서생이다.
그의 허리춤에서는 거무튀튀한 묵천신검이 별빛을 받아 빛났다.
향산에 오른 무흔은 주위를 살피며 목적지를 찾았다.
“이곳에는 패천마군이 영면한 동굴이 있지.”
무흔은 별빛이 빛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음영을 드리우는 바위를 살폈다.
그가 기억하는 동굴 위치는 독수리 머리 형상을 닮은 바위 아래쪽이었다.
깎아지른 석회암 절벽을 넘나들며 무흔은 특이한 형상의 바위를 찾았다. 의외로 발견이 쉽지 않았다. 지역이 넓지 않아 쉽게 찾으리라 예상했었는데 오판이었다.
한참 주변을 돌아다니던 무흔은 계곡에 널린 펑퍼짐한 바위에 걸터앉아 육포를 물어뜯었다.
“하긴……, 쉽게 발견될 곳이었으면 아직 모르고 있을 리가 없지.”
무흔은 단순한 진리를 떠올리며 볼멘 목소리를 냈다.
패천마군은 대략 백 년쯤 전에 중원을 누볐던 흑도의 인물이었다. 그는 패천문이라는 문파를 설립하였고, 살아생전 강호를 휘어잡고 왕처럼 군림했다. 패천문은 중원 전역에서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에는 구대 문파를 위시한 정파 연합의 공격을 받아 멸문했다.
패천문은 항상 정파에게 위협을 받았기에 각종 비급과 금은보화를 특별한 곳에 보관했다. 소문으로만 떠돌 뿐 외부로 알려지지 않았던 패천문의 비동은 패천문이 멸망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에서 사라졌다.
소설 천향무후에서 마교는 이곳 향산에 하남 분타를 건립했다.
중원의 중심이라 할 하남에서 세력을 넓히기 위해 근거지가 필요했던 마교는 은밀하게 향산에 비밀기지를 세웠다. 훗날 장후성을 비롯한 용봉대는 마교의 하남 분타를 습격했고, 그 과정에서 장후성이 패천문의 비동을 발견했다.
패천문의 비동에서 발견된 패천문의 무공 비급과 금은보화는 훗날 화산파로 옮겨져 화산파의 부흥을 이끌었다.
“어차피 화산파 부흥은 소설이 끝난 이후의 문제니까 지금 이곳을 내가 발견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
소설 천향무후에는 주인공인 장후성이 얻게 되는 여러 기연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인 이곳 패천문 비동은 전체 흐름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개봉 부근에 있는 그런 기연이었다. 지금 무흔이 건드리기에 딱 적합했다.
“비록 도굴꾼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무흔은 휴식을 취하면서 주위를 살폈다.
장후성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다. 묵천신검에 이어 패천문 보물마저 그가 가로채게 생겼으니.
“그러니까 마지막에 백단영을 구했어야지. 혼자 기연이란 기연은 다 처먹고 정작 여주는 못 구하니 욕을 먹는 거야.”
무흔은 과거의 소설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반드시 백단영을 구하고야 말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숨을 고른 무흔은 다시 목표한 바위를 찾아 골짜기를 누볐다. 어둠 속이고 길이 험했지만 지금의 그에게 장애가 되지 못했다.
“하아! 그래서 대체 어디 있냐고!”
가볍게 보고 접근했다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소설 속에 그 위치가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을 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다소 황당한 도전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탐사 시각부터 실수했다. 바로 찾을 수 있을 줄 알고 야밤에 동굴 찾기에 도전했으니. 야밤이라야 보물을 몰래 들고 가기 쉽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다. 대낮에 다시 찾아야 할 상황임을 인지하자 힘이 쭉 빠졌다.
결국은 포기. 무흔은 넓적한 바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무흔은 다시 일어났다. 배고픔에 육포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다시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낮에 돌아다니다 보니 밤에 보이지 않던 장면이 보였다.
골짜기 아래쪽에서 석회암 벽에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을 넓히고 파는 작업이 한창이다. 설마 불상을 새기는 작업은 아닐 테고. 이미 몇 달간 공사가 진행된 듯 사실상 완공 단계에 가까웠다.
“아! 벌써 마교 하남 분타가…….”
무흔은 금방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이미 이 시기에 마교의 분타가 건설되고 있었다.
이래저래 바삐 움직이는 인부들과 이를 감독하는 마교 무인이 몇몇 보였다.
지금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절대 마교에 맞서려는 의도가 아니다. 지금의 그는 그럴 능력이 없기에 마교는 훗날 장후성과 백단영에게 맡겨야 한다.
무흔은 마교 분타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려 애썼다. 자칫하면 사망 위험마저 있으니까.
노력하면 통한다고? 수차례에 걸쳐 향산을 헤매던 무흔은 마침내 독수리 머리 바위를 발견했다.
그는 기쁨에 새어 나오는 환호성을 속으로 삼키면서 독수리 바위로 뛰어갔다.
“저기다!”
역시! 패천마군의 비동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산사태가 났었던 듯 동굴 입구의 대부분이 흙더미에 묻혀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독수리 바위 아래쪽에 동굴 입구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무흔은 독수리 바위와 마교 분타 공사장을 번갈아 살피면서 그 거리가 의외로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곳에서 바로 작업에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은 자칫 들킬 위험이 너무 컸다.
소설 속의 내용을 알고 있으므로 보물이 숨겨진 곳을 미리 잠시 다녀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역시 인생은 쉽지 않다.
***
밤이 되자 무흔은 움직임을 시작했다.
독수리 바위 아래에서 산사태로 덮인 흙더미를 파헤쳤다. 다행히 그 양이 많지 않아 동굴 입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흙을 파낼수록 입구는 점차 넓어졌다.
삼경이 넘어서야 무흔은 몸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의 구멍을 확보했다.
들어갔다가 입구가 무너지면 곤란했으나 거기까지 신경 쓸 수 없었다. 예전에 구곡산에서 갇혔던 동굴이 생각났다. 한번 경험해봐서일까. 겁이 나지 않았다.
간신히 몸을 비비고 기어서 동굴 내부로 들어갔다. 한사람이 기어서 간신히 통과할 만큼의 구멍이 일 장가량 이어진 후에야 갑자기 넓어졌다.
넓어진 동굴 내부에서는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었다. 그는 가져온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와아!”
불이 켜지고 드러나는 광경에 그는 감탄사를 발했다.
여기부터는 기존에 형성되었던 동굴 그대로였다. 과거에 이미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던 곳이라 동굴 벽이 반들반들했다. 인공적으로 깎은 흔적도 여러 곳이었다.
무흔은 주변을 살피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해보니 무림에 온 이후로 동굴과의 인연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동굴은 거의 직선으로 꽤 깊숙한 지점까지 뚫려 있었다.
석회암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내부에 습기가 거의 없었다. 이 또한 인공적으로 손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패천문에서는 이곳을 단순한 보물 창고가 아닌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음이 분명했다.
예전에 들어갔던 구곡산이나 신화곡 동굴에 비해 반듯하게 뚫려 있어서 훨씬 편했다.
동굴 끝부분에 이르렀을까.
무흔은 동굴의 벽에 새겨진 커다란 부조탑을 발견했다. 부조탑 바로 아래에 있는 하얀 백골이 눈에 띄었다. 과거 같으면 무척 놀랐겠지만 이제는 이런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험한 무림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패천문주 시신인가 보네.”
무흔은 백골의 주인이 패천문주라고 짐작했다. 부조탑 바로 옆에 지력으로 새긴 듯한 글자가 남아 있었다.
- 본좌는 패천문 초대 문주다. 강호를 일통하려고 세운 패천문이 간악한 정파의 협공을 받아 무너지게 된 것을 통탄하며 이곳에 패천문의 마지막 흔적을 남긴다. 본좌가 일평생 강호를 종횡무진하며 창안했던 패천문의 무공을 이곳에 남기니 연자는 부디 나의 뜻을 따라 패천문을 다시 세우고 이대 문주로 등극해주길 바란다. 문파 형성을 돕기 위해 일부 자금을 이곳에 남긴다.
무흔은 착잡한 마음으로 백골을 살폈다. 그는 패천문주가 될 생각이 없다. 그러니 안타깝게도 고인의 바람을 들어줄 수가 없다. 뭣보다 패천문주가 억울하더라도 그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그래도 화산파에 빼앗기지 않은 게 어디야.”
원래 설정대로라면 이 동굴 속의 모든 물건은 화산파에서 가져갔다.
정파에 원한을 가졌던 패천문주였으니 이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원통했을까. 화산파보다는 무흔 자신이 가져가는 게 훨씬 낫다고 마음을 달랬다.
백골을 땅에 묻어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은 없다. 대신에 무흔은 절을 두 번 올렸다. 어쨌든 보물을 남겨 그에게 도움을 준 패천문주니까.
예를 취한 다음 무흔은 동굴 안쪽을 돌아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보물을 탈취할 시간이다.
“오오!”
역시 있었다! 화섭자 불빛에 반사된 각종 금은보화가 눈이 부시도록 반짝였다.
그는 동굴 한쪽에 쌓여 있는 보물은 엄청났다.
금과 은으로 만든 각종 장식용 그릇과 화폐 같은 것들이었다. 그 양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커다란 수레로 서너 수레는 족히 됨직했다.
돈으로 환산한다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동네 재화에 밝지 않은 그로서는 계산이 서지 않았지만 어쨌든 패천문주가 장담했던 대로 문파 하나를 재건할 수 있을 자금은 충분해 보였다.
금은보화 위에 무공 비급으로 보이는 낡은 책이 두 권 있었다.
표지에 적힌 문구는 패천진경. 패천문의 문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을 적어놓았다는 의미다. 패천(覇天). 하늘 아래 으뜸이란 뜻이니 실로 무시무시한 자부심 아닌가. 강호를 평정했던 마두답게 엄청난 무공이 수록되어 있을 것이다.
한가하게 지금 이 자리에서 익히고 있을 수는 없다.
무흔은 품에서 준비한 자루를 꺼냈다. 나머지는 훗날 가져가기로 하고 일단 한 자루만 퍼담기로 했다. 값나가는 것 위주로 자루에 넣다 보니 금방 가득 찼다.
“한 자루 더 가져올걸.”
욕심이 팍팍 솟구쳤으나 마음을 억눌렀다. 그도 안다. 과욕은 금물이란 사실을.
마지막으로 비급을 넣은 다음 자루를 묶었다.
묵직하다.
“으흐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래, 만석꾼이 따로 있나. 로또에 일등 당첨되면 이런 기분일까. 돈이 가득 예금된 통장을 손에 쥐었을 때 이런 느낌이 아닐까. 부자가 된 기분을 만끽했다.
이제 떠날 시간. 그는 마지막으로 패천문주를 향해 예의를 표한 다음 화섭자와 자루를 들고 동굴 입구로 움직였다.
들어올 때와 달리 입구까지는 금방 도달했다. 밖으로 나가는 작은 구멍이 눈에 보였다.
그는 화섭자를 끈 다음 자루를 먼저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헉!”
자루가 뚱뚱해서 구멍이 막혔다.
다시 자루를 풀고 내부 물건을 조정한 다음에야 다행히 간신히 구멍 속으로 자루가 들어갔다. 욕심 많게 더 주워 담았다면 입구에서 걸려 못 나갈 뻔했다.
자루를 밀면서 좁은 동굴을 기어 간신히 동굴을 빠져나왔다.
그 다음 입구 옆에 자루를 세워놓고 죽립을 다시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막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흐흐흐, 누구냐?”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모든 일이 손쉽게 되는 법이 없다.
무흔은 전신으로 엄습하는 사이한 기운을 느꼈다.
‘고수다!’
상대를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엄청난 녀석으로 추정됐다.
무흔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죽립 틈새로 상대를 바라봤다. 순간 몸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오호호호! 사내 녀석이구나!”
적의궁장을 입은 미부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이 갓 넘어 보였다. 물론 진짜 나이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머리를 틀어 올린 덕분에 얼굴이 잘 드러나 있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짙은 화장까지. 눈빛은 섬뜩하리만치 날카로웠고 입가엔 사이한 미소가 빛났다.
미부가 그의 전신을 쓱 훑었다. 잠시 그를 관찰하던 그녀가 자루를 가리켰다.
“거기엔 뭐가 들었지?”
“알 필요 없다. 신경 꺼라.”
무흔은 거칠게 대답했다. 무극서생으로 변한 그의 목소리는 중후하고 낮게 깔렸다.
순간 미부가 안면을 찡그리더니 요사스러운 웃음을 터트렸다.
“오호호! 용기가 제법이구나!”
그리고 미처 무흔이 반응할 틈도 없이 미부가 손가락을 튕겨 지력을 날렸다.
푸슉-
일지가 자루를 스치듯 지나갔다. 자루를 묶은 끈이 끊어지며 자루에 든 물건이 와르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