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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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3화
53화. 육지신마 (1)
“반항하면 소가주의 목숨은 없다!”
일괴가 다시 위협한 후 동료에게 눈짓했다.
남은 녹림팔괴 여섯이 검으로 장후성을 비롯한 일행의 목을 겨누었다. 장후성 등은 꼼짝할 수 없었다.
일괴가 비웃음을 띠며 장후성의 앞으로 다가가 재빨리 마혈을 제압했다. 장후성의 몸이 일순간 뻣뻣하게 굳었다.
일괴가 차례로 돌아가며 마혈을 찍은 다음 경고했다.
“무리해서 마혈을 풀려고 하다가는 반병신이 될 것이다.”
그제야 녹림팔괴는 목에 겨누었던 검을 내렸다.
소가주를 구하려고 뛰어들었다가 졸지에 사로잡힌 장후성 일행은 막막해졌다.
완전한 작전 실패였다.
일이 마무리되자 인질을 잡고 있던 세 녀석도 녹림팔괴 쪽에 합류했다.
셋 가운데 부상으로 가슴에 천을 감고 있던 칠괴가 눈을 부라리며 장후성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는 잡힌 사람들의 면면을 일일이 확인하고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만족한 웃음을 내질렀다.
“큭큭, 하나는 어디 갔어? 원래 다섯 아니었나? 그날 나를 제일 많이 팼던 년이 사라졌네.”
칠괴가 지적한 인물은 백단영이었다. 객잔에서 싸움이 붙었을 때 후기지수가 백단영을 앞세웠던 때문이다.
눈을 부라리던 칠괴의 눈에 남궁이화가 들어왔다.
“그래도 네년은 있구나. 네년이 다음으로 나를 많이 팼지.”
칠괴가 비릿한 미소를 띠며 경고했다.
“큭큭, 오늘 그 복수를 톡톡히 해주마. 기대해도 좋다.”
남궁이화는 녀석을 노려볼 뿐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까스로 성질을 죽였다.
후기지수를 모두 잡고 나자 녹림팔괴와 흑백이귀는 긴장이 풀렸다. 이렇게 쉽게 사로잡을 줄 생각지도 못했던 터라 그들은 득의양양했다.
“대붕일마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칠괴가 산채 아래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흐흐, 알리긴 알려야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산채 녀석들도 고생 좀 해봐야 정신 차려.”
일괴가 바로 의견을 무시하고는 옆에 있는 삼괴에게 말했다.
“넌 이 자식들 묶게 밧줄 좀 찾아와라. 오늘 이 자식들 굴비처럼 엮어보자.”
모두가 킥킥대며 웃는 가운데 삼괴가 전각 뒤편으로 돌아갔다.
열심히 뛰어가던 삼괴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딱 멎었다. 누군가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도 살기 가득한 눈빛이었다.
삼괴는 눈앞에 서 있는 낯선 그림자에 절로 몸을 움츠렸다.
뒤쪽 불빛에 윤곽만 보이는 인형은 어딘가 낯설었다. 머리에 죽립을 쓰고 흑의를 입은 이 사나이는 아무리 봐도 산채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풍기는 기도는 그를 압박하듯 짓눌렀다.
“누, 누구냐?”
삼괴는 주춤 물러서며 상대를 향해 경고했다.
다음 순간.
휙-
검광이 눈앞을 번쩍했다. 삼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어깨로부터 사선이 그려지며 몸이 완전히 두 동강 나 있었다.
실로 허무한 죽음이었다.
죽립인은 무극서생으로 변한 무흔이었다. 그는 묵천신검을 굳게 쥐고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저벅저벅.
그가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지체한다면 그 역시 후기지수들과 같은 꼴이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유일한 방법은 속전속결, 그리고 인질과 무관함을 드러내는 방법뿐이다. 잠시라도 주저하는 순간 적들은 다시 인질로 위협할 것이니.
지금 무흔은 자신 때문에 벌어졌다고, 생각된 납치 사건을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보복을 일삼는 산적 무리를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일념이 전부였다.
“뭐, 뭐냐?!”
마침 삼괴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한 녀석이 비명을 질렀다.
녹림팔괴와 흑백이귀의 시선이 무극서생 쪽을 향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쓰러진 삼괴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접근하는 죽립인의 기세에 할 말을 잃었다.
“고, 고수다!”
죽립인을 본 한 녀석이 신음을 토해냈다. 모두가 얼어붙어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일괴의 시선이 장후성 쪽으로 옮겨졌다. 동료인지 묻는 표정이다.
그에 구진광의 중얼거림으로 답이 돌아왔다.
“저, 저 자식 누구지? 처음 보는데?”
다른 녀석들이 놀라는 표정을 봐도 한패는 아닌 듯했다.
곧바로 녹림팔괴와 흑백이귀가 뛰어나갔다.
“네놈은 뭐냐!”
사괴가 분노를 표출하며 검을 들고 죽립인에게 접근했다. 삼괴의 죽음을 본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서걱-
그리고 시커먼 검날이 허공을 가르며 사괴의 허리에서 피가 튀었다.
곧바로 사괴의 사지가 끊어질 듯 덜렁거리며 아래로 쓰러졌다.
녹림팔괴는 눈앞의 장면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녹림팔괴의 무공 수준은 꽤 높다. 강호를 떠돌아다니는 낭인이나 일반 산적과는 천지 차이다. 사실 용봉대 후기지수에 비해서도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단칼에 쓰러졌다. 그것도 둘이나.
녹림팔괴의 눈이 확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부상 중인 칠괴와 우두머리 일괴를 제외한 남은 넷이 한꺼번에 죽립인을 치기 위해 움직였다.
평소라면 연합진을 구성해서 포위망을 좁혔겠지만, 이성을 잃은 그들에게 그런 생각은 이미 달아난 지 오래였다.
무흔은 그들의 행동에서 적들의 무모함을 바로 알아챘다.
여전히 속전속결만이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그는 사용할 무공을 선택했다.
바로 잔백수라십이검 중에 십일 검. 사방에서 밀려오는 적의 포위망을 쾌검으로 단숨에 제압하는 초식이다.
번쩍-
묵천신검이 허공을 가르고 사방으로 검기가 퍼져나갔다.
전력을 다한 그의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네 방향으로 폭격한 검기의 파편이 녹림팔괴의 신형을 태산처럼 억누르며 난도질했기 때문이다.
“커흑!”
무흔의 검격을 접하고 나서야 그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았다.
상대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대든다고 쓰러질 그런 자가 아니었다. 신중하게 내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서 연합진을 펼쳐야 잡을 수 있는 그런 대어였다. 사실 녹림팔괴가 위세를 띤 이유도 그들 개개인의 무공 때문이 아니라 연합공격의 무서움 때문이었다. 그런 장점을 일순간 당황하는 바람에 모두 날려버린 그들의 최후는 비참했다.
“크아악!”
검광이 번쩍이는 순간 사방에서 달려들던 네 녀석이 동시에 풀썩 쓰러졌다.
말 그대로 온몸을 난도질해 버린 잔인한 일초에 네 명의 목숨이 끝장나버렸다. 수 조각으로 토막 난 몸에서는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에 모두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는 장후성이나 남궁이화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남궁이화의 입에서는 경악에 찬 신음이 배어 나왔다.
“무, 무극서생…….”
“응?”
무슨 소리인지 금방 알아듣지 못한 장후성이 그녀를 곁눈질했다.
“그때 구가장에도 무극서생이 왔었어…….”
남궁이화는 신음을 발하면서도 무극서생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검에 일가견이 있는 그녀는 지금 무극서생이 휘두른 초식이 얼마나 잔인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녀석들의 목숨을 빼앗았는지 알아봤다.
곁에 있던 일괴와 흑백이귀는 남궁이화가 중얼거리는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극서생이란 별호를 처음 들었다. 수십 년 전 강호를 울렸던 명성을 알기엔 그들의 식견이 너무 좁았다.
일괴는 분노했다.
강호를 울리는 절정고수라면 지금까지 이름조차 듣지 못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저 그런 녀석에게 녹림팔괴 대다수가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었다.
“이 자식이! 목숨을 내놓아라!”
일괴가 혼신의 힘을 끌어올려 죽립인을 공격했다.
분노에 싸인 일괴의 기세는 날카로웠다. 하지만 일대일로 무흔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챙 챙-
그나마 이번에는 수합의 격전이 이루어졌다.
일괴는 죽립인의 사혈을 골라서 공격하면서 잠시나마 신바람을 날렸다. 죽은 동생들의 복수를 하려는 검 끝은 날카로웠다.
무흔은 일괴의 공격을 비교적 여유롭게 막았다.
상대의 내공은 그보다 떨어졌고, 초식의 날카로움도 그의 눈에는 별것 아니었다. 일괴와 수차례 공방을 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잔백수라십이검의 숙련도도 높아졌다.
처음 비급을 읽은 직후 불과 5성일 때의 느낌과는 달리 이제는 잔백수라십이검이 몸에 붙은 듯 손에 착착 감겼다.
일괴는 검을 휘두르면서 상대가 자신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욱 분노했다.
“으아아아-”
내공을 폭주시키며 허공으로 몸을 띄워 상대의 죽립을 쪼개려고 달려들었다. 힘이 바짝 들어간 그의 공격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었으나 반대로 몸의 유연성은 떨어졌다.
단순하게 공공십팔보를 펼쳐 상대방의 공세를 흘려버린 무흔은 일괴의 측면을 돌면서 허리에 검을 쑤셔 박았다. 몸이 굳은 일괴는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컥!”
허공으로 피가 솟구치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일괴의 신형이 옆으로 넘어갔다.
쿵!
무흔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기계적으로 검을 뽑아 다시 몸을 돌렸다. 그의 눈에 질린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흑백이귀가 들어왔다.
흑백이귀는 순식간에 무너진 녹림팔괴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의 대응은 달랐다.
백귀는 도주를 택했다. 반면 흑귀는 인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흔이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그의 손이 번뜩였다.
슈슉-
날카로운 지력이 백귀의 등을 엄습했다. 정신없이 도망치던 백귀는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강력한 지력이 등을 강타하고 충격을 받은 백귀가 도망치다가 꼬꾸라졌다.
그사이 흑귀는 재빨리 인질들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는 그 와중에 누구를 잡으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결정해야 했다.
결박해서 무릎 꿇린 인질은 십여 명. 이 가운데 가장 몸값이 높은 사람은 단 하나였다.
흑귀는 소가주인 백석하 옆에 사뿐 내려서면서 검을 들었다. 시퍼런 날이 백석하의 목에 닿았을 때 그는 비로소 마음이 안정됐다.
‘살았어!’
그는 죽립인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마혈이 제압된 후기지수는 여전히 한쪽에 모여 꼼짝 못 하고 있었다. 녹림팔괴를 지워버린 그 의문의 고수는 막 백귀를 추격하고 있었다. 그는 백귀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멈춰라!”
등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버둥거리는 백귀 앞에 죽립인이 내려섰을 때 흑귀는 소리를 높였다. 백석하의 목숨을 빌미로 백귀를 살릴 생각이었다.
죽립인은 그의 외침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관심 자체가 없었다.
백귀 뒤에 내려서는 순간 죽립인의 검이 그대로 백귀의 등을 찔렀다.
푹-
“크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백귀의 몸이 경련을 일으켰다.
생각과 완전히 다른 상황에 흑귀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상대는 자신이 평가할 수 없는 고수로 보였다.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백석하의 머리채를 잡고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멈추라고! 아니면 이 녀석을 죽이겠다.”
흑귀의 외침에도 죽립인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못 들은 것처럼 죽립인은 몇 차례 더 백귀의 몸을 검으로 푹푹 찔렀다. 꿈틀거리던 백귀의 몸이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윽고 검을 회수한 죽립인이 시선을 흑귀에게로 돌렸다.
“으으……. 잔인한 놈!”
흑귀가 놀라서 더욱 억세게 백석하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죽립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는 중후하고 묵직했으며 일말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저승사자의 외침 같은 느낌이었다.
저벅- 저벅-
죽립인이 천천히 흑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흑귀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죽립인이 왜 나타났을까. 정파 후기지수와 한패가 아니었나? 인질과 아무 연관이 없는 자인가? 무극서생이라 했던가? 이미 그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무흔 역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그가 머뭇거리는 순간 상대방은 인질을 이용해서 그를 위협할 것이다. 그는 기도를 방출했다. 그러자 태산 같은 압력이 상대를 향해 몰려갔다.
“커흑.”
흑귀는 감히 저항할 수 없는 압력에 숨을 헐떡였다.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인질 위협마저 쓸모없는 것처럼 보여 뭔가를 다시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녹림팔괴와 흑백이귀 가운데 이제 유일하게 살아남은 흑귀가 제정신일 리가 없었다.
무흔이 상대를 향해 검을 겨눌 때였다.
화르르르-
갑자기 주위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먼 곳에 있는 전각에 갑자기 불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