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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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52화
52화. 대붕산 산채 (3)
백가상단과 낙양 무관에서 차출된 무인의 수는 총 스무 명. 모두가 한가락 하는 실력자들이다.
이들을 이끄는 협상 실권자는 대행수 마종학과 백단영이었다.
백단영은 만일을 대비해 마종학을 보필하는 평범한 무인으로 변장했다.
화장을 지우고 머리에 청건을 뒤집어쓴 남장 차림. 제대로 분장한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그녀가 여인임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들이 산 중턱에 이르니 산적들이 길을 막고 포진하고 있었다. 그 수는 무려 일 백에 가까웠다.
백단영은 그 수에 살짝 기가 죽었다. 물론 저들의 무공이 변변찮음은 안다. 하지만 인질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머릿수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 인질이 반드시 살려야만 하는 동생이기에 더욱 가슴이 답답해졌다.
“멈춰라!”
산적의 위압적인 목소리가 들리자 마종학이 한 손을 들었다. 자연스럽게 백단영 일행은 걸음을 멈췄다.
맞은편에 길을 가로질러 횡으로 앉아 있는 다섯 산적이 보였다.
백단영은 그 가운데 있는 자가 이곳 대붕산채 두목인 대붕일마임을 확인했다.
협상은 시작하자마자 금방 교착 상태에 빠졌다.
백가상단 측에서는 소가주를 풀어주면 은자 일천 냥을 바로 내주겠다고 했다.
반면 대붕산채에서는 은자 일천 냥 외에도 앞으로 통행료를 더 올려주기를 원했다. 어찌 보면 간극이 좁아 쉽게 타협할 수 있었으나 협상의 진전이 쉽지 않았다.
백가상단은 후기지수들이 소가주를 구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했다. 반면 대붕산채 쪽도 녹림팔괴의 지시로 시간을 끌고 있었다. 덕분에 양측 모두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희 소가주는 무사합니까?”
“흐흐, 당연히 무사하오. 하지만 언제까지 무사할지는 모르겠소.”
마종학의 질문에 대붕일마가 반 협박조로 대답했다.
백단영은 협상 진행 상황을 보며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대붕산채에서 서두르지 않는 태도가 수상했다.
물론 나쁜 조짐은 아니다.
협상이 지연될수록 후기지수들이 동생을 구할 시간을 벌 수 있으니까. 문제는 저들도 이런 사실을 짐작할 터였다. 그런데도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는 점은 저들 역시 꿍꿍이가 있음을 의미했다.
‘뭘까?’
백단영은 대붕일마의 안면에서 자신감을 엿봤다.
저들이 숨겨둔 패가 무엇일까.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개 산적이 후기지수를 상대할 함정을 파두었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백단영은 협상 중인 마종학에게 곁눈질했다. 그녀의 뜻을 알아챈 마종학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곳 대붕산채가 혹시 녹립십팔채 소속입니까?”
“중원 천하의 모든 녹림은 녹림십팔채에 소속이요.”
동문서답에 마종학이 안면을 찡그리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이 아니라 주요 산채에 들어가느냐고 물었소.”
“흐흐, 당연히 들어가오. 그러니 지금 총채에서 지원이 들어온 것 아니겠소?”
대붕일마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봤다. 마종학이 계속해서 물었다.
“혹시 우리 백가상단에 억하심정을 갖고 있소?”
대붕일마가 껄껄대며 웃었다.
“흐흐, 난 개인적으로 백가상단이 섭섭하지 않소. 우리의 주요 수입원이자 협력 상단 아니오?”
“그런데?”
“그런데 총채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나 보오.”
총채에서의 지원이라.
문득 백단영은 며칠 전에 객잔에서 벌어졌던 작은 시비가 생각났다. 그때 객잔에서 만났던 그 자식들이 산적이었나? 그것도 총채에서 파견된?
확실히 그때 그 패거리 둘의 무공은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긴 했다. 동내 파락호치고는 지나치게 강했다.
설마? 그렇다면 동생이 납치당한 이유가 그때 그녀가 그 산적 둘을 혼냈었기 때문일까?
백단영은 갑작스럽게 내려앉는 마음의 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들이 그녀와 후기지수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다면 지금 이 사태가 이해됐다. 이런 사실은 동생을 구하기 쉽지 않다는 추측을 낳게 했다.
“하아!”
결국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
장후성과 남궁이화, 모용예, 구진광은 대붕산채를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험준한 계곡을 넘어 산채를 우회 접근하는 방법은 의외로 난관이 많았다.
“그냥 정면에서 쳐버리지? 산적 자식을 우리가 두려워할 이유가 없잖아?”
구진광이 불평을 쏟아냈다.
산적이 두려운 게 아니라 백단영의 동생인 백석하의 목숨이 문제다.
이를 몇 번이고 주지시켰던 장후성은 안면을 찌푸렸다. 내심 구진광의 단순한 사고방식에 혀를 차면서 그는 어둠 속을 전진했다.
다행히 제대로 방향을 잡은 모양이었다. 어두운 나뭇가지 사이로 밝은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얼핏 산채의 전각 지붕이 보이는 듯했다.
“다 온 것 맞냐?”
남궁이화가 선두에 선 장후성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이곳이 대붕산채인 것 같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산채 위쪽의 비탈이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전각 지붕이 어우러진 산채가 들어왔다.
“저기예요.”
모용예가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산채 뒤쪽으로 짐작되는 넓은 마당에 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놀랍게도 모인 사람들은 손과 발이 모두 묶인 채 마당에 꿇어앉은 상태였다.
“백가상단과 낙양 무관 쪽 사람들이군.”
장후성이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대답했다.
대붕산채에서는 소가주인 백석하와 함께 사로잡은 상단 사람들을 저렇게 감금해 두었다. 다분히 그들이 구출하러 올 것을 계산한 행동이다.
이를 본 남궁이화의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마치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네.”
“지금 지키는 놈들이 모두 셋이지?”
장후성이 고개를 쭉 빼고 정황을 살폈다. 십여 명의 포로를 감시하는 자는 셋이었다. 놀랍게도 그 셋은 일반 산적 옷차림이 아니었다.
남궁이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옷차림 눈에 익지 않냐?”
장후성과 구진광도 감시인의 행색에 안면이 절로 굳어졌다.
“그날 객잔에서…….”
장후성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들은 백가상단으로 오는 길에 객잔에서 혼쭐을 냈던 파락호 둘을 떠올렸다. 어쩐지 무공이 파락호치곤 예사롭지 않더라니. 그때 백단영의 강호 경험을 늘려준답시고 그녀를 앞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뒤로 남궁이화가 가세하기까지 했다.
가볍게 제압한 둘 앞에서 구진광이 자신들은 무림맹의 후기지수이며 백가상단에 들리는 길이라고 떠벌렸던가. 물론 당시에 위협한답시고 그런 말을 내뱉었지만.
모용예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럼 그자들이 보복하려고 소가주를 납치한 걸까요?”
“그럴지도 몰라.”
남궁이화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때의 일이 원인이라면 정말 이 자식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모두가 정의감에 불탔다. 말은 쉽고 결심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싸울 자신도 있고, 지지 않을 자신도 있지만 문제는 인질이었으니까.
남궁이화는 어설픈 협객행이 백가상단에 오히려 짐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적이 셋뿐이면 해볼 만해.”
장후성이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숨을 죽이고 마당으로 접근했다.
이윽고 그들을 가려주던 나무숲이 끝났다.
더 접근하려면 전각의 낮은 토담 뒤로 숨어야 한다. 다행히 감시자들은 인질에서 거리를 두고 넓게 감시 중이라 위협상태는 아니었다.
장후성의 머릿속에서 작전이 세워졌다. 현재 장후성 일행은 모두 넷. 감시자는 셋. 게다가 저들의 무공은 그들보다 높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인질의 목에 칼을 댄 상황도 아니다. 설사 칼로 위협하더라도 소가주인 백석하만 아니라면 문제없다.
스슥-
장후성의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전각 옆 어두운 지역에 다시 나타났다. 실로 놀라운 신법이었다.
장후성을 필두로 그들 넷은 전각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다.
마당에 피워놓은 횃불과 모닥불이 장내를 환하게 밝히고 있어 오히려 지형지물을 이용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기 유리했다.
시간이 촉박했다. 지금 한창 협상 중일 백단영을 생각하면 빨리 끝내는 것이 백번 천번 유리하다.
장후성은 동료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적이 단지 셋뿐임을 확인한 구진광이 용기백배해서 가장 먼저 뛰어나갔다.
“내가 먼저 놈들을 처리하지.”
장후성을 비롯한 모두가 그를 뒤따라 나가려 할 때였다.
“쥐새끼들! 왔냐?”
갑자기 뒤쪽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모두의 몸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그들의 뒤, 마찬가지로 전각 그림자 속에서 수 명의 인물이 걸어 나왔다.
그제야 장후성은 적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서며 밝은 곳으로 걸어 나갔다. 먼저 뛰쳐나갔던 구진광도 상황이 급반전했음을 깨닫고 그들에게 붙었다.
“흐흐, 정파 나부랭이들이구나. 오느라 수고했다.”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앞으로 나서는 인물은 모두 일곱. 대부분 이십 대 청년 정도의 나이에 암적색의 무복을 걸친 자였다.
남궁이화는 그들의 복장을 확인하자 신음을 내뱉었다.
“그때 객잔에서 봤던 녀석들이군.”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들은 절대 단순한 산적이 아니었다.
그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듯 쳐다보던 한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는 험상궂은 녀석이었다.
“흐흐, 우리가 누군지 궁금하겠지? 산적이라고 해봐야 믿지도 않을 테고.”
“그래서 누구냐?”
장후성의 외침에 칼자국 녀석이 대답했다.
“우리는 녹림팔괴라 한다. 저쪽은 흑백이귀. 들어봤는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말하는 녀석의 기도로 봐서 만만치 않은 상대임은 확실했다.
“참고로 난 녹림팔괴의 첫째인 일괴라 한다.”
장후성의 입가에 비웃음이 일었다.
“일괴고 이괴고 상관없다. 덤벼라.”
장후성을 선두로 모두 검을 빼 들었다.
일괴를 선두로 녹림팔괴가 비웃음을 터트리며 천천히 그들을 포위했다.
장후성은 이대로 흘러가면 불리하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적들이 진세를 갖추기 전에 공격해야 한다. 생각보다 몸이 더 빨랐다.
그는 왼발로 땅을 박차며 번개처럼 앞으로 신형을 날렸다. 그의 검이 빛살처럼 앞으로 뻗어 일괴의 목을 찔러 갔다.
챙!
일괴의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며 가볍게 장후성의 검을 쳐냈다. 이미 이 상황을 예측했던 장후성은 곧바로 방향을 변화시켜 상대의 옆구리를 노렸다.
일괴가 가볍게 한걸음 뒤로 물러나면서 장후성의 공격은 무산됐다. 실로 가벼운 동작 하나로 깔끔하게 공세가 막혔다.
“흐흐, 저쪽을 봐라. 그래도 까불고 싶은지.”
일괴의 경고에 장후성은 시선을 돌렸다.
“젠장!”
장후성의 입에서 신음이 뱉어졌다.
마당 중간에서 감시하던 세 녀석이 각기 인질 한 사람씩을 잡고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녀석은 소가주인 백석하의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
막상 적들이 인질의 목숨을 잡고 위협하니 행동이 거북해졌다.
일괴가 그들에게 명령했다.
“검을 버려라!”
물론 이 정도로 물러설 장후성 일행이 아니었다. 여기서 밀리기 시작하면 정말 앞을 바라볼 수 없는 난국에 빠져든다. 당연히 적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장후성이 동료들과 눈짓했다.
팟!
네 사람이 각자 앞으로 뛰쳐나가며 그들을 포위한 녹림팔괴와 맞부딪혔다.
채챙-
순식간에 검을 든 녹림팔괴와 격렬한 공방이 벌어졌다. 의외로 녹림팔괴의 실력은 대단했다. 후기지수와 일합을 겨루었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크윽!
비명과 함께 한 사람의 비명이 장내에 메아리쳤다.
장후성과 일행의 신형이 뻣뻣하게 굳어지며 황급히 인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질 가운데 한 사람의 목이 날아가 있었다. 백귀가 피 묻은 검을 쓱 훑으며 중얼거렸다.
“다음에는 저 녀석이야.”
그가 가리키는 곳은 바로 백석하 쪽이었다. 백석하에게 검을 들이대고 있던 흑귀가 음흉한 미소로 응답했다.
그사이 녹림팔괴가 진열을 재정비하고 다시 그들을 포위했다.
“젠장.”
눈앞에서 인질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목격한 그들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일괴가 그들을 하나하나 훑어보며 소리쳤다.
“저항하면 소가주의 목숨은 없다. 어떻게 할 거냐?”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구진광이 투덜거리며 계속 싸울 것을 주장했다.
“신경 쓰지 말고 산적 놈들을 싹 밀어버리자고.”
장후성은 그렇게 결정할 수 없었다. 이곳에 온 이유가 산적을 토벌하러 온 것이 아니라 백석하를 구하고자 왔으니까.
“후.”
한숨을 길게 내뱉은 장후성은 검을 던졌다.
그를 따라 모용예와 남궁이화도 어쩔 수 없이 검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구진광도 마침내 검에서 손을 뗐다.
녹림팔괴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