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9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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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91화
91화. 신화문 해후 (2)
무흔은 벽해결과 함께 신화곡으로 떠났다.
개봉에서 신화곡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신화곡에 들렀다가 사천 쪽에 있는 만혈대까지 이동하면 거리상으로 큰 손해는 아니다. 지금 무흔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빨리 이곳의 일을 해치우고 떠날까 하는 고민만 맴돌았다.
무흔과 벽해결은 신화곡 인근의 작은 마을에 도달했다.
여정으로 시장하던 차에 그들은 객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신화곡의 이름을 딴 신화객잔이란 음식점이 보였다.
“저곳으로 가죠.”
벽해결이 자신 있게 무흔을 끌고 신화객잔으로 움직였다.
“여기가 예전에 음식 맛이 괜찮았습니다.”
몇 년 전에 그랬었나 보다. 당연히 모르는 곳보다 아는 곳이 실패 가능성이 작다.
무심코 객잔 안으로 들어간 무흔은 객잔 내부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몰려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점심을 먹을 때가 지났음에도 사람이 많은 이유가 정말 맛집이어서일까. 무흔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를 찾았다.
손님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있어 빈자리가 없었다. 한참 주변을 둘러보던 무흔과 벽해결은 마침 창가 주변에 있는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재빨리 앉았다.
점소이에게 국수를 주문한 다음 무흔은 주변을 살폈다. 객잔 내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대부분 탁자 위에 소지한 검을 올려놓은 것으로 보아 무림인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원래 이 동네에 무림인이 이렇게 많았던가요?”
무흔이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벽해결에게 속삭였다. 고개를 저은 벽해결 역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분명한 것은 여기 무림인 가운데 신화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옆 탁자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내일 몇 시지?”
“정오입니다. 정오에 출정식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인근 여섯 개 문파에서 온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거지?”
“그렇습니다. 혈우마도께서 직접 출정식에 모인 사람을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무흔은 옆 탁자에서 음식을 먹으며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벽해결과 조용히 눈빛을 맞춘 그는 귀를 곤두세웠다.
무흔의 몸이 경직됐다. 뭔가 엄청난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때 점소이가 국수 두 그릇을 날라왔다.
무흔은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한입에 넣었다. 하지만 모든 감각은 옆 탁자에서 들리는 이야기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신화곡이 우리 편이 된 것이 확실해?”
“확실합니다. 숭무문과 함께 이 일대에서 사마련 쪽으로 돌아선 대표적인 문파니까요. 내일 출정식에서 전대 문주인 북악신군의 격려사가 있으리란 소문도 있어요.”
“그럼 확실하군. 흐흐, 항상 구태의연한 정의니 협의니 하면서 목을 꼿꼿하게 세우던 신화문도 별수 없군.”
“당연하죠. 정파란 놈들도 이권과 생존 앞에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무흔은 머릿속에서 내용을 재정립했다.
이 일대에서 사마련에 소속된 여섯 문파가 내일 낮에 신화문에서 출정식을 가진다는 모양이었다. 이 출정식에서 전대 신화문 문주였던 북악신군이 직접 나서서 격려할 예정이라나.
북악신군이란 말에 무흔과 벽해결의 몸이 움찔했다.
동굴에 갇혀 있던 북악신군이 갑자기 격려사를 한다니…… 그동안 뭔가 문제가 발생했음이 분명했다.
벽해결이 신화문이 사파 쪽으로 변했다는 말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울분을 터트렸다.
무흔이 다급하게 그의 손을 잡고 저지했다. 그들의 임무를 생각하면 이곳에서 주목을 받으면 위험하다.
그들이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할 때였다.
객점 문이 열리고 한 무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늘색 무복으로 통일한 것으로 보아 같은 문파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객잔 내부에서 난감한 표정으로 주변을 훑었다. 일행이 앉을 적당한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 가운데 한 남자가 무흔 일행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리 좀 비켜주시죠?”
무흔과 벽해결이 황당한 표정으로 상대를 쳐다봤다. 시비를 건 자는 삼십 대의 젊은 장한이었는데 분위기를 보아하니 제법 무공을 익힌 티가 났다.
무흔은 이 장한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예전에 신화곡으로 오던 길에 잠시 만났던 숭무문 사람이었다. 당시 진풍과 이 사내가 인사를 주고받았던가.
“지금 먹는 중입니다만?”
벽해결이 불쾌한 기분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그때 업소 주인마저 건들거리며 다가와서 권유했다. 안면에 욕심이 가득해 보이는 자였다.
“손님들, 미안하게 되었습니다만 벌써 많이 드셨네. 자리 좀 비켜주시죠?”
“아니, 이런 경우가…….”
반도 먹지 못한 벽해결이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자 장한이 피식 비웃음을 흘리더니 상체를 숙여 벽해결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 자식아! 고만 처먹고, 얻어터지기 싫으면 그만 가지?”
모욕을 당한 벽해결이 경기를 일으키며 손을 검으로 가져갔다. 하지만 무흔의 손이 더 빨랐다. 무흔은 벽해결을 제지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우리가 그만 갑시다.”
벽해결은 분노를 삭이더니 조용히 일어났다. 장한이 기고만장하여 대소를 터트렸다.
“흐흐, 진작 말을 들을 것이지. 쓰레기 같은 놈들.”
벽해결이 울컥했으나 금세 무흔에 의해 제지당했다.
그 사이 숭무문의 문주로 보이는 사람은 다른 탁자에서 우두머리와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숭무문주님, 출정식 때문에 직접 걸음하셨군요.”
“하하, 대융방주께서도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밖으로 쫓겨나면서 무흔은 객잔 내의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일 낮에 있을 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인근 문파가 신화곡에 모이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무림인이 많았다.
벽해결이 주먹을 꾹 쥐며 분노를 삼켰다.
그들이 객점 밖으로 나갈 때 숭무문주가 인사를 마치고 그들이 앉았던 그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무흔은 자신이 앉았던 창가 자리를 대충 가늠했다.
잠시 후 그 자리의 천장이 아래로 폭삭 내려앉았다. 음식을 먹던 숭무문주가 모두 뒤집어썼음은 보지 않아도 당연했다.
***
“사부님께서 어디에 계셨다고요?”
“저기 높은 봉우리 보이죠?”
객잔을 나온 무흔은 멀리 보이는 봉우리를 가리켰다.
“원래 그곳은 사문에서 출입을 금했던 지역입니다.”
벽해결이 주위 경치를 둘러보며 감회에 사로잡혔다.
그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쫓기듯 이곳을 떠나간 이후 다시 찾은 신화곡은 그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사부와 사형제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르고 있으리라.
잠시 후 무흔은 벽해결의 상념을 깨트렸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문을 뚫을까요? 아니면 몰래 계곡으로 잠입할까요?”
“원래 은밀하게 잠입하기로 한 것 아니었던가요?”
“그렇긴 하죠.”
자연스럽게 은밀한 잠입으로 결정됐다.
무흔은 벽해결이 정면 돌파를 외친다면 기꺼이 도와줄 생각이 있었다.
예전에 경험했던 신화문의 수준이라면 당시보다 더 무공이 증가한 무흔은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다른 문파에서 온 사람들이 신화문에 지금 머물고 있다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긴 하지만.
벽해결은 당장 무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흔은 내심 계곡을 올라가는 길을 떠올리며 장터에서 죽립을 샀다. 죽립을 쓰는 그를 보고 벽해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립을 갑자기 왜 쓰십니까?”
“얼굴을 숨기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 얼굴을 신화문에서 알거든요. 벽 소협도 죽립을 쓰는 것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정면 돌파가 아니라면요.”
“그렇네요.”
벽해결도 의심하지 않고 죽립을 하나 샀다.
두 사람이 나란히 죽립을 쓰고 검을 허리에 찬 모습이 마치 사파의 낭인처럼 보이게 했다.
“나쁘지 않네요. 자, 갑시다.”
무흔과 벽해결은 계곡이 아닌 옆길로 올라갔다.
이른바 신화문을 우회해서 봉우리로 올라가는 산길이다.
오솔길로 접어든 이후부터는 무흔보다 벽해결이 더욱 길눈이 밝았다. 이 산과 계곡에서 오랜 기간 살았던 만큼 길눈이 밝아서 신화문 본거지를 피해갈 수 있는 샛길을 잘 찾아냈다.
봉우리 중턱쯤 올랐을까? 멀리 신화문의 전각이 보였다. 다행히 거리로 보아 발각 위험은 현저히 낮았다.
봉우리 등반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두 사람은 서쪽으로 지는 해를 보며 휴식을 취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내리면 본격적으로 봉우리 위 동굴을 찾아가기로 했다. 하늘에는 반달이 떠 있어 충분히 밤길을 밝혀줄 것이다.
“북악신군께서 아들이 아닌 당신에게 문주 자리를 물려주려고 한 이유가 있어요?”
무흔은 슬쩍 궁금했던 점을 던졌다.
현 문주인 주왕호는 북악신군의 아들이다. 아들이 아닌 다른 제자에게 장문인을 넘겨주는 경우도 흔치 않다.
벽해결이 과거를 회상하며 간략하게 대답했다.
“사실 주왕호의 무재는 평범했습니다. 신화문의 상승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지 않았죠. 사부님께서는 신화문의 번영을 위해서는 아들에게 문주 자리가 넘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저와 아들 주왕호를 차별해서 가르치셨지요.”
아들이 커서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분명히 보였다.
어릴 적부터 아들인 자신보다 더 사랑받는 벽해결을 보면서 악한 마음을 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버지의 큰 뜻임을 알지 못한 아들이 결국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고 동굴에 가두는 패륜을 저지른 것이다.
무흔은 일전에 북악신군에게서 들었던 내용과 지금 벽해결에게서 들은 사실을 종합하여 전체 윤곽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쨌든 비극적인 신화문의 역사였다.
과거 이야기를 마친 벽해결이 옷을 털며 일어났다.
“자, 떠나죠.”
은밀한 잠입이었으므로 횃불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들은 달빛을 벗 삼아 산 오르기를 계속했다.
이윽고 그들은 봉우리 정상 부근까지 올라갔다. 여기서부터는 아래로 내려가서 동굴로 진입해야 한다.
바위로 이루어진 위험한 길을 재주껏 타고 내려가기도 잠시, 무흔은 익숙한 지점에 도달했다.
바로 북악신군이 갇혀 있던 그 동굴 앞이었다.
“여기입니다.”
무흔의 말에 벽해결이 깊은숨을 내쉬며 숨을 골랐다. 곧 사부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뜨는 모양이다.
무흔은 벽해결과 함께 조용히 동굴 내부로 들어갔다.
얼마나 동굴을 들어갔을까.
무흔은 예전에 북악신군이 사슬에 묶여 있던 장소에 도착했다. 앞장서던 무흔이 바위 뒤로 몸을 숨기며 벽해결을 끌어당겼다.
내부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태상문주님, 그만 고집을 꺾으시지요. 내일 출정식에서 격려사만 해주시면 앞으로 편하게 모시겠다고 문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절대 못 한다. 내가 마교의 출정식에 참석할 것 같으냐?”
카랑카랑한 북악신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비하면 힘이 많이 떨어진 듯했다.
무흔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동굴 내부를 살폈다.
사슬에 묶인 북악신군 옆에 고운 옷을 차려입은 여인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무흔은 그녀의 정체를 손쉽게 알아냈다. 바로 예전에도 신화문주와 함께 이 동굴에 들어왔었던 시시라는 여인이었다.
“호호, 거부해봤자 소용없답니다. 군중 앞에서 격려 연설을 하지 않겠다면 참수하겠다는 것이 문주님의 뜻이니까요. 그보다는 순순히 말을 들으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 이놈들!”
북악신군이 소리를 지르며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시시가 교태로운 미소를 지으며 압박했다.
“신화문은 사마련의 일원으로 거듭났습니다. 내일 구대 문파를 치러가는 출정식은 마교의 영웅 혈우마도께서 이끄실 겁니다. 신화문은 마교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되겠지요.”
“절대 못 한다!”
“호호, 내일 아침, 죽음을 눈앞에 두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짝-!
교태로운 미소와 함께 시시가 북악신군의 뺨을 후려쳤다. 무공을 상실한 북악신군은 조금도 저항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벽해결이 피눈물을 삼켰다.
“가, 감히 저런 하찮은 년이 사부님을!”
백해결은 무흔이 말릴 틈도 없이 앞으로 튀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