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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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86화
86화. 독망지주 (3)
연연의 환호에 안에서 나오던 양이설이 무흔과 백단영을 발견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어?”
백단영 역시 양이설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무흔이 얼른 수습했다.
“두 분 아는 사이였어요?”
눈을 찡긋거리는 무흔에게서 눈치를 챈 양이설이 적당히 얼버무리며 설명했다.
“백 소저, 오랜만이에요. 저 이곳에 머물고 있어요. 갈 곳이 없어서…….”
잘 되었다고 호들갑을 떠는 백단영과 이에 맞장구쳐주는 양이설을 보며 무흔은 잠시 소외감을 느꼈다. 어쨌든 백단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속이고 넘어갔다.
이제 이곳에 온 본래의 목적을 꺼내야 할 때다.
무흔은 백단영을 이끌고 귀의를 만났다. 안방에서 모두가 마주 보고 앉았을 때 그는 독망지주의 독단을 꺼냈다.
“귀의 어르신,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무흔에게서 독단을 받아든 귀의가 잠시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망지주의 독단이군. 어디에서 구했나?”
“얼마 전 사천 매화곡에 다녀오다가 독망지주를 잡았습니다. 무림인이 먹으면 좋다고 하던데요?”
“먹으면 사망이지. 하지만 살아남으면 독에 내성이 키워져서 만독불침의 몸이 될 수 있을 걸세.”
“어떻게 하면 살아남아요?”
“이미 독공에서 일가를 이룬 자가 내기로 유도해서 완화하는 방법과 침으로 다스리는 방법이 있다네.”
과연 의술에 정통한 귀의인지라 막힘이 없었다.
무흔이 백단영을 이곳에 데려온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에게 독단을 복용시키기 위해서다.
사실 무흔은 독제의 비급을 써주면서 독제의 독공을 5성이나 터득했다.
그도 독제 못지않게 독을 다루게 됐다. 당연히 백단영에게 독단을 먹이고 그가 내력을 이용해서 완화해줄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굳이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지만…….
문제는 이 경우 백단영에게 설명이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가 독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또 그도 독단을 먹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러기엔 여러모로 껄끄러운 점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귀의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귀의가 명의인만큼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의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 독단을 저희 아가씨에게 복용시켜 주세요.”
“뭐? 내가?”
백단영이 깜짝 놀라 독단을 두려운 눈으로 쳐다봤다.
“아가씨, 이거 엄청 좋은 거예요. 이걸 드시면 앞으로 독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하지만 백단영은 검은 독단을 쳐다보지도 않으려 했다.
그녀의 행동을 보니 쓴 약을 싫어하는 어린아이가 생각났다다.
무흔은 한숨을 내쉬면서 그녀를 살살 달랬다. 당연히 백단영이 발버둥을 쳤다.
“아, 싫어. 내가 왜 이걸 먹어야 해. 무흔, 미워!”
이건 어린애 투정도 아니고. 양이설까지 동원해서 안 먹으면 강제로 먹이겠다고 협박하고 나서야 간신히 허락을 받아냈다.
“으으, 무흔! 두고 봐.”
“에이, 아가씨는 어릴 때 영약도 안 드시겠다고 난리였잖아요?”
“내가 언제?”
쑥스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어릴 때 그런 전적이 있었음이 확실했다.
결국 백단영이 허락을 받아낸 후 무흔은 귀의에게 재촉했다.
“자, 이제 해주세요.”
그들의 야단법석을 웃으며 바라보던 귀의가 한쪽에 놓아둔 금침을 꺼냈다.
“그럼 자네는 그만 밖에 나가 있게.”
“예?”
“아가씨 등에 침을 놓아야 하는데 보고 있을 건가?”
아! 그런 문제가! 무흔은 뻘쭘해져서 조용히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았다. 그런데 밖에서 서성거리면서도 어째 자꾸 방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아저씨, 뭐해?”
“응?”
방을 힐끔거리는 그를 연연이 툭 치며 말을 걸어왔다. 당과를 벌써 다 먹은 듯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안 해.”
“그 뚱뚱한 아저씨는 왜 안 왔어?”
“아, 대호 아저씨?”
“응.”
“그 아저씨 언제 봤는데?”
“엊그제. 근데 오늘은 안 왔어.”
“아하, 오늘은 대호 아저씨가 조금 바쁘거든.”
대호도 이곳을 자주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연연이 이곳에서 쉽게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은 대호와 양이설 덕분일 것이다.
대호가 오지 않는다는 말에 실망한 표정을 짓던 연연이 놀러 간다며 사라졌다.
무흔은 방문 밖에서 서성였다.
귀의의 실력을 믿지만 백단영이 걸린 일인지라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만일 문제가 발생한다면 바로 그가 독공을 사용해서 처리해야 한다.
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방문을 열고 양이설이 나타났다.
“어떻게 됐어요?”
“금침 시술은 모두 끝났어요. 백 소저는 현재 운기조식 중이에요.”
“아, 잘 끝났나 보네요.”
무흔은 한시름 놓았다.
양이설이 각종 약재를 정리하며 그에게 물었다.
“백 소저는 전혀 모르죠?”
무흔이 무극서생이란 사실을 묻는 말이다. 무흔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군요. 왜 숨기고 있죠?”
“그럴 일이 좀 있어요.”
그가 무극서생임을 아는 사람은 은옥상을 비롯해서 귀의와 양이설 정도다. 백단영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진다. 자칫 그의 모든 계획이 수정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얼버무리는 그를 살피던 양이설이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를 좋아하시죠?”
“아, 아뇨.”
무흔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남녀 간의 사랑과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양이설이 고개를 끄덕이다 슬그머니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시군요. 하지만 눈에 다 보여요.”
그게 물건도 아니고 어떻게 보여. 무흔은 내심 툴툴거리면서 화제를 돌렸다.
“무공수련은 어떻게 되어 갑니까?”
“말씀하신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련하고 있어요. 알려주신 심법은 꾸준히 수련하고 있고요, 창의문 검법 보완 내용은 반복해서 숙지하고 있어요.”
무흔은 양이설의 소속 문파이자 멸문한 창의문의 무공을 대폭 보완해주었었다.
운경각에서 익힌 다양한 무공을 바탕으로 처음 시도한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다소 투박했던 창의문 검법이 매끈하고 세련되게 변했다.
무공 보완을 향한 시도와 결과가 생각보다 좋아서 무흔 역시 고무됐다.
오래지 않아 유명한 문파의 비전절학도 손보고 심지어 새로운 무공을 창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절로 붕 떴다.
“열심히 하면 더 강해질 거예요.”
“그렇겠죠? 반드시 혈살이마존을 능가할 거예요.”
양이설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흔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양이설은 일그러트렸던 얼굴을 환하게 펴고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
“무흔? 어떻게 된 거야?”
무림맹으로 돌아오는 길에 백단영이 그의 팔을 붙잡고 해명을 요구했다.
얼핏 보면 길거리에서 남녀가 애정 문제로 툭탁거리며 싸우는 모습처럼 보였다. 무흔은 난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짜릿한 기쁨을 맛보았다.
얼떨결에 독단을 먹고 웬만한 독에 대해 내성을 갖게 된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얻게 된 기연이 실감나지 않았다.
사실 무림인들이 가장 꺼리는 것이 독이다.
아무리 고수라도 독에 당하면 고강한 무공이 무용지물이 되기 일쑤였으니까. 그렇다고 먹는 음식이나 만지는 모든 물건을 의심할 수도 없는 노릇. 이런 고민을 일거에 해소하게 되었으니 백단영은 그 기쁨이 무척 컸다.
독에 대한 내성은 어린 시절부터 영약을 섭취한 사람이라면 조금씩 갖고 있지만, 백단영처럼 만독불침에 준하는 효과를 얻으려면 독공에 관한 특별한 공부나 기연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당연히 장후성이나 남궁이화도 닿을 수 없는 기연이다.
“매화곡에서 오다가 우연히 독망지주를 잡았다니까요.”
무흔의 변명에 백단영이 헛웃음을 들이켰다.
“그래, 우연히 잡았다고 쳐. 근데 그 독단을 왜 나를 줘? 네가 먹어야지. 그 귀한걸.”
“핫핫, 저야 하는 일이 없잖아요. 아가씨가 빨리 강해져야죠.”
“야! 그렇게 변명할 문제가 아니잖아.”
이렇게 그녀가 곤란하게 만들 때는 방법이 있다.
“정말 고마운 것 맞죠? 그럼 여기에 뽀뽀라도…….”
무흔은 자신의 볼을 내밀었다.
퍽!
철퍼덕-
강하게 등을 가격당한 무흔은 바닥에 철퍼덕 넘어졌다.
백단영은 주변을 둘러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두 사람의 실랑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안면이 붉어진 그녀가 후다닥 도망쳤다.
무림맹 내부로 들어와서야 간신히 진정한 백단영이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매화곡에 남아서는 뭘 했어?”
뒤늦게 의문이 생겼는지 그녀가 질문했다.
무흔은 적당히 둘러대어 설명했다.
“무공 비급을 봐 달라고 하더라고요.”
“비급을 왜? 그것도 하필이면 너에게?”
“제가 운경각에서 비급 정리를 하고 있잖아요.”
무흔이 비급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무공 연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은 그녀도 인정하는 바이긴 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았다.
백단영이 미심쩍어 하는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가 다시 질책했다.
“그런데 외부 사람에게 무공을 봐 달라고 했어? 그것도 사문의 비전을?”
“아, 거기까진 아니고요. 매화곡에 의외로 잡다한 무공이 많더라고요. 실전된… 그런 무공을 보완해달라고 해서…….”
“음, 너 천재 맞았구나?”
백단영이 예전에 무흔이 자신에게 찾아주었던 비급을 떠올리며 이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금방 그녀의 눈빛이 다소 날카로워졌다.
“그런데 그걸 맡긴 사람이 은옥상이었지?”
훅 찌르고 들어오는 그녀의 공격에 무흔은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단영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그녀가 무흔이 들고 있는 약봉지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래, 은옥상이 예쁘장하게 생기긴 했지. 설마 독단을… 은 소저가 준 것은 아니겠지? 네가 독망지주를 잡았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무흔은 생각지 못한 전개에 걸음을 멈추었다.
백단영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독단은 정말 고마웠어. 기회 되면 꼭 보답할게. 약은 내가 가져갈 테니까… 그만 갈게.”
무흔은 저만큼 멀어져가는 백단영의 뒷모습에 손만 내저었다.
***
운경각 옆에 있는 만박전.
무림맹 책사인 만박노사는 집무실에서 부채를 설렁설렁 부치면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는 때마침 들이닥친 무흔을 보고 안면을 찌푸렸다.
“무슨 일로 왔느냐?”
“비급을 하나 찾았습니다.”
“어디에서?”
“지하 서고입니다.”
지하 서고란 말에 만박노사가 보던 책을 덮고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예전에도 지하 서고에서 쓸모 있는 비급을 찾아낸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가져와 보거라.”
무흔은 품에서 비급을 꺼냈다. 바로 독제의 독문 무공이다. 비급을 받아쓴 종이를 제본해서 책자로 만든 것이다.
“독제?”
비급의 저자를 본 만박노사의 표정에 의문이 떠올랐다.
“독제라면 오십여 년 전 강호를 누볐던 마두가 아니냐? 그 비급이 왜 여기에 있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 운경각에 유입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었습니다.”
잠시 무흔을 쳐다보던 만박노사가 비급을 자세히 살폈다.
“그리 오래된 책자는 아니군.”
그 말을 듣는 순간 무흔의 가슴이 뜨끔했다.
책이란 오래될수록 묵은 표시가 난다. 무흔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지적에 변명거리를 고민했다. 다행히 내용을 쓱 훑어본 만박노사는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이 층 서고에 둘까요? 아니면 삼 층 서고에 둘까요?”
“독제의 독공 비급이라면 삼 층 서고에 둘 충분한 가치가 있다. 다만…….”
만박노사가 그에게 비급을 다시 넘겼다.
“다만 이 비급은 독공 만이 아니라 독을 해독하는 방법도 다루고 있어서 연구하면 큰 도움이 될 책이다. 많은 사람이 자주 접하는 게 좋겠지. 어차피 독공이란 게 비급을 본다고 쉽게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이 층 서고에 두도록 하여라.”
독제의 비급은 이 층 서고로 자리가 정해졌다.
무흔이 비급을 받아들고 뒤로 돌아서려는 순간 만박노사가 질문을 던졌다.
“흠, 최근에 멀리 다녀왔던가?”
“아, 서옹 어르신을 모시고 사천에 다녀왔습니다.”
“흐음, 그래. 혹시 커다란 거미에 물린 적이 있나?”
무흔은 절로 경기를 일으켰다.
만약 뒤로 돌아선 상태가 아니라면 표정에서 바로 드러났을 것이다. 과연 만박(萬博)이라더니 달리 무림맹 책사가 아니었다.
“그곳에서 며칠 산속을 헤맸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흔은 모호하게 대답했다.
“알았다. 그만 가보아라. 비급은 반드시 꽂아 두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무흔은 만박노사의 거처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