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8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80화
80화. 혈우파천만겁공 (3)
무흔이 쓴웃음을 짓자 은옥상이 정정했다.
“말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 흘러갔는데 핵심을 봐줬으면 좋겠어. 그만큼 내가 절실하다는 걸로.”
그는 은옥상과 눈동자를 맞추었다. 까만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진지하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 눈빛을 보고 있자니 무흔은 새로운 가능성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첫째 소교주인 사마극으로부터 백단영을 구하는 목표만 고민했었다. 당연히 사마극이 최대의 강적이었다. 자연스럽게 마교 전체가 적이 됐다.
그런데 셋째 소교주인 은옥상을 한편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사마극을 내부에서도 자연스럽게 견제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이익이 될지 모르지만 같은 편이 하나라도 늘어나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지금 그녀가 원하는 능력은 그의 성장에도 발판이 되지 않을까.
그녀보다 오히려 그에게 더 보탬이 될 그런 내용이었다.
“흠, 좋아. 이참에 확실히 할 게 있어.”
무흔의 대답에 은옥상이 어서 말해보라고 했다.
“언제가 되었든 적어도 나와 백단영 소저는 건드리지 마.”
“좋아, 앞으로 우리는 한편이 될 테니까.”
백단영이란 이름이 나오자 은옥상이 찜찜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의했다.
그녀가 뒤를 이어 한마디 덧붙였다.
“적어도 앞으로 사마극과의 싸움에서 나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조건이야.”
무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은옥상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무흔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그래서 어떤 무공이야?”
은옥상이 품에서 비급 한 권을 꺼냈다.
“이 비급은 마교에서 적통만 들어갈 수 있는 비고에서 꺼내온 거야. 난 이 무공이 필요해. 그런데 첫 권이 소실되어서 무공을 익히기 어려워.”
적통이란 마교 교주와 그 아래의 소교주를 의미한다.
즉 그 마교의 비고에는 마교의 핵심 무공이 모여 있다. 또 지금 그에게 보여주는 이 비급 역시 교주만 익힐 수 있는 그런 중요한 무공이다.
무흔은 은옥상이 넘겨준 비급의 제목을 확인했다.
‘헉!’
그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혈우파천만겁공!
그가 무림맹 삼 층 서고에서 봤던 바로 그 비급이 눈앞에 있었다. 그의 안색이 급변하는 낌새를 눈치챈 것일까. 은옥상이 바로 물어왔다.
“왜 그래?”
“아, 아니, 이름이 무시무시해서.”
무흔은 적당히 대답한 후 비급 첫 장을 넘겼다.
비급을 넘기던 무흔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정확하게는 이 비급은 혈우파천만겁공 둘째 권이었다. 첫 권을 이미 익힌 무흔에게 이 둘째 권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첫 권을 읽었을 때도 그 무시무시한 위력과 일반 무학의 경지를 벗어난 사이함에 놀랐었던지라 지금 둘째 권을 넘기는 그의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떨렸다.
“으음.”
절로 신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옆에서 유심히 바라보던 은옥상이 재빨리 물었다.
“어때? 첫 권 복원이 가능할 것 같아?”
당연히 무흔은 가능하다.
운경각에 있는 첫 권을 이미 읽고 5성까지 익힌 상태니까.
사실상 거의 그대로 복사본을 이곳에서 만들어 줄 수준이다. 하지만 과연 이 무시무시한 무공을 은옥상에게 가르쳐주어도 되는 걸까.
비록 예전 소설에서 은옥상이 백단영을 직접 위협한 적이 없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녀는 백단영의 적이다. 그녀가 같은 편이라는 확실한 보증이 없다면, 아니 적어도 사마극과 대립하여 그에게 이득을 주지 않는다면 굳이 알려줄 이유가 없다.
“흠, 너 이 무공이 어떤 무공인지 알아?”
“당연히 알아. 익혔으니까.”
“익혔다고?”
놀라는 무흔에게 은옥상이 자세한 이야기를 곁들였다.
은옥상은 혈우파천만겁공 후반부 비급을 마교 비고에서 발견한 뒤 그 이름에 매료되어 익히기 시작했다. 역시 이 무공은 무시무시했다. 신체의 숨은 잠재력을 극도로 폭발시켜 무시무시한 위력을 만들어내는 이 사이한 마공은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혈우파천만겁공을 익히던 그녀는 오래지 않아 장벽에 부딪혔다.
무공에서 뭔가 중요한 내용이 빠진 것 같았다.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녀는 이 비급의 전반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전반부의 빠진 부분을 마교 내 핵심에게만 전해지는 신공으로 메웠어. 덕분에 혈우파천만겁공을 시전 할 수는 있게 됐어. 하지만 그 위력은 예상에 미치지 못했어. 난 그 이유가 빠진 전반부 때문이라 생각해.”
그녀의 인식은 정확했다.
어떤 무공이든 호흡법과 내기 운용에서 시작하여 초식을 구현하기까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맞아 떨어져야 한다. 이런 심득을 얻지 못한다면 제대로 신공을 구현해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단순히 옆에서 초식을 연습하는 것만 보고 그 무공을 익힐 수 없는 이유다.
전반부가 사라져 버렸기에 그 부분을 다른 무공에서 가져와 적당히 때려 맞추기는 했으나 완벽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복원이 가능해.”
무흔은 빙그레 웃으며 확실하게 선언했다.
경악한 표정이 은옥상의 안면에 천천히 번져나갔다.
“정말? 그게 가능하다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 어렸던 경악과 감탄은 점차 만족스러운 미소로 바뀌었다. 그 모습이 어째 대단히 유혹적이라 무흔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려야 했다.
잠시 침묵의 시간을 보낸 후 무흔이 입을 열었다.
“자, 이제 다시 말해보자고. 난 혈우파천만겁공의 전반부를 완성 시켜 줄 수 있어. 그럼 넌 나에게 뭘 해줄 거야?”
“너랑 백단영의 안전…….”
“지금 장난하니?”
무흔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은옥상이 입을 꾹 닫았다.
생각해보면 무흔과 백단영의 안전은 은옥상 개인의 결심 여부일 뿐이다. 물론 사마극으로부터의 위험까지 그녀가 방어해주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녀도 그 사실을 깨달았나 보다. 슬그머니 안색이 붉어졌다.
“우리가 한편이랬지? 그럼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 것은 기본 아닌가? 거기에 넌 네가 사마극에 붙지 말고 도와달라며? 그리고 혈우파천만겁공 전반부 복원까지. 내가 너무 많이 해주는 것 같지 않아?”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무흔의 반박에 은옥상이 할 말을 잃고 버벅거렸다.
물론 무흔에게는 이 모든 것을 덮을 엄청난 이득이 있다. 바로 혈우파천만겁공을 완벽하게 익힐 수 있으니까. 나아가 그는 이를 계기로 마교의 무공에 손을 대볼 생각이었다.
지피지기면 승리가 보장된다.
사마극을 이기려면 사마극의 근본인 마교의 무공을 파헤쳐야 한다. 지금 이 시점이 바로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은옥상은 그에게 훌륭한 조력자가 될 테니까.
일단 압박은 여기까지.
무흔은 이번에는 그녀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너, 나에게 빚진 거다. 잊지 마.”
은옥상이 안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흔은 혈우파천만겁공 비급을 손에 들면서 일어섰다.
“대략 열흘가량 걸리면 모두 복원 가능할 것 같아. 이만하면 된 건가?”
물론 무흔은 하루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고 머릿속에 든 것을 하루 만에 필사본으로 만들어 제공하면 너무 쉬워 보이는 것 아닐까.
“우와, 정말? 이런 엄청난 무공을 복원하는 데 불과 열흘? 넌 천재야!”
천재라는 말이 낯간지러웠으나 무흔은 헛기침으로 무안함을 없앴다.
***
무흔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진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서옹이 매화곡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계획했던 일을 모두 끝냈다는 서옹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출발을 서둘렀다.
좋은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니 서옹의 말이 이해가 되긴 했다. 여인들로만 구성된 매화곡인지라 애초에 남궁이화나 백단영은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남자인 장후성이 있긴 했으나 그는 이미 약혼녀인 모용예가 있었고, 지금은 백단영이 곁에 있었다. 당연히 매화곡 제자들에게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무흔만 오로지 주변을 힐끔거리는 사람이 됐다.
게다가 은옥상이 시키는 일을 한답시고 어딘가에 처박혀 있으니 백단영과 남궁이화가 그에게 핀잔을 줬다.
은옥상에게 열흘을 제시한 무흔은 곤란해졌다. 은옥상은 무흔을 놓아줄 생각이 절대 없었다.
“음, 그래서 보름 정도 혼자 여기에 남았다가 가겠다고?”
백단영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무흔을 다그쳤다.
“네, 이곳 매화곡에서 제 도움이 약간 필요하다고 하네요.”
무흔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물론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는 매화곡의 비밀이라며 언급하지 않았다. 어째 굳이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분위기였다.
“너, 요즘 장문 제자인 은 소저나 산산과 친하게 지내더니…….”
“에이, 꼭 그것 때문은 아닙니다.”
이곳에 오던 날부터 무흔이 다른 사람들과 별도로 움직이다 보니 의심을 살만했다. 백단영이 다소 우려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쓱 훑었다.
무흔이 손을 내저었다.
“마부가 없어 곤란하신 것은 잘 알아요. 그 부분은 무척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마부야…… 장 소협이 하겠지, 아니면 내가 해도 되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무흔도 백단영과 이렇게 떨어지려니 찜찜하긴 했다.
백단영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숨 쉬며 말했다.
“여기 매화곡은 여자들이 너무 많아. 몸가짐 조심하도록 해.”
“예?”
뜬금없이 날아든 그녀의 경고에 무흔은 황당했다.
그가 뭐라고 대답할 사이도 없이 백단영이 몸을 돌려 나가버렸다. 자칫하면 미움을 통째로 뒤집어쓰게 생겼다.
***
나흘 때 되는 날 무흔은 일행을 먼저 떠나보냈다.
백단영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무흔이 이곳에 남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서옹은 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격려했다. 괜히 무안해진 무흔은 머리만 긁적였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일행의 뒷모습을 보며 무흔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와 함께 배웅 인사를 한 은옥상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가씨랑 애틋한 사이인가 봐?”
“에이, 그럴 리가.”
“얼굴에 적혀 있는데?”
무안해진 무흔은 소매로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그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작업 시작하게 얼른 붓과 종이나 줘.”
“호호, 대단하군. 방에 가 있어. 가져다줄 테니.”
은옥상은 무흔의 성실함에 만족을 표시했다.
무흔은 방으로 돌아가 혈우파천만겁공 후반부를 폈다. 사실 비급을 편 것은 형식적이었다. 그는 이미 지난밤에 이 비급을 모두 읽었으니까.
그는 손목을 걷었다.
혈우파천만겁공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으음?”
잠시 무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예전에 혈우파천만겁공의 전반부만 익혔을 때 이 무공의 위치는 그리 높지 않았다. 최근에 삼 층 서고에서 워낙 많은 무공을 접하다 보니 이 무공은 자체의 패도적인 위력에도 불구하고 순위는 다른 무공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후반부 비급을 읽고 완벽한 5성의 숙련도를 얻는 순간 그 위치가 달라졌다. 무려 천단비화신공과 패천마공 사이에 새겨진 것이다.
“엄청나군!”
혈우파천만겁공을 떠올리자 온몸의 뼈가 마치 재조립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흔이 혈우파천만겁공으로 인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을 때였다. 방문이 열리고 은옥상이 들어왔다. 그녀는 들고 온 붓과 종이를 내려놓았다.
“여기 있어. 부탁해.”
무흔은 붓을 쥐고 예전에 읽었던 전반부를 떠올렸다.
어렵지 않았다. 후반부까지 익혀 사실상 완벽해진 무공이라 그 구결을 기록하는 일은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 급하면 하루에 끝을 낼 수도 있다.
무흔은 혈우파천만겁공이란 제목을 먼저 적었다.
“흠, 글씨 잘 쓰네?”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적힌 글씨를 보면 명필이 따로 없다.
현실에서 무흔은 붓글씨라고는 초등 때 이후 손에 대본 적이 없었다. 붓글씨 능력은 이곳 무림 세계로 넘어오면서 자연적으로 습득한 능력으로 보였다. 마차를 모는 능력처럼.
어쨌든 무흔은 자신의 글씨체에 만족했다.
그는 기억을 되새기며 비급의 전반부에 적혀 있던 첫머리를 그대로 옮기기 시작했다.
일단 한 쪽을 적어 은옥상에게 넘겼다. 꼼꼼하게 읽던 은옥상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은옥상은 비급을 그대로 복원하는 무흔의 능력에 감탄했다.
그녀는 어쩌면 무흔의 도움을 받으면 이 세상의 모든 무공을 거머쥐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무흔은 자신의 재능이 이런 식으로 쓰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비록 지금은 이미 봤던 전반부이기에 그대로 옮겨 적으면 끝이지만, 설사 전반부를 보지 않았더라도 실제로 전반부 무공을 복원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능력을 조금 발전시키면 기존 무공의 허점을 보완하고 나아가 새로운 무학을 창조하는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