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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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79화
79화. 혈우파천만겁공 (2)
무흔은 답변을 거부했다.
“굳이 제가 대답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은옥상의 얼굴에 잠시 분노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무흔은 이 여인이 마교의 소교주란 사실을 다시 상기했다. 현재 그녀의 무공은 아마 마교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일 것이고, 수하 동원 능력 또한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이런 은옥상의 비위를 계속 건드리다가는 자칫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순순히 자폭할 수는 없다. 이렇게 된 이상 그도 최대한 뭔가를 얻어내야 한다.
“저는 무림맹 서고 관리인이죠.”
“물론 이미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날 당신이 백단영을 구하느라 쓴 무공을 보면 단순한 관리인이거나 서동으로는 어렵겠더군요.”
은옥상이 재차 주시하며 답변을 강요했다.
역시 그날 무흔이 지법을 이용해 비무를 방해한 사실을 알고 있었나 보다. 무흔은 내친김에 질문했다.
“구가장에서 아는 사람이 죽었다고 했죠? 그 복수입니까?”
“복수라기보단 그자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생겼어요.”
“그 사람이 저라고 생각하나요?”
은옥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무공이 그렇게 높아 보이나요?”
다시 그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때 죽은 당신 수하들만큼?”
은옥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무흔도 궁금했다. 은옥상이 볼 때 자신이 마교 서열 얼마의 수준으로 보이는지.
은옥상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당신은…… 놀라운 점이 있네요. 무림맹을 방문했을 때 분명히 당신의 무공은 놀라웠어요. 무공 자체보다는 한 소저의 서동이라는 자가 의외로 높은 무공을 소유하고 있어서 말이죠. 그것도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그래서 관심을 두게 됐죠.”
“그런데요?”
“오늘 다시 보니 그동안 엄청난 발전을 했군요? 무공 수위가 훨씬 높아졌어요. 맞나요?”
이런! 은옥상의 눈썰미를 간과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무흔의 무공 증가를 한눈에 알아본 듯했다.
무흔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제 직책이 뭡니까? 서고 관리인입니다. 무려 무림맹에서 비급이 모여 있는 운경각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죠. 서고 관리인을 쉽게 보지 마세요. 워낙 많은 무공 서적을 보다 보니 무리(武理)를 깨우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웬만한 무공은 읽으면 다 이해하죠. 물론 이해하는 것과 익히는 것은 다른 문제이긴 합니다만.”
“천재인가요? 제갈수처럼?”
용봉대의 제갈수가 언급됐다. 의외로 은옥상이 정파 무림의 동향에 밝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흔은 손을 내저었다.
“전 천재는 아닙니다만, 가끔 제갈 소협이 저에게 어려운 무공 비급의 해석을 의뢰하긴 하죠.”
본의 아니게 제갈수보다 더 똑똑하다고 과시한 꼴이 되어버렸다.
물론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 그가 운경각에서 하는 일에 이런 부분이 꽤 차지하고 있으니까.
감탄한 은옥상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그렇군요. 대충 대답이 되었네요. 그대는 비급 해석과 풀이에서 천재일 뿐 아니라 익히는 재능도 상당해 보이는군요. 이제 그대의 급속한 무공 향상이 이해돼요.”
그의 무공 수준을 상당히 꿰뚫어 보고 있는 그녀에게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무흔이 반격할 시간이다.
“명확한 답을 원하시죠?”
“당연하죠.”
“그럼 우리 여러 가지를 공유해보죠. 당신이 누구인지부터.”
은옥상의 입이 쩍 벌어졌다.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나.
한참 쓴웃음을 짓던 은옥상이 침상에 자리 잡고 그에게 옆자리를 권했다.
그녀의 행동만으로 본다면 이는 더 가까워지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결코 나쁜 조짐은 아니었다.
무흔은 순순히 옆에 앉았다.
갑자기 그녀의 체향이 훅 느껴졌다. 멀리 매화곡까지 와서 위험인물인 마교 소교주와 무슨 짓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곳으로 오다가 독두이마라는 자를 만났죠?”
무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바로 내가 보냈어요.”
짐작했던 바였다. 역시 이어진 그녀의 말은 그의 추측과 일치했다.
“그래서요?”
“당신에 대한 혐의가 더욱 짙어졌어요.”
“나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니 고맙군요.”
무흔이 그리 놀라지 않는 표정을 보이자 은옥상 역시 피식 웃었다.
“당신은 역시 나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군요?”
스스로 마교 소교주임을 시인하는 모양새다. 어차피 알아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무흔은 잔잔한 미소만을 머금고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이제 서로를 대충 파악했으니 안건을 꺼내시죠.”
은옥상이 품에서 책을 하나 꺼냈다.
“좋아요. 마지막 관문이에요. 반드시 통과하길 바라요.”
뜻밖의 행동에 그는 책을 받으면서 그녀를 쳐다봤다.
“내일 낮에 나랑 비무해요. 나는 그 책에 적힌 무공으로 공격할 거예요. 내일까지 그 무공을 해석해서 대비책을 찾지 못한다면 당신은 죽어요.”
“나는 그런 비무는 싫어요.”
“선택은 없어요. 당신이 비무하지 않으면 백 소저와 하게 될 테니. 그럼 백 소저가 죽어요.”
“이런 미친!”
은옥상이 자신감 넘친 미소를 날리고는 밖으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무흔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녀가 앉았던 자리를 노려봤다.
표면적인 위협과 달리 어째 그녀가 호감을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비급을 던져줄 리가 없으니. 대체 마지막 관문이란 무엇일까.
그는 책 표지를 넘겼다.
마혼만력강.
이름만으로도 극강의 무공이자 마공이 분명했다.
초절정 무공이 확실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가 익힌 마교의 무공은 삼 층 서고에서 읽었던 혈우파천만겁공이 유일했다. 이제 두 번째 마공을 익히게 되는 셈이다.
책장이 빠르게 넘어가며 무흔은 마혼만력강에 빠져들었다.
***
다음 날 낮에 장후성 일행은 매화곡을 구경했다.
매화곡은 경치가 수려했기에 장후성 등은 산산의 안내를 받아 계곡을 따라 봉우리로 올라갔다.
무흔은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를 대고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백단영이 아쉬움을 표했으나 그는 자기 몫까지 구경하고 오라며 그녀를 배웅했다.
일행을 보낸 무흔이 홀로 돌아왔을 때, 은옥상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혼만력강을 해석했나요?”
“아직 살펴보는 중입니다.”
“그래요? 따라오세요.”
무흔은 은옥상을 따라 전각 뒤의 소형 연무장으로 이동했다.
넓이로 보아 개인 연무장인 듯했다. 당연히 연무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가던 은옥상이 갑자기 몸을 홱 틀더니 다짜고짜 그를 향해 일장을 쏟아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무흔은 당황했다.
하지만 금방 그녀의 공격이 무엇인지 눈치챘다.
평범한 일장처럼 보이지만 장력에는 마혼만력강이 담겨 있었다. 장력에 파괴적인 위력을 지닌 강기를 숨겨 상대를 공격하는 이런 무공은 일전에 무흔이 익혔던 패천마혼비와 유사했다. 다만 그 위력이 훨씬 강력하고 압도적인 점만 다를 뿐.
순간 무흔의 손이 번뜩였다.
그의 손에서 패천마혼비가 펼쳐졌다.
콰앙-
마혼만력강과 패천마혼비에서 쏟아진 강기가 서로 충돌하며 파편으로 쪼개진 강기가 흩날렸다.
“꽤 하는데?”
은옥상의 수영(手影)이 눈앞에 번뜩였다.
마치 강기로 만들어진 손바닥이 그를 후려치는 것처럼 전면을 가득 메웠다. 무흔은 이것 역시 마혼만력강이 숨겨진 수강의 일종임을 꿰뚫어 봤다.
“이런, 미친!”
무흔은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평범하게 대응해서 걷어낼 수 있는 한계를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가 최선을 다해도 깨트리기 쉽지 않은 위력이었다.
자연스럽게 지난 밤 비급에서 읽었던 마혼만력강이 무흔에게도 발동됐다.
무흔은 입술을 깨물며 힘껏 두 손으로 상대를 후려쳤다. 놀랍게도 그의 손에서 비슷한 수영이 형성되며 앞으로 폭사했다.
꽈릉-
파편이 마치 비가 오는 듯 전면에서 쏟아졌다. 강기의 파편이 쏟아지자 무흔은 호신강기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푹- 푹- 푹-
폭사되던 파편은 호신 강기에 튕겨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과연 대단해!”
은옥상이 감탄을 터트리면서 공격을 멈추었다.
무흔이 신경질 나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대체 이게 뭡니까?”
“놀라워. 하루 만에 마혼만력강을 터득했다는 것도 놀랍고 내공이 일갑자를 가볍게 뛰어넘는다는 것도 놀랍고.”
마혼만력강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최소한 공력이 일갑자를 넘어서야 했다.
무흔은 그녀가 완벽하게 자신의 무공 수위를 파악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아가 하루 만에 이 엄청난 무공을 익혀버렸다는 사실도.
“천재였군. 비급을 해석하는 것도 천재고, 무공을 익히는 것도 천재고.”
그녀의 칭찬에 무흔은 피식 웃으며 부인하지 않았다.
은옥상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풍운쌍마를 죽인 자도, 적황쌍마를 죽인 자도 당신이군. 그렇다면 육지신마도 그대인가?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짓이 아니라 그대였군. 대단한데?”
은옥상이 입에 올린 자들은 모두 죽을 때 장후성이 부근에 있었던 경우였다. 반면 월광요희는 장후성과 전혀 연관성이 없었으니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이미 부인하기는 틀렸다.
무흔은 단단히 각오하고 대답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복수할 생각인가?”
“아니. 네가 죽인 자들은 사마극이 보낸 사람들이야. 나랑 무관해.”
은옥상이 단칼에 부인했다.
무흔으로서는 다행이었다. 아직 그는 은옥상을 상대할 만큼 준비가 되지 못했으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나를 파악하고자 하는 이유가 뭐지?”
무흔은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서로 반말로 주고받고 있었다.
“나를 도와줘.”
“응?”
무흔은 은옥상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마교인을 죽인 자신에게 도와달라니. 그것도 그보다 훨씬 뛰어난 무공을 지닌 은옥상이.
“나를 도와주면 적어도 백단영을 해치지는 않겠어.”
무흔의 약점을 확실히 꿰뚫어 본 그녀답다. 아마 지난 비무 때 그녀가 백단영을 해치려 하자 무흔이 결사적으로 방해한 일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겠지만.
“싫다면?”
“너와 백단영은 이곳 매화곡에서 벗어나지 못해.”
무시무시한 협박이 돌아왔다.
무흔은 안하무인인 그녀에게 반발심이 일었으나 성질을 죽였다. 지금은 참는 것이 만수무강에 유리하다.
“그런 협박을 앞세워 도움을 받고 싶나?”
“물론 아니야. 그만큼 보답을 해줄게.”
“들어주는 정도는 해주지.”
“따라와.”
은옥상이 그를 자신의 처소로 데려갔다.
***
은옥상의 전각 역시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전날 보았던 매화곡주가 거주하던 장소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깔끔하게 단장된 내부 비품에서 무흔은 그녀의 성격을 엿봤다. 의외로 무서운 성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흔을 작은 탁자 앞에 안내한 그녀가 손수 차를 가져왔다. 찻잔을 채운 뜨거운 차에서 그윽한 차향이 피어올랐다.
“이미 느꼈겠지만 난 마교의 인물이야.”
“직위는?”
아는 내용이지만 무흔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얼마나 그를 신뢰하고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소교주. 놀랄 필요는 없어. 마교에는 소교주가 모두 셋이 있으니까. 난 그 가운데 막내야.”
무흔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부합했다. 적어도 은옥상은 그에게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무공을 익히고 있어. 내가 마교에서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 꼭 필요한.”
“자리 잡는다는 말은 차기 마교 교주 자리를 의미하나?”
“그렇게 봐도 무방해.”
예상 밖으로 세 소교주 간에 후계 다툼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야? 난 마교인이 아닌데.”
“내가 익히는 무공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어. 원래 두 권짜리 비급인데 하나가 분실되었거든. 그 없어진 한 권을 어떻게든 재생시켜줘.”
무슨 말인지 무흔은 이해했다.
그녀는 무흔이 무공을 해석하고 익히는데 천재란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그의 능력을 이용해서 잃어버린 무공 비급을 복원할 꿈을 품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무공을, 그것도 초절정 무공을 복원하는 것이 간단할 리가 없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뭐가?”
“그것이 가능할까?”
“너라면 가능해. 단시일 내에.”
능력을 높게 쳐주는 것이야 고맙지만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떻게 단시일까지…….”
“원래 초절정 무공의 승패는 깨달음이야. 가까운 시일 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평생 연구해도 어려워.”
무흔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무작정 시간이 흐른다고 하여 깨달음을 얻는 것은 아니니까.
“네 말대로라면 나도 그 무공을 익히게 될 텐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너에게 줄 선물이라고 생각해.”
무흔은 그녀의 반응에서 그녀가 잃어버린 그 무공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거절하면…….”
“한편이 아니라면 죽어야지. 네 능력이 오빠에게 알려지면 오히려 내가 더 위험하니까. 그리고 백단영도 마찬가지고.”
무흔은 위험인지 기회인지 모호한 상황에 실소를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