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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74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2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74화

74화. 월성문 (1)

 

 

 

무흔은 걸음을 멈추고 양이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헉헉대며 숨을 고르는 것으로 보아 급하게 그를 쫓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는 양이설과 자신의 접점을 고민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찾아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향했다.

사실 죽립을 쓴 상태라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아 표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양이설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를 거두어주세요.”

“……!”

무흔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화들짝 놀라 대답할 수 없었다. 다 큰 처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새삼 그녀가 궁금해져서 제대로 살폈다.

나이는 이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가벼운 경장 차림의 반듯한 그녀의 얼굴도 상당한 미인이다. 워낙 주변에 백단영이나 모용예 같은 미인들이 많아서 양이설의 외모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때 양이설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스스로 자각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알다시피 전 창의문주의 딸이에요. 창의문 비전 무공을 배웠죠. 창의문은 얼마 전에 혈살이마존에 의해 멸문했고 지금은 살아남은 사람이라고는 저밖에 없어요. 전 복수를 하고 싶어요.”

두서없이 말을 꺼내던 그녀가 묵묵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무흔에게 짓눌린 듯 일순간 말을 멈췄다. 그제야 이런 부탁이 무례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하지만 다시 용기를 낸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혈살이마존은 저의 부친을 죽였어요. 그리고 제 어머니를 겁간 후 죽였고요. 그다음에 저마저…… 흐윽, 제가 살아남은 이유는 혈살이마존을 죽여 원수를 갚으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해요. 원수를 갚으려고 하북에서 여기까지 쫓아왔어요. 하지만 제 무공으로는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어요.”

양이설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쫓아온 거예요. 당신이 혈살이마존과 싸우는 것을 봤어요. 당신에게 무공을 배우면 분명히 복수할 수 있을 거예요. 저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세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긴 했다. 하지만 무흔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무림과 현생을 오가는 사람이다. 원한다고 하여 제자를 받아들일 그런 재간이 없다.

무흔은 고개를 저으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난 낭자를 제자로 거둘 수 없소.”

양이설이 실망한 기색을 보인 것도 잠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전 당신을 따라갈 거예요. 어차피 이대로는 절대 혈살이마존을 죽일 수 없으니까요. 당신을 따라다니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겠죠.”

말을 하면서도 그를 향해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는 것을 보니 결심이 확고해 보였다.

무흔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째 대책이 서지 않는 아가씨다.

그는 말없이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양이설이 몇 걸음 떨어져서 조용히 그를 따라왔다. 뒤를 흘낏 본 무흔은 그녀가 따라오든 말든 개봉 쪽으로 이동했다.

 

***

 

개봉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무흔은 난감해졌다.

밤이 깊어 잠잘 곳부터 마련해야 했다. 혼자라면 무림맹 숙소로 들어가면 되지만 붙어 있는 꼬리가 문제였다.

양이설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의 뒤를 졸졸 따라왔다.

보다 못한 무흔이 그녀에게 말했다.

“여곽에서 주무시오.”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 상관없어요.”

어째 이 여자가 오해할 말만 한다. 

오늘은 그렇게 여곽에 머무른다 치더라도 내일은 어찌해야 하는가.

대책이 서지 않는 그녀 때문에 무흔은 머리가 지근지근 아팠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행동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었다.

강호에 혈혈단신으로 버려진 상태에서 무흔은 그녀에게 다가온 오직 하나의 희망일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찾아낸 등불이니 그녀도 당연히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무흔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마을로 들어서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백 소저와 모용 소저는 어쩌다 만났소?”

“그들이 잡혀가는 것을 봤어요. 혈살이마존에게 저처럼 희생당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따라갔죠. 마침 혈마존이 살마존을 찾아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기회가 생겼죠. 두 낭자를 풀어주고 함께 도망치려 했는데…….”

그 뒤는 무흔도 알고 있다.

무흔은 개봉사걸의 정보를 통해 혈살이마존의 흔적을 밟을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는 늦지 않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따지고 보면 백단영을 구하는 과정에서 양이설이 고생하긴 했으나 특별한 역할을 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는 양이설이 백단영을 구하려 했던 그 마음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구하기도 했다. 도망치기 전에 다시 혈살이마존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었지만.

백단영에게 잘해주었다는 생각에 양이설에게도 호감이 갔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무공을 가르쳐 주세요. 저를 하인처럼 부려도 괜찮아요. 무공만 가르쳐 주신다면.”

양이설이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혈살이마존을 향한 그녀의 원한이 얼마나 깊은지 그대로 드러났다. 고민을 거듭하던 무흔은 그제야 그녀를 어떻게 할지를 생각해냈다.

“양 소저.”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양이설이 바로 머리를 푹 숙였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그럼 당신에게 적성에 맞는 무공을 알려드리리다.”

“정말요? 무엇이든 할게요.”

양이설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우리는 의방을 방문할 거요. 그곳에 머물면서 의원을 도와주시오. 할 수 있겠소? 당신이 할 일은 의원을 도와서 환자를 돌보고 의원과 거기 있는 어린아이의 수발을 들어주는 거요. 생각 있소?”

“당연히 할게요.”

어차피 양이설도 머물 곳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계속 강호를 떠돌 수만은 없으니.

무흔은 양이설을 귀의에게 데려갈 생각이었다. 곽연연이 어려 귀의가 바쁠 때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양이설이라면 그런 일의 적임자로 충분했다.

“그 일을 해주면 난 소저에게 무공을 알려드리리다.”

“아! 정말 고맙습니다.”

양이설이 갑자기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절을 했다.

무흔은 재빨리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난 당신의 사부가 아니오. 나중에 제대로 된 사부를 만나시오.”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면서요?”

“가르친다고 모두가 사부는 아니오.”

극구 거절하는 무흔을 보며 양이설은 그가 자신을 제자로 받아들이기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정식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침울해졌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에게 무공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도 엄청나니까. 혈살이마존을 압도하던 그의 무공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현재 알고 있는 무공은 어떤 거요?”

양이설이 아낌없이 자신의 무공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미 무공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무흔은 약간의 설명만으로도 그녀가 익힌 무공 종류와 수준까지 완벽하게 알아냈다.

사실 무흔이 그녀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운경각에 널린 무공 중에 적당한 것을 골라 그녀에게 넘겨주면 되니까.

그렇게 무공을 익히다 보면 언젠가 좋은 사부를 만날 것이고, 혈살이마존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을 걷다 보니 어느새 귀의의 연연의방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으시오.”

무흔은 양이설을 세워놓고 연연의방의 문을 두드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잠을 자다가 깬 귀의가 문을 열었다.

“누, 누구요?”

어둠 속에 죽립을 쓴 무흔의 모습에 귀의가 놀라서 벌벌 떨었다.

무흔은 조용히 속삭였다.

“귀의 어르신, 저 무흔입니다.”

귀의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다시 살폈다.

“지금 변장한 상태입니다. 그건 그렇고…… 저기 낭자 보이죠?”

무흔은 사정을 설명했다.

젊은 낭자가 머물 곳을 부탁한다는 말에 귀의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 역시 손녀인 연연을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운경각에서 온 무흔은 할 일이 더 많아졌다.

심법과 검법에서 효과를 본 백단영이 새로운 무공을 요구해왔다.

백단영은 이제 무흔이 무공을 찾아내는 재능을 완벽히 신뢰하게 되었다. 무흔도 백단영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운경각 서재를 뒤질 용의가 있었다.

다만 백단영을 만족시키려면 적어도 삼 층 서고에 있는 무공이 필요했다. 삼 층 서고 무공은 외부 유출이 금지되어있어 그녀를 만족시키려면 이 층 서고를 다시 뒤지거나 아니면 지하 서고에서 기연을 만나기를 바라는 방법밖에 없었다.

대호를 위한 무공도 필요했다. 여기에다 갑자기 양이설을 위한 무공도 필요해졌다.

두 사람의 수준은 비슷했기에 이 층 서고의 무공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만 그들 개인의 적성에 적합한 무공을 챙겨주려다 보니 의외로 힘들어졌을 뿐이다.

최근 들어 지하 서고에서 책을 분류하는 일의 대부분은 서고 관리인인 문하룡에게 맡겼다. 지하 서고에 쌓인 책이 워낙 많다 보니 일을 하더라도 표시가 거의 나지 않기에 무흔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무흔은 오늘도 이 층 서고에서 무공 비급을 뒤적였다.

한 권, 두 권, 세 권째 책을 꺼냈을 때 갑자기 기침 소리가 들렸다. 무흔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역삼각형 얼굴에 염소수염. 바로 서옹이었다.

“서옹 어르신!”

무흔은 찔리는 게 많아 직각으로 허리를 굽혔다.

서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요즘 떡은 어디로 갔냐? 떡집 문 닫았냐?”

“그, 그게…….”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미처 떡 심부름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무흔은 바로 머리를 조아렸다. 떡을 배달하지 않은 것은 그의 잘못이 분명했으니까.

“에이, 요즘 젊은 것들은 끈기가 없어.”

“죄송합니다.”

무흔은 혀를 끌끌 차는 서옹에게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나 때는 심부름 한번 맡으면 십 년은 기본이고 보통 삼십 년은 가뿐하게 해치웠어. 근데 너는 어째 반년을 채 못 버티냐?”

그럼 무려 삼십 년을 부려먹을 생각이었나. 무흔이 기가 막혀 입을 쩍 벌렸다.

“내일부터는 열심히 하겠습니다.”

간신히 인사를 하고 있자니 어째 서옹의 눈빛이 심상찮았다. 서옹이 그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무흔은 절로 몸을 움츠렸다.

“흘흘, 너 요즘 몸이 좋아졌다? 혼자 좋은 거 묵냐?”

서옹이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물었다.

예전에도 서옹은 자주 무흔에게 이런 식으로 물어보곤 했었다.

물론 무흔은 서옹의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고수가 되면 타인의 내력 수준을 추측할 수 있다던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닌지 모호했다.

무흔이 대답 없이 머리만 긁적이자 서옹이 다시 물어왔다.

“혹시 무공도 익히냐?”

“에이, 제가 뭔 재주로요. 삼재검법은 기가 막히게 합니다. 하하.”

부인하는 무흔의 대답에 서옹이 피식 웃었다. 무흔은 어색함을 탈피하기 위해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서옹이 뒷짐을 지고 서고를 한차례 돌면서 구경하는 척하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출장 한번 다녀와야겠다.”

“출장요?”

“지난번에 무림맹을 방문했던 매화곡 기억하지?”

순간 무흔은 은옥상을 떠올렸다.

매화곡의 장문 제자이자 마교의 소교주로 안하무인이었던 여인이다. 성정 또한 지극히 사악하게 나왔었다.

절로 위험신호라는 생각이 팍 들었다. 그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매화곡요? 거긴 왜요?”

“매화곡에서 연락이 왔다.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 잘해주어서 고맙다고.”

“그런데요?”

“고마워서 사례하고 싶은가 보더라. 너를 초대했어.”

“예?”

무흔은 입을 쩍 벌리며 머리를 굴렸다. 은옥상이 뭔가 눈치를 챘나?

“저 혼자요?”

“아니, 그때 수고했던 사람들만. 장후성, 남궁이화, 백단영, 무흔. 이렇게 네 사람을 초대했더군.”

무흔은 진풍이 빠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모두 가나요?”

그는 백단영이 가면 당연히 같이 갈 생각이었다.

“그들의 의견을 들어봐야지. 거리가 제법 되니 꽤 오래 이곳을 비워야 해서.”

“어? 설마 어르신도 같이 가십니까?”

“당연한 것 아니냐?”

서옹이 같이 간다고 하니 이것은 더욱 놀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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