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73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7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73화
73화. 혈살이마존 (4)
백단영은 혈살이마존의 등에서 튀어 오르는 한 줄기의 핏자국을 봤다.
“누, 누구냐!”
송상군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뒤로 돌아섰다.
여인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두 사람은 뒤에서 순식간에 날아온 기습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가격당한 상태였다.
그것도 무슨 공격이었는지조차 짐작이 가지 않는 상황.
하지만 자신의 무위를 믿고 있는 혈살이마존은 살기를 높이며 정면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 앞에 죽립을 쓰고 검을 든 한 남자가 보였다. 재빨리 머리를 굴렸으나 기억에 없는 놈이다. 즉 변변찮은 무림인이란 뜻이다.
“감히 우리 혈살이마존을 뒤에서 기습하다니!”
혈살이마존이 등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통증을 참으며 죽립인을 포위했다. 사실상 그들은 백단영이나 모용예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오로지 죽립인에게만 신경 썼다.
그에 무흔도 죽립을 고쳐 쓰며 양쪽으로 포위해오는 혈살이마존을 노려봤다.
역시 상대의 무위는 악명대로였다.
암암리에 전해지는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습으로 둘의 예기를 꺾었다는 사실이다.
저들이 온전한 몸 상태라면 둘의 합공을 받아내기란 정말 만만치 않았을 거 같다.
“흐흐, 대답이 없어?”
무흔이 전혀 반응하지 않자 송상군이 열 받은 모양이었다.
재차 도발해도 여전히 반응이 없자 송상군은 상대가 혈살이마존이란 위명에 기가 죽은 탓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난 송상군은 보란 듯 죽립인을 향해 일장을 퍼부었다.
상대를 깔보느라 전력을 다하진 않았으나 쉽게 맞받을 수 없는 위력이 내포되어 있었다.
이미 대비하고 있던 무흔은 송상군의 일장을 향해 가볍게 손을 뒤집었다.
패천마혼장! 패천마군의 절기가 펼쳐진 것이다.
콰앙!
예상외의 엄청난 위력에 송상군은 손바닥에 충격을 느끼며 뒤로 밀려났다.
놀란 표정으로 그는 상대를 다시 쳐다봤다. 죽립인은 애초의 위치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씁! 이런 자식이!”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놀란 것은 반도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단 일장의 교환만으로도 죽립인의 무공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봤다. 그렇다면 당연히 합공이다.
무흔의 양쪽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그는 양쪽으로 손을 쭉 뻗으며 다시 패천마혼장을 쏟아냈다.
퍼펑!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송상군이 공력을 증가시켜 공격한 데다 반대편에서 공격한 반도석 역시 만만찮은 내공을 실었다. 양손으로 충격이 전해지는 순간 무흔은 패천마혼장의 뒤를 이어 파천마혼비를 뿌렸다. 노림수였다.
“허억!”
패천마혼장에 이어 패천마혼비로 형성된 강기의 파편이 손바닥을 파고들자 혈살이마존은 허둥댔다. 두 번째 이어진 공격은 무슨 유형인지조차 불명확했다.
송상군과 반도석은 다급하게 상체를 젖혀 위기를 벗어난 후 가까스로 몸을 추슬렀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그들은 방금 날아온 두 번째 공격이 처음에 등을 강타했던 공격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걸 알더라도 쉽게 대적하기 힘들었던 은밀함이 내재해 있었다.
머리를 굴려 현 강호에서 이런 공격을 펼치는 고수들을 뒤졌다. 하지만 죽립을 쓰고 이런 식의 공격을 벌이는 자는 기억에 없었다.
그들이 주춤하는 사이 무흔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오늘 이들을 대상으로 그동안 익혔던 무공을 시험해볼 생각이었으니까.
공격이 무산되는 순간 무흔의 몸이 급격하게 회전하며 다시 일장을 뿌렸다.
이번에는 천단비화심공의 무리가 들어간 일장이 쏟아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장법이었다.
혈살이마존이 화들짝 놀라 방어에 급급한 순간 무흔의 손이 다시 변화를 일으켰다.
패천마혼지. 이어서 추혼천상보를 펼치면서 천강십이수가 터져 나왔다. 천강십이수는 그가 운경각 삼 층 서고에서 찾아낸 무공이다.
퍼버버벅-
무흔이 송상군을 따라붙으며 순식간에 십여 군데의 혈도를 가격했다.
송상군은 다급하게 방어했으나 급격하게 변하는 상대의 무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눈을 현혹하는 속도로 상대의 손이 마구잡이로 공격해 들어왔다.
반도석은 공격당하는 송상군을 돕기 위해 전력을 다해 죽립인을 따라붙었다.
순간 무흔의 신형이 사라지며 이번에는 반도군에게 달라붙었다.
퍼버벅-
낙일진천권. 마찬가지로 삼층 서고에서 익힌 무공으로 한때 정파를 주름잡았던 권법이 무흔의 손에서 펼쳐졌다.
무흔은 천강십이수와 낙일진천권을 혼합하여 혈살이마존을 공략했다. 두 무공이 혼합되자 그 위력이 배증했다.
“이게 대체 무슨 무공이냐?”
강호 경험이 풍부한 혈살이마존도 처음 접하는 다양한 무공에 적잖게 당황했다.
수도도, 권법도 아닌 특이한 무공임에도 위력은 완전히 압살하는 수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연신 밀렸다.
그럴수록 처음에 한 방 먹은 등의 부상이 그들의 행동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으아, 되는 일이 없군. 무림의 꽃을 앞에 놓아두고 이게 무슨 짓거리냐!”
욕심에 눈이 멀다 보니 집중력 또한 떨어졌다.
두 사람은 휘몰아치는 죽립인의 공세를 막으면서도 눈은 절로 모용예와 백단영을 힐끔 보게 됐다.
그때 무흔이 삼 층 서고에서 익혔던 다른 무공으로 갈아탔다. 다시 그의 무공이 변했다.
“이놈! 사파냐? 정파냐?”
“무슨 무공이 이렇게 다양해!”
송상군과 반도석이 합공 속에서 다급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허나 그럴수록 그들에게 죽립인의 정체는 오리무중으로 변했다.
퍼벅-
송상군이 가슴을 강하게 처맞고는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반도석 역시 어깨를 스쳐 지나간 지력에 바닥을 구르며 물러났다.
“감히 나, 혈마존을 갖고 놀다니!”
그들을 더욱 분통 터지게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전혀 대꾸조차 하지 않는 죽립인의 태도였다.
송상군과 반도석은 눈짓으로 의사를 교환했다. 이러다가 장후성이나 남궁이화까지 나타나면 완전히 망하는 관계로 어떻게든 빨리 해치우자는 뜻이었다.
“좋다!”
송상군이 양손을 서로 마주 보게 하여 내력을 불어넣자 두 손 사이에서 강기가 일렁이며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반도석도 한 손을 위로 들고 다른 손을 그 아래에 받치는 자세로 자신의 최강 무공을 사용할 준비를 완료했다.
고오오오-
무흔을 사이에 두고 혈살이마존의 기운이 사방을 뒤덮었다. 천근을 능가하는 거대한 압력이 무흔을 내리눌렀다.
이러한 상황의 변화를 무흔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스르릉-
그제야 무흔이 묵천신검을 빼 들었다.
과연 신검이었다. 상대의 강력한 압박을 신검이 느낀 듯 검신이 진동하면서 은은한 검명을 울렸다.
“애송이! 죽어라!”
혈살이마존이 사력을 다해 양방향에서 장력을 퍼부었다. 이미 다년간 연합공격에 익숙했던 만큼 그들이 형성한 장력의 그물은 무흔이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치밀하고 위력적이었다.
두 사람의 손바닥이 허공을 가르고 연이은 정력이 수십 가지의 변화를 일으키며 무흔을 압박해 들어왔다. 그들의 공격은 마치 수십 개의 손이 사방에서 공략하는 듯한 효과를 냈다.
묵천신검이 번뜩이며 장력을 정면으로 맞섰다.
무상벽라검법.
삼 층 서고에서 익혔던 명문 정파의 검법으로 잔백수라십이검과 대척점에 있는 정통 검법이었다.
콰아앙-
중후한 무상벽라검법이 펼쳐지자 사방에서 몰아치던 혈살이마존의 장력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
“헉!”
혈살이마존은 회심의 일장이 터져나가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강호에서 많은 자를 만났지만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깨지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둘의 연합공격이 깨졌으니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혈마존 송상군이 뜻하지 않은 결과에 멈칫하는 사이 무흔의 검이 검로를 바꿨다.
잔백수라십이검의 십 검. 잔백수라십이검 특유의 잔혹성을 띠면서도 중후한 압력을 뿌리는 초식에 송상군은 혼백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가 가까스로 대응하며 신형을 움직이는 사이 묵천신검이 그의 가슴팍을 난도질했다.
서걱-
상처는 깊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팍의 옷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고 그 틈으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송상군의 위기를 살마존 반도석이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그는 송상군을 공격하느라 등을 보인 죽립인을 향해 회심의 일격을 퍼부었다.
“끝이다!”
엄청난 내력을 실은 일수의 공격이 등을 가격할 때까지 죽립인의 검은 송상군에게 머물러 있었다. 명백한 상대의 실수라 여긴 반도석의 입가에 악마 같은 미소가 그려지는 순간.
번쩍!
묵천신검이 횡으로 지나가며 번개가 번쩍였다.
비천삼검의 이 식인 쾌를 기반으로 하는 극강의 초식. 더할 나위 없이 위력적이며 속도감마저 최강인 두 번째 초식이 빛살처럼 천하를 갈랐다.
“커흑!”
서걱-
반도석의 가슴 아래 부위가 깊게 쫙 갈려 나갔다.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 싶은 순간 반대로 본인이 회생 불능의 일격을 입었다. 그는 어떻게 된 일인지 복기조차 할 수 없었다.
“으으으…….”
송상군과 반도석은 모두 치명상을 입고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나마 반도석에 비해 송상군의 상처는 얕았다.
“이, 이런 무공이 있을 수 있다니.”
혈살이마존은 죽립인의 고강함에 치를 떨었다.
저런 자가 어떻게 지금까지 소문조차 나지 않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더구나 그가 사용하는 무공은 정파인지 사파인지도 불분명했다.
방금 격돌한 일 합 만으로 그들은 완전히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
‘머뭇거리다간 죽는다.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
송상군과 반도석이 새로운 전략을 교환하며 죽립인을 경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장내에 누군가가 뛰어들었다.
“모용 소저!”
“단영아!”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나타난 것이다.
두 사람은 백단영과 모용예 앞으로 다급하게 다가가서 무사함을 확인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의 검을 손에 쥔 구진광마저 등장했다.
덕분에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이를 놓칠 혈살이마존이 아니었다. 죽립인 하나만으로도 버겁던 판에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등장했으니 위험이 가중됐다.
마침 무흔도 장후성의 등장에 시선을 뺏겼다. 계속 이 자리에 있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된 것이다.
“앗! 도망쳐요!”
양이설이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이미 한발 늦었다.
무흔이 제정신을 차리고 혈살이마존을 돌아봤을 때는 흔적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정말 명줄이 긴 놈들이다.
이렇게 놓쳐버리면 추적이 쉽지 않다.
“괜찮아?”
“응.”
남궁이화가 백단영을 추스르는 가운데 한바탕 야단법석이 일었다.
혈살이마존을 놓쳤으니 무흔 역시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이유가 사라졌다. 그는 묵천신검을 회수하고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재회를 만끽하느라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혈살이마존을 죽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동안 얻었던 각종 무공을 아낌없이 실전에 투입해보았으니까.
아무리 5성의 숙련도라 해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무공과 실전에서 써먹어 본 무공은 느낌이 달랐다.
단순히 손목에 기록된 상태에서는 사실 뜬구름 잡은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몸에 체화된 느낌이었다. 언제든 바로 펼칠 준비가 된 그런 자신감이 채워졌다.
멀찍이 걸음을 옮기던 무흔은 마지막으로 백단영 쪽을 바라봤다. 그들은 무흔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무사했다는 기쁨에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백단영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그에게 미소가 그려졌다.
문득 예전 소설과 비교하여 의문이 일었다.
오늘 그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백단영과 모용예는 안전했을까?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뒤늦게 그들을 발견했다면 혈살이마존과 맞상대가 되었을까. 주인공인 장후성의 능력은 명확하지 않지만 아직 혈살이마존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장후성이 무턱대고 혈살이마존에게 덤벼들었다면 반대로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무흔은 자신이 백단영을 구했다는 기쁨보다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지 의문이 일었다. 단지 백단영이 추적대에 끼었다는 이유만으로 결과가 확연히 달라졌다.
오히려 더 위험해졌다.
이 모든 현상을 그는 풀어낼 수 없었다. 상념을 접으면서 다시 그가 걸음을 옮길 때였다.
“여보세요.”
난데없이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흔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의 뒤로 한 여인이 따라오고 있었다. 바로 양이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