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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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72화
72화. 혈살이마존 (3)
개봉사걸 녀석들이 알아서 잘 대응하고 있었다.
만족한 무흔은 추가 사항을 지시했다.
“좋아. 얼른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추적을 계속해. 그 상인들 엄청난 고수에 나쁜 놈들이니까 몸조심하고.”
무흔은 녀석의 손에 은자를 한 냥 떨어트렸다.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면 더 열심히 움직이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무흔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일 내 친구가 나타나면 확인한 모든 정보를 알려주어라.”
“친구요? 누구요?”
“몰라도 돼. 죽립을 쓰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그는 무극서생으로 움직일 생각이라 개봉사걸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려면 이런 당부가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은자를 받아 든 녀석이 신이 나서 동료를 찾아 사라졌다.
무흔은 전장에서 죽립과 묵천신검을 찾았다. 무극서생으로 변장한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야밤에 가장 빨리 이동하는 방법은?
그는 공공십팔보를 떠올렸다.
“아냐, 이건 경신법으로 쓰기에 너무 구리지.”
최근에 익힌 절정 무공 추혼천상보를 떠올렸다. 보법으로는 탁월한 위력이 검증됐다. 그런데 경신법으로는 어떨까.
“선택! 추혼천상보다!”
무흔은 신형을 날렸다.
추혼천상보를 시전하는 순간 주위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오오! 컥!”
환호성을 지르던 그는 머리에 둔중한 충격을 받고 그대로 꼬꾸라졌다. 그의 앞에 커다란 나무가 꺾여 있었다. 너무 빨라서 미처 나무를 피하지 못하고 머리를 처박은 것이다.
“으으, 이게 뭐야? 대체 적응이 안 되네.”
무흔은 아픈 곳을 쓰다듬으며 다시 허리를 폈다.
“어쨌든 빠르긴 빨라. 다시!”
무흔은 재차 추혼천상보를 시전했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관도 저편으로 사라졌다.
쿵!
잠시 후 뭔가 부서지는 요란한 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
칠흑처럼 어두운 산속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삐죽하게 솟아 있었다.
그 바위는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튀어나온 형상을 이루어 아래쪽으로는 이슬을 피할 수 있는 비교적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다.
한동안 빠르게 달리던 혈마존 송상군이 큰 바위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날카롭게 치솟은 바위와 그 아래 부드럽게 깔린 풀밭을 살피던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딱 좋은 장소야.”
그는 들쳐메고 있던 두 여인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는 동안 모용예는 정신이 든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눈만 말똥거릴 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백단영도 마찬가지였다.
두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던 송상군의 입이 쭉 벌어졌다.
“흐흐, 과연 일화답군. 그동안 봤던 여인 가운데 최상이야.”
그의 입에서 극찬이 쏟아졌다. 그럴수록 모용예와 백단영은 더욱 불안해졌다.
“감히 네놈이!”
모용예가 상대를 향해 용기를 내서 소리쳤다.
송상군은 모용예의 옆에 주저앉아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흐흐, 용기가 제법이다만 그거 다 쓸데없는 짓이다. 비록 네가 후기지수 가운데 최고일지라도 감히 혈살이마존을 상대할 수준은 아니다.”
백단영은 아득한 기분에 힘이 쭉 빠졌다.
역시 상대는 짐작대로 혈살이마존이었다. 무시무시한 사파의 고수이자 살인과 겁탈로 악명을 휘날리는…….
상대의 정체를 알게 된 모용예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녀 역시 상대를 자극하면 위험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구나 상대는 이미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 말은 계획적으로 그녀를 노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모용예를 음탕한 눈으로 훑어보던 송상군이 백단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년은 누구냐?”
“배, 백단영.”
“출신은?”
“하, 하남의 백가상단.”
“상단?”
송상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백단영의 전신을 쭉 훑어내렸다.
“그럼 몸값을 많이 받을 수 있겠군. 조금 전에 무공도 꽤 하는 것 같았는데…… 얼굴도 일화 못지않게 반반하고…….”
송상군이 혀를 날름거리며 음심을 드러냈다.
두 여인이 꼼짝 못 하고 누워있었으나 송상군은 별다른 짓을 하지 않았다.
백단영은 그가 남은 마두인 살마존 반도석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마혈을 풀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혈도가 풀리지 않았다.
한참을 무료하게 기다리던 송상군이 투덜거렸다.
“이 자식은 일봉 남궁이화까지 잡아 오려고 그러나, 왜 이리 안 와?”
“남궁 소저에게 혼나는 중일 거다.”
모용예가 분노를 터트렸다.
송상군이 그녀를 향해 음산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흐흐, 걱정은……. 오늘 무림의 꽃인 일화, 일봉에 저년까지! 포식하겠구나.”
몸이 달아오른 송상군이 주위를 오가며 기다리기를 한참, 결국 인내심이 다한 송상군이 화를 퍽퍽 냈다.
“이 자식이 길을 잃어버렸나……, 내가 금방 둘러보고 올 테니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라.”
송상군이 두 사람의 마혈을 다시 점검하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자 바람처럼 사라졌다.
둘만 남게 되자 백단영은 다급하게 말했다.
“모용 소저, 어떻게 하죠?”
“얼른 마혈을 풀어 봐요.”
“그게 풀리지가 않아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어떻게든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두 사람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야밤에 깊은 산중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
구진광은 주위를 살펴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 뜨인 것은 모용예와 백단영이 들고 있던 검뿐. 정작 두 사람은 연기처럼 흔적도 없었다.
“어디로 간 거야?”
그는 주위를 향해 소리를 질러봤으나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뿐이었다.
혼자 낙오되었다며 툴툴거리던 구진광은 두 사람의 검을 챙겼다.
생각해보니 검을 버려두고 어디를 갈 리가 없었다. 검이 이곳에 있다는 것은 두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뜻했다.
“설마 진짜 혈살이마존을 만났나?”
구진광은 혈살이마존의 무위를 떠올렸다. 소문에 따르면 그가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그는 혼자서 모용예와 백단영을 찾는 것이 위험한 일임을 깨달았다.
“진짜 혈살이마존이라면 장후성과 연합해야 해.”
그는 나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단을 내렸다.
두 여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더 소중하다. 장후성이나 남궁이화와 만나 주변을 함께 탐색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는 남궁이화를 따라 장후성이 오른쪽으로 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어차피 왼쪽 방면은 방금 그가 뒤져보았지 않았던가.
“장후성부터 찾자.”
그는 두 여인의 검을 들고 남궁이화가 사라졌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
마혈을 풀려는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고절한 방법으로 마혈을 점한 것 같지 않은데 이상하게 풀리지 않았다. 사실 이런 문제는 두 사람의 내력이 심후하지 않아서다.
결국 마혈을 풀려면 외부의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했다.
백단영과 모용예는 결국 포기하고 구원만 기다렸다. 그들에게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은 장후성과 남궁이화가 혈살이마존을 물리치고 이곳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장 소협과 남궁 소저가 마두를 이기겠죠?”
백단영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럴 거예요.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해요.”
모용예가 입술을 깨물며 대답했다. 물론 그녀의 희망 사항이었다.
그러기를 잠시, 갑자기 한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
“쉿! 조용히 하세요.”
낯선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두 사람은 눈만 말똥거렸다.
그녀들의 앞에 한 젊은 여인이 나타났다.
짙은 회색빛의 가벼운 경장을 입고 단발머리를 질끈 묶은 모습이 극도로 행동을 편하게 하려는 차림새였다. 게다가 여인은 한 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혈살이마존에게 납치됐죠?”
“마, 맞아요.”
백단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풀어드릴게요.”
백단영은 여인이 누군지 몰랐지만 마혈을 풀어준다니 반가운 마음이 일었다.
여인이 백단영의 혈도를 매만지며 마혈을 풀려고 시도했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듯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백단영은 여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쪽은 누구세요?”
“전…….”
잠시 말을 흐리던 여인이 결심한 듯 대답했다.
“전 창의문의 양이설이라 해요.”
백단영은 창의문을 어디에선가 들어보았다는 생각을 했다가 금방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창의문. 얼마 전 혈살이마존에게 멸문 당했다는 바로 그 문파였다.
“서… 설마…….”
말을 잇지 못하는 백단영에게 양이설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요, 그 창의문. 혈살이마존에게 모든 문도가 살해당했죠. 문주였던 저희 아버지는 시신마저 참혹하게 찢어져서 남지 못했고, 어머니는 겁탈당해 자결하셨고…….”
양이설이 울컥하며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저도…….”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백단영은 그녀에게 닥친 불행에 위로조차 할 수 없었다.
“저도 죽으려고 했어요. 악적에게 몸을 빼앗기고 살아갈 희망이 없었죠. 하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던 그 날을 떠올리면 이대로는 절대 죽을 수 없었어요. 그 흉악한 자들을 제 손으로 처단하기 전에는…….”
양이설은 그날 이후 혈살이마존을 추적해서 이곳 하남까지 쫓아왔다.
그녀의 무공이 혈살이마존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탓에 정면으로 대결해서는 원수를 갚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기회를 잡으리란 희망을 안고 오늘도 그들을 추적하던 중이었다.
타인에게 밝히기 쉽지 않은 과거를 들은 백단영이 양이설을 위로했다.
“미안해요.”
“아니, 미안할 거 없어요. 전 저와 같은 불행한 사람이 또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라니까요.”
혈마존에게 백단영과 모용예가 붙잡히자 양이설은 기회만을 엿봤다. 그러다 마침 혈마존이 자리를 비우자 그들을 구하러 나타난 것이다.
양이설의 노력에 간신히 마혈이 풀렸다.
백단영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모용예에게 뛰어가서 마혈을 풀어주었다.
모두 정상으로 돌아가자 양이설이 재촉했다.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야 해요. 언제 그 자식이 돌아올지 몰라요.”
마혈이 풀렸다고 하나 백단영과 모용예는 금방 무공을 예전처럼 쓸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이 양이설을 따라 재빨리 이동하려 할 때였다.
“쥐새끼 같은 년들!”
숲속에서 송상군이 걸어 나왔다.
백단영을 비롯한 세 여인은 두려움에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송상군의 시선이 백단영부터 시작하여 양이설에 멈추었다.
“응? 네년은 그 창의문주 딸이로구나. 대단하군. 설마 뜨거웠던 운우지정을 잊지 못하고 따라온 것은 아니겠지?”
“더러운 놈!”
양이설이 이를 갈고 검을 세웠다.
하지만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혈살이마존의 무서운 무공을 잘 아는 까닭이다.
백단영과 모용예가 양이설의 좌우로 포진했다.
비록 검은 없지만 가진 무공으로 전력을 다하면 혈마존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은 것이다. 조금 전 모용예는 기습을 당해 정신을 잃었고, 백단영은 정신없는 와중에 제압을 당했으니 제대로 정신만 차린다면…….
그녀들의 희망은 금방 사라졌다.
음흉한 미소를 뿌리는 송산군의 뒤로 중년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살마존 반도석이었다. 송상군 하나로도 어려울 판에 둘로 변하자 그녀들은 맥이 빠졌다. 이젠 도망칠 가능성이 사라졌다.
“흐흐, 무림의 꽃은 이곳에 다 모였군.”
반도석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껄껄 웃었다.
송상군이 타박했다.
“네 녀석이 빨리 오지 않아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앞에 두고 참으려니 고역이 따로 없더군.”
“크크, 나도 빨리 오고 싶었지. 여차하면 남궁이화 그년을 납치하려 했는데, 장후성 그 자식이 나타나는 바람에 따돌리느라…….”
대충 주고받는 대화로 보아 반도석이 지금까지 남궁이화를 따돌리다가 온 모양이었다.
혈살이마존이 나란히 그녀들을 노려보자 백단영 등은 절망에 빠졌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어요. 우리 힘을 합쳐 저들을 무찔러요.”
백단영이 주먹을 꾹 쥐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혈마존이 빈정대며 응수했다.
“큭큭, 죽인다고 말한 적 없다. 단지 재미만 좀 볼 생각인데…….”
“더러운!”
양이설이 검을 들어 그들을 겨눴다.
순간 혈살이마존의 신형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사방에서 날카로운 공세가 밀려왔다. 백단영과 모용예도 몸을 움직여 저들의 공세에 대응했다.
백단영은 상대방이 빠른 보법을 사용해서 그녀들을 놀리듯 다루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마땅하게 저들을 응징할 방법이 없었다.
순간 그녀는 뒤쪽에서 사혈을 노리고 몰려오는 기운을 감지했다.
“헉!”
대경한 그녀는 재빨리 몸을 틀며 상대의 공격을 확인했다. 언제 접근했는지 바로 코앞에 비웃음을 짓은 송상군의 얼굴이 보였다. 동시에 그녀의 옆구리로 파고드는 상대의 일수가 느껴졌다.
확연한 실력 차이에 백단영은 절망했다.
모용예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앞에는 반도석이 그녀를 제압하려고 어른거리고 있었다.
두 여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체념하려는 순간.
“컥!”
송상군과 반도석이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휘청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