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0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09화
109화. 마교의 기습 (1)
무흔은 커다란 고목 위에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죽립이 매달려 있고 얼굴은 사십 대 장한에 키는 평소보다 한 뼘 늘어났다. 무극서생으로 변신한 상태다.
서옹의 서찰을 가지고 온 그는 이들의 작전 수행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마침 용봉대가 임무를 완수하고 마교의 기습이 이어지면서 전투를 관망할 수 있었다.
지금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백단영의 안전 유무였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백단영의 무공이 매우 강해졌기에 큰 걱정은 아니었으나, 마교인이 넷이나 된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기 어려웠다.
만일 백단영이 위기에 처하면 언제든 뛰쳐나갈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가 판단한 마교인의 무공 수준은 대략 서열 오십 위권. 극강이라고 볼 수 없으나 용봉대원이 상대할 수준은 아니었다.
예상대로 장후성을 비롯한 모두는 대단히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백단영도 마찬가지. 사실 백단영의 무공 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았으나, 아직 완전히 몸에 체화되지 않은 탓이 컸다.
“쉽지 않겠어.”
무흔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이 개입할 시기를 엿보았다.
그의 참전은 어차피 기습인 만큼 최대한 그 이점을 거머쥘 생각이었다. 적군 넷 가운데 최소한 하나는 기습으로 처리해야 수지가 맞다. 어차피 무극서생의 모습은 예전에 백단영의 동생을 구할 때 드러낸 적이 있었고 특히 남궁이화 앞에는 자주 나타났었기에 그리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전황이 급하게 흘렀다. 이제는 그나마 여유롭던 장후성과 백단영마저 헉헉대는 상황이 발생했다. 남궁이화와 다른 대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상 역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무흔은 나뭇가지를 힘껏 박차고 허공을 날아올랐다.
묵천신검이 하늘을 가르며 강력한 검기가 아래를 내리찍었다. 비천삼검이 아닌 무상벽라검법이었음에도 그 위력은 과거와 천양지차였다. 대환단으로 무흔의 내력이 급증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콰직-
어마어마한 검격이 마교인의 등에 작렬했다. 남궁이화와 싸우던 녀석은 돌아볼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일검을 맞았다.
“컥!”
비명조차 터트릴 여지가 없었다.
상대의 오른쪽 어깨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신체가 두 동강 나면서 핏물이 터져나갔다.
눈앞에서 혈우와 살점이 쏟아지는 참상에 남궁이화가 눈을 번쩍 떴다.
“무, 무극서생?”
무흔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 명을 해치운 것을 확인한 그는 재빨리 신형을 틀어 옆에 있는 다른 마교인을 공격했다.
그자는 백단영과 막상막하의 결전을 벌이던 놈이었다. 녀석은 백단영과 치열한 전투 과정에 난데없이 살기가 가슴을 쳐오자 혼비백산했다. 그는 순간적인 판단을 통해 백단영의 검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일격을 도저히 맞받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선택은 하나.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 행동은 무흔의 계산 하에 있었다.
서걱-
가슴을 공격하던 일검이 어느새 옆구리로 방향을 바꾸었다. 미처 막을 틈도 없이 묵천신검이 돼지고기를 베듯 옆구리를 깊숙하게 찌르고 지나갔다.
“크으윽!”
옆구리에 큰 상처를 입은 녀석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음 순간 백단영의 연검이 허공을 갈랐다.
푹!
연검이 녀석의 심장을 찌른 것은 순식간이었다.
드러난 빈틈을 놓치지 않고 백단영이 끝장을 내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둘을 해치운 무흔은 더는 공격하지 않고 장내를 훑었다.
넷에서 둘로 줄어들자 마교인의 공격이 눈에 띄게 흔들렸다. 두 녀석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장후성의 공격이 빛을 발했고, 동시에 다른 용봉대원들의 연합공격 역시 더욱 매서워졌다.
이제는 백단영과 남궁이화의 손이 비었으니 절대 질 수 없는 상황. 무흔은 싸늘한 미소를 남기고 추혼천상보를 펼쳐 신형을 감추었다.
무흔의 신형은 다시 처음에 대기하던 고목 위쪽에 나타났다. 그는 나는 새처럼 가볍게 고목 나위 위를 몇 차례 건너 먼 곳으로 이동했다.
꽤 떨어진 지점에 도착한 그는 죽립을 가지에 걸고 입고 있던 묵빛 옷을 벗었다. 그 내부에서 평소에 입던 밝은 청의가 드러났다.
그의 몸 역시 다시 원래의 무흔으로 되돌아왔다.
그가 몸을 흔들며 나무 아래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된 건가?”
그는 자신의 행색을 쓱 훑어보고 이상 없음을 확인한 다음 전장으로 뛰어갔다.
전장에는 백단영을 비롯하여 여러 동료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치열했던 혈전은 끝난 지 오래, 모두 바닥에 주저앉은 채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장내를 확인한 무흔은 조금 전과 다른 광경을 목격했다.
아미파의 후연이 한쪽에 누워 백단영으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크게 다친 팽수아와 구진광 역시 옆에 누워 부상이 심각함을 드러냈다. 후연은 언제 다친 것일까.
물론 무흔의 눈에 구진광의 상처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였다.
옆구리에 약간의 자상을 입은 정도로 당장 움직여도 전혀 문제가 없는 상황이다. 팽수아와 확연하게 비교되는 상처는 무흔의 눈에 의심을 불러왔다.
‘저 자식은 운이 좋은 건가? 이상하군.’
무흔은 용봉대원에게 꾸벅 인사했다.
“어? 무흔? 언제 왔어?”
후연을 내버려 두고 백단영이 뛰어왔다.
“서옹 어르신의 심부름 왔습니다.”
무흔은 품에서 서옹의 서찰을 꺼냈다. 용봉대원이 모여들자 무흔은 서찰을 장후성에게 넘겼다.
“장 소협께 전해드리라고 하더군요.”
“아, 고맙습니다.”
장후성이 감사를 표하고 서찰을 받아 읽었다. 모두의 관심이 서찰에 집중됐다.
서찰을 읽은 장후성이 한숨을 내쉬었다.
“서옹 어르신께서 마교의 급습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으므로 주의하라는 서신을 보냈어. 조금만 빨리 들었어도 오늘처럼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았을 건데.”
서옹의 정보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금만 서찰이 빨랐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정도의 피해만으로 마교의 절정고수 넷을 물리쳤다는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무극서생이 도움을 크게 주었지만.
무흔은 백단영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그런데 후연은 어쩌다 다쳤어요?”
백단영이 마교와의 전투를 상세히 설명했다. 무극서생 이야기가 나오자 무흔은 절로 안면이 붉어졌다. 어둠 속이 아니었다면 꽤 어색할 뻔했다.
무극서생에 의해 두 사람이 죽자 남은 마교인은 도주를 감행했다. 장후성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상대의 퇴로를 차단했다. 끝내 그는 마교인의 목숨을 거두었다. 반면 대원들이 연합해서 공격했던 마지막 마교인의 운명은 달랐다. 그 마교인은 탈출하려고 엄청난 위력의 도기를 뿜어냈다.
대원들이 막강한 도기의 위력에 주춤하는 사이 녀석의 강력한 공격이 재차 후연에게 엄습했다. 후연이 쓰러지고 순간적으로 포위망이 무너지는 사이 녀석이 도망쳤다.
“그럼 한 사람 놓쳤네요?”
“응, 그렇게 됐어.”
설명을 마친 백단영이 다시 후연을 간호하러 갔다.
마교인 하나가 도망쳤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항상 완벽하게 상대를 제압하기 어려운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무흔은 자신과 맞닥트렸던 마교인을 살려 보낸 적이 없었다. 덕분에 무극서생이란 인물은 비밀로 유지될 수 있었다.
오늘 도망친 녀석은 용봉대 외에 무극서생이란 강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교에 알릴 것이다. 과연 그들이 과거에 죽은 마교인들이 무극서생과 연관되어 있음을 눈치챌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무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때, 지금까지 누워있던 구진광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고통을 참는 듯 신음을 흘리면서 일행에게 다가왔다.
“엄청 아프네.”
그는 붕대를 칭칭 감은 가슴을 어루만지며 장후성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찰을 보자는 뜻이다.
무흔은 구진광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는 느낌 속에 무흔은 조용히 물러났다. 어차피 그는 용봉대도 아니었기에 대원들과 가까이 지내기 불편하다.
잠시 후 제갈수가 오늘은 이 자리에서 야영한다는 계획을 말했다. 다수의 부상자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
무흔은 적당한 바위에 등을 기댔다. 오늘은 이렇게 야영해야 할 모양이다.
서찰을 전해주는 임무도 완수했고 백단영도 무사히 구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더구나 그 누구도 무극서생과 그를 연관 짓지 못하는 것을 보니 흡족한 결과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저기에 용봉대원이 흩어져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습기를 제거하기 위한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일부는 경계를 서고 있었다.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을 때 바위 반대편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공이 증가하다 보니 이런 점이 약간 불편하다. 굳이 듣고 싶지 않아도 감각이 예민해져서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 것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단영과 남궁이화였다.
“단영아, 확실히 네 무공이 엄청나게 향상됐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으응, 운이 좋았어. 얼마 전에 천상신모의 비전절기를 잇게 됐거든.”
“천상신모?”
남궁이화의 목소리가 잠시 끊어지더니 탄성을 터트렸다.
“백 년 전 무림을 휘어잡았다던? 당시 불사신승과 함께 정파 무림을 이끄는 주역이었는데…….”
남궁이화의 목소리에는 부러움이 섞여 있었다.
무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천상신모를 모를 수 없다.
이어서 남궁이화가 어떻게 된 거냐고 채근하는 것과 백단영이 적당히 둘러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만혈대 지하미로에 갇혔다가 우연히 인연이 닿았다는 내용이었고, 불사신승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무흔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다.
“그동안 사문이 없어 절학을 익히지 못해 고생하더니 잘됐네.”
“그런 것 같아. 아직 얼떨떨하지만.”
“이젠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거야. 다음에 나랑 비무해 보자.”
그 와중에도 비무를 해서 무공을 증진할 생각을 하는 남궁이화도 대단하다 싶었다.
별 내용이 없는 것 같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그에게 다시 남궁이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좋겠다. 난 이제 무공이 한계에 닿은 것 같아서 걱정이야.”
남궁세가의 자식이 한계라니? 절로 관심이 쏠리는 내용이었다.
“알다시피 남궁세가의 최강 무공은 가주에게만 전수되잖아? 난 차기 가주가 아니라서 제왕검형 같은 진정한 절학을 익힐 수 없어. 오빠에게만 전수되고 있거든. 그렇다 보니 요즘엔 그 한계를 느끼게 됐어. 더 강한 무공, 더 심오한 무공을 어떻게든 익히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얼마 전까지 백단영이 고민하던 부분이 그대로 남궁이화에게 전염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남궁세가의 비전을 이은 그녀가 함부로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히는 것도 체면이 서지 않기에 남궁이화는 해결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흔이 이야기하기를 어떤 무공이든 숙련도가 높아지면 위력이 달라지는 것도 있다더라.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그래서 이미 익힌 것을 열심히 연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더라.”
“나도 알아. 하지만 그래도 제왕검형 같은 무공은 다를 것이란 생각이 들어. 나도 너처럼 기연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풀이 죽은 듯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무흔은 예전에 비무 대회 전날 만났던 남궁이화를 떠올렸다.
무공에 유달리 욕심이 많았던 그녀다. 그때도 남궁세가 최강의 절기인 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형을 익힐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지 않았던가.
“예전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난 아직 마교를 상대하려면 많이 부족해. 내 목숨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어.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어떻게든 더 강한 무공을 익혀야 해. 무공을 가르쳐 줄 사람이 어디 없을까? 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기꺼이 배울 생각이 있는데…….”
남궁이화가 결심한 듯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열정에 고무된 무흔은 잠시 그녀에게 알려줄 무공을 머릿속에서 뒤져보았으나 적당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백단영의 조언이 들려왔다.
“내가 예전에 무흔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무흔이 운경각에서 비급을 정리하다 보니 무공 지식이 매우 해박해. 무흔에게 한번 조언을 구해봐.”
“무흔? 흐음……. 무흔은 네 머슴이잖아? 머슴에게 무슨…….”
남궁이화의 허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흔은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이 시대가 엄격한 신분 사회는 아니지만 엄연히 백단영이나 남궁이화와 무흔 사이엔 보이지 않는 신분 격차가 존재한다. 알게 모르게 남궁이화의 의식에는 머슴이라고 무시하는 정서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