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9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1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99화
99화. 천상신모 (2)
「마교와의 전투가 발발하고 나는 최선봉에서 마교도를 처단했다. 당연히 마교에게 나는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온갖 음모와 흉계를 동원해서 나를 노렸으나 나는 굴하지 않았다. 내가 익히고 발전시킨 천상비연검법은 마교의 무공과는 상극이었고 나를 지켜주었다.
무흔은 이 대목에서 천상신모에 의해 천상비연검법이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천상문이 왜 지금은 이름을 떨치지 못하는지도 짐작됐다. 사실상 천상신모에 의해서 완성된 천상비연검법은 천상신모가 이곳에서 죽으면서 무공 자체가 끊어져 버린 것이다.」
「대벽산의 정마대전은 정파인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마교의 중원 침범 기지였던 이곳에서 마교를 무너트리는 것은 중원에서 더는 마교가 준동하지 못하도록 마지막 인장을 찍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마교 역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사실상 우리는 승리를 눈앞에 뒀다.」
백 년 전 만혈대에서 벌어진 비사가 적혀 있었다.
당시 참전했던 대부분이 사망함으로써 이곳에서 벌어진 혈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백단영은 눈동자를 빛내며 양피지를 읽어 내려갔다. 무흔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사실상 전투는 무림맹의 승리로 끝났다. 마교는 지하미로에 설치된 기관과 진식을 이용해서 최후의 발악을 했으나 무림맹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마교 교주인 파천마종이 마교 역사상 손꼽히는 고수라 하나 무림맹주인 소림의 불사신승과 나 천상신모를 능가할 수 없었다. 마침내 우리는 파천마종의 목숨을 이곳 지하미로에서 끝장냈다. 이것으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정마대전이 끝날 것으로 알았다. 아니, 실제로 끝이 나긴 했다.」
「파국을 맞이한 파천마종은 간악한 수를 썼다. 그는 혈사에 참여했던 모든 무림인을 이곳 지하미로에 묻어버리려는 음모를 꾸몄다. 순식간에 기관이 닫히고 지하미로는 말 그대로 생매장당한 무덤이 됐다. 그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우리의 무공으로는 이 지하미로를 막은 기관을 뚫을 수 없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이곳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고강한 무공도 전혀 쓸모가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살아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 역시 며칠을 더 버티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여한이 없다. 다만 내가 발전시킨 무공, 천상비연검법이 끊어지는 것만이 안타까울 뿐이다. 언제 이곳이 발굴되어 이 비급이 알려질지 모르지만, 연자여! 천상비연검법을 이어주기 바란다. 천상비연검법은 그대를 강호 최강고수로 인도할 것이다. 의사가 있으면 나에게 구배지례를 올리고 사제의 연을 이어가기 바란다.」
무흔은 이곳 지하미로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당시의 무림 고수를 떠올렸다.
백 년 전 정사파의 최강고수들은 이곳에서 결국 굶어 죽었다. 당대를 호령한 영웅의 죽음치고는 실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백단영은 양피지를 읽고 한동안 멍하니 비급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흔이 그녀의 옆구리를 툭 쳤다.
“뭐해요? 얼른 구배지례를 올리지 않고?”
“내가 이래도 되나 생각 중이야.”
백단영은 자신에게 떨어진 기연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무림 문파 소속이 아니다 보니 그동안 제대로 된 무공이 없어서 항상 멸시받지 않았던가.
비록 최근에 무흔이 제공한 무공으로 그나마 실력이 향상됐지만 최강으로 올라서기에 부족한 점이 많았다.
천상신모의 천상비연검법이라면 부족함이 전혀 없을 것이다. 최근까지 연검 위주로 익혔기에 자연스럽게 천상신모의 무공과 이어지는 측면도 있었다.
무흔은 소설 속의 내용을 떠올렸다.
실제로 예전 소설 천향무후에서 백단영은 천상비연검법을 익힌 후부터 용봉대에서 뿐만 아니라 무림맹 전체에서 최강으로 군림했다. 물론 그러다가 마지막에 사마극에 의해 목숨을 잃긴 했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잖아…….”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챙겨야죠.”
무흔이 그녀를 떠밀었다.
마지못해 천상신모의 백골 앞에 선 백단영은 한참 동안 백골을 내려다보며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윽고 결심했음인가.
백단영은 스승을 향한 구배지례를 올렸다. 절을 마친 후 그녀는 사제의 도리를 맹세했다.
이것으로 그녀는 천상신모의 제자가 되었다. 무림에서 새로운 절대 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무흔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문득 이곳에서의 시간이 궁금해진 무흔은 소매를 걷어 시간을 확인했다. 현 세상으로 돌아가기까지 불과 오 분이 남아있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돌아가더라도 다음에 접속하면 다시 이 시점에서 시작하니까 걱정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그녀를 밀폐된 동굴 속에 내버려 두고 가려니 걱정이 앞섰다.
생각해보니 자칫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곳에서 죽으면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GOD 작가가 경고했었던가. 백 년 전 천상신모처럼 이곳에서 굶어 죽는 것은 아닐까.
아, 불길한 상상은 하지 말자. 무흔은 고개를 저으며 자신의 품속을 확인했다. 말린 육포를 비롯한 먹을 것이 잡혔다. 그와 백단영 둘이라면 며칠 간신히 버틸 수 있을 양이다.
그들의 앞에 앞으로 굶주림과 싸우는 처절한 시간이 다가왔다.
***
시간이 되었을 때 무흔은 박무훈이란 현실로 돌아왔다.
무려 100시간 동안 무림에 있었지만 이곳의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침대에서 잠들기 전 휴대폰 앱에서 초록색 불이 들어왔을 때 접속했고 다시 돌아왔다. 무림에 가 있는 동안 현실의 변화는 없었다.
차이점이라면…….
“우웩!”
박무훈은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가서 입안을 게워냈다.
동굴 안에서 온갖 벌레와 독충을 접하다 보니 지금도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거기에다 하얀 백골은 얼마나 많이 보았던지.
“으으, 거긴 살 곳이 아니야.”
박무훈은 끔찍했던 장면을 되새기며 고개를 저었다.
자기 전에 다시 목욕이라도 하고 자야 할 듯싶었다. 게다가 갑자기 배가 고팠다. 동굴 속에서 못 먹어서 그런가.
“분명히 저녁을 잘 먹었는데…….”
최근 들어 남들은 이해 못 하는 버릇이 생기긴 했다.
나흘에 한 번씩 무림에 접속하다 보니 그날만은 모든 것을 그만두고 일찍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도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물론 이곳에서 저녁을 잘 먹는다고 하여 무림에서의 무흔이 배가 부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심리적인 위안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박무훈은 앱을 실행해서 치킨을 주문했다. 덤으로 맥주는 말고, 콜라 대형 사이즈까지.
치킨이 올 때까지 그는 침대에 앉아 고민을 시작했다.
막힌 동굴에서 살아나올 방법은 무엇일까. 그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기한은 다음 접속이 시작될 나흘 이내다.
리메이크되기 전의 예전 천향무후를 다시 살펴보고 싶었으나 방법이 없었다. 생각할수록 막막했다.
견디다 못한 그는 GOD 작가에게 톡을 걸었다.
- 질문해도 되나요?
- GOD 작가 : 무슨 일입니까? 요즘 열심히 해주시는 덕분에 실시간 랭킹에서 매우 선방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게 모두 자신이 열심히 무림에서 고생한 덕분이라고 박무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GOD 작가와 연결되었으니 물어봐야 한다.
- 거기에서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 GOD 작가 : 죽으면 다시 게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 그럼 리메이크되던 소설 자체가 없어진다는 말인가요? 그게 대체 뭡니까?
- GOD 작가 : 원래 죽음이란 소멸이라는 것과 통하는 법이죠.
휴대폰의 자판을 누르던 박무훈의 손가락이 정지했다. GOD 작가의 말이 어째 섬뜩하게 들려왔다. 오늘따라 시체를 많이 봤던 영향인가.
박무훈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물었다.
- 만일 초록불이 들어와도 제가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 GOD 작가 : 예전에 한 번 설명해 드렸을 텐데요. 연재 중단이 되는 거죠. 하지만 무림 속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접속하지 않은 무흔은 최소한의 역할만 행하면서 서서히 죽어갈 겁니다. 당연히 천향무후 백단영도 살아남지 못하겠지요. 아니, 원래보다 더 끔찍하게 죽어갈 겁니다.
어째 완전히 협박처럼 느껴졌다.
그가 난감한 상태에 고개를 젓고 있을 때 톡이 날아왔다.
- GOD 작가 : 아직 포기할 상황은 아닙니다. 열심히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주인공을 죽이고 싶은 작가는 없으니까요.
- 당장 먹고 마실 게 없잖습니까? 기껏 며칠 버틸 수 있을까요?
- GOD 작가 : 먹을 것은 많아요. 제가 설명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뭔가 아는 눈치다.
문득 박무훈은 동굴 내부를 기어 다니던 벌레를 떠올렸다.
“설마?”
박무훈은 침대 위로 폰을 던지고 말았다.
나흘 뒤 시간이 되었을 때 그는 무림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가기 전에 마음껏 먹고 배를 채웠다. 물론 이곳 세상에서 먹은 것은 무림 세상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
동굴 속에서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무흔은 백단영과 꼭 붙어 있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아사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만 없다면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없을 것이다.
부싯돌로 밝힌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무흔이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백단영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그의 적극적인 권고로 그녀는 천상신모의 천상비연검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천상비연검법에는 최상급의 심법인 천상심공과 검법이 실려 있었다.
천상심공은 그 뿌리가 불가여서 그녀가 익혔던 무애잡아함경과 연결됐다. 또 이미 백변연환검법과 백상검법으로 검법의 기초가 다져진 그녀였기에 새로운 상승검법에도 쉽게 접근 가능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그녀는 검법에서 성취를 보였다.
과연 애초의 설정답게 그녀는 무재가 대단했다.
백단영의 검법 수련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점차 배가 고파졌다.
“배고프지 않아요?”
“응?”
무공수련에 매진하다가 그제야 현실을 인지한 백단영이 검을 놓고 그에게 다가왔다.
“아, 배고픈 것도 잊었어.”
어차피 먹을 것도 없으니 차라리 배고픔을 기억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무흔은 품에서 마른 육포를 꺼냈다.
“제가 가진 게 조금 있어요. 이거라도 먹죠. 먹어야 사니까.”
무흔은 육포 일부를 찢어 백단영에게 주었다. 그러자 육포를 받아든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나도 있는데…….”
백단영이 한쪽 구석으로 가더니 행낭 속에서 물주머니를 꺼냈다.
“어? 행낭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거 없이 이런 곳에 갇히면 죽어. 꼭 가지고 다녀야 해.”
이곳에 함께 오지 않았기에 그녀가 행낭을 갖고 있었는지 기억이 없었다. 사마극에게 쫓기면서도 행낭을 챙겼던가?
무흔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어쨌든 물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그녀가 물을 가지고 있었다. 없는 것보다 낫다. 물론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리 먹을 것을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금방 한계에 도달하겠지만.
두 사람은 육포를 씹고 난 후 물을 조금씩 마셨다. 먹을 것이든 마실 것이든 일단 아껴야 한다.
물주머니를 집어넣은 백단영이 행낭에서 복숭아 두 개를 꺼냈다. 마른 육포와는 비교 불가한 진수성찬이다. 입이 벌어진 무흔이 고마움을 표하고 복숭아를 베어 물었다.
“검법은 익힐 만한가요?”
“그럭저럭. 아직 위력은 몰라. 일정 수준에 올라 봐야 알 것 같아.”
“마침 이곳은 아무도 방해하지 않으니까 열심히 하세요.”
“너만 방해하지 않으면 돼.”
“에이, 제가 언제요. 하하.”
무흔은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마 독충이 침범하지 않는 바위의 면적이 그리 넓지 않아서 항상 붙어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서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물론 두 사람이 친한 사이이고 주종관계이다 보니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남녀 사이이다 보니 껄끄러운 점이 없을 수가 없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열심히 수련하세요. 천상비연검법을 숙달해서 천상신모와 같은 수준이 되면 아가씨도 역사상 최강 고수로 등극할 겁니다.”
“어휴, 내가 어떻게 거기까지…….”
백단영이 자신 없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무흔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최강고수로 성장하는 그녀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며칠 동안 같은 나날이 반복됐다.
백단영은 열심히 수련했고 무흔은 그녀와 함께 가지고 있던 육포를 나누어 먹었다. 다행히 백단영의 행낭에서는 먹을 것과 마실 물이 계속 나왔다. 가끔 무흔은 그녀의 행낭 내부가 궁금했으나 그뿐이었다. 어쨌든 GOD 작가가 장담한 대로 굶어 죽을 일은 당분간 없어 보였다.
100시간이 지나 다시 현실로 갔다가 돌아온 후에도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점차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