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9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97화
97화. 만혈대 (4)
지하미로를 질주하던 무흔은 곧 새로운 격전 현장을 만났다.
마교인 둘과 용봉대 및 구파 인원 넷의 혈투. 사실상 이들 정파인 넷은 최정예고수인 마교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무흔이 도울 틈도 없이 정파인 둘이 마교인의 검에 썰려 나가면서 혈투는 바로 한쪽으로 기울었다.
마교인 둘은 희희낙락하며 남은 정파인 둘을 몰아붙였다.
무흔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쏜살같이 동굴 내부로 돌진하여 동굴 벽을 발로 힘차게 굴렀다. 비조처럼 날아 격전의 공간에 접근한 그는 바로 비천삼검의 일식을 뿌렸다.
콰앙-
그의 기습을 눈치챈 마교인이 다급하게 검격을 파훼하고자 검을 날렸으나 사실상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빗살처럼 날아간 비천삼검의 일검이 마교인의 검막을 갈기갈기 찢으면서 가공할 검기를 뿌렸다. 가히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엄청난 공격이었다.
“크윽!”
가슴에서 피가 솟구친 마교인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사실상 이미 저항이 어려운 상태. 그 와중에 다른 마교인은 남은 두 정파인의 목을 베고 의기양양하게 몸을 돌렸다.
“어?”
마교인은 미처 동료가 쓰러진 사실을 몰랐던 듯 황당한 표정으로 동료와 무흔을 번갈아 쳐다봤다.
당연히 무흔은 상대방이 전황을 파악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번개처럼 앞으로 몸을 튕겨 나갔다.
번쩍!
묵천신검이 허공을 가르며 강력한 일격이 마교인에게 퍼부어졌다. 마교인은 혼비백산하여 그의 일격을 검으로 맞받아쳤다.
꽈꽝!
폭음과 함께 무흔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미처 마교인의 시선이 그를 따라 위로 올라오기도 전에 무흔은 아래쪽으로 검기를 뿌렸다.
서걱-
묵천신검이 녀석의 어깨를 관통했다.
“크윽!”
전광석화 같은 공격에 움찔하는 녀석을 무흔은 재차 공격했다.
잔백수라십이검법이 펼쳐지자 마교인의 가슴이 완전히 거덜 났다. 마치 푸줏간에 널린 고기처럼 핏물이 번지면서 갈기갈기 찢어진 살점이 허공으로 비산했다.
“헉헉!”
무흔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잠시 내력을 안정시켰다.
상황이 상황이라 속전속결로 상대하다 보니 내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았다. 어딘가에 틀어박혀 잠시라도 운기조식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무흔은 장내 상황을 다시 확인했다.
마교인 둘의 목숨은 끊어졌고 무림맹 사람 넷 역시 이미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그들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하지만 이럴 때가 아니다. 얼른 백단영을 찾아야 했다.
막 떠나려 하는 순간 그는 쓰러진 용봉대원이 손에 쥔 비도를 발견했다. 제갈수가 장보도를 해석한 다음 지하미로의 내부를 그려놓은 사본이다.
안타깝게도 비도는 절반이 찢겨 나가고 물에 번져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지하미로를 돌아다녔던 그는 한눈에 비도의 효용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비도에서 지하미로 구조 일부와 지금 현재의 위치를 확인했다.
순간 머릿속에서 묘한 연상이 떠올랐다.
만변귀공. 이제 5성이 아닌 7성에 이른 만변귀공의 한 내용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만변귀공에는 소매치기나 도둑질 같은 잡기가 수록되어 있었고 그 뒤쪽에는 도둑질에 필요한 기본적인 진법 지식과 기관학도 수록되어 있었다.
그가 만변귀공을 떠올리자 비도가 새롭게 해석됐다.
동시에 그가 이미 알고 있는 현대의 각종 건축 지식이 함께 융합됐다.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어 방금 이곳에서 생사를 걸고 체험한 기관학이 선명하게 머리에 새겨졌다.
“아! 이런 미로였군.”
어떤 사물이든 알고 보면 달리 보인다. 기관학의 기본 지식이 채워지자 이곳 동굴의 벽과 천정이 달라 보였다.
아직 발동되지 않고 숨어 있는 수많은 기관을 본 무흔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무흔은 비도를 꼼꼼하게 살피며 그 내용을 머릿속에 입력했다.
지하미로의 구조로 보아 사마극이 노리는 영역은 대략 세 군데로 압축됐다. 이곳에서의 거리도 멀지 않았다. 당장 백단영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사마극의 위치를 추정하여 살피는 것도 좋은 작전이다.
무흔은 어둠 속으로 뻗은 지하미로에 시선을 모으면서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좋아, 가자!”
그의 신형이 빗살처럼 앞으로 쭉 뻗어 나갔다.
추혼천상보를 사용해서 앞으로 질주하던 무흔이 곧바로 다시 돌아왔다.
“이게 아니고…….”
무흔은 다시 머릿속에서 지하 미로의 지도를 떠올렸다.
“백단영이 있으리라 추정되는 곳까지 단숨에 가는 방법이 있었어.”
기관이 곳곳에 얽혀 있는 복잡한 미로이다 보니 당연히 중간에서 가로질러 가는 방법이 있었다.
한쪽의 벽을 세밀히 살피던 무흔은 금방 주변과 미묘하게 다른 돌조각을 찾아냈다.
돌조각을 누르자 벽면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여기에 지름길이 숨겨져 있지.”
무흔은 주저 없이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헉!”
가지를 친 다른 동굴로 뛰어든 무흔은 몇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기겁하며 몸을 움츠렸다. 동굴 벽면과 바닥에 온갖 종류의 독충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으으으…….”
갑자기 의욕이 팍 꺾이며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으나, 그는 이내 한숨을 쉬며 힘을 냈다. 사실 독충을 겁낼 필요는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만독불침의 몸을 만들었던 것이니까.
무흔은 다시 앞으로 걸음을 내밀었다.
찌지직-
발에 밟힌 독충이 터지는 소리가 신경을 거슬렀다. 그는 시선을 멀리 고정하고 전진을 시작했다.
***
백단영 일행은 동굴 내부로 깊이 들어갔다.
사마극 일행의 가공할 무위를 본 그들은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마극에게 잡히는 순간 목숨을 잃을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들이 취할 방법은 멀리 달아나는 것뿐이었다. 선두는 구진광이었고, 백단영은 가장 마지막으로 따라갔다.
“이쪽으로!”
분기 지점에 이른 일행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모두 갈팡질팡했다.
백단영은 정신을 못 차리고 헤매는 동료를 인도했다. 원래대로라면 비도를 지닌 구진광이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구진광은 마교인과 한차례 손속을 섞은 후 상당한 내상을 입은 듯 고통을 호소했다.
더 큰 문제는 동굴 내부로 깊이 들어갈수록 백골로 보이는 시체가 늘어나고, 온갖 벌레와 뱀이 많이 눈에 띈다는 사실이었다.
급히 움직이다 자신도 모르게 뱀을 밟은 백단영은 기절할 듯 놀랐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숨을 돌리는 그들 모두는 불안에 휩싸였다.
“언제까지 도망쳐야 하지?”
유연향이 참지 못하고 의견을 구했다.
당연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점점 주변 환경이 나빠지자 참다못한 유연향이 불만을 터트렸다.
“벌레들과 섞이느니 차라리 마교랑 싸우는 게 더 낫겠어.”
백단영 역시 그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동료들을 독려했다.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쳐야 해.”
백단영이 다시 출발하려 하자 구진광이 비도를 내밀었다.
그녀는 재빨리 비도를 받아 그림을 확인했다. 복잡하게 적힌 기관진식 표시 때문에 알아보기 쉽지 않았으나 그녀는 지도에서 현재의 위치를 가까스로 찾았다.
놀랍게도 현재의 위치 아래에 또 다른 굴이 존재한다고 적혀 있었다.
단지 무작정 앞으로 도망치는 것보다 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녀는 바닥을 조심스럽게 뒤졌다. 온갖 벌레와 백골이 널려 있어서 끔찍했으나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
바닥의 기관장치를 확인하고 돌리는 순간 바닥 일부가 열렸다.
그그긍-
열린 바닥 아래로 캄캄한 공간이 나타났다.
백단영은 들고 있던 화섭자를 이용해서 아래를 비추어봤다. 아래쪽도 이곳과 비슷한 환경이었다.
“자, 이리로 가죠.”
그녀의 독려에 유연향이 고개를 저었다.
“난 못가. 거기는 여기보다 벌레가 더 많을 거야.”
“하지만 마교의 손에서 벗어나려면…….”
“차라리 이쪽 통로로 도망치는 게 더 나아. 따라잡히면 죽자사자 싸우지 뭐.”
유연향은 비무 대회 때부터 백단영과 대립하는 사이인지라 굳이 이런 위기에서 백단영의 조언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유연향은 자신의 의견을 지지해줄 사람을 찾았다. 고죽과 구진광에게 연신 눈치를 줬다. 고죽이 그녀의 편에 섰다.
“아래쪽 동굴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차라리 여기가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래가 적의 손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요.”
백단영의 주장은 유연향에게 먹히지 않았다.
“가고 싶으면 혼자서 가.”
유연향이 냉랭히 백단영을 외면했다.
백단영은 입술을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혼자라도 가겠어.”
백단영은 화섭자를 들고 조심해서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쪽 동굴의 상황은 예상보다 더 나빴다. 그녀는 온갖 벌레를 발견하고는 입 밖으로 올라오는 비명을 간신히 삼켰다.
혼자서라도 이쪽 길을 가겠다고 결심을 굳히고 있을 때 구진광이 그녀를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나도 함께 가지.”
구진광이라도 둘이 가는 게 나은가? 어둠 속에 저 멀리까지 뻗어 있는 동굴을 눈에 담으며 백단영은 마음을 다졌다.
그그긍-
구진광이 무엇을 만졌는지 그들이 들어왔던 통로가 닫혔다. 백단영은 화섭자를 밝히며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으으.”
발에 밟히는 벌레 감촉에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힐끗 옆을 바라보니 구진광 역시 거의 사색이 된 표정이었다.
“흐아, 미치겠군.”
구진광이 투덜대며 그녀를 뒤따랐다.
한참 어둠을 타고 동굴 깊숙이 진입하던 두 사람은 그나마 깨끗해 보이는 바위를 발견했다.
“여기에서 잠시 쉬죠.”
백단영은 바위에 주저앉으며 숨을 골랐다.
구진광이 백단영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백단영은 구진광이 지나치게 옆에 붙자 신경이 쓰였으나 참을 수밖에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백단영은 바위와 벽이 만나는 구석에 놓인 백골을 발견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광경이었으나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백골과 주변을 살폈다. 백골 옆에서 누런빛의 옥패가 발견됐다.
“이게 뭐죠?”
나뭇잎 부조가 새겨진 금판에 비취를 비롯한 각종 보석이 박혀 있었다. 무려 백 년이나 흘렀음에도 빛이 거의 바라지 않았다.
“중요한 신패 같은데…….”
구진광이 손바닥만 한 옥패를 넘겨받아 세밀히 관찰했다.
백단영은 금방 흥미를 잃고 지도를 꺼냈다.
여기부터는 어디로 도망쳐야 할까. 전진하면 각종 독충이 암기처럼 뿌려지는 기관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문득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몸이 만독불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동료인 구진광은 독에 취약할 것이란 생각에 계속 전진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솔직히 그녀도 독이 문제가 아니라 벌레를 만나는 것이 정말 싫었다.
지도를 살피던 그녀는 이 지점에서 숨겨진 다른 동굴로 분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동굴 역시 독충이 가득하다는 표시가 보였다.
“이래저래 쉽지 않네.”
지도를 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옥패를 이리저리 살피던 구진광이 옥패를 바닥에 내려놓고 백단영이 보고 있던 지도로 시선을 돌렸다.
“좋은 방법 있어?”
“현재로서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요. 다만 이곳에서…….”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설명하던 백단영은 갑자기 마혈이 뜨끔한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구진광을 노려봤다.
“왜, 왜 이래요?”
“흐흐, 왜 이러긴. 우린 절대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할 거야. 마교 그 자식들 때문에 죽을 거라고.”
“그런데 왜?”
백단영의 눈동자에 불안감이 떠올랐다.
구진광의 얼굴에 음산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이왕 죽을 거잖아? 그동안 네가 엄청 좋았어. 너를 꼭 한번은 가지고 싶었어.”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구진광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게 말이 돼요? 지금 이럴 때냐고요!”
그녀의 항의는 구진광의 비웃음에 바로 묻혔다.
“지금이 뭐? 어차피 더 도망갈 곳도 없어. 물론 너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마교 그 자식들도 미녀를 싫어하지 않을 테니.”
황당한 그의 말에 그녀는 말문을 잃었다.
구진광이 꼼짝할 수 없는 그녀를 향해 손을 뻗쳤다.
백단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마혈을 풀어보려 했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흐흐.”
구진광이 회심의 미소를 흘리며 백단영의 옷깃을 잡았다. 그녀의 몸이 속절없이 바닥에 눕혀졌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녀를 손에 넣게 된 구진광의 안색이 밝아졌다.
구진광의 입술이 점차 그녀의 얼굴로 다가왔다.
백단영은 상대의 입술을 피하려고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시선만이 상대를 피하려고 구진광의 뒤쪽을 향했다.
그녀의 눈에 흐릿한 그림자가 보였고, 놀란 그녀의 눈이 크게 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