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93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2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93화
93화. 신화문 해후 (4)
무흔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제 한번 손에 쥔 공세를 제대로 이용할 만큼 노련해졌다. 잔백수라십이검과 무상벽라검법이 뒤섞은 혼란스러운 공격을 지속했다.
“허억!”
혈우마도는 그제야 상대의 무공이 자신에 못지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했다.
단순히 검을 막으려고 막무가내로 휘두르던 도의 움직임이 보다 신중하게 변했다. 동시에 그의 신형에서 가공할 기세가 피어올랐다. 내력을 제대로 끌어올리며 도에 힘을 불어넣자 그 기세가 남달랐다.
여기까지는 무흔의 의도대로였다.
혈우마도가 신중해지고 초식을 전환하는 순간 잠시나마 도의 흐름이 끊어졌다. 이 눈 깜짝할 찰나가 무흔이 노리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잔백수라십이검의 제 십 검이 펼쳐졌다.
중후한 기운을 담으면서도 잔혹한 일검이 폭풍처럼 혈우마도에게 밀려들었다.
꽈앙-
묵천신검이 순식간에 거치도의 한 부분을 뚫고 혈우마도에게 쏟아졌다. 거치도 일부가 부러질 것은 예상 못한 듯 혈우마도는 피할 생각도 못 하고 경악성을 발했다.
서걱-
묵천신검이 상대의 오른팔을 그대로 잘랐다. 거치도를 쥔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크악!”
혈우마도가 비명을 지르는 순간 이미 이 싸움은 끝이 났다.
무흔의 연이은 공격이 혈우마도를 난자했다. 순식간에 사방을 난자하는 잔백수라십이검의 십일 검이었다. 혈우마도의 몸은 핏물로 뒤덮였다.
반파된 전각 앞에서 혈우마도가 서서히 무너지는 광경은 실로 지옥 같았다.
무흔은 마지막 일검을 혈우마도의 가슴에 꽂았다.
푹-
묵천신검이 가슴을 관통하며 피와 살이 터져 나와 사방으로 튀었다.
이것으로 끝이다.
죽음을 확인한 무흔은 검을 뺐다.
“누구냐!”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며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잠을 자다가 나온 그들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각종 병기를 들고 쏟아졌다.
굳이 저런 졸개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기에 무흔은 급히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띈 한 사람이 있었다. 낮에 객잔에서 봤던 숭의문의 젊은 장한이었다.
“적이다!”
녀석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렇게 또 만난 이상 그냥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무흔은 허공으로 몸을 날림과 동시에 한 손으로 패천마혼비를 날렸다.
강기의 파편이 젊은 장한에게 뿌려졌다.
“컥!”
젊은 장한의 한쪽 다리가 꺾이며 푹 꼬꾸라졌다. 아마 이 장한은 앞으로 한쪽 다리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무인을 뒤로하고 무흔은 비조처럼 허공을 날아 사라졌다. 과연 추혼천상보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그의 그림자를 뒤늦게 본 신화문의 무인들이 두려운 신음을 터트렸다.
“무, 무극서생이다.”
***
무흔이 다시 동굴로 돌아왔을 때 벽해결은 동굴 한쪽 구석에 사부의 시신을 묻은 후였다.
만변귀공을 푼 무흔은 급하게 소리쳤다.
“신화문에서 몰려옵니다. 어서 도망쳐야 해요.”
벽해결은 정황을 알 수 없었으나 지금 당장 무엇을 할지는 분명하게 인식했다. 그는 검을 들고 곧바로 무흔의 뒤를 따랐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저 아래쪽에서 계곡을 따라 무수히 많은 문하생이 위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무흔은 손가락을 까닥이며 그를 봉우리 높은 곳으로 인도했다.
봉우리 꼭대기까지 도망친 무흔은 벽해결에게 방향을 물었다. 이곳 지리는 벽해결이 훨씬 잘 안다. 그는 건너편 봉우리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다급하게 길을 정하고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헉헉.”
“아래쪽에 정찰하러 갔다가 걸렸습니다.”
무흔은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해봐야 달라질 것도 없고 벽해결이 모르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동쪽 봉우리 너머에서 해가 떠오르면서 어둠이 점차 걷혔다. 오랜만에 보는 일출은 장관이었으나 느긋하게 구경할 여유는 없었다.
아침 안개에 싸여 시야에 줄줄이 이어진 봉우리의 능선을 바라보던 무흔은 신화문 비급을 떠올렸다.
“비급을 지금 가져가실 건가요?”
쉽게 결정하기 힘든 듯 벽해결이 고민했다.
“삼봉이 어디입니까?”
북악신군은 신화곡 삼봉에 숨겼다고 했었다. 마침 봉우리가 쭉쭉 시야에 들어오니 물어봤다.
“저 봉우리입니다.”
이곳에서 세 번째 위치한 봉우리였다.
“가져갈 겁니까?”
“다시 이곳에 오기란 쉽지 않을 것 같으니…… 지금 가져가겠습니다.”
망설이던 벽해결이 결정을 내렸다.
만혈대로 급히 가야 하는 무흔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결정이긴 했다. 하지만 무흔은 그의 의견을 존중했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쫓아오던 신화곡 인물이 더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포기하고 다시 내려간 듯했다.
사실 그들로서는 적극적으로 수색하기도 꺼림칙했을 것이다.
무극서생의 놀라운 무공을 보았으니. 마교에서 파견된 인물마저 죽인 그를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잠해지네요.”
벽해결이 한숨 돌린 표정으로 그늘에 주저앉았다.
무흔도 옆에 앉아 가져온 육포를 건네주고 물주머니에서 물을 꺼냈다.
과연 신화문에서 출정식을 예정대로 진행할까.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이미 인근 여섯 문파가 모인 만큼 예정대로 움직일 수 있다. 다만 모이더라도 이들을 이끌 마교 파견원이 없는 만큼 오합지졸이 되고 당장 조직화를 이루긴 쉽지 않다.
다시 마교인이 올 때까지 적어도 그만큼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이들이 모여 공격하려 했던 구대 문파는 어디였을까. 이를 알아냈다면 정말 도움이 되었을 것을.
무흔은 간단한 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신화문을 재건할 겁니까?”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애초 이곳에 올 때 벽해결은 사부를 구하고 신화문 재건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이루어야 할 최우선 목표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사부의 죽음과 사부의 유언으로 신화문이란 존재의 의미가 달라졌다.
“그, 글쎄요.”
당장 결론을 내리지 못한 벽해결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무흔이 이런 질문을 던진 이유는 단순했다. 현 신화문주인 주왕호를 처리해버릴 생각이 슬그머니 들었으니까.
문득 아버지인 북악신군이 죽은 이상 파렴치한 패륜을 저지른 그를 용서할 수 없어졌다.
만일 주왕호가 죽으면 신화문은 손쉽게 벽해결에게 다시 넘어가지 않을까.
물론 무흔이 먼저 앞장설 생각은 없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도와주는 입장일 뿐.
“나중에라도 현 문주를 처단할 생각이 있고 그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씀하세요. 제가 힘은 없지만 이리저리 인맥은 있어서 어떻게든 해결해 드릴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에둘러 의견을 피력했다.
다행히 벽해결이 그의 의도를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스스로 힘을 기른 후 고민해보겠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제가 신화문을 맡을 그릇이 되지 못합니다. 일단 사부님께서 남기신 유작을 얻고 난 후 수련에 매진하겠습니다.”
다행히 벽해결은 생각이 반듯했다. 북악신군이 제자를 잘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봉까지 거리는 멀지 않았다.
북악신군이 지정했던 장소에서 비급은 쉽게 발견되었다.
이제는 무흔이 떠나야 할 시간이다.
“가보겠습니다. 만혈대에서 용봉대원을 보조해야 하니까요.”
무흔의 인사에 벽해결이 감사를 표했다.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저도 만혈대로 합류할까요?”
벽해결의 제안에 무흔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거긴 무림맹의 일이거든요. 벽 소협은 오늘 얻은 비급만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에 또 인연이 있으면 뵙기로 하지요.”
무흔은 냉정히 거절하고 몸을 돌렸다.
지금부터는 만혈대에서 무극서생으로 활약할 생각이었다. 벽해결이 옆에 붙으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다행히 벽해결도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았다.
무흔은 빠른 걸음으로 봉우리를 내려갔다.
벽해결은 손을 흔들면서 죽립을 쓴 무흔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청성파는 개봉에서 서쪽으로 약 구백 리가량 떨어진 청성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구파 일방의 일원으로 유명한 청성파는 도가 계열의 문파로, 청성파의 장로는 일대에서 신선이라 칭해졌다. 무림맹에서도 열심히 참여하여 상당한 지분을 가진 문파이기도 했다.
심산유곡답게 풍광이 끝내주는 곳이라 평소라면 도를 닦기에 더없이 좋았던 이곳에 지금은 속세의 분쟁이 일어났다.
청성파 입구에 세워진 정자, 노군각 앞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대치하고 있었다.
청성파 장로이자 현 장문인과 같은 계열인 일현자(一玄子)는 노군각을 향해 몰려온 무리를 막아서며 대노했다.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는 이들은 결코 정파인이 아니었다.
“그대들은 누군가?”
일현자의 호통에 군웅 사이에서 한 마두가 등장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 거한이 온몸의 근육을 드러내며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흐흐, 여기가 청성파냐?”
“다시 묻겠다. 누구인가?”
“흐흐, 본좌는 사마련의 각주인 천산광소 우문혁이라 한다.”
상대를 알아본 일현자의 안면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파의 집산인 사마련에서 구대 문파에 쳐들어온 사건은 적어도 근래에는 없던 일이었다. 즉, 이것은 정과 사의 새로운 다툼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더구나 천산광소 우문학은 한때 장강 이남에서 이름을 날리던 사파의 고수가 아니던가.
게다가 사마련의 각주란 직위는 무림맹에서 대주와 비슷하다. 단순히 충동적으로 움직일 그런 위치의 인물이 아니었다.
“최근까지 정과 사는 서로 침범하지 않고 평화롭게 지냈거늘…… 무슨 바람이 불어 이렇게 몰려온 거요?”
일현자가 조심스럽게 상대를 나무랐다.
그러자 천산광소가 별호처럼 한바탕 광소를 터트리며 발로 땅을 내리찍는 진각을 선보였다.
쿵!
일대가 뒤흔들리는 듯한 대단한 위용이었다.
“흥! 평화롭게? 웃기는 소리! 일대의 이권을 너희 놈들이 다 가져가서 이 동네 사마련 소속 문파가 아사 직전이거늘 뭔 소리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곳은 청성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곳이었으니까.
일현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덤비는 꼴을 보니 시비를 걸려고 온 것이 분명했다.
그는 몰려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 숫자는 대략 수백에 달했다. 사실상 여기 청성파의 문도 수와 별 차이가 없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보다 흉이 많을 날이었다.
단지 숫자만 많다면 문제가 아니다. 일현자는 사파의 인물 사이에서 단연 돋보이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하나는 천산광소고, 다른 한 명은 마치 호위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파인의 뒤쪽에서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주위를 둘러보는 인물이었다. 그는 흡사 소풍을 나온 것처럼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흉흉한 기세를 올리는 다른 자들과 달리 내공 역시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현자는 저 두 사람이 내공을 갈무리하는 수준에 이른 최강의 고수임을 바로 알아봤다. 저들을 상대할 자가 과연 청성 내부에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현 장문인이나 청성 최고의 무력 집단인 청성칠자의 수준을 가볍게 뛰어넘은 것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렇더라도 이렇게 막무가내로 몰려오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보입니다만.”
일현자는 조심스럽게 말을 전하며 시간을 끌려고 애썼다.
무엇보다 이 소식을 안쪽으로 전해야 했다. 자칫 멸문의 위기까지 떠올린 일현자는 옆에 선 사제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영문을 모르는 사제에게 일현자는 전음으로 지금이 위기 상황임을 장문인에게 전하라고 시켰다.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사제의 뒷모습에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예의는 무슨 얼어 죽을! 그대들의 만행을 두고 볼 수 없어 오늘부로 청성을 지우기로 했다.”
엄청난 선언이 천산광소에게서 터져 나왔다.
주변의 청성 문하생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가운데 일현자가 한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천산광소여, 그럴 능력은 있는가?”
“으하하하! 당연한 소리! 장문인을 나오라고 하라!”
“장문인은 지금 업무에 바쁘시오. 그대들은 얼른 돌아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필히 경을 치를 것이요!”
사실 말싸움은 불필요했다. 단지 서로 기세가 꺾이지 않으려고 소리치고 있을 뿐.
가소로운 듯 웃음을 머금던 천산광소가 품속에 손을 넣었다가 앞으로 뿌렸다.
“시끄럽다!”
휙-
날카로운 비수가 섬전처럼 일현자에게 날아갔다. 공격 개시 신호였다.
“와아! 쳐라!”
청성파와 사마련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는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이 시작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몰려온 사마련의 폭도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마교인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날 청성파의 모든 전각이 불에 타 검은 연기가 하늘을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