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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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31화
131화. 백회령 (4)
“그때 그 표독스럽던 성깔은 어디로 갔냐?”
“우리도 꿇어앉히고 밟아줄까?”
두 산적의 희롱에 문수란이 참지 못하고 빽 소리를 질렀다.
“감히 이것들이!”
“큭큭, 평소 성깔 나오는구나. 그래 봐야 꼼짝하겠냐?”
“오늘 이 어르신이 참교육을 시켜줄게.”
두 산적이 문수란을 둘러쌌다. 문수란은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손과 발을 묶은 밧줄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수란이 탈출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가운데 산적 둘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잡았다.
“크크, 여협이라고 거들먹거렸지? 오늘 산적 맛을 보여주마.”
문수란이 기겁해서 녀석들을 노려볼 때였다.
갑자기 두 녀석이 푹 꼬꾸라지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영문을 모른 그녀는 눈을 뻐끔거리며 앞을 바라봤다. 그녀의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상단주 딸의 호위라고 하던 자인가? 이 사람이 왜 여기에 있지?
머릿속이 혼란한 가운데 남자가 빙그레 웃으며 포로 네 사람에게 물었다.
“다친 곳 없습니까?”
무흔의 뒤로 백단영까지 등장하자 포로들은 나지막하게 환호성을 질렀다.
“우, 우리 편이 구하러 왔군요.”
“백 소저! 고맙습니다.”
두 남매가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은 상단의 무인들이 그들을 구하러 몰려온 것으로 생각했다.
무흔은 검을 이용해서 손발을 결박한 밧줄을 잘랐다. 그제야 자유로운 몸이 된 네 사람이 다급하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지금 산적과 싸우고 있나요?”
정작 무흔은 느긋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우리 두 사람만 왔는데요?”
“네?”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포로들에게 따라오라고 손을 까닥거린 후 무흔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의정선자와 의정대협은 오두막을 나서는 순간 절로 몸이 굳어졌다.
포로가 탈출하는 것을 발견한 산적들이 여기저기에서 소리를 지르며 떼거리로 몰려왔다.
물론 무흔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차피 산적들은 적수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중요한 핵심은 밤에 보았던 적삼의 괴인 셋과 흑귀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괴인 넷이 등장했다. 물론 그 가운데 한 명은 무흔도 익히 알고 있는 흑귀였다.
흑귀는 무흔과 백단영을 알아보지 못했다.
대붕산채에서 협상에 참석하지 않았던 그는 백단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 바람에 백단영을 백가상단과 연결 짓지 못했다. 반면 옆의 사내는 어디에선가 본 듯했지만 고산령에서 수모를 안긴 녀석이란 사실까지는 생각해내지 못했다.
네 괴인의 옆에 있던, 채주로 보이는 덩치 큰 산적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누구냐?”
“누구긴. 우리 편을 구하러 왔지.”
무흔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쓸데없는 것을 왜 물어보느냐는 표정이다.
채주가 머리를 긁적이며 흑귀에게 전달했다.
“구하러 왔다는데요?”
“으이그, 이놈아!”
다시 두 사람의 행색을 살피던 채주는 백단영의 미모가 예사롭지 않음을 발견했다. 저 정도의 미모라면 큰돈을 받고 팔 수 있다.
“감히 산채를 모독하는 놈들은 무조건 잡읍시다.”
욕심이 동한 채주의 말에 흑귀는 옆에 선 적삼괴인과 신호를 교환했다.
흑귀와 세 적삼마인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바로 무흔과 백단영 앞에 나타났다. 어젯밤 의정문 남매 둘을 사로잡을 때 선보였던 기상천외한 보법이었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같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예상했으나.
“커윽!”
순식간에 목표했던 무흔과 백단영의 신형이 사라지고 등 뒤쪽에서 강력한 타격이 들어왔다. 무흔과 백단영이 무흔천상보를 펼친 것이다.
“이게 무슨?”
깜짝 놀란 괴인들이 두 사람의 위치를 찾는 순간 다시 옆구리에 커다란 통증이 느껴졌다. 분노한 괴인들은 마구잡이로 손을 휘저었으나 두 사람의 흔적을 따라가기도 어려웠다.
무흔과 백단영의 무공은 적삼괴인과 흑귀의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무흔과 백단영은 무흔천상보와 천강십이수를 사용해서 일방적으로 상대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퍽! 퍽!
“으악!”
난데없는 주먹 찜질에 흑귀와 세 적삼괴인이 허우적거리며 대응했다. 그렇다고 내버려 둘 무흔과 백단영이 아니었다.
백단영은 과거 대붕산채에서 동생이 납치되었던 때를 떠올리며 인정사정을 주지 않았고, 무흔은 애초에 이런 녀석들의 교육에 손을 아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옆에 있던 산적들이었다. 하늘처럼 받들던 고수가 손도 쓰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고 있으니.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덤벼들려던 산적들은 무흔이 주먹을 내밀고 위협하자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문수란과 문철남 남매는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아 깔보였던 무흔과 백단영이 엄청난 고수란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크으으윽!”
일 각가량 열심히 두들겨 맞느라 고생한 네 괴인이 마침내 실신하듯 주저앉았다.
괴인 넷이 무너지자 다른 산적들은 감히 덤벼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비명이 잦아든 산속에 고요가 내려앉았다.
무흔이 손바닥을 탁탁 털며 녀석들에게 물었다.
“녹림 총본산에서 왔나? 녹림 총채주가 보낸 거냐?”
흑귀가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백회령산채가 복수하고 싶다고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허, 말이 짧다!”
퍽-
무흔이 흑귀의 뒤통수를 갈겼다. 흑귀가 눈물을 흘리며 다시 대답했다.
“백회령산채 채주의 요청으로 제가 파견되었습니다.”
“그럼 옆에 이 자식들은 뭐냐?”
흑귀 옆에 쓰러져 있던 세 괴인이 흑귀의 눈치를 봤다. 무흔은 직감적으로 흑귀가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했다고 짐작했다.
그가 괴인 한 명의 머리를 툭 치자 괴인이 벌벌 떨며 털어놓았다.
“저, 저는 총채에서 온 장로입니다. 흑귀가 좋은 일이 있다고 오라고 해서…….”
“에라이, 이 자식이 나쁜 놈이군.”
무흔은 흑귀를 다시 두들겨 팼다. 흑귀의 비명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런데 백회령산채 채주는 어디 있어?”
무흔이 눈을 부라리자 처음에 네 괴인 옆에 있었던 덩치 큰 산적이 허리를 굽신거렸다.
“제, 제가 채주입니다.”
“이리로 와! 넌 왜 인상이 더럽냐? 산적이냐?”
“산적 맞는뎁쇼…….”
우물쭈물하는 채주의 가슴을 몇 대 쥐어박았다. 채주가 비명을 지르며 푹 쓰러졌다.
“네놈이 복수하겠다고 흑귀를 불렀지?”
“사, 살려주십시오!”
채주가 땅바닥에 엎드렸다.
전반적인 상황 파악을 끝낸 무흔은 채주에게 말했다.
“너! 앞으로 동방상단과 백가상단은 통행료를 면제하고 그냥 통과시켜라. 알겠냐?”
“아, 알겠습니다.”
현실적으로 산적을 모두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겁을 주고 실리를 취하는 것이 낫다는 게 무흔의 생각이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우리를 위협한다는 소문이 들리면 내가 싹 다 쓸어버린다. 알겠어?”
“네.”
다시 백회령산채 채주가 동방상단이나 백가상단을 찝쩍거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흑귀다. 이 녀석은 벌써 몇 번째인가.
무흔은 흑귀의 앞에 서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살고 싶냐?”
“사, 살려 주십시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말이지, 예전에 네놈이 대붕산채에서 한 짓을 보면 그러고 싶지 않단 말이지.”
“예? 대, 대붕요?”
깜짝 놀란 흑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멀뚱거렸다. 대붕산채 이야기가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주위의 산적을 향해 무흔이 냉담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아라! 이놈이 어떻게 되는지.”
무흔의 외침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모였다.
무흔은 오른손을 들었다. 그의 손끝에서 하얀 강기가 칼날처럼 솟구쳤다.
“허억! 수, 수강?!”
놀란 흑귀가 경악할 틈도 없이 수강이 흑귀의 가슴팍을 쑤시고 들어갔다.
“커윽!”
흑귀의 가슴이 뻥 뚫리며 피 분수가 솟구쳤다. 몇 차례 경련을 일으키던 흑귀의 몸이 잠잠해졌다.
무흔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세 괴인에게 물었다.
“너희도 쑤셔줄까?”
“사, 살려주십시오.”
세 괴인이 머리를 조아리며 벌벌 떨었다.
무흔이 강하게 경고했다.
“네놈들! 내 눈에 한 번 더 뜨이면 이번에는 네놈들뿐만 아니라 녹림 총채주부터 작살 내버린다. 알겠냐?”
보통 때라면 이런 경고를 웃어넘겼겠지만, 무흔의 수강을 본 괴인들은 이를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아, 알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덜덜 떨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세 적삼괴인을 남겨두고 무흔은 몸을 돌렸다.
“그만 가시죠?”
백단영은 웃고 있었고, 의정문 두 남매는 경악한 표정으로 무흔을 괴물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고강한 무공에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의정문 두 남매는 무흔과 백단영에게 감사를 표했다. 더불어 한때 그들을 업신여겼던 점도 사죄했다.
두 남매와 의정문 제자 한 사람을 무흔이 먼저 데려간 후 백단영은 남은 천상문 제자를 애틋한 표정으로 살폈다.
하늘색 무복을 입은 천상문 제자가 무척 예쁘게 보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처음 보는 사이에 다짜고짜 신상을 물었으니 무례하다고 느낄 법했으나, 천상문 제자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라 생각해 성심껏 대답했다.
“아교라 해요. 천상사화 중 일인이고요. 문주님께 직접 지도받는 일대제자예요. 이번 상행에는 저희 천상사화 넷이 모두 참가했어요.”
“아교, 반가워요.”
“고맙습니다. 구해주셔서.”
아교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백단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질문을 시작했다.
“천상문에 관해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요. 설명해줄 수 있나요?”
아교가 살짝 경계의 눈빛을 띠었다. 하지만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었기에 금방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저희 문파 상황이…… 딱히 비밀이랄 것은 없으니 알려드릴게요.”
산동성에 위치한 천상문은 여인들만 받아들이는 특이한 문파였다. 현재 제자가 대략 서른 명가량인 소규모 문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작은 문파이지만 천상문의 역사는 대략 이백 년 전에 시작되었고 약 백 년 전 천상신모가 문주였을 때 전성기를 구가했다.
천상문은 천상신모가 만혈대 정마대전에서 실종된 이후 급격한 몰락을 겪었다.
천상신모가 실종되면서 문파에 전해지던 무공의 명맥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지금까지도 몰락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문하생 수는 계속 줄었고, 지역에서의 영향력도 축소되는 악순환을 겪었다. 지금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수준. 산동성에서만 천상문보다 규모가 큰 문파가 백 개는 될 정도니까.
‘하긴 주요 제자인 일대 제자의 무공이 변변찮아 보이니…….’
백단영은 아교의 면면을 가늠해보며 혀를 찼다. 완전히 망한 문파가 분명했다.
모든 내용을 경청한 백단영이 그녀에게 위로를 전했다.
“힘든 상황이군요. 앞으로는 잘 될 거예요.”
그나마 그녀의 다독임이 힘이 된 듯 아교가 고마움을 표하며 물었다.
“그런데 저희 문파 상황은 무엇 때문에…….”
지금까지 천상문은 백가상단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하다못해 상행에 동행한 적도 없었기에 아교는 백단영의 호의가 뜻밖이었다.
백단영이 그녀에게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다.
“천상사화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제 사부님이 천상신모랍니다.”
더 놀랄 수 없을 만큼 아교의 안색이 바뀌었다. 하지만 쉽게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무려 백 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전대 문주의 제자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거짓은 아녀요. 사실 지금도 천상문을 찾아가던 중이었으니까요.”
거짓말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아교는 백단영을 믿고 싶었다.
괴인을 상대하던 그녀의 무력을 떠올리면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고수임은 분명했으니까. 그런 고수가 문파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막 생겨날 테니까.
“저, 정말입니까? 아아, 신이시여…….”
아교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에 감사를 올렸다. 천상신모가 사라진 후 몰락을 겪었던 사문을 생각하면 목이 메었다. 이곳에서 갑자기 천상신모의 후예를 만났으니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