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2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27화
127화. 개봉 일상 (3)
일 층 입구 쪽에 몇몇 사람들이 몰려 있는 탁자가 있었다.
그 탁자에는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노인 세 사람이 앉아 있고 그 옆으로 호위인 듯한 사람이 둘씩, 모두 여섯 명의 호위가 탁자 옆에 서 있었다.
그렇다 보니 그쪽 탁자만 유독 붐비고 있었는데 하필 그곳이 입구 쪽이다 보니 손님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무흔과 백단영은 아래로 내려오는 계단 부근에서 어떻게 된 일인지 조용히 구경했다.
그 탁자 옆에 찻잔이 떨어져 깨져 있고 점원이 열심히 치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필 그곳에서 점원이 넘어지며 문제가 발생한 듯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내오겠습니다.”
점원이 깨진 조각을 치우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탁자에 앉은 노인들이 혀를 차며 타박했다.
“어째 이곳은 점원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차도 제대로 못 나르나?”
“그, 그게 발이 걸려 넘어져서…….”
“그럼 우리가 발을 걸었다는 거냐?”
“죄, 죄송합니다.”
“에잉!”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갔다. 점원이 그 탁자에 차를 가져가다가 엎지른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점원의 잘못이 아니라 호위로 서 있는 장한이 시비를 건 듯 추정됐다.
다향이 노인들 앞에 가서 인사했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난 여기 오면 안 되나?”
인사와 오가는 말투를 보니 서로 아는 사이로 보였다.
“다향이 여기 오더니 얼굴이 확 피었어.”
“자, 옆에 와서 술이나 따라라. 아, 술이 없나? 그럼 차라도 따르거라.”
“흐흐, 다향이 어릴 때 기루에서 술 따르던 솜씨가 제법이었지.”
세 노인이 번갈아 가며 다향을 입에 올렸다.
다향이 정중하게 거절했다.
“이곳에서는 여인이 차를 따르지 않습니다.”
“에이, 못 따를 게 뭐 있어?”
기루 출신인 다향을 험담하며 세 노인이 음흉한 눈빛을 서로 교환했다.
그때 다시 차를 가져온 점원이 탁자 앞에 차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옆에 선 장한이 슬그머니 발을 걸었다.
쿠당탕-
점원이 넘어지며 가져왔던 찻주전자와 찻잔이 떨어져 박살이 났다.
“에잉, 또야? 여기는 어떻게 된 게 차 한 잔도 제대로 못 나르나?”
노인들이 재차 불평을 늘어놓으며 점원을 야단쳤다.
다향이 끼어들어 정중하게 말렸다.
“어르신들 장난이 심하십니다.”
“뭐? 그럼 내가 발을 걸었다는 거야?”
다시 서로 간에 고성이 오갔다. 노인 측이 셋이나 되는 데다 옆에 장한들마저 허리에 칼을 차고 있으니 다향이 일방적으로 깨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다향도 이런 일에 꽤 잘 대처하는 듯 싶었다.
무흔은 옆에서 사태를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점원에게 물었다.
“저 세 노인이 대체 누구요?”
“저들은 개봉 기루 연합에 계신 분들입니다.”
개봉에서 유명한 기루는 세 곳이었다.
백운루, 청화루, 죽서루. 그리고 지금 탁자에 앉은 노인들은 바로 이 세 기루의 대표였다. 이들은 새로운 형태의 다루가 손님에게 인기를 얻자 방해하러 나타난 것이다.
엄밀히 따진다면 기루는 남자 손님끼리 가는 곳이고 다루는 여자 손님이 많으니 전혀 쓰임새가 다르지만 이들이 그런 차이점을 고려할 리가 없었다. 그저 굴러들어온 돌이 잘되니까 시비를 걸 뿐이다.
“저들이 자주 오나?”
“요즘 거의 매일 와서 저 자리에 앉아 방해하십니다.”
다향의 과거 전력이 기루이다 보니 더 만만해 보였을 것이다.
무흔은 난감한 표정으로 백단영의 눈치를 봤다. 그가 뛰어들어 처리한다고 해서 어려울 일은 없지만 계속 여기에 매달려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저들을 쫓아내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또 시비를 걸어올 테니까.
얼마 전 바로 옆에서 무림객잔을 개점했을 때 풍사검객과 서옹이 나타나 해결했던 기억이 났다. 그때처럼 아예 기를 팍 죽여버리면 만사해결일 텐데.
“어떡할까요? 제가 나가볼까요?”
무흔의 제안에 백단영이 손을 저었다.
“아냐, 대주님을 불러와야겠어.”
“대주님요? 설마 대주님이 이런 일 때문에 여기까지 오시지는 않을…….”
“아냐, 지금 바로 옆에서 점심 들고 계시거든.”
풍사검객과 서옹은 요즈음에도 가끔 무림객잔에 들러 식사를 했다. 그녀가 기억하기로는 오늘이 바로 무림객잔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내가 금방 다녀올게.”
백단영이 인파를 뚫고 사라졌다.
무흔은 제집인 마냥 시비를 걸고 있는 세 노인을 보며 혀를 찼다.
기루를 운영하다 보니 비호하는 세력도 꽤 있을 것이다. 아래로는 파락호와 연결되어 있고 위로는 관부와 무림맹에까지 손이 뻗어 있음이 뻔했다. 기루란 권세 있는 자들이 주로 드나드는 곳이니까.
그나마 다향이 이런 일에 경험이 많아 적절하게 노인들을 달래고 있으나, 쉽게 마무리되기 어려울 듯했다.
급기야 호위 장한이 다향의 손목을 잡고 강제로 노인 옆에 앉혔다.
“어허, 차만 몇 잔 따르면 된다니까.”
노인이 다향의 손을 인계받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모욕감을 느낀 다향은 손을 빼려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급기야 노인의 다른 손이 그녀의 몸에 닿았다.
“흐흐, 다향아, 너 예전보다 더 풍만해졌다?”
점원들마저 인상을 찌푸리며 발만 구르고 있을 때였다.
입구의 문이 열리고 백단영이 다시 돌아왔다. 그 뒤로 풍사검객과 서옹이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휘적거렸다.
서옹이 노인 셋이 모인 탁자를 쓱 보더니 입을 열었다.
“어? 죽서루의 허 노인 아니신가?”
풍사검객과 서옹을 발견한 노인 셋이 벌떡 일어났다.
“헛, 대주님들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기루 연합을 맡은 이들 세 노인이 무림맹의 주요 간부인 풍사검객과 서옹을 모를 리 없다. 이 동네 기루에서 무림맹은 매우 큰 고객이었으니까.
“자네는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서옹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물었다.
“네?”
심상찮은 기분을 느낀 허 노인이 얼른 다향의 손을 놓았다. 다향이 급하게 뒤로 빠져나왔다.
서옹이 눈을 부라리며 세 노인에게 손짓했다.
“자네들 일부러 시비 걸고 있다며?”
“네?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애들이 차를 쏟아서…….”
“에이, 그거 다 자네 탓 아닌가.”
“그…… 그럴 리가요.”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서옹의 일방적인 주장에 노인이 입을 꾹 다물었다. 큰 고객인 서옹과 싸워서 이득 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때 옆에 있던 풍사검객이 나섰다.
“허 노인, 그리고 장 노인, 풍 노인.”
그의 말은 진중했다. 무게감이 넘치는 분위기에 노인 셋의 안색이 얼어붙었다.
“내가 말이야, 바로 옆에 있는 무림객잔에 투자했다는 사실 알고 있나?”
물론 실제로 투자한 것은 없다.
하지만 무림객잔이 문을 열었을 때 파락호가 보호비를 요구하던 날 풍사검객이 직접 했던 말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날 이후로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져 지금까지 그 누구도 무림객잔을 건드리지 않았다.
당연히 소문의 집산지인 기루를 운영하는 이들 세 노인이 모를 리가 없다. 세 노인은 고개를 주억이며 머리를 굴렸다.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오는지 고민해야 했다.
풍사검객이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여기 이름이 무림다루이잖나.”
“헉!”
그제야 세 노인은 이 다루의 이름에도 무림이라는 말이 붙어 있음을 주목했다.
그 말은 이 다루 역시 풍사검객의 것이란 말과 동일했다. 감히 무림맹 대주가 운영하는 다루에 찾아와서 시비를 벌였으니…….
“으헉, 모, 몰랐습니다.”
세 노인이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풍사검객이 안면을 찌푸리며 경고했다.
“내가 사회 질서 유지 차원에서 무림맹 사람들의 기루 출입을 금하는 공고를 내라고 맹주님께 건의를 올리려 하네만.”
세 노인의 안색이 심각해졌다. 자칫하면 기루의 매출이 대폭 줄어들 판이다.
“푸, 풍사검객님, 아니 되십니다.”
서옹이 손짓으로 다향을 불렀다. 영문을 모르는 다향이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서옹이 다향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 향이가 우리 대리인이야. 자네들이 찝쩍거릴 사람이 아니란 말이지.”
“허억! 아, 알겠습니다.”
“사과하도록 하게.”
세 노인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다향을 향해 넙죽 고개를 숙였다.
그것만으로는 마음에 차지 않는지 서옹이 찌푸린 안면을 펴지 않자 세 노인이 기겁해서 다향에게 싹싹 빌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무흔은 지금은 비록 이렇게 마무리하더라도 훗날 기루 연합에 제대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다향을 찝쩍거리던 죽서루의 허 노인을 눈에 새겨뒀다.
잠시 후 일을 마무리한 네 사람이 위층에서 합류했다.
“고맙습니다. 대주님.”
무흔과 백단영이 동시에 감사를 표했다.
“흘흘, 뭐 그런 걸 가지고. 오늘 차는 공짜 맞지?”
오늘 일로 무림객잔과 무림다루는 사실상 풍사검객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소문이 날 것이다. 당연히 시비 걸 자는 아무도 없다. 무려 무림맹 소속의 대주와 척을 질 만큼 간이 큰 녀석은 없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네 녀석은 매화곡에 다녀온 보고를 왜 안 하냐?”
예전부터 서옹이 매화곡을 주시하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그의 이런 질책은 당연했다.
무흔은 어디까지 알려줘야 할지 고민했다. 서옹도 매화곡이 마교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은옥상이 마교 소교주란 사실은 아직 모른다.
이 부분을 숨겨야 할까.
“매화곡에 간 목적은 무공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호, 무공 연구!”
풍사검객이 대견하다는 듯 감탄을 발했다.
서옹이 기가 찬 표정으로 비웃음을 머금었다.
“흘흘, 네 녀석이 이제 연구란 소리도 다 하는구나. 그래, 무슨 무공을 연구했더냐?”
“마공을 연구했습니다.”
“마공을?”
무흔은 마교를 방문했다는 내용을 빼고 매화곡에서 구해준 마공 비급을 연구했다고 둘러댔다. 그는 십여 권의 마공 비급을 읽었으며 그 가운데 일부 마공을 복원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역대 마교 교주들이 무슨 무공을 익히는지 아십니까?”
무흔의 질문에 풍사검객이 대답했다.
“현 교주인 혈천마종은 중원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의 무공은 알려지지 않았지. 최근 백 년간 마교는 신비에 싸여 있어서 무공에 관해서는 거의 알 수가 없네. 다만 백 년 전 정마대전 당시의 기록과 운경각에 남은 한 권의 마교 비급을 참고해보면…….”
풍사검객이 그동안 밝혀진 마교의 무공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후 무흔도 자신이 알아낸 내용을 알려주었다. 한 글자로 이름이 붙은 열 가지 무공이 존재하며 교주와 소교주는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익히고 있다고.
“비급 내용을 알고 있나?”
풍사검객이 큰 관심을 보였다.
“일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아는 내용을 적어서 보고 하게.”
그러잖아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가 무림맹에 도움을 주는 한 방법이었으니까. 딱히 정과 사를 가를 생각은 없지만 백단영을 구하려면 결국 무림맹을 응원해야 한다.
매화곡을 다녀온 이야기가 대충 마무리되자 백단영이 화제를 전환했다.
“대주님, 제가 산동성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겨울철에는 용봉대 활동이 없으니 갔다 온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만 갑자기 왜 그러나?”
백단영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산동성에 있다는 천상문을 화제에 올리려면 천상신모의 절기를 이은 사실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마교와의 대전에서 백단영의 무공이 급상승한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던 터라 풍사검객은 놀라지 않았다.
“사문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라면 다녀오게. 자네에게 중요한 일이니까.”
백단영은 허락에 감사를 표했다.
서옹이 그녀를 격려하며 물었다.
“둘이 같이 갈 건가?”
“그러려고 합니다.”
무흔이 대신 대답했다.
서옹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흘흘, 잘 다녀와라. 그런데 마공 연구에 너무 심취하지 마라. 마공은 사람의 마음을 미혹시키거든.”
무심코 차를 마시던 무흔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서옹을 접할 때마다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서옹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