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2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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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24화
124화. 사마극의 위세 (2)
“백단영이라고 했던가?”
“으으…….”
백단영은 신음 외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을 죄어 오는 상대의 손아귀에서 가해지는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라 무시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군. 나쁘지 않았어.”
“크윽.”
백단영은 가쁜 숨을 토해냈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계속됐다.
“거기에다…….”
백단영의 얼굴을 예리하게 살펴보던 사마극이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목과 가슴과 허리와 다리로 이동했다.
숨이 막혀 버둥거리는 상황임에도 백단영은 그의 시선을 피하려고 몸을 비틀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왠지 발가벗겨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군.”
뭐가 나쁘지 않은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단영은 모욕감에 입술을 깨물었다.
사마극이 그녀의 눈을 노려보며 귓가에 속삭였다.
“다음에 보면 그냥 놓아주지 않겠다.”
그 순간,
쾅-
사마극의 등으로 강한 타격이 가해졌다.
장후성이 사마극의 등으로 장력을 쏟아낸 것이다. 그의 장력은 사마극의 호신강기를 깨트리며 내부로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튕겨 나가쓰러진 것은 장후성이었다.
사마극이 기분 나쁜 표정을 머금고 백단영의 목을 잡은 손을 풀었다.
“크으윽.”
백단영이 등을 기댄 나무를 타고 아래로 주저앉았다.
사마극이 몸을 돌려 쓰러진 장후성을 노려봤다.
쿵-
강하게 진각을 밟자 천지가 뒤흔들리고 지면의 거죽이 쩌저적 갈라졌다. 놀라운 위세였다.
“지금 바로 네놈들을 모두 죽여 버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재미가 없으니 살려주도록 하지. 하지만 다음에는 자비가 없다.”
사마극의 시선이 장후성부터 시작해서 현공을 거쳐 남궁이화까지 쭉 훑었다. 하나같이 이미 망가진 상태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가 이들을 죽일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들은 유용한 녀석들이다. 마교 후계 구도의 관심을 다른 쪽으로 옮길 수 있고, 여차하면 차도살인지계로 사용할 수도 있다. 다른 후계자를 상대할 때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 이들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매끄러우니까.
“흐흐,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주지. 내가 이번에 마교의 흑살대와 같이 왔거든. 아마 무림맹의 청룡대와 좋은 상대가 될 거야.”
장후성은 흑살대란 말에 깜짝 놀랐다. 사마극이 소규모 부대를 거느리고 왔다고 하더니 소규모가 아니고 대규모였나?
“설마…….”
“지금 청룡대는 사마련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신이 나 있겠지? 그 기쁨은 한순간이다. 흑살대가 뒤에서 기습할 거니까.”
장후성을 비롯한 모두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오늘 대승을 거두었다고 생각했더니 정작 중요한 싸움은 이제부터 벌어질 모양이었다. 그것도 청룡대가 전혀 대비되지 않은 상황에다 정작 그들은 이곳에서 날개가 꺾인 상황에서.
사마극이 한바탕 대소를 터트리고는 장내에서 사라졌다.
장후성을 비롯한 모두가 비틀거리며 백단영에게 다가왔다.
“괘, 괜찮아?”
백단영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녀의 무공은 사마극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하고 깨졌으니 그녀도 충격이었다.
그녀는 저쪽에 던져진 연검을 찾았다. 바닥에 꽂힌 연검을 보자니 마음이 아팠다.
“대단한 놈이었어.”
장후성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남궁이화가 입술을 꽉 물었다.
“언젠가는 저 녀석에게 되돌려 줄 거야.”
그들의 시선이 사마극이 사라진 쪽으로 향했다. 과연 얼마나 더 무공을 열심히 수련하면 그를 따라잡을 수 있는 걸까.
백단영을 비롯한 모두가 허탈한 심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역시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가.
“얼른 가봐야 해. 청룡대가 위험하다고 했어!”
그때 정신을 차린 장후성이 모두를 독려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정상이 아니었으나 그들은 청룡대를 도우러 가야 했다. 청룡대가 깨지면 무림맹의 앞날이 정말 암울해지기에.
***
마교 서고에서 이틀을 보낸 무흔은 삼 일째 되는 날 낮에 은옥상과 함께 마교를 떠났다.
마교 본산의 웅장한 건물을 뒤로 두고 걸음을 내딛는 무흔의 옆에서 은옥상이 불안한 듯 물었다.
“이것으로 충분해?”
“어떻게 생각해?”
무흔이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절대로 충분할 리가 없다. 은옥상이 요구한 무공을 복원하려면 해당 비급을 읽는 시간만으로도 이틀은 턱없이 모자랐다. 그녀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기에 안절부절못하는 것이다.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그녀를 향해 무흔은 미소를 던졌다.
대답은 없었으나 그 미소 하나로 은옥상은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무흔이라면 분명히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이 절로 들었다.
본산 외곽에 있는 마구간에서 맡겨둔 말을 찾고 있을 때였다.
무흔은 한 사내와 마주쳤다. 커다란 박도를 들고 마치 산적처럼 털옷을 걸친 체격 좋은 장한이었다. 장한은 지금 막 도착한 듯 그들과 반대로 말을 맡기고 있었다.
무흔은 이 장한을 어디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무림인이라면 박도를 잘 쓰지 않는다.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박도보다는 검이 낫다. 그런데도 박도를 쓰는 자는 보통 산적이나 하류 무사들이 많다.
상대 장한 역시 무흔을 보고는 깜짝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무흔의 외모는 무극서생. 다만 죽립은 쓰지 않았다.
“너, 너!”
장한이 무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제야 무흔은 상대가 누구인지 기억했다. 바로 얼마 전 용봉대를 기습하고 살아서 도망쳤던 유일한 마교인이었다. 무흔이 다른 마교인을 상대하는 동안 후연을 공격해서 상처를 입히고 도망쳤던가.
그자를 이곳 마교 본산에서 만나다니 참으로 공교로웠다.
그를 기억하는 듯한 이자를 어떻게 해야 하지? 무흔은 재빨리 주위를 살폈다.
마구간이라 다른 사람은 없었다. 무흔과 은옥상을 제외하고는 이 장한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마구간 밖에는 수많은 마교인이 몰려 있다.
장한이 이를 부드득 갈면서 박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무흔은 순간적으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이곳에서 도망치는 순간 저 녀석이 그의 정체를 폭로하며 동료를 모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흐르면 위험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저 녀석을 이곳 마구간 내부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치울 수밖에 없다.
결심을 굳힌 그의 손이 허리에 찬 묵천신검으로 옮겨갈 때였다.
은옥상이 갑자기 장한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지?”
“소, 소교주님!”
장한이 은옥상을 알아보고 허리를 굽혔다.
은옥상이 싸늘하게 다시 물었다.
“누구지?”
“서열 팔십삼 위 혈영흑수입니다. 저, 저놈은 우리를 공격했던 나쁜 놈입니다. 제가 사마극 소교주님께는 이미 알렸습니다만.”
혈영흑수가 무흔을 가리키며 은옥상에게 하소연했다.
“그래?”
은옥상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장한과 무흔을 번갈아 쓱 훑었다.
혈영흑수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 그날 제 동료를 셋이나 벴던 놈입니다. 소교주님! 위험한 놈입니다.”
은옥상이 전혀 동요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오늘 이자가 나에게 충성을 맹세해왔는데?”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적의 첩자입니다.”
혈영흑수가 무흔에게 삿대질하며 고자질했다.
무흔은 빙그레 웃는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차하면 일검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크억!”
혈영흑수가 나지막한 신음을 터트리면서 풀썩 쓰러졌다. 그의 뒤에는 어느새 북령이 나타나 있었다.
가볍게 혈영흑수를 해치운 북령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소로 응답한 은옥상이 말에 올라타며 무흔에게 재촉했다.
“얼른 가지?”
쓰러진 혈영흑수와 북령의 무공을 고민하던 무흔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말에 올라탔다.
질주가 시작됐다. 은옥상이 앞서고 무흔은 그 뒤를 따랐다.
다각 다각-
말을 타고 이동하며 무흔은 정신이 복잡했다. 같은 마교인을 조금도 거리낌 없이 죽여 입을 막아버리는 북령의 행동에 놀란 탓이다. 물론 북령은 예전에도 비슷한 행동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바로 사당에서 마교인을 죽였던 사건이다.
이것으로 마교인 하나보다 무흔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었다. 엄밀하게는 마교보다 마교 교주 자리가 더 중요하다는 권력 투쟁을 눈으로 확인했다.
한참 질주하던 두 사람은 마교에서 꽤 멀어지자 속도를 늦추었다.
은옥상이 그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왜?”
“방금 있었던 일이…….”
“별일 아냐. 나는 가장 이익을 보는 선에서 움직이니까.”
아마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그녀처럼 확실하게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흔의 의문을 읽은 듯 은옥상이 부연 설명을 했다.
“사마극도 마찬가지야. 아마 지금 사마극은 무림맹과 싸움을 시작했겠지만, 그 역시 철저한 계산속에서 움직이지. 설사 마교에는 도움이 되더라도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림맹과의 전투도 대충 수행할 자니까.”
“그 말은?”
“예를 들어 사마극이 용봉대랑 만난다면 어떻게 할까? 지난 팔곡산에서 이미 봤잖아. 아직 용봉대를 없앨 때가 아니기에 이번에도 용봉대를 그냥 내버려 둘 거야.”
무흔은 그녀의 견해를 차기 교주 자리를 위한 무한 쟁탈전에 들어갔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얼핏 잘 이해되지 않는 행태이긴 했으나, 아마 그것은 마교 특유의 가치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무흔이 중얼거렸다.
“마교에 해가 되리란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나랑 어울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인가 보군.”
***
백단영 일행이 다시 점창파 전투 지역으로 돌아가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렸다.
사마극과 헤어졌을 때 이미 동이 트고 있었던 데다 모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어 빨리 움직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이 튼 이후 시급한 내상 외상을 치료하고 나서야 그들은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전투 중에 도망치는 적군을 추적하여 전력을 다할 때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으나, 막상 다시 돌아가려니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기진맥진한 상황에서 경공을 사용해서 급히 갈 수도 없었다.
멀리 점창파의 전투 상황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그들이 이곳을 떠날 때만 해도 압도적인 우세 국면이었다. 무림맹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사마극의 경고대로 상황이 돌변해 있었다.
역시 여기저기 전란의 상흔이 가득한 점창파는 처참하게 변해있었다. 전투는 끝났고 사마련이나 마교는 물러갔다. 점창파를 위시한 무림맹 청룡대 무인들만 여기저기에 뒹굴며 간신히 부상을 치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급히 용봉대 동료를 찾았다. 전투 지역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용봉대가 모여 있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발견한 장후성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는 모용예를 힘껏 끌어안았다. 험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두 연인은 서로를 안고 살아있음을 감사했다.
“어떻게 된 거야?”
장후성이 물음에 모용예가 두서없이 전황을 설명했다.
역시나 사마극의 경고가 맞았다.
일방적으로 사마련을 몰아붙여 승리를 목전에 둔 순간 마교의 흑살대가 습격했다고 했다. 이후는 청룡대와 흑살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야밤이었고 기습이었기에 청룡대의 피해는 무척 컸으나 그래도 무림맹 최고의 부대라는 청룡대의 위상이 그저 얻어진 것은 아니었다.
“해가 뜨면서 흑살대가 후퇴했어.”
전투 결과는 비등했으나, 어찌 본다면 분명히 무림맹의 승리였다.
다만 피해가 너무 컸다. 애초에 점창파에서 수비하던 무림맹 사람들과 지원 왔던 청룡대의 절반이 무너졌으니까. 사마련과 마교도 수습 불가한 피해를 보았겠지만.
“그리고 우리는…….”
동료를 돌아보는 모용예의 안색이 어두웠다. 다시 네 명이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상자도 다수였다.
옆에서 시선을 옮기던 백단영은 나란히 놓인 사망자를 보며 착잡한 심정에 잠겼다. 그 넷은 그녀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던 동료가 아니었던가.
장후성이 주먹을 움켜쥐고 한을 토해냈다.
“다음에 사마극을 만나면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들 모두 능력이 사마극에 미치지 못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무공에서의 벽을 깨고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면 그 격차는 크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도 또 당할 수는 없으니까.
“이제 분명한 목표가 생겼어.”
용봉대 모두가 품은 오늘의 이 결심은 훗날 그들을 무림맹의 최강자로 이끌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