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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122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9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22화

122화. 옥소마희 (2)

 

 

 

걸음을 옮기는 무흔의 몸이 휘청했다.

그나마 버티고 있던 한 줌의 내력마저 사실상 소실됐다. 옥소마희 앞에서 괜찮은 척 무리한 데다 매질까지 했으니 힘이 다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지막 남은 집념 때문이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 은옥상의 전각이 보였다.

“하아, 왜 이리 머냐…….”

평상시라면 추혼천상보로 몇 걸음 떼면 도착할 거리를 지금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었다. 그나마 밤이 이슥하여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옥소마희가 어떻게 처신할지는 내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부하로 거두게 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아도 뭔가 영향은 미칠 테니. 오늘 벌어진 일은 이런 식이 최선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하아, 하아.”

점점 기운이 빠지고 걸음을 옮기기 힘들어졌다.

“자고 싶다…….”

이곳에서 쓰러지면 안 된다고 머릿속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건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일순간 멀리 보이는 전각이 두 겹 세 겹으로 겹쳐 보였다. 시야가 흐릿해졌다.

“아, 안 되는데…….”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릎이 꺾였다.

무흔이 쓰러졌을 때 그의 앞에 하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는 무흔을 안고 곧바로 사라졌다.

 

***

 

무흔은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눈을 뜬 곳은 자신의 방이었다. 언제 돌아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앞에는 은옥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깼어?”

무흔은 대답 대신 자신의 몸을 살폈다. 무극서생으로 변신했던 만변귀공이 완전히 풀려있었다. 어젯밤 내공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저절로 풀린 것이다.

벌떡 상체를 일으킨 그는 몸 내부의 혈맥이 끊어지는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다. 역시 혈우파천만겁공의 후유증은 무서웠다. 하지만 그 무공이 아니었다면 절대 옥소마희를 승복시킬 수 없었을 테니.

“어떻게 된 거야?”

“뭐가?”

“어젯밤 북령이 쓰러진 널 발견했다고 하더라.”

눈이 감기기 직전에 보았던 하얀 그림자가 북령이었나 보다.

아는 사람이었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다른 마교인이었다면 무사하기 어려운 정도가 아니고 매우 곤란한 처지에 빠졌을 것이다.

“어제 무슨 짓을 했던 거야?”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물어오는 은옥상에게 대답 대신 잔소리했다.

“넌 대체 세력이 그게 뭐냐? 어젯밤에 주요인물이 모여 회의하는데 사마극 편이 대부분이더군. 네 편은 눈 뜨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어.”

“아……, 어제 회의…….”

은옥상도 그 회의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나 보다. 그녀의 안색이 침울해지더니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

“그래도 조금은 있어. 사마극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나라면 그 수준이면 쪽팔려서라도 포기한다.”

“그래도…….”

은옥상이 뭐라고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무흔을 째려볼 뿐이다.

무흔은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만 가봐라. 나 빨리 운기조식해야 해. 오늘도 서고에 가봐야 할 것 아냐.”

“그, 그렇지.”

은옥상이 마지못해 일어났다. 무흔이 서고에 들러 비급을 살펴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북령에게 고맙다고 전해 줘.”

무흔은 문을 열고 나가는 은옥상의 뒤통수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

 

서고 앞에 도착했을 때 은옥상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옥소마희. 무려 서열 칠 위에 빛나는 그녀가 서고 출입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눈을 비벼 헛것을 본 것이 아님을 확인한 은옥상은 옥소마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옥소마희, 왜 그러고 있어요?”

그녀의 지적에 옥소마희가 몸을 움찔하며 무흔의 눈치를 봤다. 지금 무흔은 무극서생으로 변신한 상태였다.

은옥상은 금방 옥소마희와 무흔 사이에 뭔가 일이 벌어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옥소마희는 극강의 고수로 함부로 무릎을 꿇는 여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최강의 무공을 지닌 옥소마희가 그보다 못한 무흔의 눈치를 본다는 것은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은옥상의 의문은 이어진 무흔의 말로 풀렸다.

“옥소마희, 넌 무엇이지?”

“노, 노예입니다.”

옥소마소의 대답에 은옥상이 뜨악하고 놀랐다. 노예라니? 그 말은 생사여탈권부터 시작해서 모든 권리를 무흔이 갖고 있다는 뜻 아닌가.

무흔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물었다.

“그것 말고. 이름.”

“옥소마희 현가빈입니다.”

“흐음, 현가빈이라…… 이름은 예쁘네.”

“감사합니다.”

옥소마희가 머리를 깊이 숙였다.

무흔이 그녀를 쓱 훑어보며 다시 물었다.

“아프냐?”

“조, 조금 아픕니다.”

어제 맞은 엉덩이가 아프냐는 뜻이었다.

그녀를 찜찜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무흔이 은옥상에게 물었다.

“약 있어? 타박상에 좋은.”

“있는데…….”

은옥상이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냈다.

다시 옥소마희에게 시선을 돌린 무흔이 가볍게 한마디 했다.

“가빈. 까라.”

“네?”

“약 발라줄 테니 엉덩이 까라고.”

“네?”

옥소마희가 놀란 눈으로 무흔의 눈치를 보다가 엉거주춤 허리춤을 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은옥상은 더욱 기가 막혔다. 다 큰 처녀보고 엉덩이를 까라는 것도 기가 막힌 데 천하에 무서울 것 없는 옥소마희가 허리춤을 풀고 있었다.

무흔은 옥소마희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다 큰 처녀로서 쉽지 않은 행동을 요구한 이상 그녀가 어떻게 따르는지를 보면 충심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족한 무흔이 고개를 돌리며 은옥상의 옆구리를 쿡 쑤셨다.

“발라줘.”

“응?”

“그럼 내가 바를까?”

생각해보니 무흔이 다 큰 처녀의 엉덩이에 손을 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은옥상은 화들짝 놀라 재빨리 옥소마희의 뒤쪽으로 갔다.

물론 무흔은 그 장면을 볼 만큼 뻔뻔하진 않았다.

그는 뒤로 돌아 시선을 벽으로 향한 다음 말했다.

“가빈, 너 그동안 누구 편이었지?”

“저는 아무 쪽도 아니었습니다.”

옥소마희가 무슨 말인지 냉큼 알아듣고 대답했다.

무흔은 그녀에게 명령했다.

“앞으로 내가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은옥상 소교주랑 함께 해. 알겠어?”

“알겠습니다.”

옥소마희가 약을 발라주는 은옥상에게 고개를 숙였다.

은옥상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옥소마희가 자신의 편이 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서열 칠 위에 해당하는 강자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인 것은 엄청난 수확이었다. 그동안 여러 사람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물심양면으로 노력했지만 그 실적이 미미하던 차였다.

은옥상은 떨리는 목소리로 응답했다.

“고마워.”

물론 그 대답은 옥소마희와 무흔 양쪽 모두에게 였다.

 

***

 

무흔은 다시 흑의 무복으로 갈아입고 사마극으로 변장한 다음 서고에 입성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서고 관리인을 통과한 후 중요 비급이 보관되어있는 석실로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 오면서 계획했던 순서를 따라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어제와 달리 무흔은 책장에서 비급을 골라 탁자에 앉은 다음 안정된 자세로 읽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의 탁자 위에는 읽은 책이 수북하게 쌓였다.

은옥상은 입을 쩍 벌렸다. 무흔이 책을 읽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런 식으로 대충 읽으면 기억나는 것이 없을 텐데.

괜한 기우일 수 있지만 은옥상은 왠지 무흔이 미덥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라고 야단칠 수도 없어서 걱정만 억눌렀다.

그녀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비급에 집중해 있던 무흔이 조용히 책을 접었다.

“쉬는 거야?”

“계속 책만 볼 수는 없으니 잠시 숨은 돌려야지.”

은옥상이 곧바로 곁에 붙어 궁금했던 점부터 물고 늘어졌다.

“옥소마희가 갑자기 왜 우리 편이 됐지?”

“우리 편? 엄밀하게는 내 편이지.”

“어쨌든. 어떻게 그녀의 마음을 얻었어?”

과거에 은옥상 또한 옥소마희를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높은 자존심 때문에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

무흔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한번 눌러줬지.”

은옥상이 입만 쩍 벌렸다.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는 말이었으나 오늘 옥소마희가 보인 행동을 고려하면 무슨 뜻인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너…….”

배신감을 느낀 은옥상이 손가락질만 하며 말을 잇지 못하자 무흔이 피식 웃었다.

“무슨 생각하는 거야? 무공으로 눌러줬다고.”

은옥상이 인상을 더욱 찌푸렸다. 그녀가 짐작하는 무흔은 무공으로 옥소마희를 상대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음을 짐작한 무흔이 웃으면서 한마디를 붙였다.

“패를 썼더니 바로 깨갱 하더라.”

“패?”

은옥상은 패가 무슨 말인지 금방 깨달았다.

마교 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한 글자로 제목이 붙어 있는 무공 비급. 그녀 또한 익히려고 그렇게 노력했지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워 아직도 지지부진한, 난해한 무공이 아니었던가.

어제 혁무휘와의 대결에서 패를 사용한 것을 보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내력을 이용한 겨룸이고 실전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설마…… 어제 하루 읽어보고?”

“비록 심법과 어울리지 않아 본래의 위력이 감소되었지만 옥소마희를 굴복시켰지.”

“아아!”

은옥상은 감탄과 질투와 두려움 등이 얽힌 복잡한 탄식을 터트렸다.

“넌 무엇을 익히고 있다고 했지?”

“나? 류…….”

“류도 조금 난해하지? 내가 주석을 달아 풀어줄게. 원래 이 무공들의 정식 이름은 천마가 붙어 있어. 천마섬, 천마류, 천마패, 천마심 등…… 이 모든 무공은 천마심에 기반을 두고 있고.”

막힘없는 무흔의 설명에 은옥상은 생각이 복잡해졌다.

무흔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곳까지 불러들여 마교의 비급을 보여줬다. 그런데 상상 이상이었다. 어제 하루 본 것만으로 난해한 무공을 극성까지 연마해버리다니.

무흔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에 꽂힌 비급을 고르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날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 여기에 들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

 

백단영을 비롯한 용봉대 일행이 다시 합쳐졌다.

처음 서른 명에서 시작했던 총인원은 장후성 쪽에 네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현공 쪽이 한 명의 사망자가 생겨 만혈대의 사망자와 합하면 모두 십일 명이 죽음을 맞이했다.

남은 대원은 모두 열아홉 명으로 대략 6할만이 남은 상황이다.

대주인 풍사검객과 만난 그들은 무림맹의 명에 따라 점창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정사의 대치로 교착 상태에 빠진 전선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백단영을 비롯한 모두는 이제 진정한 전투에 투입된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뒤에서 암약했으나 이제부터는 정면 승부나 마찬가지였다.

“중요한 정보가 둘 있다.”

풍사검객이 대원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설명이 이어졌다.

“하나는 우리와 직접 관련된 일이다. 최근 마교 쪽에서 특수부대를 전투에 합류시키려는 의도가 드러났다. 비교적 젊은 사람들로 구성된 소규모 부대라 한다. 소교주 사마극이 지휘하고 있고 예상 밖으로 강하다고 알려졌다. 우리는 이들이 도달하기 전인 오늘, 적을 친다.”

대원들의 얼굴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마교가 상대라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앞서 죽어간 대원들 역시 마교와 싸우다가 죽었으니까.

“다른 하나는 최근 사마련의 지도부에서 이상한 조짐이 발생했다. 사마련의 중요 인물이 각각 나뉘어 새외로 넘어갔다. 현재로 봐선 대막, 안남, 서역 등지로 움직인 듯하다.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다소 답답한 상황이다.”

두 번째 내용은 용봉대와 직접 연관성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간단한 설명이 끝났을 때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그는 풍사검객을 향해 다급하게 보고 했다.

“청룡대가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젊은 용봉대답게 그들은 결의를 불태웠다.

풍사검객이 용봉대원을 향해 외쳤다.

“지난 몇 달간 점창파에서는 무림맹과 사마련이 대치했다. 오늘 그 끝을 볼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사마련을 뒤쪽에서 급습하여 그들의 중간 우두머리를 처단하는 일이다. 중간 지휘자가 죽으면 부대는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다. 여러분이 맡은 임무가 오늘 전투의 핵심이니 모두 힘내주기 바란다.”

바야흐로 용봉대가 본격적인 임무를 부여받고 전투에 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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