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2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20화
120화. 마교 서고 (4)
우우우웅-
주위가 격랑에 휩싸였다.
무흔은 상대의 무공이 광(光)이란 사실을 짐작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끌어올리는 무공은 패. 5성의 숙련도에 이른 무공이다.
예상과 달랐던 듯 혁무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대가 사마극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사마극의 전공인 패를 이용해서 반격하니 혼란스러운 것이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압력이 가중됐다. 어쩔 수 없이 무흔은 내공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현재까지 겉으로 보이는 무흔의 표정은 여유만만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표정과 달리 무흔은 전력을 다해 상대와 대등한 위력을 내뿜고 있었다.
혁무휘의 무공은 무흔이 상대할 수준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은옥상 역시 자신이 그보다 훨씬 강하다고 장담했었다. 그런 은옥상을 뛰어넘을 고수인 혁무휘라면 얼마나 강할까. 현재의 공세에는 내력을 절반이라도 썼을까.
그렇다면 사마극은? 절로 온몸에서 땀이 솟구쳤다.
젠장, 불사신승의 내력을 얻은 것만으로는 그는 물론이고 백단영도 목숨을 건사하기 쉽지 않을 듯했다. 기연을 이용해 백단영을 고수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더니 아직 한참 먼 모양이다.
우우우웅-
압력이 가중되며 대치 상황이 점차 심각해졌다. 이대로라면 사마극이 아니란 사실이 발각됨은 물론 목숨마저 위험할 수 있었다.
위기일발.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그긍-
안으로 걸음을 내딛던 은옥상이 놀라서 소리 질렀다.
“아니! 뭐하시는 거예요.”
두 사람의 대결 상황을 본 그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무것도 아냐.”
혁무휘가 내력을 거두어들였다. 그에 무흔도 덩달아 내력을 회수했다. 사실상 극한까지 몰렸었으나 그는 여유롭게 행동했다.
혁무휘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패는 대단하군. 광으로도 누르기 어렵다니.”
“패와 광으로 겨룬 건가요?”
은옥상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쩍 벌렸다.
“흠.”
혁무휘가 가볍게 콧방귀를 날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다시 석문이 닫혔다.
“하아!”
무흔은 기운이 쭉 빠져 탁자에 주저앉았다. 상대가 그의 위장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확실할까.
은옥상이 그의 옆에 앉으며 급히 물었다.
“패로 상대한 거야? 언제 패를 익혔어?”
“사마극의 무공이 패라며?”
무흔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하고는 내력을 회복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은옥상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무흔을 다시 살폈다.
“여기 들어온 지 얼마 지났다고 벌써 패를 익혀? 그것도 광을 상대할 만큼? 다행히 혁무휘가 눈치채지 못한 것 같긴 하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그녀는 그동안 무흔이 보여주었던 각종 기적 같은 일을 떠올렸다. 잔혼객을 상대하면서 혈우파천만겁공을 펼친 것이나 오늘 보여준 패 역시 모두 보자마자 바로 익혔었나…….
“정말 무공의 천재였나?”
문득 은옥상은 무흔이 두려워졌다.
***
마교 서고 방문은 하루로 끝낼 수 없었다.
서고에 보물이 잔뜩 쌓여 있는데 그냥 두고 가기엔 너무 아까웠으니까.
자연스럽게 무흔은 하루 더 머무를 것을 요구했다.
은옥상 역시 무흔이 하루 만에 필요한 비급을 모두 읽어보았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숙소.
소교주인 은옥상은 당연히 마교 내에 자신만의 숙소가 있다. 마교에서는 소교주들에게 각기 고유영역을 정해주었고, 은옥상은 자신만의 공간에 커다란 전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은옥상의 전각 주위는 그녀의 취향에 맞게 꽃들이 만발한 꽃밭으로 꾸며져 있었고, 그 주변에 세 개의 커다란 전각이 마치 호위하듯 배치되어 있었다. 바로 은옥상의 개인 호위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무흔은 그날 저녁 그 호위 전각의 이 층에 있는 빈방으로 안내됐다.
“나쁘지 않아. 아니, 아주 좋군.”
예상보다 좋은 거주 시설에 무흔이 감탄을 발했다.
여전히 딱딱한 목소리로 북령이 그에게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밤에 돌아다니시는 것은 금해 주셨으면 합니다.”
“위험한가?”
“그렇다기보단 자칫 정체가 발각될 위험이 있으니까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하지 말도록.”
그는 냉정하게 대답하고는 북령을 쓱 훑었다. 북령은 매화곡에 도착한 이후 다시 본래의 복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나름대로 궁장이 잘 어울린 것 같았는데 아쉬웠다.
무흔은 손을 휘적거려 북령을 밖으로 내보냈다.
침상에 누워 천장을 보고 있자니 점점 무료해졌다. 마교에 들어온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너무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교 본산의 성곽 모습이야 소설 내에 잘 묘사되어있어 상상하던 바와 그리 차이가 없으나 그 세부적인 환경은 많이 다를 터였다.
뒤적거리던 그는 밤이 이슥해지자 조심스럽게 밖으로 진출했다.
당연하게도 그가 머무는 전각에는 경비병 따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달빛이 은은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그는 전각 지붕 위로 신형을 날렸다.
그는 전각 지붕에 붙어 주위를 살폈다.
은옥상의 전각과 이를 둘러싼 세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이곳이 꽤 높은 지대여서 시야가 넓게 트여 있었다. 산 구릉을 따라 곳곳에 여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마교 중심에 자리한 거대한 석조건물, 천마궁 뒤편 높은 비탈에 거대한 전각이 눈에 띄었다. 배치로 보아 교주가 머무는 장소가 분명했다.
“저기를 염탐하는 것은 위험하고……."
무흔은 그 아래쪽으로 은옥상의 전각과 유사한 전각집단을 발견했다.
아마도 사마극 아니면 혁무휘의 전각일 것이다. 그 아래쪽 곳곳에 띄엄띄엄 널린 전각들은 마교의 주요인물이 거주하는 곳일 것이다.
대략적인 건물 배치를 숙지한 무흔은 밤하늘 속으로 몸을 날렸다. 전각의 지붕을 타고 그림자 속으로 스며든 그는 사마극의 전각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향했다. 엄밀하게 보면 그의 적은 마교가 아닌 사마극이었다. 그리고 현재 사마극이 마교를 비운 상황이었기에 그나마 경계가 허술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당연히 지금 그의 겉모습은 사마극이 아닌 무극서생이었다. 죽립은 물론 쓰지 않았고 묵천신검도 차지 않았다. 진회색의 어두운 복장이어서 야밤에 눈에 잘 뜨이지도 않았기에 모든 것은 완벽했다.
나무가 드리워진 정원을 지나 전각의 그림자에 숨어 이동하기를 한참 만에 그는 사마극의 영역으로 보이는 전각 군에 도착했다. 역시 가장 중앙에 자리 잡은 전각에는 불이 꺼져 있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무흔에게 그 옆에 있는 커다란 전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전각 아래층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어 누군가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무흔은 가볍게 허공을 날아 해당 전각의 지붕에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그는 처마에 매달려 창을 통해 불이 켜진 방 내부를 들여다봤다.
‘헉!’
하마터면 그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무엇보다 내부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이 엄청났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것으로 보아 초강고수들이 집결해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그는 내부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둥근 탁자가 있고 그 주위로 대략 열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회의하고 있었다.
‘야밤에 무슨 회의일까?’
점점 호기심이 일었다. 그는 기감을 끌어올려 실내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집중했다.
“오늘 이곳에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사마극 소교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소교주님은 출타 중 아니십니까?”
“소교주님께서 회의를 지시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여러분을 모았습니다.”
“구유마신께서 너무 무리하셨군요.”
이번에는 뾰족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흔은 구유마신이란 별호를 기억해 두었다. 아마도 오늘 이곳에 군웅을 모은 책임자였던 모양이다.
“하하, 옥소마희께선 탐탁지 않으신가 보군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사마극 소교주님을 향해 지지가 점점 집중되는 상황인지라.”
“나 옥소마희는 이런 식으로 패거리를 가르고 싶지 않아요. 차기 교주 자리는 소교주님들이 알아서 진행하실 문제. 우리가 분열하면 본교의 힘만 약해질 뿐이거든요.”
옥소마희의 서열이 칠 위였나? 그렇다면 이 회의를 소집한 구유마신 역시 그녀와 비등한 서열에 자리하고 있을 터였다.
낮에 옥소마희와 대면했었던 무흔은 지금 실내에 모인 인원 하나하나가 그가 대적하기 힘든 고수란 사실을 깨달았다.
“절대마령마저 사마극 소교주님 휘하로 들어온 지금 모두 얼른 지지 방향을 정하셔야 합니다.”
이어서 각종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무흔은 금방 회의의 판세를 읽었다.
모인 인원 가운데 절반이 사마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절반 가운데 은옥상과 혁무휘 지지자가 소수 있었고 옥소마희처럼 지지 자체를 드러내지 않는 자도 상당수였다.
“감히 당신이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거요?”
“나는 단지 모두의 안전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차기 교주가 확정된 후에는 이미 늦소. 알다시피 우리 소교주님은 반대파를 받아들일 만큼 아량이 많지 않습니다.”
“대놓고 협박이군요.”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구유마신의 제안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사마극 지지를 선언하여 차기 교주 자리를 향한 다툼과 혼란을 줄이자는 말이었다. 서로 대립하면 마교 전체로 보아 하등 득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무림맹과 마교의 싸움이 본격화하는 이때 교내의 내분은 빨리 잠재우는 것이 바로 충성이라는 의견이었다.
당연하게도 반대파에서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긴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현 교주이신 혈천마종께서 등극하신 후 반대파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사실상 위협이자 협박이었다.
무흔은 상세한 내력을 알지 못하지만 혈천마종이 교주가 된 후 반대파를 그냥 두지 않았다는 의미로 들렸다.
“감히 해보자는 거냐?”
설전과 고성이 오갔다. 전각 주위로 마두들이 뿜어내는 기파가 폭발적으로 일렁거렸다.
전혀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회의는 종료됐다. 전각 내부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무흔은 지붕 위에 숨어 그들이 모두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염탐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무흔은 돌아가기로 마음먹고 은옥상의 전각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직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으나 방향을 대충 잡은 다음 가옥 벽을 은폐물로 삼고 재빠르게 이동했다.
이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흔은 잘 가꾸어진 화원으로 둘러싸인 전각에 도달했다. 다른 고소가 달이 유달리 고상한 품격이 드러나는 정원이었기에 그는 전각의 주인이 궁금했다.
“은옥상은 분명히 아니고…… 누구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무흔은 전각으로 접근했다. 순간 화원에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며 시야를 방해했다. 그의 주변으로 안개가 점차 짙어지더니 급기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진법이군.”
무흔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어이없게도 가옥 주변에 펼쳐져 있던 진법에 빠진 듯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 지형지물을 상세히 살폈다.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그가 만류귀공을 통해 기초적인 진법을 익히고 있으나 여기에 펼쳐진 고난도 진법을 상대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진법에 처음 빠진 그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군.”
지금 그가 마교에 들어온 신분이 문제여서 발각되면 은옥상도 골치 아파진다. 당장 해결책도 마땅한 것이 없었다.
그가 진법에 갇혀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갑자기 눈앞에 하얀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마치 귀신이 등장하듯 그 그림자는 뚜렷한 사람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날카로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누구인가? 본교 소속인가?”
무흔은 상대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이십 대 중반의 아름다운 여인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얼마 전에 본 인물이라 낯설지 않았다.
옥소마희. 마교 서열 칠 위의 옥소마희가 퉁소를 들고 그를 향해 요사한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