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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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18화
118화. 마교 서고 (2)
무흔은 분위기를 잡은 후 은옥상에게 물었다.
“정천문 알지? 얼마 전에 멸문 당했더군. 어떻게 된 거지?”
은옥상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거 별일 아냐. 마교의 병력이 이동하다가 걸리적거리니까 친 것일 뿐.”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무흔이 안면을 계속 굳히고 있자 그녀는 다시 상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최근에 점창파에 형성된 정사의 대립은 정파와 사파의 세력이 결집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 문제 때문에 용봉대는 모여드는 사파 세력을 중간에 차단하는 강수를 뒀다. 바로 백단영 등이 맡았던 네 번의 전투가 이런 유형이다.
마교도 당연히 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핵심 고수를 보내 용봉대를 위협하는 한편 정파 연합에 합류하는 문파를 손볼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사마극이 주도하는 마교의 부대가 출정했고 그 희생양이 바로 정천문이었다.
“마교의 부대란 건 무림맹의 청룡대 같은 건가?”
“그렇다고 보면 돼. 마교에는 총 네 개의 부대가 있어. 이번에 떠난 것은 흑살대야. 사마극 휘하에 있는.”
흑살대가 떠났다는 것은 마교의 중원정벌이 본격화되었음을 의미했다.
무흔은 예전 소설에서 마교의 주력부대인 흑살대나 적살대가 중원에 등장했던 시기를 가늠해보았다.
확실히 이번이 빨랐다. 예전에는 백단영이 무공을 익히고 난 후 한참 뒤였다. 그때는 장후성과 백단영 모두 무공이 만개하여 적과 무리 없이 대적 가능했었다. 그에 비하면 이번에는 백단영의 무공은 조금의 여지가 남아 있고 장후성은 아직 멀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장후성의 성장을 가로챈 무흔 자신 때문이었지만.
“정천문의 멸문으로 정파 쪽 문파에서는 무림맹에 합류할 때 고민을 하게 되겠지. 자칫하면 문파가 습격당할 위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각 문파는 함부로 무림맹에 파견하지 못하게 되겠지. 마교가 노리는 것도 바로 그것이고.”
“정천문 하나뿐일까?”
“아니, 처음 계획은 정천문 외에 하나 더 있었어. 물론 중원에 계속 남아 작전을 수행하면 추가 대상 문파가 생기겠지만.”
무흔은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
예전의 경우라면 흑살대는 계속 중원에 남아 청룡대랑 전투를 벌였다. 이번에도 사건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마극은?”
“흑살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어. 예상으로는 다른 문파 하나를 더 해치우면서 현재 대치중인 점창파 쪽으로 이동하겠지.”
설명을 끝낸 은옥상이 이번에는 반대로 물었다.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남설약 때문에. 그 아이가 정천문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애야. 정천문 멸문 현장을 봤는데 정말 참혹하더라. 무림인뿐만 아니라 일반 민간인도 모두 죽였어. 그것도 그냥 죽인 게 아니고. 겁탈하고 죽인 아녀자도 부지기수야.”
“당연한 것 아닌가? 살려두면 오히려 화근이니까.”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북령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으니. 강자의 모든 행위는 항상 옳다는 마교 특유의 방식에 길든 탓일까. 마교의 잔혹한 행위를 줄여보려 했더니 어째 쉽지 않을 것 같다.
무흔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내가 너보다 더 강하다면 널 어떻게 다루든 상관없다는 뜻인가?”
“넌 나보다 강하지 않아.”
은옥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째 이 여자를 설득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은옥상을 통해 마교의 행동을 통제하는 일은 일단 접어두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해줘야 할 것이 뭔데?”
은옥상이 궁금한 핵심을 물어왔다.
무흔은 분명하게 대답했다.
“무공 복원을 해줄 때마다 내가 요구하는 것을 들어줘. 그리고…… 앞으로 마교의 움직임을 수시로 나에게 알려줘. 그게 너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사마극과 은옥상의 치열한 세력 다툼이 시작되면 같은 편인 무흔에게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유리하다.
은옥상 역시 이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좋아. 네가 중원에서 사마극의 세력을 약화시켜 도움을 준다면 말이지.”
은옥상의 승낙에 무흔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무공 복원은 어떻게 해줄까? 비급을 가져올 건가?”
“내가 하나씩 가져다줄게.”
무흔은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절대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더 문제인 것은 그 경우 은옥상이 필요로 하는 무공밖에 연구할 수 없다. 그로선 이런 방식은 싫었다.
“마교에 장서를 모은 곳이 있다고 했지?”
“서고가 있어. 단 핵심 무공만 모은 서고는 따로 존재해. 그곳에는 교주와 소교주밖에 들어갈 수 없지.”
즉 무흔이 출입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은옥상은 비급을 한 권씩 대여해서 가져 나올 계획이었다.
“그곳에 데려다줘. 들어가 보게.”
“불가하다니까.”
“가능해. 내가 누구냐?”
무흔의 장담에 은옥상이 고민에 빠졌다.
***
마교의 본산은 중원 서쪽의 고원지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사천에서 신강으로 넘어간 경계선 부근에 자리한 이곳은 높은 산이 연이어 늘어선 험준한 지대였다. 이런 불모지에 거대한 석조건물을 세우고 마교의 본산을 건설한 것은 인간의 힘을 벗어난 위업이기도 했다.
마교 본산의 아래쪽 낮은 평야 지대에는 일반 마교인이 살아가는 마을이 건설되어 있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대비하게 되어 있었다.
본산에 접근할수록 무흔의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마침내 거대 석조건물 앞에 도달했을 때는 그는 내심 탄성을 질렀다. 자연을 이긴 인간의 위대한 승리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흔은 무극서생으로 변장하여 은옥상과 함께 이곳에 도착했다. 물론 죽립은 벗었고 얼굴과 체형만 무극서생이었다. 소교주인 은옥상과 함께 움직이다 보니 그의 신분을 묻는 자마저 없을 만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덕분에 무흔은 마교의 내부를 상세하게 구경하며 돌아다녔다.
“저들은 나를 마교인으로 생각하나 보지?”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을 보며 무흔이 은옥상에게 속삭였다.
“이곳은 통제가 심하지 않아. 사실 이렇게 외진 곳까지 올 중원인도 없고. 가끔 마교에 입교하고자 오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혈살이마존처럼?”
“어? 정말 모르는 게 없네.”
은옥상이 신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흔의 계산으로는 아마도 지금쯤 혈살이마존은 마교에 들어갔을 것이다.
본산의 중앙에 자리한 석조건물. 바로 천마궁이란 이름이 붙은 곳이다.
두 사람은 천마궁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건물 내부는 다소 어두컴컴했다. 석벽 사방에 조각된 각종 이무기와 동물 그림이 위엄스러운 모습으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이 층으로 가면 긴 복도가 나 있어. 그 복도 끝에 서고가 있어.”
은옥상이 그의 귀에 속삭였다.
주위를 지나는 사람들이 은옥상에게 인사하며 무흔을 힐끔거렸다. 아마 무흔은 은옥상의 호위무사처럼 보일 것이다.
은옥상을 따라 움직이던 무흔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거대한 압력에 화들짝 놀랐다.
거구의 장한이 그를 노려보며 다가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깨에 멘 거대한 도끼가 눈에 띄었다. 진회색의 펑퍼짐한 마의를 입은 사내는 묘한 표정으로 무흔을 힐끔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내가 다가왔을 때 무흔은 숨 막힐 듯한 압력 속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고수였다.
장한이 은옥상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질문했다.
“소교주님, 옆에 분은?”
“아, 내가 호위로 영입했어요.”
“그러시군요.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장한이 재차 인사하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제야 무흔은 숨을 내쉬며 누구냐고 물었다.
“철력마부라는 자야. 어깨에 있는 도끼 봤지? 그자의 신병이기로 마부(魔斧)라 불려. 서열 육 위에 있지.”
서열 육 위란 말에 무흔은 장한이 사라진 곳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역시나 무시무시했다. 방금 본 그 장한과 맞붙는다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무흔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계단을 올라간 그는 그녀를 따라 긴 복도를 걸었다.
역시나 맞은편에서 새로운 인물이 나타났다.
하얀 옷을 입은 아리따운 여자였다. 얼핏 보기에 마치 선녀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얼굴 역시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나이는 스물 중반 정도 되었을까. 호선을 그린 눈썹과 붉은 입술은 미인의 전형 그대로였다. 손에는 짙푸른 퉁소를 들고 있었다.
‘절색의 미녀가 여기 또 있었네.’
무흔은 속으로 감탄하며 다가오는 여인을 힐끔 보았다. 마침 그를 쳐다보던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여인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여인에게서도 고수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무흔은 절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교주님 오랜만에 뵙네요.”
백의 여인이 은옥상을 향해 인사했다.
“옥소마희도 오랜만이에요.”
은옥상이 가볍게 인사를 받으며 그녀를 지나쳤다.
무흔은 옥소마희란 별호에 충격을 받았다.
마교 서열 칠 위이던가. 그녀가 부는 퉁소 소리는 공력이 약한 사람을 즉사시키는 죽음의 무공이었다. 젊은 여인임에도 가공할 무공을 익혀 높은 서열에 이른 입지적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만큼 잔혹하고 성정이 요사스러웠다.
“대단한 여인이군요.”
무흔의 말에 은옥상이 한차례 웃었다.
“미인이지? 마음이 동하나 봐?”
무흔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무흔은 자신의 무공에 나름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서열 육 위과 칠 위인 철력마부와 옥소마희를 만난 순간 그런 자부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적어도 그 두 사람은 현재의 그가 상대하기 힘든 무공의 소유자였으니까.
그렇다면 서열 오 위 이내의 인물은 대체 어떤 자들이란 말인가.
무흔은 새삼 걱정에 빠져들었다.
“호호, 옥소마희는 요즘 배필을 찾는 중이라지. 기본 조건이 자신보다 강한 자라는데…… 한번 도전해보지?”
“어휴, 농담은. 난 저런 여자는 한 광주리 줘도 싫다.”
무흔은 손을 저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복도 끝에 이르기 직전에 은옥상은 그를 작은 석실로 안내했다. 탁자와 의자가 비치되어있는 것을 보니 다용도로 사용되는 작은 방이었다.
“자, 여기면 되나?”
무흔은 가져온 행낭에서 검은 옷을 꺼냈다. 변신에 필요한 흑의 무복이다. 가격이 꽤 나가는 화려한 옷이었다.
“돌아서야겠지?”
“그럼 보고 있으려고 했나?”
타박에 은옥상이 몸을 돌렸다.
무흔은 흑의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는 입고 왔던 옷을 행낭에 넣고 묵천신검도 그 옆에 두었다.
옷을 입고 난 후 그는 만변귀공을 운용했다.
두둑-
그러자 체형에 변화가 생겼다. 얼굴 역시 중년 장한에서 이십 대 중반의 미남자로 바뀌었다. 그 얼굴은 바로 마교 소교주인 사마극의 얼굴이었다.
“됐어.”
그의 목소리에 몸을 돌리던 은옥상이 변화한 그의 모습에 입을 쩍 벌렸다.
“무흔?”
“어때? 감쪽같아?”
마교 서고에 들어가기 위한 무흔의 작전은 단순했다.
바로 서고에 들어갈 수 있는 신분으로 변장하는 것이다. 마침 사마극이 원정을 나간 관계로 이곳에 없는 상황. 게다가 그는 사마극을 본 적도 있었다. 바로 만혈대를 찾아가던 관도 상에서였다.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는 만변귀공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못 알아보겠어.”
은옥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사마극으로 분장한 무흔은 행낭과 묵천신검을 한쪽에 치워놓고 은옥상에게 속삭였다.
“가자.”
석실을 나간 두 사람은 서고 문 앞에 섰다.
은옥상이 서고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흔도 따라서 들어갔다.
안쪽 문 옆에 있던 서고 관리인이 두 사람을 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서고 관리인은 수염을 길게 기른 백발노인이었다. 나이가 상당히 많아 보였다.
“첫째 소교주님, 셋째 소교주님 어서 오십시오.”
역시 현재 신분이 첫째 소교주인 무흔은 전혀 제지를 받지 않았다. 무흔은 말은 하지 않고 가볍게 손을 저으며 인사했다.
“중원에 나가셨다고 들었는데 빨리 돌아오셨군요.”
백발노인의 인사는 예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