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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11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6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17화

117화. 마교 서고 (1)

 

 

 

무너진 전각과 담장이 을씨년스러웠다.

계절이 가을을 건너뛰고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 문파의 부침을 나타내는 참상은 기분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곳곳에 널린 시신과 파괴의 흔적은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무흔은 주위를 둘러보며 할 말을 잊었다.

지금까지 그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 현장을 다수 겪었다. 소규모 전투 중에 몇 사람이 죽은 경우였다. 하지만 이런 참상은 처음이었다. 이처럼 대규모로 많은 사람이 죽은 장면은 그의 뇌리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현판을 보니 정천문인가 보네요.”

무너진 건물을 뒤적이던 북령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천문은 사천 지방에 자리한 정파였다. 문도 수가 대략 백여 명에 달하는 큰 문파다. 무림맹에서도 구대 문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꽤 영향력을 행사하던 문파였다. 그런 문파가 한순간에 무너진 것으로 보였다.

정천문이 무너진 주된 이유는 문파를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였다.

문파인 가운데 무력이 강한 많은 사람이 무림맹과 사마련이 대치한 점창파로 지원을 나갔다. 그러니 정작 문에 남은 사람은 아녀자와 신참이 대부분이었다. 당연히 외부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잔인하군요.”

문파 내부에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그 말은 살아있던 사람을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하고 모두 정리했다는 뜻이다. 실로 짐승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처참한 행동이었다.

“훗날 화근을 없애려면 어쩔 수 없지요.”

북령이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무흔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쓰러진 한 장한의 가슴팍을 살폈다. 사선으로 무수하게 그어진 자상이 눈에 띄었다.

“잔인한 검법이군. 대체 어디였을까.”

정천문을 무너트린 곳이 어디인지 궁금했다. 이 부근에는 정천문을 무너트릴 만큼 실력 있는 사마련 소속 문파가 없다.

사내의 가슴팍에 그어진 상흔을 살피던 북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무흔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단서를 잡았나요?”

머뭇거리던 북령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상흔은 마교의 진마십팔검의 흔적입니다. 진마십팔검의 초식에 당하면 사선으로 그물처럼 자상이 나타나거든요.”

자상이 특이해서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무흔은 착잡한 심정으로 무너진 전각 뒤쪽을 살폈다.

두 사람은 매화곡으로 가는 도중에 무너진 마을을 보고 잠시 들린 상황이었다. 예상 밖으로 큰 문파가 무너져서 많은 사람이 죽은 참상에 무흔은 우울한 심정으로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뒤쪽 별채 주변에도 다수의 시신이 발견됐다.

무흔은 그곳에서 더욱 안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비무림인으로 보이는 여러 사람이 쓰러져 있는 광경. 아마 정천문의 가족들일 것이다. 그 가운데 일부 젊은 여자들의 시신은 겁탈당한 듯 알몸 상태였다.

무흔 뿐만 아니라 북령 또한 그런 광경에 분노를 표출했다.

무흔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교가 원래 이렇게 잔인한 짓을 일삼았던가?”

“그렇지 않아요. 지난 백 년간 마교는 사실상 중원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이것은 일부 일탈 세력의 짓일 뿐입니다.”

같은 마교인이어서였을까.

북령은 마교를 해명하는 발언을 했으나 목소리의 떨림만은 감추지 못했다.

정과 사라는 틀에 갇혀 마교와 사마련을 바라보는 무흔의 시각에서는 적절한 해명으로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굳이 다시 묻지 않았다.

한숨을 내뱉으며 무너진 전각을 둘러보던 무흔에게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전혀 없는 이곳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진 것이다.

“북령?”

무흔은 별채 담벼락에 집단이 가득 쌓인 지역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에게 다가오던 북령 역시 같은 감각을 느낀 듯 조심스럽게 그에게 눈짓했다. 짚단 부근으로 접근한 북령이 손을 휘저었다.

쌓여 있던 짚단이 흘러내리며 안에서 검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사, 살려주세요.”

짚단 안에서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어린 여자아이였다. 나이는 대략 예닐곱 되었을까. 난리 통에 짚단 안으로 숨었던 듯 모습이 엉망이었다. 이곳이 참화를 입은 때가 대략 이틀 전으로 파악되었기에 이 아이는 무려 이틀간 짚단 속에 숨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무흔이 눈짓하자 북령이 마지못해 아이를 달랬다.

“얘야, 우린 널 구하러 온 거야.”

북령은 사당에서의 사건 이후 궁장을 입고 있어 한결 여자다운 모습이었다. 불안해하는 아이를 달래기에 제격이었다.

아이가 멈칫거리며 두려운 눈으로 북령을 쳐다봤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아이는 현재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계속 짚 속에 숨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배가 고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갈등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밥 먹고 싶지 않니? 우리랑 같이 가자.”

무흔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가 몇 차례나 눈동자를 굴리며 살피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북령이 아이의 옷에 묻은 짚을 털어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가까운 친지라도 찾아줘야지.”

“이미 몰살당했는데요?”

“점창파 쪽에 파견된 정천문도가 있을 거야.”

“설마 점창파로 가시겠다는 건…….”

우려를 표하는 북령에게 무흔은 잔잔한 미소를 보냈다.

“개봉에 데려가면 돼. 거기에 무림맹이 있으니까. 무림맹에 정천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거든.”

무흔은 만약 아이와 연고가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하게 되면 연연의방에 맡길 생각이었다. 곽연연과 같은 또래라 잘 어울릴 테니까.

무흔은 두려운 눈으로 떨고 있는 아이와 눈을 맞추려고 쪼그려 앉았다.

“이름이 뭐니?”

“나, 남설약요.”

“설약? 이름이 예쁘구나.”

무흔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두 사람이 옆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자 아이가 한결 안심한 표정이었다.

“배고프지?”

남설약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흔은 아이의 손을 잡았다.

“자, 먹으러 가자.”

무흔은 아이를 자신의 말에 태웠다. 다행히 아이는 잘 따랐다. 무흔은 아이 한 명을 살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동시에 마교에 대한 불신이 더욱 짙어졌다.

 

***

 

매화곡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무흔은 남설약을 말에 태운 채 천천히 매화곡으로 진입했다. 그의 뒤에는 북령이 마찬가지로 말을 타고 따라왔다.

“아저씨, 여긴 어디예요?”

“매화곡이란 곳이다. 여기엔 북령같은 언니들이 많을 거야.”

아이답게 호기심을 드러내는 남설약의 표정은 한결 밝아져 있었다.

매화곡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계곡을 메웠던 울창한 나무숲이 점차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뿐.

무흔은 북령을 따라 곧바로 은옥상의 처소로 이동했다.

은옥상은 마침 처소에 딸린 연무장에서 수련 중이었다. 강렬한 자의궁장을 휘날리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검을 들고 이리저리 휘두르던 그녀는 무흔과 북령을 보고 곧바로 달려왔다.

“왔어?”

인사하는 북령에게 무심코 대답하던 은옥상이 북령의 옷차림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넌 갑자기 웬 궁장이지?”

“그, 그게…….”

북령이 안색을 붉히며 무흔의 눈치를 봤다. 무흔이 피식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내가 입으라고 했어. 난 선머슴이랑 같이 다니기 싫거든.”

“그렇다고 북령에게…….”

“그동안 북령은 내 수하였으니까. 불만 있냐?”

은옥상이 두 사람을 번갈아 살피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저 아이는 또 뭐야?”

“내 딸래미인데…….”

“아, 정말!”

은옥상이 빽 소리를 질렀다.

생각해보면 처음 은옥상을 무림맹에서 만났을 때 그녀의 신분 때문에 무척 두려웠었다. 사실 그녀의 성깔 역시 보통이 아니었었고. 그러던 것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농담하는 사이로 바뀌었다.

무흔은 북령에게 남설약을 맡겼다.

“설약이 좀 데리고 나가 있을래?”

남설약이 북령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가며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얼른 끝내고 나랑 놀아.”

“그래, 그래.”

둘의 이별을 지켜본 은옥상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휴, 말을 말아야지.”

무흔은 성큼 방 안으로 들어가서 그녀의 침상에 앉았다.

“그래서 급하게 부른 이유는?”

은옥상의 안색이 다소 심각해졌다. 그녀는 의자를 끌어다가 그의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절대마령이 부활했어.”

“그 말은 들었지. 그런데 절대마령이 뭐야? 강한가?”

“현재 부활한 절대마령은 모두 셋이야. 그 강함은 마교 교주를 넘어선다고 보면 돼. 사실상 현 무림에서 상대할 자는 아무도 없어.”

은옥상이 절대마령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무흔은 당연히 절대마령을 알고 있었다. 예전 소설에서도 사실상 죽지 않는 절대 무력으로 등장했었으니까. 그때도 장후성과 백단영은 절대마령 때문에 무척 고생했었다.

“약점이 없겠네.”

무흔이 우려를 표했다.

반강시와 같은 성향을 지닌 절대마령과 무력으로 부딪혀서는 승산이 없다. 물론 무흔은 그 유일한 약점을 알고 있다. 절대마령을 없애기란 사실상 불가능이기에 절대마령을 부리는 두 사람을 없애야 한다. 바로 마교 교주와 소교주인 사마극이다.

물론 그것 역시 쉽지 않다.

한풀이를 늘어놓는 은옥상을 향해 무흔이 결론을 지었다.

“결국 절대마령 때문에 차기 교주의 무게추가 사마극으로 완전히 기울었군.”

“맞아.”

“그런 상황에서 무공으로도 사마극에 뒤처지니까 일단 무공에서라도 따라 잡아보겠다, 이런 거지?”

은옥상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본적으로 은옥상의 방법은 잘못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핵심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무흔은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난 다른 방향을 고려해. 교주 자리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내에서 세력을 키우는 거야. 현재 사마극과 너의 세력이 어떻게 되지?”

그 말에 은옥상이 급격하게 풀이 죽었다. 다년간 첫째 소교주로서 입지를 다져온 사마극에 감히 비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무흔은 이참에 마교 내 세력 분포를 확실하게 알아볼 생각이었다.

“서열 일백 위 이내에서 너와 사마극을 따르는 자들의 분포가 어떻게 되지?”

“으음, 일백 위 내라면 절반은 교주 휘하 중간이라 보면 돼. 나머지 중 절반이 사마극 아래에 있고 남은 나머지를 혁무휘와 내가 반반씩이야.”

그녀의 말에 따르면 사마극이 대략 스물다섯 명가량을 포섭하고 있고, 혁무휘와 그녀가 대략 열둘 가량을 거느리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북령과 남혼도 포함되나?”

“아니, 그 둘은 온전히 내 소속이라 마교 서열에 끼어 있지 않아. 사마극의 마극삼비도 마찬가지지.”

쉽지 않은 국면이었다. 그나마 비벼보려면 둘째 소교주인 혁무위와 연합전선을 펴야 하나.

어쨌든 중요한 점은 마교 내부에서 차기 교주 내분이 격화될수록 백단영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무흔이 이곳에 온 이유도 무공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을 제외한다면 그 점이 가장 크다.

“그래서 내가 할 일은?”

은옥상이 목소리를 낮추어 조용히 속삭였다.

“마교 내부에는 백 년 전 정마대전 이후로 실전된 무공이 다수 있어. 지난번에 보았던 혈우파천만겁공처럼 두 권 중 한 권이 소실되고 한 권만 남아 있다거나 이런 식이야. 그 무공을 복원시켜줘.”

“그 무공을 익히면 사마극을 능가할 수 있나?”

“난 그렇다고 생각해. 그 무공 가운데는 진정한 마공도 상당수 있으니까. 내가 사마극보다 더 강해지면 나를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날 거야.”

은옥상의 노림수가 분명히 드러났다.

물론 무흔도 내심 흐뭇했다. 그 과정에서 그도 마찬가지로 진정한 마공을 익히게 되는 거니까.

“도와줄 거지?”

“물론 도와줄게. 대신에 너도 나에게 해줄 게 있어.”

무흔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요구했다.

은옥상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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