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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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16화
116화. 북령 (4)
점원이 술 단지를 땄다.
“오!”
구진광이 술 단지에서 퍼지는 향기에 감탄사를 발했다. 말이야 명주라지만 이 동네에서 대충 담근 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향기가 실로 오묘했다. 절로 호기심이 더욱 깊어졌다.
작은 사발에 부은 술이 맑고 투명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보기에도 좋잖습니까?”
사발에 담긴 술을 건네받은 구진광이 향기를 맡았다. 그의 입이 옆으로 쭉 찢어지며 감탄을 발했다.
“캬, 향기만으로도 녹네, 녹아.”
술을 살짝 넘겨 목축임을 하면서 맛을 보던 구진광이 단숨에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좋네, 좋아. 여기 한잔 더 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쭉 돌리게.”
술맛을 극찬하는 구진광에게 옆에 있던 팽수아가 웃음을 머금으며 물었다.
“그렇게 술이 좋은가요?”
“드셔보세요. 아팠던 곳이 싹 낫는 기분입니다. 하하.”
점원이 이때다 싶었는지 사발에다 술을 따른 다음 모두에게 한 잔씩 돌렸다. 각자의 앞에 술이 담긴 사발이 놓였다.
스님이라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후연은 술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백단영은 술을 보기만 했다. 못 마실 것은 없지만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았다.
장후성 역시 부상 때문에 술을 멀리했다.
제갈수는 먼 길을 가야 할 판국에 술이 나오자 안면을 찌푸렸다.
“자자, 듭시다.”
구진광이 잔을 들고 건배를 외쳤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기엔 모두가 꺼림칙했으나, 외면하기에는 술 향기의 유혹이 너무 심했다. 결국 후연과 백단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술잔을 입에 댔다.
“캬, 좋구나.”
구진광의 감탄에 모두가 동의했다. 술은 대단히 맛있어서 몇 단지 사 들고 가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장후성은 맛만 보고 잔을 내려놓았다.
“자, 여기 더 있으니까 알아서 드십쇼.”
점원이 새 술 단지 하나를 탁자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술맛이 제법 있었으나, 떠나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더 마시지 못하고 그들은 밥을 먹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떠납시다.”
제갈수는 일어서는 순간 몸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안색이 변하는 그를 본 일행은 급히 자신의 몸을 점검했다. 내력이 일어나지 않았다.
“산공독이다!”
제갈수의 눈이 국밥과 술잔에 멎었다. 과연 어디에 독을 탔던 것일까.
“난 괜찮아요.”
술을 마시지 않은 후연이 자신의 무사함을 알렸다. 백단영 역시 당연히 중독될 일이 없었고 술을 거의 마시지 않은 장후성도 괜찮았다.
“젠장! 술에 독이 들어있었어!”
구진광이 분개하며 탁자에 놓인 술 단지를 내리쳤다.
콰직-
술 단지가 깨지면서 술이 사방으로 튀었다.
푸스스-
그러자 술이 튄 지점이 시커멓게 변색되며 검게 변했다.
“뭐, 뭐야?”
“독이다! 술 단지에 독이 들어있었어!”“우리가 마신 독과는 다른 독인데?”
모두가 혼비백산해서 정신없이 외쳤다. 아직 강호 경험이 미천한 용봉대는 독으로 기습을 당한 일이 처음이었기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주위에 뿌려진 독에서 검은 연기가 이는 것을 본 그들은 모두 뒤로 물러서며 구진광을 노려보았다. 오늘 술을 마시자고 한 것도 구진광이었고, 단지를 깨트린 것도 그였기 때문이다.
“나, 난 아냐!”
구진광이 다급하게 손을 젓는 가운데 실내에 괴소가 울려 퍼졌다.
“크흐흐흐!”
모두의 안색이 싹 변했다.
객잔 문이 열리고 여섯 사람이 들어왔다.
황삼을 입은 중년인으로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초로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마르고 홀쭉했고 눈썹이 양쪽으로 치켜 올라가서 인상이 사나웠다.
“흐흐, 네놈들이 먹은 술에는 산공독이 타 있었다. 내력 운기가 안 되지? 적어도 하루 동안 운기가 어려울 것이다. 흐흐.”
인상 사나운 노인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네놈은 누구냐?”
제갈수가 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 어차피 죽을 테니 알려주지. 만독사신이라고 한다. 마교 서열 삼십 위다.”
모두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독에 당한 데다 눈앞의 상대가 마교인이었고 그것도 무려 서열 삼십 위나 됐다. 물론 그들은 마교 서열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기에 어느 정도의 위치인지 알지 못했으나 마교 같은 거대 집단에서 삼십 위라면 대단한 고수가 분명했다.
“감히 독을 쓰다니! 천하에 비열한 놈!”
남궁이화가 상대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가소로운 듯 만독사신이 피식 웃더니 그녀를 향해 가볍게 손을 저었다.
푸슉-
미세한 암기가 허공을 날았다.
“우모침이다!”
제갈수의 경고에 남궁이화가 급하게 상체를 숙였다. 그녀를 스친 우모침이 뒤쪽의 나무기둥에 박혔다. 정작 놀라운 일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푸스스-
우모침에 독이 발라져 있었던 듯 나무가 시커멓게 변색되며 검은 연기가 일었다.
“이, 이런!”
예상 밖의 위력에 남궁이화는 경악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만독사신이 대소를 터트렸다.
“크하하! 본좌는 만독의 제왕이다. 본좌가 만진 모든 물건에는 독이 묻어 있지. 오늘 너희들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게 되리라.”
슈슉-
다시 우모침이 허공에 뿌려졌다.
용봉대는 침을 피하느라 혼비백산했다. 가공할 독의 위력을 본 상황에서 감히 만독사신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위험을 감지한 장후성이 전면에 나섰다. 다른 사람과 달리 산공독에 거의 중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타개하려면 결국 독에 중독되지 않은 사람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했다.
장후성이 선두로 나서자 후연과 백단영도 앞으로 나섰다. 산공독에 중독되지 않은 세 사람이었다.
“크크, 자신감이 넘치는군.”
만독사신이 가소로운 듯 세 사람을 노려봤다.
독에 면역이 없는 신참내기를 다루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설사 그들의 무공이 자신보다 훨씬 높더라도 독은 그 모든 차이를 가볍게 뒤집을 수 있으니까.
만독사신이 가볍게 손을 젓자 다시 우모침이 날았다.
파파파팍-
세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한 발 뒤로 물러서고 발아래에 박힌 우모침에서 검은 연기가 일었다.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세 사람을 비웃으면서 만독사신은 부하에게 명령했다.
“저 세 놈부터 족쳐라!”
다섯 녀석이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녀석들의 기세는 평범하지 않았다. 그들은 달려들기 직전에 독주머니를 뿌렸다. 발아래에 떨어진 주머니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숨을 막아.”
장후성이 옷가지로 코와 입을 막으며 일갈했다.
검은 연기가 어떤 위력을 보이는지 알 수 없기에 그들은 쉽사리 대응할 수 없었다. 다섯 장한이 비웃음을 터트리며 검을 휘둘러왔다.
물러서던 장후성이 분노를 터트리며 일장을 날렸다. 상대는 가볍게 일장을 피한 후 검을 찌르며 공격해 들어왔다.
쨍!
검이 부딪치며 장한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장후성은 상대를 검법에서는 압도했으나 쉽사리 상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독연 때문이다.
남은 네 장한이 백단영과 후연을 공격해 들어왔다.
백단영은 부아가 치밀었다. 이대로 밀릴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만독불침이기에 이런 독에 겁먹을 필요가 전혀 없음을 상기하고는 연검을 들었다.
그녀의 행동을 비웃으며 장한이 독연이 든 주머니를 던졌다. 백단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주머니를 갈랐다.
피시식-
주머니가 터지면서 독연이 그녀 주위로 팍 뿌려졌다. 순식간에 그녀는 독연에 휩싸였다.
“단영아!”
놀란 남궁이화가 소리 질렀다.
옷 일부에 구멍이 생기며 검은 얼룩이 지는 현상을 발견한 백단영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의 피부에는 아무런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완벽한 만독불침이었다.
독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낸 그녀는 앞으로 튀어나가며 연검을 휘둘렀다. 뒤로 물러날 줄 알았던 그녀가 공격해 들어오자 장한은 대응하지 못했다.
서걱-
연검이 허리를 가르고 장한이 나무토막처럼 무너져 내렸다.
“헉?”
주변의 다른 장한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슈아악!
백단영의 연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야말로 빛의 속도였다. 허공에 은빛 검광이 번쩍이자 남아있던 만독사신의 부하 넷의 목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백단영의 실력에 만독사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독연 속에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활약하는 그녀의 모습에 독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챘다.
“이년이!”
만독사신은 이 전투의 승패가 백단영의 처리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마치 사자처럼 길게 손톱이 자라난 손가락을 앞세워 그녀를 공격해 들어갔다. 놀라운 위력의 용조공이 펼쳐졌다.
만독사신은 독을 제외한 다른 무공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공격이 백단영의 연검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번쩍-
연검의 광휘가 눈앞을 채우는 순간 용조공을 펼치던 손톱이 싹둑 잘려나갔다.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만독사신은 기겁하고 무공을 바꾸었다. 독을 바른 단검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 허공을 날았다.
백단영은 허공에 뛰어올라 만독사신을 검으로 공격하던 상황. 예전 같으면 몸이 뜬 상태여서 날아오는 단검에 전혀 반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무흔천상보를 익힌 지금은 달랐다. 허공에서도 그녀는 미끄러지듯 자유롭게 몸을 움직였다.
단검이 그녀의 허리를 스치듯 날아가서 뒤쪽의 천장에 박혔다. 천장이 검게 물들면서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백단영은 객점 내부 기둥을 발로 박차고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연검을 앞세워 비조처럼 만독사신을 향해 날아갔다.
챙!
다시 단검으로 백단영의 연검을 막아낸 만독사신은 그녀의 얼굴을 향해 단검을 뿌렸다. 단검에서 검은 독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그녀를 위협했다.
백단영은 상대의 단검술이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바로 알아봤다.
게다가 단검 끝에서 뿌려진 독이 끊임없이 그녀에게 날아오고 있어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웠다. 산공독에 중독된 동료들은 주저앉아 운기하려 애쓰고 있었고 장후성과 후연은 독연 때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내에 독이 퍼지는 속도를 생각하면 한시가 급했다.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백단영은 천상비연검법을 펼쳤다. 사실상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한 수였다.
역시 천상비연검법은 신묘했다.
만독사신의 단검술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방어막을 뚫고 들어갔다.
“크윽!”
만독사신의 오른팔이 잘려 날아갔다. 단검을 손에 잡은 팔이 바닥 저편에 떨어졌다.
목숨의 위험을 느낀 만독사신이 재빨리 몸을 돌려 도망쳤다. 녀석이 창문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이를 놓칠 백단영이 아니었다.
독을 부리는 자는 지극히 위험하다. 그녀는 전력을 다해 무흔천상보를 펼치며 만독사신이 빠져나간 창문으로 몸을 날렸다.
객잔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저쪽에서 만독사신이 도망치고 있었다.
백단영은 다급하게 연검을 휘둘렀다. 연검 끝에서 검기가 뿌려졌다.
“크악!”
무려 십 장 밖에서 달아나던 만독사신의 등이 갈라지며 그대로 무너졌다. 독으로 기세등등하던 마두의 최후치고는 허망했다.
백단영은 호흡을 고르며 연검을 허리에 찼다.
객잔 안에서 동료들이 뛰어나왔다.
“단영아! 괜찮아?”
백단영은 대답하지 않고 쓰러진 만독사신을 조용히 주시했다.
다른 용봉대원들은 만독사신이 죽은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심적 여유가 생긴 그들은 그제야 백단영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구진광이 가장 먼저 의문을 표했다.
“독에 당하지 않았어?”
“난 내성이 있어서 이런 독에는 영향을 받지 않아.”
그녀의 싸늘한 대답에 구진광이 움찔하며 물러났다.
백단영은 구진광을 의심의 눈으로 쳐다봤다. 오늘 독이 든 술을 권한 것도, 술 단지를 깨트려 객잔에 독을 뿌린 것도 바로 그다. 하지만 이놈이 만독사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었다.
구진광을 향한 의심을 접어둔 백단영은 몸을 돌렸다.
“난 옷부터 갈아입고 올게.”
그녀의 옷은 독 때문에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백단영이 사라지자 용봉대원들은 의견을 나누었다. 모두 백단영의 무위에 놀란 탓이었다. 지난번 번승과의 전투 이후로 그녀가 보여준 무위는 실로 놀라웠으니까. 물론 그들은 그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자, 출발 준비합시다.”
일정은 그대로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