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14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14화
114화. 북령 (2)
백단영의 보법 연습이 끝났을 때 무흔은 그녀가 완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여러 면에서 딱히 약점을 잡기 힘들 정도로 성장했다. 아마 지금 수준은 용봉대 내에서 사실상 최강자의 위치에 이른 것이 아닐까.
마교를 만났을 때 그녀는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까. 실전에서는 무공 수위뿐만 아니라 경험이나 순간 판단력 및 과단성 등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비록 백단영의 실전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교 서열 삼십 위권까지는 대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사마극을 비롯한 마교 최강자에 비할 수준은 아니지만, 위험 순간이 닥치더라도 제 한 몸 건사할 능력은 되어 보였다.
검을 거두고 헉헉대는 그녀를 향해 무흔은 질문했다.
“아가씨께선 무공을 왜 배우시나요?”
어찌 보면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갑작스러운 물음이었음에도 백단영이 바로 대답했다.
“어릴 때부터 무공 배우는 것이 좋았으니까. 상단에 무공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으니까.”
백가상단의 처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대답이기도 했다.
“그래서 목표는요? 이제 거의 달성한 것 아닌가요?”
“그런가?”
그녀가 용봉대에 입대한 이유는 버젓한 무공 하나쯤은 익히고 싶어서였다. 적어도 구대 문파 절기에 준하는 유명 무공 말이다. 이번에 천상신모의 진전을 이었으니 그녀의 바람에 비하면 과하다고 할 정도로 목표를 달성했다.
“난 아직 남았는데.”
“뭘 더 하고 싶은데요?”
“으음.”
백단영이 잠시나마 생각에 잠겼다.
무흔의 목표는 지극히 단순하다. 그녀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다.
예전처럼 사마극에게 죽지 않으면 된다. 이제 웬만큼 무공이 높은 수준에 도달한 이상 특별히 무리하지만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의 목적은 달성되고…… GOD 작가는 그의 소원을 들어줄 것이다. 백억? 천억? 얼마를 부르든 이뤄준다고 했다.
GOD 작가가 사기 친 게 아니라면.
그가 뿌듯한 생각에 잠겨있을 때 백단영의 답변이 돌아왔다.
“마교를 없애고 싶어.”
“커윽.”
무흔은 사레가 걸린 듯 기침했다. 아니, 이 여자는 하필이면 왜 가장 위험이 큰 쪽으로 가려 할까. 그냥 목숨만 건지면 된다니까. 가늘고 길게. 그런 것도 모르나?
“왜 하필이면 마교죠?”
“나쁜 놈들이잖아. 난 정의를 수호하는 무림맹 출신이니까, 그런 자들을 내버려 두면 안 되거든.”
“진정이세요?”
무흔은 가자미눈을 하고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당연하지. 난 목숨을 걸고 마교랑 싸울 거야.”
“무림의 평화를 위해?”
“응.”
무흔은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여자가 언제부터 저렇게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표정을 보니 장난으로 한 말 같지 않아 더 문제다. 아무래도 작전을 재검토해봐야 할 것 같다.
고개를 젓는 무흔을 본 백단영이 심상찮은 표정으로 그를 툭 쳤다.
“너, 뭔가 숨기는 거 있지? 그것도 마교랑.”
눈치 하나는 귀신이다. 어차피 보고해야 할 일이라 무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어디?”
“매화곡요.”
매화곡은 서옹이 마교랑 연관되어 있다고 주지한 바가 있다. 물론 은옥상이 마교 소교주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직 없다.
매화곡 소리가 나오자마자 백단영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또 은 소저 만나러 가는구나?”
“거기에서 무공 연구할 일이 있어요.”
무흔의 변명에 백단영이 혀를 차며 눈썹을 치켜떴다. 무흔이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까 백단영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알았어. 잘 다녀와. 정신 뺏기지 말고.”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그녀는 몸을 돌려 객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무흔은 그녀가 들어간 객잔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용봉대는 동료의 죽음으로 입은 충격을 추스르기 위해 며칠간 이곳에 머문 다음 이동한다고 했다. 다시 개봉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마교와 대립한 최전선으로 이동할지 알 수 없으나 일단 다른 조와 합류해야 한다.
무흔이 굳이 따라다닐 필요는 없다.
그는 매화곡으로 갔다가 나중에 예속 부대에 합류하면 된다.
어차피 떠나려면 빨리 가는 것이 낫다. 인사할 다른 사람은 없기에 그는 바로 몸을 돌렸다. 이 밤에 바로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얼마나 걸었을까.
십 리 이상 용봉대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한 무흔은 관도로 접어들기 전 잠시 눈을 붙이기로 했다.
바위에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자니 백의를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북령이다.
“이제 매화곡으로 쭉 가시면 되는 거지요?”
무흔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옆자리를 가리켰다.
“여기 와서 앉지?”
“저는 괜찮습니다.”
확실히 북령은 은신과 호위에 최적화된 인간으로 보였다. 그동안 그를 계속 따라왔음에도 거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으니.
무흔이 한 번 더 옆자리를 가리키자 마지못해 옆에 와서 앉았다.
“마음이 놓이지 않네.”
무흔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백단영을 홀로 버려두고 움직이자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뜻이다.
“오늘 보니 백 소저랑 애틋해 보이더군요.”
“너도 그렇지 않나?”
무흔은 북령과 동병상련을 느꼈다. 그는 백단영의 호위무사이자 서동이고 북령은 은옥상의 호법이다.
“저는 아가씨에게 충성할 뿐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떨어지고 싶지 않아. 너도 지금 떨어져 있으니 비슷한 심정 아닌가?”
무흔의 물음에 북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은 소저랑 이렇게 떨어져 있을 때가 자주 있나?”
“거의 없습니다.”
“그럼 오랜만에 떨어졌으니 내 마음을 알겠군.”
과연 알까. 은옥상과 북령은 단순한 주종관계일지 모르지만, 그와 백단영은 그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다.
“지금은 남혼이 은 소저랑 같이 있나?”
남혼북령. 남혼은 은옥상의 호법이다. 남혼이란 말이 나오자 북령이 움찔 놀랐다. 무흔이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한 표정이었다.
무흔은 옆에 자란 풀을 꺾어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했다.
“이제 떠나기로 했으니 몇 가지만 말해두기로 하지. 먼저 내가 매화곡으로 가는 중요한 조건 기억하지?”
무흔의 질문에 북령이 멀뚱거리며 다시 그를 쳐다봤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무흔이 피식 웃었다.
“용봉대에…… 아니, 우리 아가씨에게 더는 위험이 없다고 네가 장담했기에 가는 거야. 기억하지?”
북령은 추가적인 마교의 기습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 기억을 떠올린 그녀는 미미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전제 조건이 무너지면 곤란해. 그리고 내 요구조건을 말해줄게. 먼저 내 앞에서 몸 숨기지 마. 네가 평소 은신해서 아가씨를 호위하는 건 알겠는데, 난 안 보이는 거 딱 싫어해. 알았어?”
북령이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을에 도착하면 말을 두 필 사. 말 타고 갈 거니까. 말 살 돈 있어?”
“네.”
“이왕 사는 김에 네 옷도 하나 사라.”
“그건 싫습니다.”
북령이 바로 거부했다.
“왜?”
“지금 차림으로 아가씨를 계속 호위해왔으니까요.”
“그러니까 한번 바꿔보라고.”
“지금은 싫습니다.”
“끙.”
못마땅한 표정으로 북령을 훑어보던 무흔이 한발 물러섰다.
“어쩔 수 없지. 하여튼 잘 생각해보라고.”
무흔은 말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생각해보면 북령과 같이 가는 긴 여행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
날씨가 나빠졌다.
오전 내내 흐리던 하늘이 저녁이 되면서 먹구름이 짙어지더니 급기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한여름처럼 많은 비는 아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제법 양이 많았다.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것 같지 않고 기온도 떨어져서 온몸에 추위가 엄습했다. 어느새 계절이 가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용봉대를 떠나고 이틀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흔은 북령과 말을 타고 관도를 달렸다. 점점 주위는 어두워지고 관도 역시 질퍽거려 더는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옷도 완전히 비에 젖었다.
“오늘은 이 부근에서 쉬어가야 할 것 같아.”
이곳 부근에는 큰 마을이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던 차였다. 무흔의 제안에 북령이 군말 없이 그를 따랐다.
무흔은 관도를 벗어나 인근 산길로 말을 돌렸다.
인가가 없으니 비를 피할만한 곳을 찾는 것이 우선이었다.
산길 중턱에 작은 사당이 보였다. 작은 사당이었으나 둘이서 비를 피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무흔은 사당에 도착하자 말에서 내려 뒤따라 온 북령에게 말고삐를 건넸다. 북령이 사당 옆 나뭇가지에 말 두 마리를 매어놓고 그를 따라왔다.
두 사람은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 시간 버려진 곳인 듯 사당 내부는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했다. 사당 한쪽에는 공자와 닮은 학자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모닥불이라도 피워야겠어.”
무흔이 지시를 하기도 전에 북령이 뛰어나갔다.
무흔은 밖에서 뛰어다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 북령이 적당히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중앙에 쌓았다.
생각보다 일을 잘한다는 생각에 계속 보고 있자니 북령이 손가락을 쓱 비벼서 나뭇가지에 불이 붙었다. 절정에 달한 삼매진화였다.
‘북령의 무공 수위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군.’
적어도 그보다 하수는 아닐 것 같다는 추측이 강하게 들었다.
그렇다면 남혼의 무공 역시 북령과 비슷할 것 아닌가. 은옥상이 엄청난 두 고수의 호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바로 사마극 때문이다.
사마극의 주위를 마극삼비인 풍, 우, 뇌 세 사람이 호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아마 마극삼비의 무공이 북령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극강의 고수 셋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득한 느낌이 먼저 들었다. 현재의 무공으로는 아직 멀었다.
모닥불이 타오르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불을 쬐었다.
무흔은 모닥불에 비친 사당 내부를 둘러보다가 북령에게 시선을 옮겼다. 불빛에 비친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다만 비에 젖은 하얀 옷이 무척 고혹적이었다. 특별히 옷 내부가 비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젖은 옷이 팔과 다리에 들러붙어 그의 시선을 끌었다.
그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북령이 얼굴을 붉히며 몸을 웅크렸다.
“출발한 지 이틀 만에 이 고생이니 앞날이 깜깜하군.”
무흔은 투덜대며 나뭇가지를 불에 집어 던졌다. 모닥불이 더욱 활활 타올랐다.
“원래 말이 그렇게 적나?”
“아가씨의 그림자가 되다 보니 그렇게 되더군요.”
북령이 단순하게 대답했다.
은신해서 호위하는 일이 주 임무이니까 이해되긴 했다.
할 일이 없어 모닥불만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사당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안으로 세 사람이 쓱 들어왔다.
“형씨, 같이 불 좀 쬡시다. 비가 많이 와서 말이지요.”
나타난 인물들이 양해를 구하고는 모닥불 옆에 앉았다. 어쩔 수 없이 북령이 무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흔은 나타난 세 사람을 살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삼십 대 장한들이었다.
그런데 슬쩍 곁눈질로 세 장한을 본 북령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