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48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48화
148화. 천향무후의 신위 (4)
혈소에서 음악이라 부를 수 없는 날카로운 소음이 울려 나왔다. 순간 멸겁검왕을 향해 일검을 날리려던 백단영의 상체가 한차례 휘청했다.
놀랍게도 광혼혈소의 음은 주변 관중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고 오직 목표한 백단영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백단영은 일검을 날리는 순간 날카롭게 귓전을 엄습하며 폐부에 비수로 찌르는 충격파를 가하는 혈소 소리에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다. 그녀는 무시무시한 마두가 싸움에 합세했음을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물러설 수 없는 노릇이다.
그녀는 재차 내력을 끌어모아 음공에 대항하면서 멸겁검왕을 향해 벼락처럼 일검을 퍼부었다.
콰앙-
연검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멸겁검왕을 환상적인 검초로 공격했다. 순간 다시 혈소의 음공 공격이 들어왔고 백단영의 신형이 휘청했다.
그 틈을 타고 기세를 회복한 멸겁검왕의 검이 연검을 쳐내며 그녀를 압박했다. 백단영은 무흔천상보로 신형을 한 바퀴 회전한 다음 이번에는 광혼혈소를 공격해 들어갔다.
깡!
연검과 혈소가 맞부딪치며 섬광이 번쩍이는 순간 등 뒤로 멸겁검왕의 살초가 뿌려졌다.
백단영은 뒤를 향해 벼락처럼 연검을 휘둘렀다. 강력한 검강이 멸겁검왕에게 날아갔다.
순간 백단영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광혼혈소의 공격을 신경 쓰느라 검강 본래의 위력이 다소 바래졌다. 과연 두 초강고수의 합공은 상상치 못할 위력을 뽐냈다.
‘쉽지 않다!’
백단영은 뜻대로 풀리지 않는 상황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허공에 뜬 그녀는 마치 선녀가 하강하듯 흰옷을 휘날리며 연검으로 재차 멸겁검왕을 치러 들어갔다.
그 모습이 워낙 인상 깊었기에 군중들은 입을 벌리고 눈을 떼지 못했다.
콰아앙-
삘리리리-
폭음과 동시에 혈소 소리가 장내를 메웠다. 혈소의 음공이 백단영에게 약간의 충격을 준 듯 그녀의 상체가 한바탕 경련을 일으켰다.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 계속됐다. 그 누구도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는 생사를 건 전투가 이어졌다.
무흔은 내심 깜짝 놀라고 있었다.
백단영이 성장했다고 생각했지만, 현 무림 최강고수에 속하는 멸겁방주와 광혼곡주를 상대로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비록 두 사람을 상대하는 바람에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현 무림맹에서 그녀보다 더 강한 자가 누가 있을지 상상해보면 가슴이 벅차올랐다.
주변 군웅들은 대부분 눈이 튀어나와 있었다. 검강을 자유롭게 펼치는 초강고수가 불과 나이가 스물밖에 안 되는 앳된 여인이라니. 그것도 천하에 짝을 찾기 어려운 미녀가 아닌가.
“대체 저 여자가 누구야?”
“백단영이라던데?”
“완전히 천상선녀다!”
“끝내주네! 저 여자보다 더 강하고 더 아름다운 여자는 본 적이 없어!”
군웅들 사이에서 감탄사와 경외심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별호가 뭐야?”
어떤 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직 백단영에게는 별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무흔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일후 천향무후! 천향무후 백단영!”
“아! 천향무후?”
사람들이 너도나도 천향무후란 별호와 연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연결지었다. 이것으로 그녀의 별호는 천향무후로 각인될 것이다.
예전 소설에 보면 원래 천향무후란 별호는 훗날 마교와 직접 맞서면서 얻게 되었다. 나중에 얻든 지금 얻든 어차피 중요하지 않기에 무흔은 군웅들 사이에서 천향무후를 연호하며 각인시켰다.
싸움은 절정에 이르렀다.
둘과 맞서면서 백단영은 기세는 한풀 꺾였다.
특히 광혼마소의 음파를 이용한 공격은 매우 특이해서 백단영은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광혼마소의 공격이 점차 중첩되면서 그녀는 검법을 펼칠 때 지장을 받았음은 물론 내상의 징후마저 나타났다.
‘이런 상태로는 버티기 어렵다!’
백단영은 먼저 하나를 처리한 후 남은 자를 처리한다는 결심을 굳혔다.
일격필살!
그녀는 천상비연검법의 최고 초식에 전 내공을 담았다. 마침 멸겁방주가 그녀를 공격해 들어왔다. 그녀의 검강이 폭포수처럼 상대를 향해 퍼부어졌다.
콰아아앙-
상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멸겁검왕은 황급히 검으로 그녀의 공세를 막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그녀의 공격은 더 엄청났다. 멸겁검왕의 검이 잘려나가며 검강이 가슴까지 파고들었다.
사실상 멸겁검왕을 끝장내는 한 수였다.
그 순간 혈소의 음공이 파고들어 전혀 방어되지 않은 백단영의 내부를 뒤흔들었다.
“크윽!”
백단영은 커다란 내상을 입고 한 모금 피를 쏟았다. 멸겁검왕이 쓰러지고 백단영이 피를 쏟는 일이 거의 동시에 발생했다.
음공을 날린 광혼혈소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다!”
상대의 내상이 깊다면 사로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위험한 순간 백단영은 신형을 틀어 광혼혈소를 향했다. 그녀의 손에서 휘둘러진 연검이 번개처럼 광혼혈소를 향해 뻗었다. 어지러운 변화를 내포한 채 강력한 검강이 혈소를 내리쳤다.
깡!
혈소와 검강이 부딪히며 섬광이 폭발했다.
순간 광혼혈소는 등을 파고드는 엄청난 압력을 느꼈다. 정면에서 백단영의 검강을 상대하는 중이었기에 사실상 무방비였다.
이 강력한 압력은 수십만 개에 달하는 강기의 파편이 무형화하여 광혼혈소의 등을 그대로 꿰뚫었다. 물론 군중들의 눈에는 이런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크윽!”
광혼혈소는 피 분수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의 상체가 산산조각으로 산화되며 허공으로 비산했다.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장렬한 최후였다.
연검을 거두던 백단영은 광혼혈소 뒤에 멀찌감치 떨어져서 응원하는 무흔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금방 눈치챘다. 광혼혈소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무흔의 천강무흔비였다.
장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정파의 신진 여고수가 사파의 최강고수 둘을 동시에 처단하는 이 순간을 그 누구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눈으로 본 것은 진실이었기에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이미 방주를 포함하여 사실상 궤멸하다시피 한 멸겁방은 전혀 존재감이 없었고, 곡주가 죽은 광혼곡은 제자들이 모여들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백단영은 주변을 둘러싼 군웅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겁에 질린 군웅들이 절로 뒤로 물러났다. 누구도 그녀에게 복수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사마련의 최고 정점을 차지한 두 방파의 우두머리와 한 방파를 사실상 박살냈으니 이만하면 충분한 것일까. 살상을 즐기지 않는 백단영은 추가로 피를 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백단영이 걸음을 옮기자 겁에 질린 군웅들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내주었다.
그녀는 충격과 경외의 눈빛을 받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녀의 뒤로 무흔과 풍소가 따라갔지만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다. 그만큼 백단영의 신위는 충격적이었다.
***
복양의 만복객잔.
복양에서 가장 큰 이 객잔에 무흔과 백단영이 앉았다. 그들의 옆에 풍소가 덤으로 자리했다.
온몸이 피에 젖은 백단영은 그사이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녀의 하얀 백의는 연노란색의 궁장으로 바뀌었다. 얼핏 보면 무림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그녀의 외양이 화사하게 변했다. 무림삼화라는 명성에 어울리게 정말 그 미모가 화려했다.
“우와, 형과 누나라 불러도 되죠?”
풍소의 눈에는 호감이 가득했다.
낭인으로 전전하는 동안 강한 무공을 배우기 위해 무척 노력했다. 물론 그에게 무공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차에 꿈에도 그리는 고수를 만났으니 그의 눈에 백단영이 남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다.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라기보다 강한 자가 마냥 부러운 그런 단계다.
“그래도 돼.”
백단영이 부드럽게 말했다.
풍소의 안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들은 큰일을 치른 기념으로 진수성찬을 시켰다. 입이 벌어진 풍소에게 많이 먹으라고 권한 다음 그들도 오랜만에 포식했다.
“그런데 너 사마련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하지 않았냐?”
무흔이 핀잔을 줬다.
“사마련요? 이제 관심 없어요.”
풍소가 사파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는 정파에서 거두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풍소는 백단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누나는 어떻게 그렇게 강해요? 어떻게 무공을 배웠어요?”
“왜? 관심 있니?”
“물론이죠. 전 강해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제대로 된 무공을 배우지 못해 용병을 나가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한 과거를 생각하면 울분이 가시질 않았다.
“이 녀석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무흔이 점잖게 충고했다. 문득 그 누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풍소가 입술을 삐죽였다.
“에이, 형도 누나 머슴이라면서요? 그게 다 누나 무공이 강하니까 배우려고 그런 거잖아요?”
“어? 내가 왜 머슴이야? 호위무사다 호위무사.”
“에이, 거짓말. 누나처럼 강한 사람이 호위가 왜 필요해요. 머슴이 분명하지. 형 스스로 머슴이라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이야기가 되는 건가. 풍소는 무흔이 호위무사란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사실 머슴이 맡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풍소 앞에서 무공을 선보인 기억이 없다. 그러니 저 자식의 눈에는 백단영만 고수로 보일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를 결정 내린 풍소가 탁자에 놓인 음식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머슴이라 하기에 이상한 점이 있긴 하네요.”
“뭐가?”
둘의 투덕거림에 웃고만 있던 백단영이 풍소의 대답을 기다렸다.
“밥 드시는 것 보면 그 반대인 것 같단 말이죠. 누나가 형 반찬까지 골라 주시는 것 보면 시녀 같아.”
“풉!”
백단영이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풍소의 말처럼 최근에는 밥을 먹을 때 백단영이 무흔이 먹기 편하도록 고기의 뼈를 발라주거나 수저를 챙기는 등 자질구레한 일을 많이 했다. 만혈대에 함께 갇혔던 이후부터 벌어진 현상으로 식사 모습을 보면 연인이 따로 없었다.
그동안 두 사람은 이런 변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다가 풍소가 언급하니 그제야 둘 사이의 변화를 깨닫고 안면이 붉어졌다.
무흔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백단영은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풍소야, 난 네가 사파의 유혹에만 빠지지 않으면 만족해. 당장 갈 곳이 없으면 나를 따라와. 우린 개봉의 무림맹으로 가는 중이니까.”
“무공도 가르쳐 주실 거죠?”
풍소가 백단영을 물고 늘어졌다. 깡도 있고 고집도 있어 보이더니 역시나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백단영이 반쯤 승낙했다.
“우리랑 함께 가면. 물론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갈게요!”
풍소가 생각지도 않고 흥분해서 소리쳤다.
백단영은 풍소의 흥분을 가라앉힌 후 조용히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무공을 배우려 해? 단지 밥을 먹기 위해서야?”
풍소의 안색이 침울해졌다.
“그, 그게 부모님이 제가 어릴 때 칼에 맞아 돌아가셨거든요.”
“으음, 어떡하다가?”
곤란한 질문이었으나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계속 물었다.
“부모님은 작은 가게를 하셨어요. 어느 날 상처 입은 사람을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이 현상금이 붙은 제법 유명한 악한이었나 봐요. 당연히 저희는 그걸 몰랐죠. 그때 강도를 잡으려고 여러 무림인이 들이닥쳤어요. 그들이 악한을 사로잡으려고 싸우던 와중에 우리 가족도 한패로 몰려 우리 부모님을…….”
강호에서는 별별 사건이 다 있다. 진실과 다르게 억울한 죽음도 많다.
“그래서 복수를 하고 싶어?”
풍소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복수하고 싶어 무공을 배우려 했어요. 하지만 강호를 떠돌다 보니 저처럼 억울한 죽음을 맞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온갖 은원이 뒤엉켜서…… 지금은 그 무림인이 나쁜 마음을 품고 부모님을 죽인 것은 아니라 생각해요. 한마디로 그때 운이 없었던 거죠. 물론 지금도 그 무림인을 만나면 그때 왜 그랬냐고 묻고 싶지만…….”
슬픈 과거였다.
무흔과 백단영은 풍소가 그런 과거를 묻고 새 출발을 하려고 노력해왔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냈다.
무흔은 갈 곳 없는 풍소를 연연의방에 데려가서 먹고 재울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양이설과 함께 무공을 익히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