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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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46화
146화. 천향무후의 신위 (2)
“방금 저 사람들 누굽니까?”
“멸겁방 사람이요.”
멸겁방이라면 사마련 내에서도 꽤 큰 지분을 가진 문파다. 젖비린내 나는 소년과 투덕거릴 그런 수준은 아니다.
“멸겁방이 왜?”
“나도 몰라요. 저 소년이 낭인인데 사마련 집회에 참석하려고 계속 따라왔나 봐요. 멸겁방은 안 받아주겠다며 소년을 놀리고 괴롭히고…… 대충 그러다가 여기까지 같이 왔나 봅니다.”
무흔은 주변 사람들의 대답을 종합해서 어떻게 된 상황인지 머릿속에서 재구성했다.
타의로 강호를 뛰어든 사람이 많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 밥을 굶게 되면 타인의 노비로 들어가거나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다.
아마 소년은 그런 경우일 것이다.
세상을 떠돌다가 삼류 무공 한두 개를 우연히 배우면 낭인이 되고 이후 칼받이 용병으로 고용되어 간신히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 인정을 받으려면 유명 문파에 들어가야 한다. 상대적으로 정파보다 사파가 들어가기에 월등히 유리하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유명 고수를 죽이고 이름을 얻거나. 소년은 최하급 용병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치는 상황인 듯했다.
“그런데 댁은 뉘시오? 어느 방파에서 왔소?”
옆에 있던 다른 장한이 무흔에게 물었다.
머뭇거리는 무흔을 힐끗 보던 시선이 백단영으로 향했다. 백단영의 눈부신 자태에 깜짝 놀란 듯 잠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장한이 다시 무흔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아, 낭인입니다. 저도 집회에서 용병으로 참여해볼까 하고요.”
“저 낭자도?”
무흔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한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다. 무흔은 그 저변에 깔린 음흉한 눈빛을 읽었다.
“흐흐, 난 오산파요. 하북에선 꽤 이름있는 문파요. 생각 있으면 내가 우리 문파에 이야기해서 용병으로 받으라고 부탁해주겠소.”
연신 백단영을 힐끔거리며 장한이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무흔은 고맙지만 사양한다면서 그들과 헤어졌다.
멸겁방과 한바탕 난리를 폈던 소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늠름하게 걸음을 옮겼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도 멀어졌다.
무흔과 백단영은 약간 거리를 두고 소년을 뒤따랐다.
백단영은 소년의 뒷모습을 뚫어지라 바라보며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무흔은 그녀가 고민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이제는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 오래된 탓이다.
“저 소년을 구하게요?”
“응, 아직 순수한 소년인 것 같은데 사파에 빠져있는 것이 안타까워.”
“사마련 집회는 어떻게 하시고요?”
“그건 그것대로 처리해야지. 정보만 얻으면 되니까.”
무흔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갈수록 태산이다.
집회 장소 부근에 이르자 엄청난 인파가 붐볐다. 하나같이 살기등등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무리 지어 모여 있었다. 무흔은 그들 가운데 상당한 고수가 포함되어 있음을 금방 알아챘다.
‘생각보다 전력이 상당하네.’
확실히 사파 집회이다 보니 분위기가 소란스럽고 험악했다. 단순히 사파 쭉정이들의 모임일 줄 알았더니 꽤 큰 문파까지 모이는 대규모 회합인 듯했다.
인파가 모이면 당연히 노점상이 생기기 마련이다.
발 빠르게 몇 군데 이동 주막이 차려졌다. 주 품목은 술과 안주였다.
배가 고픈 듯 주막을 힐끔거리며 고민하던 소년은 구석의 가장 작은 주막을 찾았다. 다른 곳 대비 인원수가 작다고 하지만 주막에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장한이 많았다.
소년은 그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 구석진 자리에 앉아 물 한잔을 시켰다. 목이 말랐던 탓인지 소년은 물을 벌컥 마셨다.
소년의 행색이 의심스러웠던 주인 아주머니가 소년에게 물었다.
“술 마실 거니? 아니면 만두나 파전 먹을 거야?”
“그, 그게.”
무흔은 재빨리 소년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으면서 주인에게 말했다.
“만두 두 접시만 주세요.”
“일행이야?”
주인 아주머니가 무흔과 소년을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무흔은 대답대신 곧바로 동전 몇 냥을 꺼냈다.
돈을 주면 더는 답이 필요 없다. 주인 아주머니가 돈을 받아 돌아가고, 무흔과 백단영은 맞은 편에 앉은 소년과 눈을 맞추었다.
소년은 눈이 동그래져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만두는 금방 나왔다.
무흔은 소년을 향해 만두 한 접시를 넘겼다.
“많이 드세요.”
“고맙습니다.”
의외로 예의가 발랐다. 꾸벅 인사한 소년이 허겁지겁 만두를 먹었다. 대충 보니 며칠을 굶은 행색이다. 하긴 용병 생활로 근근이 살아가니 호주머니에 돈이 있을 리가 없다.
급하게 만두 한 접시를 뚝딱 해치운 소년이 그제야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후아, 맛있네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이것도 마저 드세요.”
무흔은 자신의 앞에 놓인 접시를 소년에게 밀었다. 만두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소년이 손을 내저으며 물었다.
“안 드세요?”
“아직 배가 안 고프네요.”
무흔은 미소로 대답한 다음 화제를 바꾸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전 풍소라고 해요. 두 분은요?”
대답하면서 소년은 연신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지금까지는 배가 고파 미처 무흔과 백단영을 신경 쓰지 못하다가 이제야 관심이 가는 모양이었다.
“난 무흔.”
“난 백단영이라 해요.”
이제부터는 백단영의 일이다. 그녀가 질문을 시작했다.
“혹시 사문이 있어요? 아니면 속한 방파나.”
“아뇨. 홀로 다녀요. 어릴 때 유랑을 시작한 후로 가입한 적 없어요. 전 가입 안 시켜주더라고요.”
거지나 다름이 없는 옷차림이 그간의 고생을 대변했다.
“풍소, 여긴 왜 왔어요?”
백단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나를 받아줄 방파가 있을까 하고요. 없더라도 용병으로 참가할 생각도 있고요.”
풍소가 만두를 먹으면서 대답했다.
백단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 어느 쪽이건 매우 위험하다는 것 알아요? 어쩌면 한낱 소모품이 될 수도 있는데?”
“그래도 굶는 것보다 나아요.”
풍소가 거침없이 답변했다. 이 세상에 홀로 버려진 후 삶의 고단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어쩌면 그에게 목숨은 그리 소중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백단영이 조용히 설득을 시작했다.
“풍소, 이런 식으로 말고 정파의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은 어때요?”
풍소가 콧방귀를 끼었다.
“저라고 안 해본 줄 알아요? 정파에 들어가려면 돈이 많아야 해요. 아니면 아주 어릴 때 입문하거나. 저와는 거리가 멀죠.”
아마도 이런 방면에서는 풍소가 그들보다 더 잘 알 것이다.
어릴 때부터 무공을 연마하지 않으면 고수가 되기 어렵다는 통념이 존재하기에 현재의 풍소는 유명 문파에 입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무흔이 보기에 결국 풍소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용병으로 쓰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하류 인생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백단영 역시 그 사실을 인지한 듯 우울한 표정으로 풍소를 지켜보았다.
“그래도 노력해보면…….”
“솔직히 무공이라도 제대로 배웠다면 기회라도 있겠지만 전 힘들어요. 전 이곳에서 용병으로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적어도 굶지는 않으니까요. 두 분은 무공 잘하세요?”
무흔과 백단영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었다.
“무공이 별로라면 그냥 돌아가세요. 저처럼 고생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돈도 많을 것 같은데. 자칫하면 다 털려요. 여기 나쁜 사람들 엄청 많거든요.”
이제는 소년이 그들을 걱정해 주었다.
그때였다.
“오호, 여기서 또 보네.”
그들의 뒤쪽에서 몇몇 장한이 거들먹거리면서 등장했다. 조금 전 이곳으로 오던 길에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던 오산파 사람들이었다.
무흔이 짜증 난 표정으로 돌아보니 그 장한이 백단영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홀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단영의 기분 나쁜 표정에 장한은 빈정대는 표정을 지으며 옆자리에 앉았다.
“어이, 예쁜이! 우리 오산파에 들어오라고.”
백단영은 신경 쓰지 않고 시선을 소년에게 돌렸다.
소년은 백단영 옆에 앉은 장한이 마음에 걸리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자기 일이 아니기에 만두를 계속 먹었다.
“너 정도면 말이야, 우리 방주님이 예뻐하실 거야. 생각 있냐?”
장한이 백단영의 옷소매를 잡고 추근거렸다.
보다 못한 무흔이 녀석의 의자를 발로 밀었다.
쿠당-
장한이 넘어지고 소란이 일었다.
“아니, 이년이!”
수작을 걸던 장한은 벌떡 일어나 두 사람에게 삿대질했다. 녀석의 옆으로 장한 서넛이 등장했다. 주먹을 쥐고 목을 뻣뻣하게 세우는 자세가 한 건 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동료의 가세에 고무된 장한이 음탕한 웃음을 머금고 백단영의 손을 잡아갔다.
“흐흐, 좋은 말할 때 같이 가자고. 응?”
퍽-
백단영의 옥수가 휙 돌면서 반대로 녀석의 팔을 후려쳤다.
“컥!”
녀석은 손이 휙 돌아가며 다소 충격을 받은 듯했으나 동료의 위세를 믿고 다시 윽박질렀다.
“이년이! 하긴 앙탈이 있어야 여자지.”
백단영이 반격하는 것을 모두가 보았기에 이제는 거리낄 게 없다고, 생각한 장한이 바로 그녀를 껴안아 제압하려 했다.
순간 백단영이 벌떡 일어났다.
퍽-
그녀의 일권이 장한의 얼굴에 정확히 꽂혔다. 그 한방에 장한이 뒤로 넘어갔다.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던 오산파 사람들은 금방 분노를 드러냈다.
“저년 잡아!”
대여섯의 장한이 백단영을 향해 마구잡이로 달려들었다.
우당탕-
순식간에 장내에 난장판이 벌어졌다.
만두를 먹던 풍소가 벌떡 일어났다.
도망치거나 방관할 줄 알았더니 금세 검을 빼고 백단영을 도우려 했다. 그래도 만두를 사주었더니 의리가 있는 놈이란 생각을 하며 무흔은 녀석의 곁에 붙었다.
“넌 그냥 보고 있어라.”
“누나가 위험한데요?”
그새 호칭도 누나로 바뀌었다. 무흔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 정도는 별 것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풍소는 못 믿겠다는 듯 눈을 말똥거렸다.
백단영은 여유롭게 달려드는 녀석들을 처리했다.
각자에게 한 방씩. 몇 차례 주먹을 휘두르고 나니 그녀 주위에는 쓰러진 장한만 수두룩했다. 사실상 오산파의 전멸 상태였다.
백단영이 손을 탁탁 털며 무흔에게 눈짓했다. 주막에서 나가자는 뜻이다.
백단영이 먼저 밖으로 나가고 무흔과 풍소가 뒤따랐다.
그들이 주막에서 몇 걸음 벗어나기도 전에 앞을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흐흐, 네년은 저 꼬맹이랑 한패냐?”
풍소의 안색이 확 일그러졌다.
무흔은 막아선 녀석들이 앞서 소년과 다투었던 멸겁방 사람임을 알아봤다.
백단영은 장한들을 노려보며 강하게 말했다.
“비키시지?”
“흐흐, 못 비키겠다면? 얼굴이 반반하니 우리랑 같이 가는 게 어떠냐?”
“저 정도면 반반한 게 아니라 절색이야, 절색.”
여기저기에서 별별 반응이 튀어나왔다.
무흔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로 올 때 이미 그녀의 외모 때문에 시선을 끌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이런 식으로 번질 줄은 몰랐다.
애초에 순순히 비킬 놈들이 아니었다.
“시비를 걸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지.”
언제 멸겁방에 시비를 걸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사파에서는 힘 있는 쪽이 말하면 그것이 그들의 법이었다.
백단영은 안면을 찌푸리며 거침없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녀석들이 그녀를 막아서면서 팔을 붙잡았다.
짝-
백단영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여 앞을 막는 장한을 후려쳤다.
우당탕-
무려 둘이 한꺼번에 뒤로 날아가서 처박혔다.
“헛! 이년이 보통이 아니었어! 모두 덤벼라!”
장한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모두가 같은 색상의 허리띠를 맨 것을 보니 전부 멸겁방 사람이 확실했다. 그리고 그 수가 적어도 스무 명이 넘어 보였다.
백단영은 시비를 피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서 한바탕 일을 벌일 생각이 있었는데, 저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오니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채챙-
멸겁방 사람들이 무리 지어 검과 도를 들었다.
백단영은 손을 까닥였다. 와 보라는 뜻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멸겁방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며 그녀를 공격해왔다.
백단영의 신형이 갑자기 사라졌다. 절정의 무흔천상보가 펼쳐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