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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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42화
142화. 마극삼비 (3)
천마류의 강력한 흐름 속에서 무흔과 백단영은 신바람을 냈다.
백단영은 이 순간에 모든 내공을 쏟아부은 천상비연검법의 마지막 살초를 날렸고,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마극삼비에게 치명타를 입혔다.
순간 무흔의 신형이 번뜩였다.
“잡아!”
백단영은 무흔의 외침이 무슨 뜻인지 곧바로 알아냈다. 평소 호흡을 맞추었던 두 사람이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신형이 엇갈렸다.
그녀의 눈에 비틀거리는 세 마극삼비가 눈에 들어왔다.
풍은 허리가 일부 잘려나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뇌는 가슴에 자상이 길게 나 있었다. 이 둘은 저항이 힘든 상황, 남은 자는 우였다.
백단영은 무흔천상보를 펼쳐 순식간에 우에게 접근했다. 우는 한쪽 어깨에 검격을 맞고 비틀거리던 상황이라 백단영의 공격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우를 제압하자마자 연검으로 목을 겨눴다.
이때 분노한 사마극의 천마패가 장내를 휩쓸었다.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압력이 무흔과 백단영을 짓눌렀다. 무흔은 천마류로 저항했다.
콰아아앙-
둘 사이의 땅거죽이 터져나가며 쌓였던 눈이 흙과 바람과 함께 쓸려나갔다.
무흔의 신형이 폭풍을 만난 듯 흔들렸다. 양손을 강타하면서 상체에 가해진 천마패의 충격이 그의 신형을 일장이나 뒤로 내몰았다. 바닥에 길게 선이 그어지면서 땅속으로 발이 파묻혔다.
예상외의 충격에 놀란 사마극과 무흔은 재차 진기를 끌어올렸다.
사마극이 다시 천마패를 뿜어내려고, 손을 뻗는 순간 백단영의 날카로운 음성이 울렸다.
“멈춰!”
백단영의 모습을 찾은 사마극의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거렸다.
“인질인가?”
백단영은 우의 목에 검을 겨눈 채 싸늘하게 말했다.
“다시 공격하면 이자는 죽는다.”
“우는 나에게 그리 중요한 인물은 아니지. 바로 대체하면 되니까.”
사마극이 비웃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가까스로 자세를 바로잡은 무흔이 끼어들었다.
“과연 그럴까?”
사마극의 시선이 우에게서 풍과 뇌로 이어졌다. 마극삼비가 위험한 지경에 빠져있었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풍은 죽음에 이를 것이고 뇌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우는 당연히 백단영의 검에 의해 죽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는 무흔과 백단영의 목숨을 거둘지도 모른다. 마극삼비와 싸우느라 내공을 대부분 소모한 두 사람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둘은 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단정하는 사마극의 말투에 무흔은 한차례 비웃음을 터트렸다.
“놀라울 만큼 냉철하게 전력을 파악하는군. 그렇다. 네 말이 옳다. 하지만 너 역시 마극삼비를 잃게 된다.”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과연 그런 타격을 입고 혁무휘와 은옥상을 상대할 수 있을까.”
무흔의 입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사마극이 신형이 한차례 휘청했다.
사마극이 입술을 깨물었다.
애초부터 그에게 가장 중요한 상대는 무흔과 백단영이 아니었다. 이 둘에 대한 호기심에, 백단영을 손에 넣고 싶다는 욕심에 이런 일을 벌이긴 했다.
그러나 이 둘 때문에 마극삼비를 잃는다면 그 손해가 너무 크다. 마극삼비는 그의 신변안전을 책임진 최측근이다. 무공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충성심을 가진 자를 다시 거두기 쉽지 않다.
사실 사마극에게 중원정벌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마교 교주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다.
“어떻게 할 거냐?”
백단영이 검을 우의 목에 더 바짝 대면서 위협했다.
사마극의 시선이 무흔과 백단영 사이를 오갔다. 분노한 호신강기가 주위로 휘몰아쳤다. 주먹을 불끈 쥐며 분노를 터트리던 사마극이 마침내 잠잠해졌다.
“살려주겠다.”
“크크, 우리가 널 살려주는 거다.”
무흔이 빈정거리며 백단영에게 눈짓했다.
백단영은 우를 놓아주었다. 우는 재빨리 풍에게 뛰어가서 지혈을 비롯한 응급조치를 취했다.
사마극이 허탈한 음성으로 질문했다.
“무흔, 방금 네 녀석이 펼친 무공이 무엇이냐? 어디에선가 봤던 무공인 듯한데…….”
비록 숙련도에서 차이가 크더라도 은옥상이 익히고 있고 마교의 무공이니 익숙할 수밖에.
당연히 무흔은 알려줄 생각이 없었다.
“글쎄, 숙제다. 능력이 되면 알아서 풀어봐라.”
“이 자식이!”
사마극이 화를 벌컥 내려다가 간신히 삼키고는 마극삼비에게 퇴각을 지시했다.
내리는 눈을 뚫고 사마극 일행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윽.”
그제야 백단영이 신음을 토하며 주저앉았다.
무흔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사실상 내력이 고갈된 상태이나 사마극 앞이라 버텼을 뿐이다.
그는 백단영을 부축했다. 말할 기운마저 없었다.
무흔은 그녀를 데리고 다시 객잔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이 객잔에서 며칠 쉬어가야 할 것 같았다.
***
남궁이화는 연무장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초는 날카로웠고 위력적이었다. 내리는 눈송이도 그녀의 검막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예전보다 한층 향상된 무공을 펼치면서 그녀는 땀을 뻘뻘 흘렸다.
무려 한 시진. 한 시진 동안 쉴 새 없이 검법 연마가 이어졌다. 그녀가 아는 모든 무공을 연습했고 초식을 완벽하게 다듬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무거웠다.
지난 작전에서 그녀는 백단영의 무공에 깜짝 놀랐다. 만혈대에서 천상신모의 무공을 이었다고 했던가.
“왜 하필이면 내가 아니고 너냐고!”
남궁이화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냈다. 다행히 눈 내리는 연무장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물론 들었다 해도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겠지만.
이전까지 백단영은 그녀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역전됐다. 그날 보여준 백단영의 무공은 그녀를 아득히 뛰어넘고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련했다고 그녀는 자부했다. 무공을 습득하는 무재 역시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다고 자부심을 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가문 최고의 무공은 오빠인 남궁천기에게 주어지고 그녀의 손에 넘어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발전하지 못하고 멈추어버렸다.
평생 무공만 익혀왔기에 그녀의 생각은 단순했다. 남들처럼 잔머리를 굴리지 않았고 일단 전진하면서 힘과 노력으로 해결해왔다. 그렇다 보니 확실히 남들 대비 우직한 면이 있었다.
무공이 벽에 부딪혔건만 소처럼 계속 수련만 열중했다.
역시 운이 좋은 자를 따라잡을 수 없는 걸까.
그녀에게 백단영은 운이 좋은 사람으로 비쳤다.
그리고 그 운 때문에 백단영은 이제 그녀가 쳐다볼 수 없는 아득한 곳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 운의 절반만 자신에게 주어졌더라도 그녀 또한 만혈대에서 기연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문제는 백단영 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쌍벽을 이루었던 장후성마저 새로운 무공 수련에 들어갔다.
공식적으로 발표되진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 장후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무려 무림맹이 모든 힘을 집중해서 최강의 고수로 키우고 있는 상태다.
“그럼…… 나는?”
남궁이화의 목소리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용봉대에서도 이인자이고 가문에서도 장남이 아니기에 그녀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으으으…….”
남궁이화는 주저앉아 검으로 눈 덮인 땅을 찍으며 통곡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최고의 길만 걸어왔던 그녀에게 지금 마주친 뒤처짐은 그녀를 견디기 힘들게 했다.
내리는 눈 사이로 세상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 하얀 바탕에 과거의 그녀 모습이 그려졌다. 검이 무조건 좋았던 어린 시절, 초식 하나를 배웠을 때 그 초식을 숙달하고자 밤새도록 검을 휘둘렀던 장면까지.
“백단영이나 장후성에게 절대 지고 싶지 않아…….”
남궁이화는 주저앉은 채 땅바닥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울음을 삼키는 그녀의 어깨가 들썩였다.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려던 그녀의 눈에 하얀 신발이 보였다.
“이화야.”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이화는 고개를 들렀다. 눈물이 번진 그녀의 시야에 오빠인 남궁천기가 보였다.
“오빠…….”
“그래, 눈 내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니.”
남궁천기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궁이화는 남궁천기의 발에 매달리며 부르르 떨었다.
“오빠, 나에게도 창궁무애검법과 제왕검형을 가르쳐주세요.”
남궁천기도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
하지만 안 될 말이다. 가주에게만 전승되는 두 무공을 그녀에게 알려주는 것은 금기다. 그녀는 남궁세가의 가주가 될 수 없으니까. 그녀가 남자였다면 남궁천기는 가주 자리를 포기하고 동생에게 전수해주었을지도 모른다. 재능이 부족한 자신과 달리 동생이야말로 남궁세가의 명예를 빛낼 적임자이니까.
허나 결정적으로 남궁이화는 가주가 될 수 없는 몸이다.
“미안하다.”
남궁천기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하나뿐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재능에 한숨이 나왔다. 가문의 최강 무공을 익히려고 달려든 지도 벌써 몇 해가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걸음마에 불과했다. 앞으로 수십 년이 지나면 익혀질까.
“가자꾸나.”
쓰린 마음속에 남궁천기는 손을 내밀었다.
남궁이화는 그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오열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강의 무공을 익히고 싶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중원 최강의 고수가 되고 싶었다. 장후성이나 백단영처럼.
***
마극삼비와의 전투는 길지 않았으나 내력 소모가 극심했다. 개개인의 무공이 무흔이나 백단영과 차이가 없는 초강고수 셋을 동시에 상대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풍, 뇌, 우에게 받았던 수많은 타격이 심한 내상과 외상을 불러왔다. 거기에 무흔의 경우 마지막에 사마극과 한판 대결을 벌이며 맞섰으니, 그 충격파는 그를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백단영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에 펼친 천상비연검법은 모든 내력을 주입한 것이어서 사실상 그녀의 내력 역시 고갈상태였다.
객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은 이 층에 방을 잡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외부의 침입이 염려되는 상황이었음에도 어쩔 수 없었다. 들끓는 내력을 잠재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밤이 이슥해서야 무흔은 눈을 떴다.
방안은 캄캄했고 창으로 달빛이 은은하게 비쳐들었다. 짐작건대 삼경이 훨씬 넘은 시각이 분명했다.
“후우.”
그제야 혈맥이 다소 진정되었다.
완전치 않으나 내력 역시 일부 회복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온몸이 쑤시고 통증이 밀려왔다. 외상은 상처 입은 그대로였고, 내상도 치유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는 백단영을 찾았다.
바로 옆에서 백단영 역시 막 운기조식을 끝내고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니.”
백단영이 기운 빠진 목소리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이렇게 사력을 다해 목숨을 걸고 싸운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죽는 줄 알았어. 쓰러질 것 같았는데…… 사마극 때문에 쓰러질 수가 없었어.”
무흔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사마극 앞에서 약하게 쓰러질 수는 없었으니까.
“잘 하셨어요.”
“너도. 덕분에 살았어.”
백단영의 목소리에 그나마 활기가 돌았다.
무흔이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그거 알아요? 아가씨 검에서 검강이 뿌려진 거?”
“검강?”
정작 그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 검기는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하지만 검강은 시험 삼아 간신히 흉내나 내볼 수준이었다. 그랬던 것이 무려 실전에서 제대로 발휘가 됐다. 역시 죽음을 앞두니 몇 배의 능력이 발휘된 것 같다.
곰곰이 그때의 장면을 되새기던 백단영은 자신의 검법이 한 단계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역시 목숨을 걸고 싸우면 얻는 게 있어요.”
무흔은 예전 마교인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전투를 떠올리며 소감을 말했다.
“그렇더라도 난 싫어. 으윽.”
백단영이 손을 내젓다가 통증을 느끼고는 신음을 토해냈다.
그제야 무흔은 그녀 역시 자신 못지않게 내상 외상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많이 안 좋아요?”
“으음, 그런 것 같아.”
통증을 참는 백단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