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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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3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39화
139화. 의정문 (2)
순식간에 두 마의인이 저승으로 떠났다.
백단영의 놀라운 무위에 의정문 문하생들은 당황해서 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모두가 경악한 표정으로 백단영만을 주시했다.
그 순간, 무흔이 움직였다.
무흔천상보를 사용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의 신형이 의정문주 바로 앞에 나타났다. 의정문주는 마교인 둘의 목숨이 사라지는 순간 상황의 불리를 눈치채고 도주할 준비를 하던 차였다.
“으헉!”
갑작스러운 무흔의 등장에 의정문주가 기겁해서 몸이 굳었다.
빠박-
무흔의 일권이 녀석의 가슴에 작렬했다.
“크윽.”
둔탁한 음향과 함께 의정문주가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발했다.
의정문주를 제압한 무흔이 여유만만하게 장내를 훑어보는 순간 안면이 일그러졌다. 문주가 다쳤다고 생각한 의정문 제자들이 거센 분노를 폭발시키며 그를 향해 다가왔기 때문이다.
“네놈이 감히 문주님을!”
의도와 달라진 분위기에 혼비백산한 무흔은 재빨리 의정문주를 붙잡고 일갈했다.
“멈춰라!”
“감히 문주님을 인질로? 네놈은 누구냐!”
포위한 제자들이 그를 에워쌌다.
무흔은 분노한 제자들의 면면을 살피며 상황이 골치 아파졌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이놈은 문주가 아니다!”
“뭔 소리냐?”
무흔은 의정문주의 멱살을 붙잡아 일으키고는 녀석의 안면을 손으로 훑었다.
“헉!”
보고 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경악성이 발해졌다.
의정문주의 얼굴에서 얇은 인피면구가 벗겨지며 전혀 다른 새로운 얼굴이 드러났다.
“이, 이건!”
현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무흔이 녀석의 목을 옥죄며 소리쳤다.
“진짜 의정문주는 어디에 있느냐?”
가짜 의정문주는 컥컥거리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의정문 제자 사이에 섞여 있던 한 장한이 도망치려다 백단영의 연검에 걸렸다. 그자는 한쪽 팔이 잘린 채 바닥에 쓰러졌다.
문수란이 앞으로 나서 팔이 잘린 장한을 끌고 나왔다.
“네놈이 알지? 아버지는 어디 있지?”
도망치려다 잡힌 자는 의정문 총관이었다.
의정문에 마교인을 끌어들여서 의정문주를 없애고, 타인으로 하여 의정문주를 대신하게 한 장본인이다. 사실상 모든 음모는 이 자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미 모든 사실을 꿰뚫고 있는 문수란은 더욱 강하게 상대를 윽박질렀다.
“사, 살려주세요! 제가 문주님을 죽이지 않았어요. 모, 모든 일은 저놈이 한 짓입니다.”
총관이 무흔에게 잡힌 가짜 의정문주를 가리켰다.
문수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검으로 상대의 목을 겨누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래서 아버지 시신은 어디에 두었나?”
“창고 뒤 노송 아래에…….”
의정문주를 죽인 후 인피면구 제작을 위해 얼굴 가죽을 벗겨낸 다음 늙은 소나무 아래에 묻었다는 말이었다.
“으흐흑!”
슬픔을 이기지 못한 문수란이 검을 그대로 총관의 가슴에 꽂았다.
“으악!”
총관이 검에 꽂힌 채 쓰러졌다. 의정문 제자들은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무흔은 마지막 남은 가짜 의정문주의 멱살을 흔들며 물었다.
“네놈은 마교에서 왔나?”
“그렇다.”
가짜 의정문주는 모든 음모가 밝혀진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대답했다.
무흔은 녀석의 당당한 태도에 피식 웃음을 지으면서 물었다.
“네놈은 서열 몇 위냐?”
흠칫 놀라면서 무흔을 살피던 녀석이 대답했다.
“서열 육십사 위다.”
“다른 놈들은?”
무흔은 눈짓으로 이미 죽은 두 녀석을 가리켰다.
“비슷하다.”
어쩐지 손쉽게 제압되더라니.
정작 무흔은 예전보다 자신의 능력이 급증한 덕분이란 사실을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마교 서열 육십 위권이면 절대 쉬운 상대일 리가 없는데도 무흔은 쉽다고 생각했다.
“사마극이 보냈나?”
가짜 의정문주는 살짝 놀라는 빛을 띠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긍정을 의미한다. 무흔은 이 사건이, 또는 중원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파의 문파를 깨트리는 움직임이 사마극의 의도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부분은 은옥상에게서 얻어낸 정보였다.
더는 캐물을 것도 없었다.
녀석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려는 찰나 문수란이 검을 들고 다가왔다.
푸욱-
그녀의 검이 조금의 지체도 없이 가짜 의정문주의 가슴을 꿰뚫었다. 녀석이 부친의 면구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존재였나 보다.
피가 검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그녀의 손을 적셨다.
문수란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여전사처럼 검을 하늘 높이 들고 소리쳤다.
“나를 따르지 않을 자는 빨리 사라져라! 나를 따를 자는 모두 무릎을 꿇어라!”
과연 누가 그녀를 따르지 않을까. 의정문주의 딸이라는 정통성에 의정문 내에서 손꼽혔던 고강한 무공. 적을 단칼에 섬멸해 버린 과감성. 의정문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무릎을 꿇었다.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는 가운데 의정문 장로 한 사람이 선언했다.
“모든 의정문인은 의정선자를 차기 의정문주로 추대합니다.”
의정문 제자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동의를 표시했다.
무흔은 뒤로 물러나 백단영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의정대협 문철남을 돌보고 있었다.
“끝난 것 같죠?”
“예상외로 의정선자가 과단성이 있네요. 주저함 없이 끝내버리는 것을 보면.”
사실 이런 일에 여지를 주면 변수가 발생하여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된다. 부친의 생사를 알아낸 순간부터 직선으로 밀어버린 문수란은 역시 대단한 여걸임이 분명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명문 정파의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무흔은 그녀의 첫인상을 떠올리며 쓴맛을 다셨다.
자신의 무공이 제일인 줄 알고 으스대던 그 모습 말이다. 어찌 보면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무흔의 능력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활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배, 백 소저…….”
뒤에서 백단영을 부르는 문철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실상 산공독에 중독되어 오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문수란을 탈출시켜 역전의 단초를 제공한 그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백단영이 문철남을 부축했다.
“고, 고맙습니다.”
문철남이 의정문을 되찾아준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몸은 좀 괜찮아요?”
“덕분에 의정문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평생 마음에 새기고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백가상단으로 가면 됩니까?”
백단영은 환히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전 지금은 개봉에 있는 무림맹 본부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거기로 오시면 됩니다.”
무림맹이란 말에 문철남은 더욱 백단영을 우러러보게 됐다.
“현재 무림맹 용봉대에 속해 있거든요.”
당연히 문철남도 무림맹 용봉대가 어떤 부대인지 안다. 그곳에는 명문정파의 후기지수들만 모여 있다는 것까지. 그로서는 새삼 백단영이 엄청 우러러 보일 수밖에 없다.
“몸이 완쾌되면…… 거, 거기로 꼭 찾아뵙겠습니다.”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적당히 상대의 호의를 잘라낸 그녀는 무흔을 찾았다.
무흔은 흘러가는 상황을 확인했다. 이제 철수해도 별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듯싶었다.
문파인에게 둘러싸여 바쁜 문수란을 찾아 무흔이 인사하려는 순간 백단영이 뒤에서 확 끌어당겼다.
“얼른 가자, 응?”
무흔은 질질 끌려가면서 문수란에게 손짓으로 인사했다.
***
천상문 방문은 보름 만에 막을 내렸다.
이곳에 계속 머물 만큼 두 사람은 한가하지 않았다.
그동안 무흔은 천상사화에게 각종 무공을 전수했다. 원래는 백단영이 직접 해야 할 일이었으나 그녀의 수고를 덜고 무흔도 가르치는 경험을 늘리기 위해 흔쾌히 수락했다.
한 문파를 강성하게 만드는 힘은 절정 무공 하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절정 무공은 문주나 극히 자질이 뛰어난 제자에게만 유용하다. 일반 제자가 익힐 다양한 무공이 어찌 보면 더 중요할 수 있다.
천상문은 그런 점에서 사실상 낙제점이었다.
이를 알기에 백단영도 무흔에게 문파 제자의 무공 수련을 맡겼고 무흔도 다양하고 잡다한 무공을 가르침과 동시에 비급까지 남겼다.
다만 천상문주를 가르치는 것은 백단영이 직접 했다. 문주를 무흔이 가르치는 것은 격이 맞지 않았으니까.
그러는 사이 열담이나 한담의 효능도 어느 정도 규명됐다. 무흔과 백단영은 다시 연못에 몸을 담갔지만 이번에는 그리 효과를 볼 수 없었다. 효능의 한계가 있음이 분명했다.
하수에게도 일부 효과가 있었다.
천상심공을 익힌 천상사화는 한담에 다녀온 이후 내공이 급증했다. 다만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달랐고 효과는 원래 가지고 있던 내공의 두 배 정도가 한계였다.
이런 과정을 통해 천상문은 완전히 새로운 문파로 거듭났다.
백단영은 천상문이 백가상단의 상행을 돕는 조건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동방상단과 거래하면서 간신히 문파 재정을 유지해왔던 천상문으로서는 엄청난 혜택이었다.
천상문의 틀을 다시 바꾼 두 사람은 아쉬움을 남기고 개봉으로 길을 떠났다.
눈이 덮인 관도를 말을 타고 이동하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다만 눈 때문에 말이 빠른 속도로 달리지 못해 시간이 지체될 뿐이다.
“이런 속도라면 개봉까지 꽤 걸릴 것 같아.”
백단영이 툴툴거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무흔은 휘몰아치는 칼바람과 눈을 옷깃으로 막으며 동의했다.
“바람이라도 적게 불면 그나마 나을 것 같긴 해요.”
본신의 내공 때문에 두 사람 모두 그나마 추위를 덜 타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눈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따라 바람이 더 강하네. 아무래도 객잔에서 밥이라도 먹고 가야 할 듯해.”
백단영이 끼니를 때울 것을 제안하며 멀리 시선을 돌렸다.
눈이 내리는 흐릿한 경치 뒤쪽으로 객잔처럼 보이는 작은 집이 보였다. 펼쳐진 평야 한중간에 홀로 서 있는 건물은 따뜻한 분위기를 절로 느끼게 했다.
“우리 저기로 가면 되겠다.”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돌린 무흔은 만족스러웠다. 그 역시 눈 속에서 굳이 고통스러운 여행을 계속할 생각이 없었다.
두 사람은 객잔에 붙은 마구간에 말을 넣은 다음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눈 때문에 오가는 사람이 없는 탓일까. 객잔 역시 한가했다. 몇 사람이 띄엄띄엄 밥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얼핏 보기엔 지역을 오가는 상인으로 보였다.
무흔과 백단영은 구석에 있는 탁자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국밥이면 되죠?”
“넌 국밥을 참 좋아하더라.”
무흔의 제안에 백단영이 같은 종류로 주문했다.
“추울 때는 역시 국밥이죠. 가격도 저렴하고.”
“그렇긴 하네.”
시큰둥 대답하는 백단영을 보며 무흔은 그녀가 지금까지 음식의 값을 고민하며 선택한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가끔 편의점에서 컵라면이나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현실의 자신이 생각났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럴 일이 없으니 훨씬 좋아진 건가.
이곳 무림과 현대는 각각 장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며 무흔은 수저를 들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가벼운 압박감이 전신을 억눌러왔다. 내력 면에서 최강의 자리에 올라선 그가 압박을 느낄 정도면 상대는 얼마나 강한 자란 말인가.
무흔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백단영을 바라봤다.
그녀 역시 비슷한 기운을 느낀 듯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무흔은 고개를 들어 객잔 내부를 쭉 훑어봤다. 한쪽 구석에서 밥을 먹던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무흔의 안면이 딱딱하게 굳었다.
흑의 청년은 바로 사마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