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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13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37화

137화. 천상문 (4)

 

 

 

무흔은 자신도 이제 열담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가씨, 저도 나가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백단영의 말투에 살짝 장난기가 어려있었다.

“고개를 돌려주셔야…….”

“흥!”

백단영이 갑자기 가장자리에 놓아둔 그의 옷가지를 주섬주섬 집어 들었다.

“어? 뭐 하세요?”

“뭐하긴. 선녀와 나무꾼이라고 들어봤냐며?”

“예? 그건 나무꾼이 옷을 훔쳐가는 건데요?”

무흔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녀를 만류했다.

백단영의 짓궂은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거나 이거나……, 아무나 가져가면 되는 거지.”

“으악! 그러면 전 어떻게 여길 나가요? 여기 천상문에는 여자들만 수두룩한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천천히 쉬다가 내려와.”

싸늘한 말을 내뱉은 백단영이 그의 옷을 들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것도 무려 무흔천상보까지 펼쳐 빛의 속도로 사라졌다.

무흔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흐아, 아가씨는 엉뚱한 곳에서 경쟁심을…….”

투덜거리던 그는 어떻게 이 난국을 타개할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옷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으니 이 상태로 천상문도가 있는 전각으로 이동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곤란을 안긴 백단영에게 다음에는 꼭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불태웠다.

문득 무흔은 어릴 때 읽었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야기 속에서 나무꾼이 옷을 훔쳐 선녀와 결혼해서 살았다. 그럼 선녀가 훔쳐 가더라도 나무꾼과 결혼해서 살게 되는 건가?

무흔은 백단영과 결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무림 최고 미녀인 그녀라면, 그것도 그가 이곳에 온 목적인 그녀라면 솔직히 분에 넘치는 상대다.

그는 처음으로 이곳 무림 세계에 영원히 머물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무흔은 몇 시진이 지나서야 열담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를 불쌍히 여긴 아교가 그를 위해 옷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자세한 뒷일은 알 수 없지만 아마 백단영이 아교에게 부탁했으리란 추측이 가능했다.

“아가씨는?”

간신히 옷을 입은 무흔이 먼저 백단영의 행방을 물었다.

“지금 식사 준비 중이세요.”

“식사?”

“그것 알아요? 사형이 이곳 한담에 올라간 지 만 하루가 지났다니까요.”

“응? 하루?”

무흔은 깜짝 놀랐다.

아침 식사 후 이곳 한담과 열담에 올라왔다. 그런데 지금 점심을 먹을 때라고 했다. 그것도 하루가 경과한 다음날이었다. 그가 열담에 몸을 담그고 기연을 얻는 동안 그만큼 시간이 흐른 것이다.

“사저께서도 시간이 흐른 것을 보고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그랬구나.”

환골탈태에 걸린 시간으로 본다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다.

계곡 아래로 나란히 걸음을 옮기며 무흔은 질문을 계속했다.

“그런데 아가씨께서 갑자기 무슨 식사를 준비해?”

그가 생각해봤을 때 백단영은 지금까지 직접 요리를 해본 적이 없었다.

무림맹에서는 식사가 배급되다 보니 당연히 할 일이 없었고 백가상단에서도 무려 상단주의 딸이다 보니 당연히 손에 물을 묻힐 일이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곳에서 요리라니.

그의 궁금증을 눈치챈 아교가 웃으며 설명했다.

“갑자기 사저께서 지난번에 먹었던 그…… 뭐더라? 샤브? 하여튼 그걸 만들어보시겠다고 힘쓰고 계세요.”

야영할 때 무흔이 만들어주었던 샤브 요리가 먹고 싶어 직접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 같았다.

“그거 보기보다 쉽지 않을 건데…….”

무흔은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만나는 각종 난관을 떠올렸다. 그 요리의 핵심은 소스인데 과연 그녀가 만들 수 있을까.

아교가 자랑스럽게 반박했다.

“걱정 없어요. 사저께서 검을 휘두르시니까 고기가 얇게 좌르륵 썰리더라고요.”

무흔은 아교의 대답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

 

그렇게 도착한 그곳에는 백단영의 지휘로 천상사화가 열심히 샤브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완성된 요리는 훌륭했다. 제대로 된 주방에서 훨씬 다양하고 우수한 재료를 이용하여 요리를 만들었으니 당연히 무흔이 만든 것에 비해 훨씬 맛있는 요리가 탄생했다.

특히 무흔이 놀란 것은 소스 맛이었다. 마치 현대에서 샤브 요리를 먹는 듯한 그런 소스 맛이었다. 백단영은 어떻게 이런 맛을 구현할 수 있었을까.

그는 놀라운 눈길을 그녀에게 보냈다.

“이게 대체 무슨 요리입니까?”

오묘한 샤브 맛에 젓가락을 멈출 줄 모르며 흡입하던 천상문주의 질문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천상사화 한 명이 무흔을 가리켰다.

“예전에 사형께서 해주셨던 요린데요. 이름은 저도 잘…….”

모두의 시선이 모이자 무흔이 뻘쭘 해졌다. 요리에 대해 별로 아는 바도 없는 탓에 무흔은 모든 공을 백단영에게 돌렸다.

“이게 아가씨께서 요리 실력이 있어서 그런 건가 봅니다.”

“사저께선 언제 이런 걸 다 배우셔서…….”

모두의 감탄 속에 백단영이 우쭐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식사를 권유했다.

무흔은 요리를 먹으면서 백단영은 옆구리를 쿡 쳤다.

“그렇다고 옷 가지고 도망쳐요?”

“그러니까 대들지 말라고.”

“제가 언제 대들었어요? 다음엔 저도 옷 가지고 도망쳐버리든가 해야지.”

“그러든가.”

백단영이 개의치 않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럴수록 무흔의 내심은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다음에는 고개를 돌리라고 해도 절대 돌리지 않겠다고 소심한 결심을 반복했다.

뚱해진 무흔은 끓는 물에 야채만 쏟아 부었다.

밥을 먹고 나니 입맛이 개운치 않았다. 어째 입안이 텁텁하여 뭔가 후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흔에게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교야, 넌 주방에 가서 팥 삶은 것 있으면 가져와라.”

아교가 주방으로 쪼르륵 달려간 이후 무흔은 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추운 겨울에 눈까지 왔으니 온 세상이 하얗다. 그는 계곡 한쪽에서 그릇에 한가득 눈을 퍼담아서 들고 왔다.

백단영이 눈동자를 크게 뜨고 물었다.

“무흔? 뭐하니?”

“그냥 보고 있어 봐요.”

무흔은 아교가 가져온 팥과 염소젖에 꿀까지 넣어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다.

눈으로 만들어진, 희한한 음식이 한 그릇씩 주어졌다.

“이건 또 뭐죠?”

천상문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흔이 시범 삼아 숟가락으로 눈과 팥을 척척 섞어 비볐다. 비벼진 눈덩이를 숟가락에 한가득 퍼서 입에 넣고 맛을 본 그가 탄성을 발했다.

“이거요? 팥빙수요. 제법 맛이 있네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팥빙수를 떠먹어본 사람들의 입이 감탄으로 벌어졌다. 추운 겨울이라지만 실내는 따뜻했기에 팥빙수는 제대로 혀를 자극했다.

백단영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무흔을 보다가 고개를 저으면서 팥빙수를 먹었다.

감탄하며 맛있게 먹던 아교가 무흔에게 다시 물었다.

“눈도 먹을 수 있다니! 그것도 이렇게 맛있다니! 이게 뭐라고요?”

“눈으로 만들었으니까 눈꽃빙수야, 눈꽃빙수.”

무흔은 차마 여름에 먹으면 더 기가 막힌다는 말까지는 할 수 없었다. 여름에 눈을 구할 수 있을 리 없으니. 어? 여름에 얼음이나 눈을 구할 방법이 있으려나?

그들이 한곳에 모여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천상문 제자 한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문주님!”

그 제자는 계곡 입구에서 산문을 지키고 있던 여인이었다. 난데없는 호들갑에 천상문주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호통을 쳤다.

“넌 내가 차분하게 행동하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그래, 무슨 일이냐?”

천상문 제자가 찔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소,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어떤 손님인데 그렇게 호들갑이냐?”

“그, 그게 그 손님이 많이 다치셔서……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두의 시선이 서로 얽혔다.

천상문은 중원에서는 변방이라 할 산동성에 위치한 데다 문하생 수가 적어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문파였다. 지금까지 문하생의 수준도 일개 무관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천상문을 외부인이 방문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다.

자연스레 복잡한 무림의 은원 관계에 엮일 일도 없었다.

그런데 계곡 입구에 외부인이 찾아왔고, 그것도 많이 다친 사람이라고 했다. 천상문 역사상 없었던 일이 발생한 셈이다.

놀란 천상문주가 벌떡 일어났고 무흔과 백단영도 따라 나갔다.

 

***

 

내부로 안내된 사람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녹색 무복을 입은 여인, 바로 의정선자 문수란이 부축을 받고 들어왔다.

문수란은 어깨부터 가슴에 이르기까지 크게 다친 상태였고, 피를 많이 흘린 듯 옷 전체가 피로 범벅이었다. 생명의 위험은 없어 보였으나 부상 정도는 매우 위중했다.

“무흔…… 무흔을 찾아왔어요.”

간신히 입을 연 문수란이 무흔을 찾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시선을 옮기던 그녀는 무흔을 발견한 순간 희색을 띠었다.

“무, 무흔.”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흔은 문수란의 손을 잡아주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매정하게 외면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모습을 백단영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의정문이 이상해졌어요.”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상황의 엄중함을 깨달은 천상문주가 문수란을 편한 곳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천상문 소속 의원이 달려와 문수란의 몸을 지혈하고 다친 곳에 상처를 발랐다. 피 묻은 옷을 갈아입힌 것은 덤이었다.

훈훈한 방에서 상체를 기댄 채 따뜻한 물을 마시며 정신을 차린 문수란이 무흔을 비롯한 천상문주에게 상황 설명을 시작했다.

동방상단과 상행을 마무리하고 의정문으로 돌아간 그녀는 이상한 점을 인지했다. 이전과 문파 내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얼핏 보면 과거와 같았다.

하지만 문주인 아버지의 행동이 어째 예전과 달랐다. 문파에서 핵심 요직을 맡았던 몇몇 인사들 역시 교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과거와 달리 문주와 총관 중심으로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녀와 의정대협은 아버지를 만나 몇 차례 시정을 건의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의견은 묵살됐다.

“그런 상황에서 사마련에서 찾아왔어요.”

놀랍게도 사마련의 사신이라던 사람은 의정문에서 환대를 받았다.

정파를 자처했던 의정문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마련 사신은 앞으로 있을 무림맹과 사마련의 싸움에 지원을 요청했고, 의정문주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무림맹 일원이 아닌 사마련 일원으로 말이다.

과거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그녀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그녀와 의정대협은 다시 아버지를 만나 따졌고 돌아온 것은 감금이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오빠와 함께 의정문을 탈출했다.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문주의 척살령이 떨어졌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탈출은 쉽지 않았다. 의정문의 포위망을 뚫기엔 두 사람의 능력이 부족했다. 결국 의정대협은 사로잡히고 간신히 그녀만 탈출할 수 있었다.

의정문을 벗어난 이후에도 그녀는 추격자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추적해온 의정문의 척살대가 공격해왔고 그녀는 사투를 벌여야 했다. 산동성에는 의정문보다 큰 명문 정파가 없어 달리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큰 상처를 입고 갈 곳 없던 문수란이 무흔을 떠올린 때가 그 시점이었다. 무흔의 수강을 보았던 그녀는 무흔이 엄청난 고수라는 생각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침 천상문 역시 먼 거리가 아니었다.

“이런 상황이에요. 저를 도와주세요.”

문수란의 말만으로는 모든 것이 모호했다. 문주가 이상하다는 점과 갑자기 정파에서 사파로 돌아섰다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천상문주가 의견을 취합했다.

무흔은 어렵지 않게 천상문 사태를 유추할 수 있었다. 예전에 신화곡의 경험이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고 있었으니까.

“사마련, 아니 마교에서 의정문을 점령했군요.”

“네?”

무흔의 말에 깜짝 놀란 문수란이 되물었다.

“그런 문파가 많아요. 그나마 여긴 마교에서 멀어서 이제야 드러난 것이지만요. 마교에서 중원을 정벌하기 위해 각지의 명문 정파를 없애거나 회유했거든요.”

“그렇다면 저희 아버지는…….”

“단언할 수 없으나 아버지께서 협박을 받고 계시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을 겁니다.”

문수란에게 이 말은 청천벽력 같은 것이었다.

“그럼 오빠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지요.”

그래도 아버지니까 오빠를 살려둘 것이란 믿음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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