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3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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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34화
134화. 천상문 (1)
“너, 뭐 하는 건데?”
다시 백단영이 물었다. 그녀뿐이 아니라 천상사화와 문수란까지 신기한 표정으로 무흔을 쳐다보고 있었다.
말없이 무흔은 검을 꺼냈다.
“헉?”
천상사화가 갑작스럽게 검을 든 그를 보고 깜짝 놀라는 가운데 무흔이 묵천신검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절정의 검법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분명히 무상벽라검법의 변형된 검초였다.
찹- 찹- 찹- 찹-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소고기가 묵천신검에 빠르게 썰려 나갔다. 순식간에 소고기 육편이 가지런하게 차곡차곡 쌓였다.
“절세신공을 저렇게 이용하다니!”
모두가 어이없어 입만 벌렸다.
“크크, 제대로 대패 삼겹살이…… 아니 대패 우삼겹이 만들어지는구나!”
그 말을 들은 백단영이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다시 물었다.
“응? 뭐라고? 무슨 요리라고?”
“하하, 이게 바로 샤브샤브…… 하여튼 그런 게 있어요.”
대충 대답한 그는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납작하게 잘 썰린 소고기 조각을 몇 개 뜨거운 물에 넣었다.
잠시 끓기를 기다리며 솥을 쳐다보던 무흔이 야채와 익은 고기를 꺼냈다.
“이렇게 먹는 겁니다.”
무흔은 고기와 야채를 미리 만들어 두었던 소스에 찍어 한입에 넣었다. 역시 예상대로 그 맛이 나쁘지 않았다.
“자, 자, 드세요.”
천상사화와 문수란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한 젓가락씩 집어먹었다.
그녀들의 안색이 살짝 변하나 싶더니 탄성을 질렀다.
“오! 오묘한 맛이야. 죽이는데요?”
아교가 탄성을 질렀다.
“그렇지? 죽이지?”
의기양양한 무흔에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없이 샤브를 먹기 시작했다.
“아가씨는 안 드세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무흔을 바라보고 있던 백단영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바탕 깔깔댔다.
“너도 참 대단하다. 이런 걸 다 생각해내고.”
백단영도 마지못해 젓가락을 댔다.
추운 겨울 야외에서 따뜻한 물에 푹 삶아 먹는 고기와 야채의 맛은 실로 오묘했다. 천상사화는 태어나서 먹어보는 최고의 맛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문수란은 신기한 요리를 만들어낸 무흔을 다시 평가했다. 어째 이 남자는 무공뿐만 아니라 요리에도 재능이 있었다. 정말 특이한, 아니 특별한 남자였다.
맛있게 식사를 하던 백단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
산동성에 도착할 때까지 약간의 어려움이 있긴 했다.
대부분 추운 겨울 날씨 덕분에 발생한 상행의 불편함이었다. 무흔과 백단영에게는 이런 불편함이 다소 크게 다가왔으나 정작 상단 사람들은 무덤덤하게 넘겼다.
겨울 상행을 자주 경험했던 그들은 눈 덮인 길을 걷는 이런 여정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다행히 내공 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른 무흔과 백단영은 그나마 추위를 덜 타서 큰 문제는 없었다.
중간에 두어 차례 녹림의 산채를 만났고, 두 상단은 평소처럼 통행료를 지불하고 무난하게 지나갔다. 무흔과 백단영은 굳이 녹림을 토벌할 생각이 없었기에 다툼이 없으면 잠자코 있었다.
산동성에 진입하고 얼마 후 두 상단은 커다란 여곽에서 머물게 됐다.
저녁을 먹은 후 무흔과 백단영은 평소처럼 천상사화를 지도했다.
무흔이 재정립해준 천하제패검법을 부지런히 익힌 천상사화는 이전과 비교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게 됐다. 무흔이 보기에 전반부 초식은 완벽하게 구사했고, 후반부 초식도 꽤 능숙해졌다. 강호 일류고수 수준에 어느 정도 도달한 수준이었다.
괄목할만한 성장에 누구보다도 백단영이 기뻐했다.
“모두 사형 덕분이에요.”
천상사화는 무흔을 사형이라 불렀다. 사실 무흔을 부를 이름이 마땅하지 않았었는데 백단영을 사저라고 부르는 것을 본 무흔이 사형으로 부르라고 요구했다. 솔직히 나이로만 따지면 천상사화가 그보다 조금 더 많다. 물론 현실 나이 말고 이곳 무림에서의 나이 말이다.
“슬슬 실전 경험이 필요한데, 녹림이랑 만날 일이 없으니 그것도 문제네.”
무흔이 고민하고 있을 때 의정문의 의정대협 문철남이 등장했다.
그동안 가끔 문철남이 백단영을 만나러 왔었다. 그때마다 백단영이 천상사화를 지도해야 한다며 거부하는 바람에 별다른 수작을 걸지 못하고 물러갔다.
오늘도 저녁 식사 후 슬금슬금 백단영을 찾아 이곳으로 온 것이다.
무흔은 반가운 목소리로 문철남을 불렀다.
“아! 의정대협 아니십니까?”
“하하, 잘 지내십니까.”
생각지도 못한 무흔의 환대에 문철남이 호탕하게 웃으며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백단영을 조금이라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함이다.
“혹시 천상사화에게 한 수 지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비무 요청에 문철남이 미간을 찌푸리며 무흔과 백단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문철남은 동방상단 호위무사 중에서 최고고수다. 천상사화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인 것이다.
비록 백회령 산채에 사로잡혀 곤욕을 치르긴 했으나 나름대로 강호에 이름을 날렸다.
슬그머니 백단영을 바라보니 어째 그녀의 얼굴에 간절함이 보였다. 그러잖아도 그녀의 앞에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만 노리던 터라 문철남이 흔쾌히 수락했다.
“천상사화랑 말이죠? 제가 몇 수 접어주면서 하면 맞겠군요, 하하.”
물론 문철남도 천상사화가 백단영의 지도로 많이 성장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 하지만 무공이 하루아침에 팍팍 느는 것이 아닌 만큼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다치지 않게 살초는 빼고요.”
무흔이 그를 공터 중앙으로 이끈 다음 천상사화의 일인인 아교를 마주 세웠다.
아교는 상대가 고수임을 알기에 다소 어려워했다.
문철남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핫핫, 걱정하지 말고 검을 잡으시오. 내가 살살 해드리리다.”
물론 말만 그렇게 했지 속마음은 달랐다. 백단영 앞에서 멋있게 제압해서 제대로 위세를 뽐내야 한다고 다짐했다.
두 사람이 준비 자세를 잡고 서로 대치하자 무흔은 비무의 시작을 선언했다.
챙챙!
요란한 금속성이 울리면서 비무가 시작됐다. 병장기 소리에 구경꾼들이 몰렸다.
초반에 아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문철남에게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던 효과가 컸다.
허나 몇 차례 합을 맞춘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교는 천하제패검법으로 문철남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교의 공세가 거세졌다.
문철남은 상대의 검법에 놀라고 있었다.
처음 상단에서 호위병으로 모집할 때만 해도 천상사화는 별것 아니었다. 넷이 한꺼번에 덤벼도 가볍게 물리칠 수 있을 그런 하찮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기기는커녕 자칫 망신당하게 생겼다. 백단영 앞에서 절대 쪽팔릴 수 없다는 일념에 그는 더욱 힘을 가했다. 우월한 내공이 아니었다면 이미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채챙!
주위에서 함성이 일었다.
당연히 그를 응원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군중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일반 사람들은 약자를 응원하기 마련이다. 문철남보다 아교를 응원했다.
부아가 치민 문철남은 공세를 전환하고자 제마육검법에서 사문의 비전인 의정검법으로 바꾸었다. 위력적인 검초가 아교를 몰아붙였다.
아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천하제패검법의 초반부 초식에서 후반부 초식으로 넘어갔다.
두 사람의 날카로운 비무는 강호 고수들마저 찬탄을 불러올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교는 점차 상대를 압도했다.
문철남은 깜짝 놀라 전전긍긍했다. 자칫하면 백단영 앞에서, 또 군중 앞에서 망신을 당할 판이었다. 초식으로는 도무지 상대가 안 되고 그나마 간신히 경험이 많아 버티고 있었다.
어지럽게 검광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상대의 빈틈을 발견한 아교가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챙-
문철남이 검을 놓치고 아교의 검이 그의 목을 향했다.
“헉!”
어이없는 표정으로 문철남은 눈동자만 굴렸다. 이곳에서 무흔과 백단영을 빼면 최고 고수인 자신이 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흔은 재빨리 비무를 중지시켰다.
“의정대협께서 많이 봐주신 덕에 승부가 결정 났습니다. 많은 도움 되었습니다.”
그나마 무흔이 예의를 다했다.
문철남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다가 슬쩍 백단영의 눈치를 보고는 급히 검을 챙겨 돌아갔다.
“앞으로 산적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야.”
무흔은 아교를 칭찬했다.
현재 천상사화 개인의 수준은 아교와 모두 비슷하다. 그녀들은 이전까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수준에 이른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천상사화에게 마무리를 명한 후 무흔은 백단영에게 물었다.
“어때요?”
“흐음, 괜찮긴 한데…….”
어딘지 모르게 불만족스러운 표정이 엿보였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단영이 지나가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아직 강호 최고의 문파로 탈바꿈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아.”
“크윽.”
무흔은 신음을 터트렸다.
한 달도 안 되어 최고 고수로 변신하기를 원하는 것은 그래도 좀 너무 한 것 아닌가.
***
상행은 산동성 성도에서 마무리됐다.
백가상단과 동방상단은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천상사화는 동방상단과 여기까지 계약되어 있었기에 고용료를 받고 임무를 끝냈다.
무흔과 백단영은 백가상단 왕 표두와 작별하고 천상사화와 합류했다. 그들 모두 천상문으로 걸음을 옮기게 된 것이다.
천상사화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본인들도 고수로 바뀐 데다 천상문도의 환호와 비상이 눈에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는 무흔은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동쪽으로 며칠을 더 이동한 끝에 그들은 눈 덮인 하얀 계곡 중간에 자리 잡은 천상문에 도착했다.
천상문에 도착한 후 두 사람은 아담한 전각으로 안내됐다.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천상사화가 사라졌다.
“여기도 분위기가 매화곡과 비슷하네요.”
무흔의 첫 소감이었다. 아마 여인들만 거주하는 문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은 소저 생각하는 거지?”
살짝 핀잔 섞인 백단영의 투덜거림에 무흔은 억지로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은옥상 이야기만 나오면 백단영이 질투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정작 아무런 생각이 없던 무흔은 그녀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천상문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고 이곳에 온 일은 모두 백단영의 계획이었으니까.
“글쎄다. 이왕 손댄 이상 천상문을 대단한 문파로 바꿔 놓고 싶어. 물론 문주가 받아들여 줘야겠지만. 그리고 천상신모가 남겨둔, 또는 천상문에서 전해지는 무공이든 무엇이든 나에게 도움 되는 것을 얻어가고 싶어.”
백단영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사마극을 이길 방법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정작 현재로 봐선 불가능할 듯했지만.
“일단 문주를 만나고 생각해보죠. 여기 문주가…….”
말하는 순간 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들어왔다.
중년 미부 한 사람과 나이가 든 노파 둘, 나머지는 천상사화였다.
백단영과 무흔을 확인한 중년미부가 밝은 미소로 자신을 소개했다.
“제가 바로 현 천상문주인 천상선자 예서홍입니다.”
천상문주는 처음 보는 외부인이었으나 하대할 수 없었다. 배분으로 따진다면 상대가 무려 자신의 사숙뻘이었기 때문이다.
백단영도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받았다.
“저는 천상신모의 제자 백단영이에요. 하남 백가상단주의 딸이기도 하고요.”
“정말 천상신모 사조의 제자가 맞습니까?”
백 년 전에 사라졌던 전대 문주의 제자가 불쑥 나타났으니 그 당황스러움이 충분히 이해됐다. 백단영은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쭉 풀어놓았다.
천상문주는 의혹과 감탄을 늘어놓았다.
“그…… 그럼 천상신모의 비전절기인 천상심공과 천상비연검법을 익히신 겁니까?”
“네, 그래요. 아직 9성 정도에 불과하지만, 사문의 절기를 이은 것은 사실이니까요.”
“아아, 하늘이시여!”
옆에 있던 두 노파가 감격의 목소리를 냈다. 이 두 노파는 천상문의 장로로 천금파파, 천은파파라 불렸다.
“이것은 천상문의 복입니다. 하늘이 도우신 거죠. 이로써 우리는 다시 예전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상문주를 비롯한 장로의 흥분이 사라졌을 때 백단영이 궁금증을 물었다.
“갑자기 이렇게 문파가 곤경에 빠진 이유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