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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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2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33화
133화. 천상사화 (2)
무흔은 상단 행렬의 끝에서 말을 타고 일행을 따라갔다.
백단영은 바로 앞에서 천상문 네 문하생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모두 다른 사람의 시선을 그나마 적게 끌려는 방편이었다. 물론 그렇다 보니 무흔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를 모두 엿듣게 됐다.
“제가 뭘 도와드리죠?”
“천상문 무공이 실전됐다잖아.”
“예? 그걸 왜 저에게?”
“무공 복원하는 것은 네 전문이잖아?”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문수란에게는 잘만 가르치더라?”
백단영의 날 선 목소리에 무흔은 바로 입을 닫았다. 틈틈이 문수란에게 끌려가서 무공을 봐주던 행동을 백단영이 눈치채고 있었나 보다.
한 짓이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명을 따르면서도 무흔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의 내심을 익히 알고 있는 백단영이 눈웃음치며 다독였다.
“맨입은 아냐. 나중에 내가 잘해줄게. 응?”
“알았어요.”
한방에 무흔의 마음이 흔들렸다. 무슨 보상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의 마음이 중요했다. 금방 풀어진 무흔은 천상문의 무공을 떠올렸다.
백단영이 만혈대에서 이어받은 무공은 천상심공과 천상비연검법이다. 사실상 천상문의 핵심 무공이다. 물론 무흔 역시 그 구결을 읽어보았기에 5성의 숙련도를 갖고 있다.
그는 상행하는 동안 간간이 구경했던 문하생들의 검법을 눈앞에 그려봤다. 이른바 천상문에서 가르치는 기초적인 검법이다. 무흔이 보기에는 삼재검법과 마찬가지였으나 문하생들은 그 검법을 하늘처럼 받들고 있었다.
의정문의 제마육검법과 마찬가지로 보완할 부분이 정말 많았다.
“그럼 일단 문하생들이 익힌 기존의 검법부터 보완해볼게요.”
“제마육검법보다는 잘해줘야 해.”
“아, 정말 뒤끝은! 근데 지금 익힌 문하생 검법 이름이 뭐죠?”
무흔의 질문에 아교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천하제패검법요!”
어째 이름이 좀……. 촌스러운 이름에 무흔은 내심 실소를 머금으며 보완방법을 고민했다.
솔직히 보완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중간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처럼 너무 엉성했기 때문이다. 이런 무공을 가르치는 문파에서 한때 천하제일인이었던 천상신모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내심 혀를 차고 있는 그의 마음을 백단영이 바로 꿰뚫어 보고는 다시 눈을 흘겼다. 무흔은 바로 찌그러져서 머릿속으로 검법을 재구성했다.
천하제패검법과 천상비연검법을 비교해보니 유사점이 있긴 했다. 바로 두 검법 모두 여성에게 최적화되어 있는, 속도감 위주의 검법이란 점이었다. 슬슬 무흔은 욕심이 일었다.
백단영이 애정을 가지는 문파라면 제대로 그 토대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기존의 천하제패검법이 모두 십이 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이를 전반 십이 식으로 두고 후반 십이 식을 새로 구상하면…….”
천하제패검법과 천상비연검법을 이어줄 중간 단계의 검법을 구상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머릿속으로 새 검법을 구상하면서 그는 말을 탄 채 가장 뒤에서 상단을 따라갔다. 점점 그는 무공 보완에 몰두했다.
“컥!”
그때 무엇인가가 목 부분을 콱 치는 느낌을 받은 무흔은 그대로 말에서 떨어졌다.
땅에 엎어진 상태로 어떻게 된 일인지 눈을 굴렸다. 생각에 잠겨 있던 터라 미처 앞을 보지 못해 나뭇가지에 걸려 말에서 떨어진 모양이었다.
“하아…… 우째 이런 일이.”
투덜거리며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뻐근하고 허리가 아프다.
다행히 그가 제일 뒤에서 따라가는 바람에 이 우스운 꼴을 본 사람은 없지만…… 백단영마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문하생들과 잡담하며 그냥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니 괜스레 짜증이 일었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자신이 탔던 말 엉덩이를 발로 찼다.
히이잉-
놀란 말이 마구 뛰어갔다. 앞에 가던 상단 행렬이 말 한 마리 때문에 난리가 났다. 모든 눈총이 무흔에게 쏟아졌다.
***
야영하게 된 날 저녁에 무흔은 백단영과 천상사화를 불러모았다.
상단 일행에게서 떨어져 나와 숲속 한쪽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간 연구했던 검법을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정작 백단영의 한 마디에 그 계획이 깨질 뻔했으나.
“그럼 우린 밥을 언제 먹어?”
“이거부터 하고요.”
입이 사발만큼 나온 백단영을 대충 달래고 천상사화 앞에서 설명을 시작했다.
“천하제패검법을 모두 이십사 식으로 재구성하여 전반 십이 식, 후반 십이 식으로 만들어보았습니다.”
“정말 검법을 만들었어요?”
아교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흔에게 시비를 걸려는 게 아니라 검법 창조란 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의 몫이라는 선입관 때문이다.
무흔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천상사화에게 마찬가지로 진지한 어투로 대답했다.
“솔직히 천상사화(天上四花) 너희가 별호처럼 예쁜 미인임은 사실이지만…….”
“정말요?”
네 여인의 얼굴이 밝아지며 무척 좋아했다. 절로 무흔은 한숨이 나왔다.
“너희 무공은 별호랑 달리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잖아.”
“그렇긴 하죠.”
네 여인이 풀이 죽어 시무룩해졌다.
“그래서…… 알다시피 천상문 최강 무공이 바로 천상비연검법 아니냐? 천하제패검법과 천상비연검법을 연결해주는 후반 십이 식을 만들었다…… 이런 말이다.”
천상사화가 그제야 이해한 듯 수긍했다.
일단 묵천신검을 꺼내고 한껏 자세를 잡았다.
스르릉-
겉보기에 별것 아닌 묵직한 검이지만 무흔이 들면 어쩐지 달라 보이는 검이다.
“자, 전반 십이 식부터 차례로 보여줄게.”
무흔은 천하제패검법을 수정한 십이 식을 차례로 전개했다. 기존의 익숙한 검법에서 일부가 보완되고 덧붙여진 것이라 천상사화의 눈에도 익숙했나 보다.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차 한 차례 더 시범을 보인 후 무흔이 덧붙였다.
“잘 모르겠으면 앞으로 내가 계속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해. 일단 전반부만 제대로 배우더라도 산적 따위는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야.”
천상사화 옆에서 무흔의 가르침을 지켜보던 백단영이 물었다.
“새로 창안했다는 후반부 초식도 구경할 수 있어?”
“그럼요. 자, 이번에는 후반 십이 식을 보여줄게.”
무흔은 다시 자세를 취한 다음 천천히 후반 십이 식을 전개했다. 검법을 펼치는 그의 모습이 상당히 멋있었던 듯 천상사화가 박수로 환호했다.
“잘 봤지? 이 후반부는 천상비연검법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도 할 수 있는 검법이니까, 또 전반부와 형식이 비슷해서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을 거야.”
물론 어렵지 않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위력적인 무공을 익히는 것이 절대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전반부를 익힌 천상사화라면 조금은 쉽게 접근할 수 있기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한 번 더 보여줄래?”
백단영이 다시 요구했다.
무흔은 천상사화에게 제대로 보여주라는 의미로 알아듣고 재차 검을 잡았다.
“그럼 전반 십이 식부터 후반 십이 식까지 연속해서 펼쳐볼게.”
한차례 호흡을 가다듬은 무흔의 신형이 어둠 속에서 날렵하게 움직였다. 쾌와 변을 기반으로 한 검법이기에 그의 동작은 매우 빠르고 현란했다.
시범이 끝나자 천상사화가 다시 환호성을 울렸다. 모두 앞으로 배울 검법에 흥분한 모습이었다.
“괜찮죠?”
앉아서 구경하던 백단영이 벌떡 일어났다.
“그게 원래 연검으로 펼치는 거지?”
“그건 아니지만 특성으로 보면 연검으로 펼쳐도 무난해요. 어떤 형태의 검이든 상관없어요. 무겁고 투박한 도만 아니라면.”
백단영이 허리에 매었던 연검을 풀었다.
“내가 한번 해볼게.”
문득 무흔은 흥미가 일었다. 비록 천상비연검법을 아는 백단영이지만 천하제패검법은 전혀 모른다. 게다가 후반부는 오늘 처음 본 검법이다. 과연 펼칠 수 있을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생각을 마무리한 백단영이 연검을 몇 차례 그어보며 감을 익혔다. 머릿속에서 검식을 쭉 연결해서 되새겨본 그녀는 연검에 약간의 내공을 불어넣었다.
휘리릭-
천하제패검법이 펼쳐졌다.
무흔은 입을 쩍 벌렸다. 검법을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절세미녀의 검무.
무흔뿐만 아니라 천상사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넋이 나간 듯 탄성조차 잊은 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천하제패검법이 초반부에서 후반부로 넘어갔다.
이럴 수가! 처음 만든 검법을 단 한 번 본 후에 그대로 펼치는 그녀의 재능에 무흔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단영의 무재가 뛰어나다더니 정말 대단했다. 아마 이런 쪽의 능력이라면 이 무림 세계에서 거의 최강이 아닐까.
번쩍- 번쩍-
내공을 실었기에 연검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화려한 장면이 연출됐다.
위력적인 검초에 의해 주변의 나뭇가지가 폭풍을 맞은 듯 흩날렸다.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에 쌓인 눈꽃이 떨어지며 사방으로 나부꼈다. 그 눈꽃을 연검이 스쳐 지나며 조각조각 내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검무과 새롭게 창안한 천하제패검법의 위력에 무흔은 행복했다. 자신이 창조한 검법의 위력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는 백단영에게 감사했다.
“와아아!”
시범이 끝나는 순간 천상사화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녀들은 천상문의 새로운 검법으로 등극할 위력적인 검법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아, 얼핏 느끼기에 백상검법과 같은 정도의 위력이네.”
그녀가 검법의 위력을 정확하게 진단했다.
한마디로 중간 이상의 위력을 지닌 검법이란 뜻이다. 이 검법만으로도 앞으로 천상문은 다른 어떤 문파에도 뒤질 일이 없다.
소란스러운 환호성에 주변에 있던 상단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 가운데 의정문의 문수란도 있었다.
무흔에게 몇 번 무공을 지도받았던 그녀는 금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챘다. 대부분 막 검무를 끝낸 백단영을 주목하고 있었지만, 그녀만은 한쪽 옆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무흔이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너란 남자, 정말 대단한가 봐.”
홀로 중얼거리며 결심을 굳힌 그녀는 무흔에게 다가갔다.
“대협?”
갑자기 나타난 문수란을 경계하며 무흔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 상행 끝나고 천상문에 들린다고 하셨죠?”
백단영이 그렇게 움직일 테니 당연히 그의 일정도 같을 것이다. 어차피 이 여행의 목적이 천상문을 방문하는 것이기도 했고.
“그럴 것 같은데요?”
“천상문과 저희 의정문이 그리 멀지 않거든요.”
“그래서요?”
“의정문에도 들려주시겠어요?”
“글쎄요, 천상문에서 일정을 잡아보고 말씀드리죠.”
“꼭 긍정적으로 고려해주시기를 바라요.”
문수란이 꾸벅 인사했다.
“저녁 식사하셨어요?”
“대충은 먹었는데요.”
“말린 육포 정도 드셨겠네요?”
“그, 그렇죠.”
추운 날 밖에서 야영하면 어쩔 수 없다. 야외에서 제대로 식사를 하기엔 한계가 있다.
무흔이 그녀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자, 저는 지금부터 저녁을 먹을 거거든요. 같이 드시죠?”
문수란은 무흔이 권하자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수락했다.
대충 사람들이 흩어졌을 때 무흔이 천상사화에게 말했다.
“아교는 가서 작은 솥단지 하나 빌려와주시고, 나머진 모닥불에 솥단지 걸 수 있도록 준비하고. 불쏘시개도. 자, 그리고 문 소저께선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무흔은 자신의 행낭에서 각종 식재료를 꺼냈다. 가장 최근에 들렀던 객잔에서 얻어온 것들이었다.
“문 소저께선 계곡에서 물을 떠 오시고…… 아! 야채도 좀 씻어오고요.”
당연히 그가 문수란을 데려온 이유는 일을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백단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흔? 저녁 종류가 뭔데? 죽 끓일 거야?”
물론 야외에서 먹는 따끈한 죽도 대단하지만 그가 계획한 식사는 그 정도를 훨씬 넘었다.
“에이, 죽보다 훨씬 좋은 겁니다. 보고 계세요.”
그는 판판한 나무판을 구해 그 위에서 각종 야채를 모양 좋게 썰었다. 거기에 더하여 각종 양념장을 만들었다. 그동안 매일 식자재 검사를 한 경험이 이럴 때 상당히 도움이 됐다.
솥단지가 걸리고 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다.
무흔은 잘 다진 야채를 물에 푹 담갔다.
마지막으로 행낭에서 준비한 소고기 한 덩이를 꺼냈다. 그는 붉은 소고기를 나무판에 올려놓고 지그시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