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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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1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67화
167화. 죽서루 (4)
밤이 이슥해졌을 때 사마극은 처소를 벗어났다.
그는 긴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마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교주인 혈천마종은 낮에는 천마궁에서 머무르지만 밤에는 그 뒤편에 있는 커다란 별채에 거주한다.
지금 사마극의 목표는 바로 이 별채였다.
전각 앞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교주 혈천마종을 밤낮으로 호위하는 화마(火魔)와 수마(水魔)였다. 혈천마종의 호법은 모두 다섯으로 오행을 따서 목, 화, 토, 금, 수로 불렸다.
“교주님께 긴히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사마극은 최대한 예의 바른 행동을 보였다.
두 호법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펴보다가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긴 복도를 지나 사마극은 교주의 침전으로 안내됐다. 다행히 혈천마종은 잠자리에 들지 않고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에 매달려 있었다.
“교주님, 극이옵니다.”
“무슨 일이냐?”
혈천마종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평소 혈천마종의 목소리는 항상 이러했다. 희노애락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일정한 목소리다.
“절대마령에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절대마령이?”
혈천마종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사마극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세 절대마령 가운데 한 절대마령의 의식이 이상합니다.”
혈천마종이 벌떡 일어났다.
마화령으로 깨운 절대마령은 마교의 최고 무력 병기다. 향후 중원 행보의 승패를 담당하고 있기에 절대 이상이 생겨서는 안 될 마물이다.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아직 제가 그들의 주군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 음천마령이 저의 명을 거부합니다.”
“그럴 리가…….”
혈천마종이 황급히 걸음을 뗐다. 절대마령이 이상하다는 말에 그는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
천마산 지하 깊은 동혈에 있는 한빙소.
이곳 한빙소에서 세 절대마령이 깨어났다.
무려 백여 년 동안 한빙소의 차가운 얼음물에 담겨 있던 절대마령은 마화령과 귀혼마령대법에 의해 부활한 후 여전히 동혈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들을 부릴 수 있는 혈천마종과 사마극이 아직 특별한 명령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실상 반강시 상태인 절대마령은 한빙소 옆에 나란히 선 채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혈 입구 쪽이 요란하게 울리면서 혈천마종과 사마극이 안으로 들어왔다.
“음천마령이라 했던가?”
혈천마종이 세 절대마령을 훑어보며 물었다.
그의 시야에 광천마령, 뇌천마령, 음천마령이 보였다. 광천마령과 뇌천마령은 삼십 대 중반의 건장한 장한으로 보였고, 음천마령은 삼십 대 초반의 농염한 미부로 보였다.
처음 잠에서 깨어났을 때 푸른 기운이 강하게 몸에 드리워졌던 이들 세 마령은 이제는 얼핏 보면 정상적인 사람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푸른색이 사라졌다.
“네, 그렇습니다. 음천마령이…….”
사마극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혈천마종은 다급하게 음천마령에게 접근했다.
음천마령은 광천마령과 뇌천마령의 중간에 서 있었다. 그들 세 마령은 서로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붙어 있었는데 이들의 서 있는 거리가 정삼각형 꼭짓점을 점하고 있었다.
혈천마종은 주저 없이 그 삼각형의 중간으로 들어가 음천마령에게 손을 뻗었다.
순간 광천마령과 뇌천마령의 우수가 움직였다.
푸욱-
두 마령의 손이 혈천마종의 양쪽 등을 꿰뚫었다.
“크억!”
혈천마종은 피를 내뿜으며 두 마령의 공격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워낙 생각지도 못하고 당한 일이라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음천마령의 마지막 일격이 혈천마종의 가슴을 강타했다.
푸욱-
가슴을 뚫고 들어온 음천마령의 손이 내부 장기를 파괴하는 것을 느끼면서 혈천마종은 서서히 무릎을 꿇었다.
“어, 어떻게…….”
그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한동안 경련을 일으키던 혈천마종의 몸이 마침내 축 늘어졌다. 마교의 교주이자 최강고수였던 그가 허무하게 죽어갔다.
세 절대마령이 상체에서 손을 빼냈다. 검붉은 피로 범벅이 된 손이 섬뜩한 빛을 발했다.
쿠쿵!
혈천마종의 몸이 동혈 바닥에 쓰러졌다.
사마극이 빙그레 미소를 띠며 손을 들자 세 절대마령이 나란히 그의 앞에 부복했다.
숨이 끊어진 혈천마종을 내려다보며 사마극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당신이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더라면 나는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 절대마령을 내가 움직일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점이 그의 최대 실수였다. 회의에서 결정했다면 세 마령의 제어 권한을 빨리 회수했어야지.”
절대마령을 움직일 권한은 혈천마종과 사마극 두 사람이 소유했다.
아직 절대마령의 제어가 익숙지 않은 상황에서 절대마령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을 때 지금까지 써보지 않았던 명령을 급하게 내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혈천마종은 이곳 한빙소에 호법도 데려오지 않았다. 물론 호법이 있었더라도 절대마령의 상대가 되지 않았겠지만.
“크하하! 절대마령을 무너트릴 자는 이 세상에 없다! 마교는 이제 내 손에 들어왔다! 중원 무림 또한 당연히 나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사마극은 동혈 내에서 광소를 터트렸다.
이제 그에게 무서운 것은 없었다.
교주를 살해한 죄도 사실상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거역하는 자는 절대마령으로 쓸어버리면 끝이니까.
“절대마령! 가자! 이제 너희들도 햇빛을 봐야지.”
크르르르-
그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세 절대마령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교주의 다섯 호법에게 복종이냐 죽음이냐를 강요하는 것이 첫 번째로 할 일이다.
***
며칠 후 무흔은 백단영을 데리고 죽서루에 도착했다.
새로운 주인 무흔이 나타나자 총관을 비롯하여 행수기녀가 직접 나타나 깍듯하게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총관이 미소를 입에 가득 담고 직각으로 허리를 굽혔다. 자칫하면 잘릴 위기에 처한 총관이기에 이런 태도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행수기녀가 두 사람을 삼 층으로 데려갔다.
삼 층에서도 가장 좋은 방에 도착한 백단영은 기가 막혔다.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상을 마주하고 앉아 보니 완전히 별세상이었다. 남궁이화와 다정루를 방문했던 적이 있긴 하지만, 오늘 그녀가 받은 대접이야말로 기루 문화의 진수였다.
행수기녀가 무흔에게 머리를 숙이며 정성을 다했다.
“이곳에서 가장 뛰어난 아이가 상공께 인사드리겠다고 합니다. 불러올까요?”
무흔은 슬쩍 백단영의 눈치를 살폈다. 가장 뛰어난 기녀라면 죽서루의 얼굴이다. 이곳 죽서루가 개봉에서 규모 면에서 셋째라 하더라도 고급 기루로는 단연 첫째이다 보니,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다면 이는 즉 개봉 최고란 말과도 같았다.
백단영은 무흔을 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고 해라.”
무흔이 답했다.
잠시 후 기녀 한 명이 올라왔다.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소녀 청아라 하옵니다.”
“청아라…….”
“상공께서 임금을 두 배로 올려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소녀는 시, 서화, 노래, 춤, 악기 등 다방면으로 재능이 있습니다. 상공께 노래 한 곡조 올려도 될런지요?”
청아가 칠현금을 꺼내며 물었다.
그리고 곧이어 이어진 그녀의 노래 솜씨는 대단했다.
청아의 노래가 끝난 후 백단영은 청아를 비롯한 모든 사람을 물렸다.
“그럼, 상공께선 편히 쉬면서 많이 드십시오.”
청아가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아니, 이 녀석이 한 게 뭐가 있다고 많이 먹어.’
백단영이 무흔을 쳐다봤다.
“무흔, 기루에는 몇 번 가봤어?”
“저요? 여기가 처음인데요?”
“거짓말 마. 응대가 능숙한 것을 보니 아주 수상해.”
백단영의 눈빛을 가까스로 흘린 무흔이 인수한 죽서루를 개조하는 사업을 설명했다. 죽서루를 무림주루로 개조하겠다는 말에 백단영의 눈빛이 빛났다. 그녀 또한 사업성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래서 제 계획에 따르면 일 층은 사람들이 친구들과 가볍게 술과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로 개방하고요, 이 층과 삼층은 고급 주루를 지향해서 기존의 기루를 일단 그대로 유지하는 거예요.”
“유지?”
“아, 정확하게는 기존 기루와 같지만 기녀들이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는 건전한 기루로…….”
이래저래 급하게 설명하다 보니 이해시키기에 부족했지만, 어쨌든 고개를 끄덕이는 백단영을 보니 대충 그의 사업 설명이 먹혔나 보다.
“그래, 투자금이 오만 냥이다 이거지?”
“오만 냥이면 엄청 싼 거예요. 이 기루가 원래 수십만 냥은 족히 나가는 기루인데 제가 엄청 노력해서 팍팍 깎은 겁니다. 아가씨께서 오만 냥을 내고 지분 절반을 가져가시면 완전 공짜죠. 물론 나머지 지분 절반은 제가 갖고 있고요.”
무흔은 자신이 오만 냥에 이 기루 전체를 인수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어쨌든 백단영에게 오만 냥을 받고 절반의 지분을 팔면 그는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지분 절반을 얻는 셈이니 대만족이었다.
백단영에게 오만 냥을 받은 후 합비의 다정루가 싼값에 나왔다고 다시 소문을 내어 다정루 또한 인수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는 돈 들이지 않고 일거양득이었다.
“흐음.”
백단영이 요리가 놓인 상과 무흔의 얼굴을 한참 번갈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무흔은 그녀의 승낙을 낙관했다. 지금까지 그녀가 이곳 개봉에 투자한 무림객잔과 무림다루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무림주루까지 엮으면 사업체로서도 꽤 큰 규모가 된다. 이재에 밝은 백단영이 절대 거절할 리가 없었다.
“좋아, 그런데 말이지…….”
백단영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무흔을 노려봤다.
“주루 사업한다고 여기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 거리면 혼난다.”
무흔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단영의 말뜻이 무엇인지는 대충 알 것 같다. 최근 들어 그는 백단영과 애매한 관계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 무림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라는 이유를 붙였는데, 그녀에게도 비슷한 장애물이 있어 보였다. 그것이 단순한 신분 차이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사업 구상을 끝내고 두 사람이 일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어린 소녀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상공! 오셨네요!”
꾸벅 인사하는 소녀들을 보니 지난번에 구해주었던 아이들이었다.
반가움에 무흔은 일일이 그녀들과 악수했다.
“집에 안 돌아갔어?”
“집에 전갈은 보냈어요. 저…… 상공을 만나 감사 인사드리려고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몸만 팔지 않으면 여기서 일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래, 여기서 일하겠다면 내가 행수기녀에게 말해 둘께.”
순식간에 소녀들에게 둘러싸여 환하게 웃고 있는 무흔을 보고, 백단영은 고개를 절래 흔들었다.
“어휴.”
그녀는 쿵쿵거리며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