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58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58화
158화. 다정루 (1)
그로부터 며칠 뒤 무흔은 장강 하류에 있는 안휘성에 입성했다.
물론 남궁이화와 백단영을 미행해 온 것이다.
백단영, 남궁이화, 남궁천기 세 사람은 곧바로 남궁세가로 직행했다. 무극서생으로 변한 무흔은 남궁세가까지 따라 들어갈 수 없었기에 부근에서 헤어져야 했다.
물론 그들이 어디에서 다시 나타날지 알기에 무흔의 마음은 가벼웠다.
안휘성 최대 도시인 합비.
복잡한 도심 외곽에 호수가 펼쳐진 풍경은 겨울임에도 운치가 가득했다.
그 호수 주변에 칠팔 층에 이르는 커다란 전각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바로 이곳 합비에서 유흥가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다정루였다.
안휘성 내 모두 세 곳에서 다정루가 기루 영업을 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규모가 큰 곳이 바로 이곳 합비에 있는 다정루였다.
무흔은 죽립을 쓰고 한 손에는 칼을 쥔 채 다정루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범상찮은 풍모에 손님뿐만 아니라 일하는 직원마저 물러나는 가운데 나이가 든 중년 미부가 화려한 궁장을 입고 등장했다.
“호호, 손님. 누구를 찾아오셨나요?”
그녀의 물음은 특별히 지명할 기녀가 있는지 묻는 것이다. 있다면 이 동네에서 놀아본 사람이고 없다면 기루는 초짜란 의미다.
당연히 무흔이 이곳에 아는 기녀가 있을 리 없다. 그는 기루마저 처음이 아닌가.
“간단하게 요기를 하려 하네.”
무흔이 무극서생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호, 그러시군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연신 그의 행색을 살피던 중년 미부가 그를 위층으로 인도했다.
위로 올라갈수록 중요한 손님이다. 당연히 음식값이나 나오는 기녀 수준도 올라간다.
무흔은 겉으로 보기에 전혀 돈을 쓸 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풍겼지만, 검을 쥔 모습이 살벌하다 보니 미부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녀는 일반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이 층과 삼 층을 지나 사 층에 무흔을 안내했다. 고위 관직자나 갑부들이 머무는 오 층에 비하면 못했지만 다정루 자체가 워낙 좋은 곳이기에 충분히 신경 써준 곳이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늑한 방으로 안내된 무흔에게 중년 미부가 말했다.
“저는 다정루에서 기녀를 관리하는 행수기녀 다홍이라 해요. 이곳은 처음이신가요?”
자리를 잡은 무흔은 대답 없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 호수에 떠다니는 몇 척의 배가 눈에 들어왔다.
대답을 듣지 못한 다홍이 난감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물었다.
“어떻게 차려 드릴까요? 기녀는 하나만 부르면 될까요?”
불안한 눈초리로 연신 눈을 힐끔거리는 미부에게 무흔이 그제야 입을 뗐다.
“알아서 차려오너라.”
한 마디 후, 무흔의 시선이 다시 호수로 향했다.
어정쩡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다홍이 뒤로 물러났다. 요구사항이 없는 손님이라면 가장 평범한 요리로 내주면 된다. 이곳 사 층의 손님이 가장 많이 시키는 요리와 중간급 정도의 기녀 말이다.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무흔은 죽립을 벗었다.
굳이 실내에서 죽립을 쓸 필요도 없거니와 이곳에서 그의 외모를 알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외모는 무극서생이라 중년에 마른 인상의 남자였다.
그가 다정루에 온 이유는 혁무휘가 준 정보의 신빙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 마교의 잔재가 숨어 들어있는지만 확인하면 충분했다. 정말 마교가 관여하고 있다면 자칫 백단영이 위험할 수 있다. 물론 서열 이십 위권 내의 인물이 아닌 이상 백단영을 어쩌지 못하겠지만.
어쨌건 미리 대비해서 나쁠 일은 없다.
잠시 후 다시 방문이 열리고 음식이 한가득 차려진 상이 들어왔다.
무흔의 눈동자가 절로 크게 떠졌다.
지금까지 이곳 무림 세계로 들어와서 온갖 음식을 먹긴 했다. 대부분 무림맹에서 먹는 평범한 음식이었지만 가끔 백단영과 다니면서 나름 진수성찬이랍시고 잘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등장한 음식은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이걸 어떻게 혼자서 다 먹으라고…….’
맛깔나게 차린 주요 요리와 주변 음식의 가짓수를 세어보니, 이건 황제가 부럽지 않을 수준이었다. 기껏 사 층이 이럴 정도이니 더 위층은 어떠할지 새삼 궁금해졌다.
그래도 이것 또한 무림 경험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무흔은 자세를 바로 세웠다. 밥상을 가져온 장한들이 사라지자 바로 기녀 한 명이 들어왔다.
비록 백단영이나 남궁이화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예쁘장한 여자가 그의 옆에 앉았다.
“나리, 소녀 설화이옵니다. 오늘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겉으로 본 무흔의 나이가 마흔 중반이었기에 무흔을 나리라고 칭했다.
저절로 무흔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현실에서나 이곳 무림에서나 여인과 이런 관계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무흔이 초보임을 눈치챈 노련한 설화가 무흔의 소맷자락을 끌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전했다.
“먼저 술 한잔하시지요.”
설화가 섬섬옥수를 들어 술 주전자를 잡았다.
고급술인 듯 술은 맛있었다. 지금까지 마셔본 어떤 술보다도 깔끔하고 향기로웠다.
설화가 집어주는 안주를 입에 넣으면서 무흔은 입을 열었다.
“넌 이곳에 얼마나 있었느냐?”
“소녀 오 년가량 되었습니다.”
오 년이면 이곳에서 겪을 만큼 겪었다는 뜻이다. 이것저것 알아내기에 적당한 연차다.
“여기는 신흥방의 보호를 받고 있느냐?”
무흔의 질문에 설화의 시선이 탁자 한쪽에 놓아둔 묵천신검으로 옮겨졌다.
“무림인이십니까?”
“보면 모르느냐? 최근에 하남에서 이곳으로 넘어왔다.”
“신흥방에서 관리해 주고 있긴 합니다만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빈객으로 몸을 의탁할까 해서 그런다.”
정파든 사파든 잠시 머물며 도움을 주고받는 빈객들이 흔했기에 설화는 의심하지 않았다.
“나리시라면 신흥방에서 발 벗고 환영할 것입니다.”
“허허, 그래야지. 요즘 신흥방이 손이 부족한가 보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잘 모릅니다만 한 달쯤 전부터 고수를 모으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뭔가 냄새가 났다.
흑도 방파가 무인을 끌어 모은다는 것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전쟁을 벌일 때뿐이다. 그런데 정보에 밝은 기녀가 모른다는 것은 적어도 사업 확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자, 한잔 다오.”
무흔은 의심을 피하려고 잔을 내밀었다.
설화가 집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무흔은 수시로 정보를 모았다.
그가 은전까지 짤랑거리며 친근하게 굴자 설화가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까지 수다를 떨었다. 그 대부분이 불필요한 것이긴 했지만 그런 것을 모아보면 그래도 괜찮은 정보가 엮였다.
합비에서 가장 큰 방파는 남궁세가였고, 신흥방이 뒤늦게 기세를 펴는 상태였다. 신흥방은 다정루 같은 기루와 유흥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는 중으로, 곳곳에서 남궁세가와 부딪치는 경우가 많았다.
서너 달 전에도 양쪽에서 크게 싸움이 붙어 일부가 다치는 불상사마저 있었다고 했다.
아직 신흥방은 남궁세가의 적수가 아니었기에 몸을 움츠려야 했다. 그런 신흥방이 최근 들어 각지의 흑도 고수를 끌어 모으고 있다.
“혹시 최근에 합류한 무인들이 있느냐?”
“무인이야 많습니다만…… 신흥방에서 특별하게 대하는 사람은 셋입니다.”
“특별하다니?”
“그 세 분은 여기 다정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데, 그 모든 비용을 신흥방에서 대고 있거든요.”
다정루에서 하룻밤을 자려면 어마어마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물론 부르는 기녀의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다른 숙박업소의 비용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들은 어디 출신이기에 신흥방에서 특별하게 대하나?”
“저희도 모릅니다. 어쨌든 나으리께서도 특별대우를 받으실 겁니다.”
“네가 내 무공을 어찌 알고?”
“제가 물장사가 몇 년인데요. 척 보면 딱이지요.”
대충 어떻게 된 영문인지 파악이 됐다.
신흥방을 도와주는 세 고수가 있다는 말이었다. 신흥방도 만만찮은 곳이니 그 세 고수는 아마도 손에 꼽히는 인물일 확률이 높다.
무흔은 그 셋이 마교에서 파견된 자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왕 정탐하는 김에 오늘 밤에는 그 세 녀석의 정체를 파헤쳐 볼까하고 고민했다.
이래저래 설화와 떠들다 보니 허기가 사라지고 배가 불렀다. 요리는 여전히 많이 남아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났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나으리, 술 더하시지 않겠습니까?”
무흔은 술을 더 시키려는 설화를 만류하며 다른 주문을 했다.
“오늘 여기에서 묵을 생각이니 방 하나를 구해주거라.”
“그럼 저도 함께…….”
설화가 배시시 웃으며 그의 눈치를 봤다.
무흔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이곳을 염탐할 때 의심을 피하려면 옆에 기녀를 끼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
본가에 돌아온 남궁이화는 밤이 깊어지는 시각에 연무장에 서 있었다.
이 연무장은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땀과 노력이 진하게 밴 곳이다. 오랜만에 이곳에 서니 과거의 기억이 물 흐르듯 지나갔다.
남궁세가의 명예를 위해, 무림 최강의 고수가 되기 위해 이곳에서 얼마나 땀을 흘렸던가. 남다른 무재를 뽐냈던 그녀가 무공 성장에서 벽에 부딪히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벽을 깨기 위해 용봉대에 참여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잘한 결정이었으나, 한편으로는 더욱 좌절을 안겨줬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우상이라 할 무극서생을 만나 무공을 배웠다.
최소한 지금보다 더 강해진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이 보았던 무극서생의 신위에 만족했다. 자신이 그 수준에 이를 수 있다면 남궁세가의 절기를 익힐 수 없는 설움을 충분히 날려버릴 수 있다고.
남궁이화는 검을 손에 쥐고 자세를 잡았다.
추운 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녀는 전혀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비천삼검을 연마할 때면 그녀의 모든 신경은 이 검법에 집중하기에 미처 주변을 인지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그녀는 천단비화신공을 운용하며 서서히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끊임없이 연마한 이 신공은 다행히 기존에 그녀가 운용하던 심법과 그 결이 맞아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한 그녀는 곧바로 천단비화신공에 매진했다. 불과 며칠 만에 내공이 급증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아!”
그녀는 가쁜 숨을 토해냈다.
비천삼검을 익힐 때면 가슴을 채우는 벅찬 감동이 있었다. 이 검법의 신위를 목격한 덕분이겠지만 그녀는 이 기분을 사랑했다.
남궁이화는 내력을 검에 쏟아 넣으며 비천삼검 일식을 펼쳤다.
번쩍! 번쩍!
어마어마한 위력이 연무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
이어지는 이 식. 그리고 마지막 삼 식에 이르자 그 위력은 대단했다.
아직 완전히 연성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비천삼검의 위력은 그녀에게 격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콰아앙-
검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연무장 바닥을 직격하며 마치 땅거죽이 갈라지고 뒤집히듯 격동적인 파문이 일었다.
남궁이화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거두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누구든 상대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이런 기분은 무공을 배운 이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 검법을 가르쳐준 무극서생에게 다시 감사를 올렸다.
“이화?”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백단영이었다.
최근 들어 그녀가 무공을 수련하고 있을 때면 백단영이 가끔 다가와서 조용히 지켜보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말을 거는 것을 보니 평소와 달리 할 말이 있는 것 같다.
“응?”
남궁이화는 소매로 땀을 닦으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