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5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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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52화
152화. 자하신공 (4)
분명히 처음 시작할 때는 무흔이 백단영에게 기대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녀가 그에게 기대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장후성과의 비무로 피곤했던 듯 그녀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자신도 모르게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로 향했다.
잠시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던 무흔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고문이 따로 없군.’
그는 숨을 고르며 뛰는 심장을 안정시킨 다음 그녀를 깨웠다.
“응? 아! 내가 잠이 들었었나?”
무흔은 그녀에게 핀잔을 줬다.
“이거 너무 한 거 아녀요?”
“너 강아지잖아.”
괜히 말했다가 본전도 못 찾은 무흔은 퉁명스럽게 자하신공 비급을 그녀에게 다시 넘겼다.
“다 봤어요.”
“정말? 진짜 빠르네. 그럼 해결책을 한번 고민해봐. 급하진 않고 천천히 해도 돼.”
백단영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며 비급을 품에 집어넣었다.
“그냥 지금 해드릴게요.”
“응?”
깜짝 놀란 백단영이 눈을 감지 못하고 그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자하신공은 화산이 자랑하는 무공이다. 그런 무공의 보완책을 금방 생각해냈다는 사실을 당연히 믿을 수가 없다.
무흔이 삐뚤어진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알려드려요, 말아요?”
“응. 알려줘.”
무흔은 생각해낸 보완책을 설명해줬다.
자하신공의 구결 일부를 바꾸어서 기존의 화산파 무공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무당파 무공의 위력을 증진하는 방법이었다. 같은 도가 계열이라 수정할 부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수정 덕분에 자하신공의 쓰임새는 대폭 넓어졌다.
무흔은 그 내용을 세밀히 알려주면서도 걱정했다. 그녀가 과연 이 모든 내용을 잘 기억했다가 장후성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가 직접 말해줄 수도 없지 않나.
그의 염려는 금세 날아갔다. 놀랍게도 백단영은 그가 설명해준 모든 내용을 잊지 않고 기억했다. 과연 엄청나게 뛰어난 머리를 지님과 동시에 정평 있던 무재 다웠다.
멍한 표정을 짓는 무흔을 남겨두고 백단영이 옷을 털며 일어섰다.
“그럼 난 가볼게. 너무 늦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야.”
이미 둘만 따로 나온 지 꽤 시간이 흘러 어차피 그렇게 보일 것이 당연했지만, 어쨌든 무흔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무흔. 그럼 눈 감아볼래?”
무흔은 영문을 모르고 눈을 감았다. 평소 백단영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갑자기 그의 이마 쪽에 따스한 감촉이 어렸다.
‘어? 이게 뭐지?’
무흔은 황홀한 촉감에 가슴에 불이 확 일었다.
잠시 이마에 머물던 부드러운 느낌이 천천히 사라졌다. 무흔은 눈을 떴다. 저쪽에 백단영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무흔은 아직 온기가 남은 이마를 손으로 문질렀다. 방금 받은 보상만으로도 본전을 충분히 찾은 것 같았다.
***
장후성은 장원에 배정된 자신의 방에서 자하신공 비급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방금 백단영이 와서 비급을 돌려주었다. 그뿐이면 놀랄 일은 없다. 그냥 비급을 조금 빨리 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녀가 분석해준 내용은 짐작조차 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그녀가 쭉 상세한 구결을 풀어놓았을 때 장후성은 자하신공의 단점을 재빨리 알아챘다. 그녀가 수정해준 해결법으로 자하신공이 화산파 이외의 다른 무공에도 효과적으로 활용되도록 범용성이 대폭 확장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직 햇병아리 무림인이…….”
백단영은 고수이긴 하지만 무공에 입문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무림맹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제대로 배운 적도 없다고 했었다. 백번 양보해서 그녀가 어릴 때부터 무공을 배웠다고 해도 수백 년 내려온 절기를 단지 한번 읽어보고 보완할 수 있을까.
장후성은 무흔의 존재를 전혀 몰랐기에 이 모든 것이 백단영이 해낸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그에게 백단영은 능력을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인물로 떠올랐다.
“하긴…… 무림맹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특이하긴 했어.”
그는 백단영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모용예와 견줄만한 수준급의 미모. 모용예와 다른 발랄한 성격. 모용예와 다른 재지 넘치는 현명함. 그 모든 부분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머릿속에서 모용예와 백단영이 서로 비교됐다. 지금까지 그는 후기지수 최고의 기재이자 훈남이었기에 무림의 모든 여협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마치 구원을 내리듯 손을 뻗어 잡았던 여인이 모용예였다.
비록 모용예가 중원에서 천중화라는 최고 미녀의 자리에 있다지만, 그런 모용예마저 그의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손을 갈구했다.
그렇다 보니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리고 그가 손을 내밀면 백단영도 언제든 잡을 것이란 왜곡된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왜 이렇게 백단영에게 끌리지…….”
그는 쓴맛을 느끼며 입술을 축였다. 하지만 정파의 대협이 그럴 수는 없는 법. 그는 체면을 버릴 수 없었다.
***
밤이 이슥해진 시각에도 무흔은 장원의 정원을 거닐었다.
백단영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받은 선물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던 점도 있었지만 화산의 절정 무공을 접하면서 무공의 새로운 길이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다.
각종 계파의 다양한 무공을 접하면서 각 무공의 장단점이 보였다. 나아가 이를 보완할 방법도 일부 떠오르긴 했지만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 채 정원을 산책했다.
그가 정원에서 가장 한적한 지역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뿌연 그림자가 나타났다. 순간 경계심에 몸을 움츠리던 그는 그림자가 누구인지 눈치챘다. 바로 북령이었다.
놀랍게도 적진 한가운데에 나타난 북령이 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야?”
무흔은 주위를 쓱 훑어본 다음 그녀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전해 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북령이 산책로에서 벗어나 숲속으로 이동했다. 무흔도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이곳 무당산으로 파견된 마교 병력 정보를 알려드리려고요.”
무흔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아마 무당과 전쟁을 벌이는 주축이 사마극일 테니 은옥상 입장에서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무흔이 결정할 문제다.
그는 북령을 조용히 쳐다보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이곳으로 접근하는 주력은 사마련입니다만 마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마교의 주요 무력 부대인 적살대이고요. 그 힘은 지난번 흑살대와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미 무림맹에서도 어느 정도 파악한 내용이었다. 단지 이것뿐이라면 굳이 은옥상이 북령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공습의 특징은 양동작전입니다. 겉으로는 무당과 대치 전선을 이루지만 주요 목적은 시간 끌기입니다. 대신에 다른 중요 문파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마극이 특별히 구성한 특수부대가 움직인다고 보시면 됩니다.”
예전에 무림맹 책사로부터 비슷한 부대를 마교 측에서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무흔은 금방 이해했다.
“그 문파가 어디지?”
“현재 제가 파악하기로는 남궁세가입니다.”
“알았다. 그게 전부인가?”
북령이 그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무흔은 북령이 전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재차 구성했다.
예전 점창파 전투에서도 증명되었듯이 무림맹과 사마련이 정면으로 붙으면 양쪽 모두 피해가 발생한다. 당연히 사마극 역시 이런 흐름을 좋아할 리가 없다.
북령의 정보는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사실임이 분명했다. 특히 은옥상이 그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어 득을 볼 일이 없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아마 은옥상은 그를 통해 사마극을 견제할 생각일 것이다.
남궁세가는 오대세가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문이다.
현재 용봉대에도 두 사람이 소속되어 있고, 무림맹 일반부대에도 많은 문인을 파견했다.
“정천문과 같은 상황이 되려나?”
정천문이 주요 병력을 점창파 쪽으로 보냈다가 마교에 뒤를 두들겨 맞았다. 비록 남궁세가의 규모가 정천문에 비할 바 아니라 하지만 주력이 빠졌다면 취약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알려야 할까?”
남궁이화가 눈앞에 떠올랐다.
항상 더 강한 무공을 연마하고자 발버둥을 치는 그녀를 생각하면 이 사실을 반드시 알려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는 이런 정보를 얻어낼 위치가 아니어서 직접 전할 수 없다.
용봉대 일부가 남궁세가를 돕기 위해 움직인다면 이곳 무당산의 무림맹 전력이 위축될 것이 뻔했다. 아마 무림맹 지휘부에서는 불명확한 정보에 동요하지 말라고 반대할 것이다.
무흔은 고민에 잠겼다.
***
다음 날 낮에 무흔은 백단영을 만났다. 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백단영에게 이야기하기도 망설여지긴 했다.
남궁세가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리려면 정보의 출처를 밝혀야만 하니까. 그렇다고 은옥상이 그에게 전했다고 대답하기엔 거리끼는 부분이 많았다. 백단영은 은옥상과 해묵은 원한이 있지 않은가.
다행히 백단영은 그에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사실 백단영은 마교의 정보이므로 매화곡에서 흘러나왔음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지 그가 곤란해할까 봐 직접 묻지 않은 것일 뿐.
“남궁 소저에게 직접 판단하라고 해. 이해 당사자니까. 우리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사안이 아니지.”
백단영이 흔쾌히 해법을 제시했다. 무흔과 달리 의외로 그녀는 과감했다.
그리고 지금 남궁이화를 백단영과 함께 만났다.
“정말이야?”
남궁이화가 경악한 표정으로 백단영과 무흔을 쳐다보았다.
사실 어떤 문파이든 마교의 기습을 받고 버틸 능력은 없다. 남궁세가도 마찬가지였다. 설령 잘못된 정보일지 모르지만 걱정되지 않을 리 없다.
백단영의 진지한 표정에 남궁이화는 적어도 그녀가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원래 남궁이화는 단순한 성격이다. 계략과 음모를 꾸밀 줄 모르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 직선적인 성격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굳이 정보의 출처를 묻지 않았다.
“어떻게 할 거야?”
백단영이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수를 쓰든 구해야지. 집안이 위험에 빠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잖냐.”
“하지만 위에서는 반대할걸? 그렇게 가문이나 사문이 위험하다고 하나둘 빠져나가면 무림맹은 와해되고 말아. 저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수 있어.”
생각지도 못한 백단영의 지적에 남궁이화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 용봉대에서는 원한다고 하여 개별 행동을 마구잡이로 할 수 없다.
남궁이화와 백단영이 고민에 빠졌으나 해결 방법이 떠오를 리 없었다. 이미 무흔이 수도 없이 했던 고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남궁이화의 성격이다. 일단 저지르고 부딪치고 보는 것이 그녀의 방식이었다.
“일단 확인해보자.”
“대주님께 말하려고?”
그녀의 의도를 이해 못 한 백단영이 다시 물었다.
남궁이화가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대주님은 분명히 헛된 정보에 놀아나지 말라고 하시겠지. 그러니까 내가 직접 확인해보겠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사마련 부대 쪽에?”
“아니, 마교 쪽에. 사마련이 그런 고급 정보를 알 리 없지.”
“그건 위험해.”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 없잖냐? 가문이 위험한 것보다 내가 위험한 게 더 나아.”
남궁이화가 재빨리 검을 챙겼다. 지금 바로 떠나려는 모양이다. 역시 화끈하게 일을 벌였다.
그들이 들은 정보에 따르면 이곳으로 다가오는 사마련 부대 뒤쪽에 하루 차이로 마교로 보이는 상당히 큰 부대가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남궁이화가 목표한 곳은 바로 그 부대였다. 무흔이 적살대로 기억하는 부대다.
“나 홀로 갈게. 대주님에겐 잘 말해줘.”
남궁이화의 신형이 사라졌다.
발만 구르던 백단영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급히 뒤따라갔다.
홀로 남은 무흔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