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8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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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88화
188화. 황하사신 (3)
천마산의 한쪽 비탈에 숨겨진 동굴 앞에 은옥상이 나타났다.
절대마령을 깨우던 날 들린 후 처음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옥소마희가 따라붙었다. 평소 그녀를 호위하던 남혼북령을 오늘만은 데려오지 않았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정말 절대마령이 자리를 비웠을까요?”
지난번에 절대마령 때문에 혼쭐이 났던 옥소마희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은옥상은 어둠 속에서 지그시 입술을 베어 물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지. 만일 저 동혈 속에 절대마령이 그대로 있다면 바로 철수한다.”
은옥상은 머릿속에서 다시 작전 계획을 되새겼다.
갈무량이 알려 주었던 그 날이 바로 오늘이다. 그 정보가 옳다면 절대마령은 사마극과 함께 귀령신을 제거하러 가고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한차례 왔었던 동굴이었지만, 기억보다 동굴이 깊숙이 이어졌다.
은옥상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면서 내부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여전히 절대마령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없는 것 같은데?”
은옥상의 희망적인 말에 옥소마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그분께선 왜 한빙소의 물을 떠달라고 했을까요?”
“나도 모르겠어. 워낙 엉뚱하고 신출귀몰한 사람이라…….”
은옥상과 옥소마희는 무흔을 떠올렸다. 그들은 한빙소의 물을 떠달라고 한 무흔의 요구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어쨌든 물을 뜨면 옥소마희 넌 곧바로 중원으로 들어가. 가서 그를 만나 전해 줘. 알지?”
“네, 그러겠습니다.”
옥소마희는 결의에 찬 대답을 했다.
동굴 안 깊숙이 들어왔으나 변화는 없었다.
점차 그들의 눈앞에 한빙소가 보였다. 절대마령이 존재할 때는 무시무시한 귀기가 서려 두려움이 억눌렀는데, 지금은 그저 평범한 작은 연못으로 보였다.
“여기가 한빙소가 맞나?”
어리둥절해진 은옥상이 한빙소와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맞아요. 지난번에 여기에 절대마령 셋이 서 있었으니까요.”
주위를 둘러본 옥소마희가 확실하다고 확정해 주었다.
은은하게 몸으로 스며드는 한기는 분명히 계절 탓만은 아니었다. 유독 눈앞에 보이는 시퍼런 물에서 더 강하게 느껴졌으니까.
은옥상은 조심스럽게 한빙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넣었다. 어둠 속이라 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물에 잠긴 손이 어떤 모습일지 짐작되지 않았으나, 손으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은 이곳이 한빙소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물주머니 줘봐.”
은옥상이 손을 내밀자 옥소마희가 물주머니를 넘겼다.
물을 뜨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녀는 충분한 양의 물을 주머니에 담은 다음 물이 새지 않도록 단단히 밀봉했다.
이것으로 무흔의 부탁을 들어 준 것인가.
은옥상은 옥소마희에게 물주머니를 넘긴 다음 몸을 일으켰다.
크르르르-
그때 동굴 입구에서 땅을 끄는 듯한 이상한 소음이 들려왔다.
옥소마희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절대마령이에요!”
놀란 두 사람이 동굴을 튀어 나가려는 순간 동굴 입구를 어두운 그림자가 막아섰다.
묵직한 기운, 차가운 한기. 건장한 덩치를 가진 사나이 둘과 하늘하늘한 여인 하나. 절대마령이 분명했다.
앞으로 질주하려던 은옥상은 몸을 정지시키고 주위를 둘러봤다. 동굴 안이라 어떻게 피하거나 숨을 방법이 없었다.
크르르르-
절대마령이 땅바닥을 끌며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왔다.
“도망치자!”
더는 머뭇거릴 수 없다고 판단한 은옥상이 소리를 지르며 번개처럼 앞으로 내달렸다. 옥소마희 역시 그녀를 뒤따라 질주했다.
순간 절대마령 하나가 그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다.
콰앙-
순간적으로 파고드는 거대한 압력에 은옥상은 장력을 내뿜어 깨트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절대마령은 조금도 전열을 흩트리지 않고 계속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대로는 절대마령을 뚫고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한 은옥상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전력을 다해 앞으로 쏘아나갔다. 옥소마희 역시 가세했다.
두 사람은 동굴 벽을 박차고 절대마령과 동굴 벽 사이의 틈을 뚫고자 전력을 다해 장력을 퍼부었다.
다시 절대마령으로부터 강력한 압력이 밀려왔다.
은옥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유지했다. 오히려 재차 장력을 발산하며 이 한 번의 시도로 절대마령을 뚫고 넘어가길 기도했다.
콰앙-
다시 폭음이 일며 동굴 내부에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놀랍게도 은옥상의 공격에 절대마령의 기운이 반응하여 거미줄처럼 그녀를 압박했다. 마치 무림인이 그녀의 공세에 반응하듯 절대마령 역시 그녀의 길목을 막으며 장력을 깨트렸다.
틈을 뚫을 수 없게 된 은옥상은 눈앞에 보이는 절대마령의 가슴을 향해 전력을 다해 일장을 퍼부었다.
퍼벅-
마치 파도가 치는 바다에 조약돌이 흡수되어 사라지듯 순식간에 그녀의 장력이 절대마령의 가슴 앞에서 소멸했다. 어이없는 결과에 그녀의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 강한 충격이 그녀의 상체를 강타했다.
“으윽!”
은옥상은 이 장 가량 뒤로 날려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옥소마희 역시 마찬가지로 그녀 옆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은옥상은 상대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마령은 꼼짝하지 않고 그들의 길목을 차단하고 있었다.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흐흐, 은 사매? 이곳에는 무슨 일이신가?”
절대마령 사이로 흑의무복을 걸친 청년이 나타났다. 바로 사마극이었다.
은옥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음모에 빠진 것인지 재수가 없었던 것인지 도무지 분간되지 않았다.
“귀령신에게로 갔다던데…….”
신음성과 함께 내뱉은 그녀의 말에 사마극이 한차례 대소를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동굴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크하하, 그러려고 했었는데…… 귀령신이 바로 꼬리를 내려 버리더군.”
귀령신을 같은 편으로 회유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빨리 이곳으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갈무량의 음모일까. 은옥상은 혼란스러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 문제가 아니라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한빙소 물을 무흔에게 전하는 최종 목적 또한 반드시 이뤄야 한다.
하지만 탈출구는 절대마령과 사마극에 막혀 있었다.
은옥상이 주먹을 꾹 움켜쥐며 마음을 다지는 순간 사마극의 목소리가 귓전을 압박했다.
“쳐라!”
***
여관에서 뛰쳐나간 일행은 황하사신을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하북삼절은 황하사신을 곧바로 추적했으나, 뒤이어서 나간 남궁이화와 백단영은 그들의 행방을 잃어버렸다.
백단영은 남궁이화와 신호를 교환하고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주위가 낮은 야산 지대이고 숲이 울창하여 추적이 쉽지 않았다. 특히 어두운 밤이라 가시거리가 더욱 제한됐다.
잠시 정신없이 달려 산 중턱에 올라선 백단영은 주변을 훑어보았다. 순식간에 꽤 멀리 달려온 듯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더 넓은 지역을 살피기 위해 능선을 타고 올라갔다.
작은 봉우리에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인기척을 느꼈다. 건너편 숲 속에서 두 사람의 기운이 느껴졌다.
내력을 끌어올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순간 나무 사이로 두 그림자가 나타났다.
특이하게도 한 사람은 스님이고 다른 사람은 중년미부였다. 야밤에 산속을 헤매는 두 남녀라니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혹시…….”
백단영이 말을 꺼내려 하자 두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미타불, 묻고 싶은 게 무엇입니까?”
스님이 인자한 표정으로 한 손에 염주를 돌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혹시 머리를 산발한 죄수 한 사람을 보셨습니까?”
“아미타불, 죄수요? 혹시…… 색마처럼 생긴 노인장 말입니까?”
황하색신이 색마처럼 생겼었나? 백단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네, 그 사람 맞는 것 같네요. 보셨어요?”
“아미타불, 한 시진쯤 전에 여관 앞 창살 속에 있더군요.”
“아, 그 사람 맞아요.”
그녀가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중년미부가 그녀의 뒤로 돌아갔다. 그녀를 가운데 두고 두 사람이 앞뒤로 길을 차단한 형국으로 바뀌었다.
“방금 도망친 것 같은데 어디로 갔는지 소승도 모릅니다.”
관심 없다는 투의 말에 백단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란 점이 느껴졌다. 말로 그녀를 놀리고 있다는 기분도 들었고.
“혹시 스님의 법명은 어떻게 되십니까?”
“소승은 광이라 합니다.”
특이하게도 법명이 한 글자였다.
“광이라…… 그럼 부인께선?”
백단영은 뒤쪽에 선 미부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는 북해검후라 하지요.”
미소를 띠며 대답한 미부가 손을 자신의 검에 올렸다.
그 순간 백단영은 이들의 정체를 깨달았다. 북해검후. 북해에서 최강자로 군림하는 무시무시한 여인. 검으로 일가를 이루는 경지에 올랐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앞에 있는 스님은? 그녀는 광이 들어간 별호를 재빨리 되새겼다.
금방 후보가 드러났다. 서역광불. 서역에서 미쳐 날뛰는 땡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 밤에, 이 야산에 새외를 울리는 두 고수가 우연히 만났다? 그것도 중원에서? 뭔가 심상치 않았다.
“두 분께선 어쩌다 이곳에…….”
순간 뒤에서 검기가 느껴졌다.
번쩍!
백단영은 황급히 무흔천상보를 펼쳤다. 미리 대비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목이 떨어졌을 것이다.
허공에 그녀의 잘린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기습이었다지만 절정의 보법이었음에도 나타난 결과에 백단영은 가슴이 서늘했다.
그녀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이번에는 정면에서 서역광불의 선장이 날아왔다.
백단영은 무리해서 대항하지 않고 곧바로 위로 튀어 올랐다. 뒤는 북해검후에게 막혀 있고, 옆은 비탈이라 피할 곳이 위쪽밖에 없었다.
다행히 위쪽에는 커다란 나뭇가지가 있어 그녀는 그 위에 발을 디디며 소리쳤다.
“서역광불! 북해검후! 왜 나를 공격하죠?”
두 사람이 무기를 겨누고 그녀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우리는 너를 죽이려고 중원에 들어왔다. 황하색신을 탈출시킨 것도 너를 일행에게서 떼어 내기 위해서였지.”
“왜 나를…… 아! 사마련의 사주를…….”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백단영은 금방 자신을 공격했던 대막혈사와 남해수신을 떠올렸다. 멸겁방주와 광혼곡주를 살해한 여파가 사마련에 꽤 충격이었나 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생결단을 낼 도리밖에 없다. 비록 저들이 한 지역의 패자라지만 두려움은 일지 않았다. 이미 비슷한 두 사람을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문제는 저들의 수. 둘이 연합하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나무 위에서 연검을 푼 백단영은 저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때 주위를 울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핫핫! 우리 아가씨를 상대하려면 나부터 넘어야 해.”
반갑게도 무흔이 묵천신검을 들고 나타났다.
북해검후가 멀리서 다가오는 무흔을 발견하고는 안면을 찌푸렸다.
“항상 따라다니던 그 호위무사인지 하는 작자군.”
백단영은 북해검후의 반응에 이들이 그녀를 미행하며 작전을 꾸민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란 사실을 실감했다.
“감히 머슴 따위가 낄 자리가 아니다.”
북해검후가 다짜고짜 무흔을 향해 벼락처럼 검기를 날렸다.
무려 오장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서늘한 검기가 순식간에 무흔의 허리를 베어 왔다.
쩡!
북해검후의 검기는 모습을 드러낸 묵천심검에 바로 막혔다.
무흔은 묵직한 기운을 느끼면서 순식간에 북해검후의 무공을 가늠했다.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백단영을 능가할 수준은 아니다.
“흠? 대단한데?”
북해검후 역시 무흔의 기세가 예상 밖이란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북해검후와 서역광불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각자 백단영과 무흔을 공격해 들어왔다.
서역광불의 강력한 선장을 맞이한 백단영은 나뭇가지를 넘나들며 적을 상대했다. 무흔은 북해검후의 검초를 가볍게 막으면서 오히려 그녀를 힘으로 억눌렀다.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좁은 능선에서 네 사람이 뒤엉켜서 싸우는 진기한 광경이었다. 그 능선 양옆으로는 절벽과 마찬가지인 가파른 비탈이 끝없이 아래로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