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85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85화
185화. 열담과 한담 (2)
푸르고 붉은 두 연못을 바라보는 무흔은 감회가 새로웠다.
신기하게도 계절이 바뀌는 데도 연못과 그 주변의 풍경은 일정했다. 한쪽은 수증기가 일며 끓고 있고 다른 쪽은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특이한 광경에 홀린 듯 정신을 빼앗긴 남궁이화를 내버려 두고, 무흔은 한담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단지 담그기만 해서는 보통의 물과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천상심공을 일으키면 사정이 달라졌다. 잠긴 손가락으로 물에서 전해지는 기운이 느껴졌다.
무흔은 천상심공과 반야금강선공을 운기할 줄 알기에 한담을 손쉽게 실험할 수 있었다. 그는 한담에서 느껴지는 기운과 마교에서 절대마령을 상대할 때 느꼈던 기운을 비교했다.
두 기운은 분명히 이질적이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놀랍도록 유사한 점이 있었다.
무흔은 자신의 짐작이 옳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각에 잠겼다. 이 한담의 기운을 연구해 보면 절대마령을 제압할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가 뿌듯해 하고 있을 때 뒤에서 백단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흔, 이제 비켜 줘야지?”
“네? 비켜요?”
무흔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백단영이 안면을 찌푸리며 그를 째려봤다.
“그럼 넌 처녀 둘이 목욕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을 거야?”
“그건 아니지만 지난번에는 옆에 있었잖아요?”
무흔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백단영이 남궁이화의 눈치를 보며 무흔을 타박했다.
“그때는 물에 뭐가 있을지 몰라 겁이 나서 그런 거고. 이젠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 넌 우리가 끝나면 다시 오면 돼.”
“그때 둘이서 같이 목욕했냐?”
화들짝 놀란 남궁이화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아, 아니. 절대 그런 적 없어.”
백단영이 서둘러 손을 내저으며 진화했다.
이 기회를 놓칠 무흔이 아니었다. 그는 투덜거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에이, 바로 옆에서 각자 몸을 담갔잖아요. 그때 내 옷까지 훔쳐 가 놓고…….”
문득 그때 옷을 도둑맞아 개고생했던 사건이 떠올랐다. 금방 그의 내심을 알아챈 백단영이 그를 노려보며 경고했다.
“너! 그 뭐지? 선녀와 나무꾼? 하여튼 옷 훔쳐 가면 혼날 줄 알아. 나, 지금 장난치는 것 아니다. 옷 훔쳐 가면 너 백가상단에서 쫓아내 버릴 거야.”
복수심에 불타던 무흔은 바로 찌그러졌다. 상단에서 쫓겨나는 것은 타격이 컸다.
약자가 참아야지 어쩔 수 있나.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물러서는 무흔과 달리 남궁이화는 의문 가득한 눈길을 두 사람에게 보였다.
“선녀? 나무꾼?”
궁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남궁이화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백단영이 바로 무마했다.
“그런 거 아냐. 어쨌든!”
백단영이 무흔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무흔 넌 이만 내려가 봐.”
그녀의 서슬 퍼런 시선에 무흔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났다.
“알았어요. 두 분이 각자 나누어 들어가시면 돼요. 남궁 소저께선 열담에, 아가씨께선 한담에…… 시간은 지난번처럼 꽤 걸릴 것 같네요.”
무흔은 그때 당시 거의 하루 동안 운기조식에 빠져 있었던 경험을 떠올렸다.
무흔이 아래로 사라지자 남궁이화가 열담을 바라보며 몸을 으스스 떨었다.
“흐아, 시뻘건 물이라 공포인데? 여기에 들어가면 정말 공력이 세지냐?”
“그럴 거야. 무흔이 그렇다니깐.”
무흔을 타박했던 백단영이었지만, 그에 대한 믿음만은 철저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열담과 한담에 몸을 담갔다. 백단영은 두 번째라 별다른 기분을 느끼지 못했지만 남궁이화는 설명하기 힘든 특이한 느낌을 받았다.
열담에 익숙해지고자 물속에서 살살 몸을 놀리던 남궁이화는 다시 백단영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지난번에는 무흔이랑 둘이서 이러고 있었단 말이지?”
“그……, 그렇긴 한데…….”
당황한 백단영이 말을 흐렸다.
하지만 정작 남궁이화는 그런 백단영이 무척 부러웠다.
무흔이 사라진 방향으로 시선을 두던 남궁이화는 잡념을 거두고 천단비화신공을 일으켰다.
고오오오-
새로운 절대 강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백단영이 없는 동안 무흔은 놀고 있지 않았다. 아니, 천상사화랑 놀고 있었다.
그는 천상사화에게 부족한 무공을 다양하게 전수했다.
아교를 비롯한 네 여인은 무흔을 마치 친오빠처럼 따랐다. 엄밀하게는 오히려 천상사화가 나이가 더 많았지만, 그래 봐야 한두 살 차이다. 어쨌든 무흔은 사형 대접을 확실하게 받으면서 그녀들을 교육했다.
이제 천상사화의 무공은 어디에 가더라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향상됐다. 예전에 비하면 천지개벽 수준이다.
천상사화가 배운 무공은 다시 그 아래 문도에게 전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무흔은 가르침에 박차를 가했다.
만 하루가 지나 백단영의 연공이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무흔은 물주머니 두 개를 준비했다. 열담과 한담의 물을 떠가기 위한 것이다.
한열계곡 내부로 들어간 무흔은 막 물에서 나와 옷을 입은 두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백단영의 변화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궁이화는 확실히 달라졌다. 피부가 뽀송뽀송해지고, 얼굴이 반들반들해진 것이 미모가 한층 빛났다. 아마도 그녀 또한 환골탈태를 경험한 것으로 추정됐다.
무흔이 등장하자 두 사람이 그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 표정은 원하는 바를 얻었음을 암시했다.
남궁이화의 내공 증진은 당연하리라 예상했지만, 백단영의 경우에는 의문이었던 터라 무흔은 내심 안심했다. 백단영에게 효과가 있었다면 그에게도 효과가 있을 테니까.
두 사람을 살펴본 무흔이 남궁이화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효과가 어때요?”
“정말……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효능을 얻었어요. 환골탈태이 정말 가능할 줄은…….”
남궁이화의 대답에서 그녀가 어떤 효과를 보았는지 분명해졌다.
그녀를 축하해 주려는데 백단영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무흔을 쿡 찔렀다.
“무흔, 너 혹시 저쪽에서 엿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
“에이, 설마요. 뭐 볼 게 있다고…… 컥!”
무흔은 난데없이 날아온 그녀의 주먹질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게 더 열 받아!”
무흔은 황당한 표정으로 백단영을 쳐다봤다.
“이제 저도 시작해야 하니 두 분께선 그만 내려가시죠.”
내공 향상에 대해 더 말하지 못해 아쉬운 표정을 짓는 남궁이화의 팔을 백단영이 잡아 끌었다.
“얼른 가자.”
“할 이야기가 있는데…….”
투덕거리며 내려가는 두 여자를 보며 쓴웃음을 짓던 무흔은 가져온 물주머니에 물을 담았다. 훗날 한빙소의 물까지 확보하여 세 물을 비교하면 더 명확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열담에서 내공을 향상할 시간이다.
그의 내력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사마극이나 은옥상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 또 절대마령에 비하면 한참 처지는 수준이다. 물론 인간이 아닌 절대마령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무흔은 열담에 몸을 담그고 천단비화신공을 운기했다.
초반에는 지난번과 달리 별 반응이 없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열담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다. 조짐이 나쁘지 않았다.
하루가 지났을 때 무흔은 급증한 내력을 느끼면서 운기를 마쳤다.
그가 열담에서 상념에 잡혀 있는 동안 내력만 증가한 것은 아니었다. 무흔은 검법의 새로운 경지를 엿보았다.
대부분의 검법은 검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휘두르는가의 문제다. 검법을 수련하다 보면 내공과 얽혀 검기가 일어나고, 그것이 더 강화되면 검강이 생성된다.
검강은 검 외부로 뻗어 나간 기의 응집체이기에 검보다 더 날카롭고 자유롭다. 검강을 구현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검강이 꿈의 경지일지 모르지만, 엄밀히 따지면 검강은 비효율적이었다.
검강을 유지하는데 내공의 소모가 극심하고, 모든 검법이 검강이 아닌 검에 초식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흔은 검강을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 이 시점에서 검강을 위한 검법을 구상했다. 무공 창조에 자유롭고, 그만한 경지에 올라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꿈도 꾸지 못할 능력이다.
이것은 마음이 이는 곳에 검이 생성된다는 심검과는 다른 경지였다. 다만 검강을 형성할 수 있는 고수에게 적합한 새로운 검법일 뿐이다.
검강으로 만들어지는 초식이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특이한 형식의 검법이다. 검강은 초기 단계에서는 하얀색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극에 이르면 투명해져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흔은 이 검법을 무흔검법이라 이름 붙였다.
무흔(無痕). 흔적이 없는 검법이란 이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강에 적합한 이름이기도 했다.
새로운 검법까지 창안한 무흔은 느긋해졌다.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한 그는 열담을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만 하루가 지나고 그는 옷을 입으려고 몸을 일으켰을 때였다.
“음?”
그가 한쪽에 개어 두었던 옷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지난번처럼 옷을 숨기는 치사한 장난을 또 한 건가? 어린애도 아니고. 무흔은 투덜거리며 열심히 옷을 찾았으나 소득이 없었다.
예전처럼 아교라도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먼 곳을 살피고 있자니 역시 그때처럼 아교가 나타났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그때는 아교의 손에 옷가지가 들려 있었는데 지금은 빈손이었다.
“아교야!”
그래도 반가움에 무흔은 손을 높이 흔들었다.
아교가 물에 잠긴 무흔을 보고 안면을 붉히며 하소연했다.
“사형! 어떻게 해요? 아무리 찾아도 옷이 없어요. 사저도 절대 안 가르쳐 준다는데…….”
“그럼 다른 옷이라도 좀 가져다주라.”
“아시잖아요. 여기에는 여자밖에 없어서 남자 옷 구할 수 없다는 걸요.”
“그럼 장에 나가서라도 사다 주라.”
무흔은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사정했다.
난처한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이 동네는 오일장이잖아요? 어제 장이 섰으니까 나흘 기다리셔야…….”
뭐가 되는 거라곤 하나도 없다.
계속 나흘 동안 열담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도 할 짓이 아니다.
슬슬 백단영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오냐오냐해 줬더니 자꾸 기어오른다는 기분도 들고…… 기분이 나빠졌다.
생각해 보니 방법은 있다. 행낭에 무극서생으로 변신할 때 입던 옷이 있었다.
무흔은 아교에게 그 옷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아교의 도움으로 간신히 옷을 입은 무흔이 씩씩대며 숙소로 내려갔다.
마침 전각 입구에 백단영이 서성대는 것이 보였다.
무흔은 백단영 앞에 딱 서서 전의를 북돋웠다.
“어? 무흔 왔네?”
백단영이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았다.
아, 이런. 그녀의 미소를 접하는 순간 불타던 전의가 완전히 무장해제 됐다.
어째 나빴던 기분이 갑자기 확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