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83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83화
183화. 발각된 정체 (3)
“그 검은 개봉 시전의…….”
무흔은 무심코 시전에서 산 싸구려 검이라고 대답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남궁이화쯤 되는 검객이라면 검을 보는 눈도 당연히 길러져 있다. 신검을 싸구려라 우긴다고 하여 넘어가 줄 리가 없다.
스르릉-
남궁이화가 검집에서 검을 뺐다.
탁하고 어두운 묵천신검의 검신이 드러났다.
“이 검은 천수신장이 만든 묵천신검이야. 당신은 이 검을 어떻게 손에 넣었지? 아니…… 당신은 무극서생과 어떤 관계냐?”
역시 눈치챘나 보다.
무흔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궁이화가 검병에 매달린 수실을 무흔의 눈앞에 내밀었다. 역시 백단영이 달아준 저 수실이 문제였나.
“무극서생께서 나에게 검법을 알려 준 그 날도 검에 이 수실이 매달려 있었어. 그리고 오늘 낮에 보았을 때도 검에 이 수실이 달려 있었고. 검과 수실이 우연하게도 같다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마.”
남궁이화의 눈이 천천히 무흔의 얼굴을 살폈다. 아마 무극서생과의 유사점을 찾는 것이리라. 항상 죽립 아래쪽 입과 턱 부분만 봤었겠지만…….
이윽고 그녀의 시선이 다시 무흔의 눈동자에서 멈추었다.
“네 모습은 무극서생과 분명히 달라. 나에게 진실을 알려 줘.”
무흔은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경우를 따져 봤다. 적당히 속여서 빠져나가기 틀렸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결심한 무흔은 묵직한 음성을 뱉어 냈다.
“내가 바로 무극서생입니다.”
남궁이화는 놀람과 분노 등이 혼합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쉽게 믿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무흔은 그녀에게서 검을 돌려받은 다음 가볍게 휙휙 휘둘렀다. 비천삼검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아, 아!”
남궁이화의 입술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동시에 무흔은 만변귀공을 끌어올렸다.
두두둑-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면서 키가 쓱 커지고 몸이 홀쭉해졌다. 그리고 드러난 그의 얼굴은…….
“무…… 무극서생?”
남궁이화가 놀란 눈이 되어 그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무흔이 무극서생으로 변하여 그녀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몸이 한차례 휘청거렸다.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잠시 이야기 좀 하지.”
무흔은 주변의 나무 아래에 주저앉았다. 남궁이화가 별말 없이 앉았다.
“그래서 실망했나? 내가 그 보잘것없는 무흔과 같은 사람이라서?”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무극서생처럼 중후하고 묵직하게 변해 있었다.
남궁이화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설사 실망했더라도 어쩔 수 없지. 같은 사람이니까. 물론 내가 동일 인물이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난 다른 사람이라고 거짓말한 적도 없거든. 무흔이라는 사람도 무극서생이란 사람도 나인 것을.”
남궁이화는 대답할 수 없었다.
“멍청하게 속아서? 속아서 손해 본 것이 있었나? 그렇다고 내가 당신을 기만했던가?”
“그것 때문은 아녀요.”
남궁이화의 안색이 붉어졌다.
“그럼 무엇 때문이지?”
“그, 그건…….”
“난…… 남궁 소저가 무공을 열심히 익히기에 도와주었을 뿐이다. 강해지겠다는 열정이 없었더라면 난 무공을 전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면 된 것 아닌가. 무극서생에게서 받은 무공과 무흔에게서 받은 무공이 뭐가 다르지? 같은 무공이다. 같은 사람이고.”
“하……,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를 대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는 한결같다. 그대의 열정이 나를 만족시킨다면 나는 계속 무공을 전수해 줄 것이고, 아니라면 그만둘 것이다.”
말을 마친 무흔은 남궁이화가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그녀는 혼란에 빠진 듯했다.
무흔은 그녀를 향해 씨익 웃음을 보냈다.
“강해지고 싶지 않나?”
“강해지고 싶어요.”
“그래, 오늘 보여 준 모습 정도로는 강하다고 할 수 없겠지. 기껏 서열 이십이 위에 있는 낙혼혈부에게 고전하면 비천삼검의 계승자로서 창피한 일이다. 자, 검을 들어라.”
무흔은 검을 들고 일어났다.
얼떨결에 남궁이화도 따라서 일어섰다. 그녀의 손에도 검이 들려 있었다.
“자, 공격해 보아라.”
무흔은 그녀에게 공격을 유도했다.
남궁이화가 비천삼검을 펼쳤다.
무흔이 가볍게 받아치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천삼검의 핵심은 간결이다. 목표를 향한 최적의 경로로 검로를 형성하고 그 위력이 최대가 되도록 자세를 만든다. 심지어 두 번째 식인 변에서도 그러한 기본 원리가 적용된다. 넌 웅장한 형(形)을 중요시하는 남궁세가의 검법을 배웠기에 동작이 크고 쓸모없는 동작이 많다. 그 차이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해. 물론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문제는 아니다.”
무흔은 남궁이화의 단점을 지적했다. 그녀의 비천삼검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정체된 이유였다.
남궁이화는 전력을 다해 무흔을 공격했다. 그녀의 검초가 막힐 때마다 무흔의 지적이 이어졌다.
무극서생의 정체 때문에 혼란에 빠졌던 그녀는 그 문제에 매달릴 틈도 없이 정신없이 땀을 쏟아냈다. 자연스럽게 잡념이 사라졌다.
그녀가 평생 추구한 것은 더 고강한 무공, 더 강한 무인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금방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비천삼검이 강한 검법이기에 사랑했다. 이 검법을 무흔이 알려 주었다고 해서 그 강함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무극서생이 강했기에 그를 사랑했다. 이제는 그 강함이 무흔으로 바뀌었다. 과연 무흔을 무극서생처럼 대할 수 있을까.
한차례 지도한 무흔은 남궁이화에게 말했다.
“아직 무공 전반에 약간의 단점이 있지만 노력하면 수준급으로 올라설 거다. 아마 이게 우리 둘 사이에서는 마지막이 될 것 같군. 그동안 속여서 미안했다. 앞으로 무극서생으로 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낼 일은 없을 거다. 무흔이든 무극서생이든 이제는 그게 중요하지 않겠지만.”
마지막이란 말에 남궁이화의 몸이 한차례 격동을 일으켰다. 그의 말은 분명했다. 앞으로는 그녀의 앞에서는 무흔으로 돌아가 더는 그녀의 무공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남궁이화는 순간 상실을 맛보았다. 그토록 갈망하며 찾았던 무공의 돌파구, 자신의 진정한 스승이라고 생각했던 무극서생이 사라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무흔이 돌아섰을 때 남궁이화가 황급히 달려가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자…… 잠시요.”
무흔은 돌아보지 않고 걸음만 멈추었다.
뒤에서 남궁이화의 흐느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는 무극서생을 이렇게 떠나보낼 수 없어요. 전 더 강해지고 싶어요. 무극서생이…… 무흔임을 받아들일게요.”
무흔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가 바라던 반응이긴 했다. 무공에 미친 그녀라면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저렇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짐작했었다.
“알았다. 어차피 나는 그대로인 것을…… 이제 들어가자.”
두두둑-
무흔의 신체에서 가벼운 소음이 일었다. 무극서생에서 다시 본래의 무흔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별다른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 무흔을 남궁이화가 급하게 뒤따랐다.
“저…… 저…….”
남궁이화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무흔이 휙 돌아보니 그녀가 몸을 움찔했다.
“하하, 평소처럼 하시죠? 그게 서로 편하지 않을까요?”
남궁이화는 눈앞의 사내를 무극서생으로 대해야 할지, 아니면 무흔으로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묻고 싶은 것도 물어보시고…… 무공이 막히면 말씀하시고.”
어차피 그런 자잘한 부분에 신경 쓰지 않는 무흔인지라 그녀가 어떻게 대하든 상관없었다.
“그럼 지금 시점에서 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내공. 지금까지는 내공이 초식의 우위에 있었다면 비천삼검을 익히면서 뒤집혔어요, 이제는 초식을 원활하게 펼치기에는 내공이 부족한 상황이죠.”
무흔의 대답에 남궁이화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내공이란 올리고 싶다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영약으로 해결하기엔 그녀의 내공 수준이 너무 높다. 이제는 기연이 아니라면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침울한 표정으로 그를 따라가던 남궁이화는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단영이는 당신이 무극서생인지 언제 알았어요? 예전부터 알고 있었나요?”
남궁이화는 지금까지 백단영이 무극서생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늘 낮예요. 아가씨를 구하다가 수실이 걸려서…… 이 수실이 아가씨가 선물로 사준 것이었거든요.”
“그랬군요.”
남궁이화도 마음이 편해졌다. 덕분에 무흔의 옆에서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여관이 가까워지자 무흔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죠.”
“네?”
“혹시…… 지난번 그 장담 아직 유효해요?”
“어떤?”
“원한다면 언제든지 말만 하면 준다던 것 말이죠.”
순간 남궁이화의 안면이 확 일그러지며 그녀는 습관적으로 주먹을 들었다.
무흔이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후다닥 여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하, 농담입니다. 농담.”
혼자 남은 남궁이화는 물끄러미 무흔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째 잠시 모욕을 당한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흔의 장난기 덕분에 기분이 확 풀렸다.
문득 남궁이화는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예전에는 무공이 막혀도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었다.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랬던 것이 그 길을 무극서생이 열어 주었다. 하지만 그 무극서생은 원하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무흔은 항상 근처에 있는 사람이다.
그녀가 원한다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고, 비무를 요청할 수도 있다.
비무대회 결승 전날 처음 무극서생과 비무를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이제는 그런 행복을 항상 느낄 수 있을 것이니.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평소처럼 당당한 남궁이화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
“전 천상문에 잠시 들렀다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어렵게 백단영은 장후성에게 말을 꺼냈다.
장사수채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다시 용봉대로 돌아가려던 찰나, 갑작스러운 백단영의 주장은 모두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지금 당장 용봉대에 급한 일은 없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언제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때이기도 하다.
덤덤하게 수긍하는 장후성과 달리 구진광은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사문의 일이 급하다기로서니…… 용봉대가 멋대로 자리를 비워도 되는 곳입니까? 얼마 전에 다녀왔던 곳 아닙니까? 그런데 또 가다니요?”
“갑작스러운 전갈이 왔습니다. 양해 좀 해 주세요.”
물론 백단영이 정중하게 말하고 있지만 사실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는 사안이다. 풍사검객이나 서옹이 이 자리에 있다면 달라지겠지만, 구진광이야 그녀와 같은 대원 신분일 뿐이다.
“무림맹의 사명감은 어디 말아먹었나요? 너무 한 것 아닙니까?”
다시 언성이 높아지자 장후성이 만류했다.
“백 소저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대신 빨리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렇게 마무리되자 이번에는 남궁이화가 나섰다.
“나도 단영이랑 같이 움직일 생각이야. 상관없지?”
평소 남궁이화처럼 주장도 과격했다. 그녀야말로 다른 사람의 의견과 무관하게 일방적인 통보였다. 어차피 그게 평소 그녀다운 행동이라 구진광은 찍소리도 못했다.
“그렇게 해. 대주님께는 내가 잘 말씀드릴 테니.”
이곳에서 찢어지는 분위기가 됐다.
장후성이 구진광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났다.
“그럼 우리 먼저 떠날게.”
장후성을 따라 구진광과 진풍이 방을 나갔다.
방안에는 무흔을 비롯하여 백단영과 남궁이화만 남았다.
두 사람이 따로 떨어져 나온 이유는 무흔의 주장 때문이었다. 무흔이 백단영에게 천상문을 방문하기를 요구했고, 남궁이화는 눈치채고 백단영에게 붙었다.
이제 무흔이 궁금증을 풀어 줘야 할 시점이다.
“천상문에 가는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