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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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3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82화
182화. 발각된 정체 (2)
백사도의 풍경은 참혹했다. 하얀 모래사장이 빛나서 백사도란 이름이 붙은 이 섬은 지금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섬 곳곳에 시신이 널려 있고 백사장에는 신음하는 부상자가 나뒹굴었다. 부상자들은 대부분 상세가 위중하여 곧 생명이 끊어질 것이다.
섬 중앙에 있는 몇 채의 오두막과 전각도 상황은 비슷했다. 살아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섬에 도착한 무흔과 백단영은 참혹한 현장에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엄청난데…… 누가 대체…….”
백단영이 혀를 내두르며 장사수채의 본거지를 살폈다.
무흔은 수적들의 몸에 난 상처를 살피며 이 참상의 주인공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도 장후성과 남궁이화의 작품일 것이다.
그들은 비록 정파이지만 사파인을 처리할 때에는 주저함이 없었으니까.
역시 두 사람이 백사도의 중앙을 가로질러 반대편에 도착했을 때, 도망치려는 수적을 베고 있는 장후성과 남궁이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극서생을 발견한 남궁이화가 달려왔다.
“아아! 은공!”
마치 부모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몸을 날린 남궁이화가 무극서생의 품에 안겼다.
얼떨결에 무흔은 남궁이화를 끌어안고 백단영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남궁이화를 떼어 놓았다.
“다행히 무사했네요.”
장후성이 밝은 표정으로 백단영에게 인사했다.
그제야 남궁이화도 얼굴을 붉히며 백단영에게 인사했다.
강을 건너던 배가 뒤집힌 이후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간신히 수적의 쾌속선을 탈취했다. 문제는 그 이후. 강물 위를 아무리 찾아 봐도 백단영과 구진광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침몰한 배 주변 바다를 헤매던 그들은 결국 백단영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백사도로 진군했다.
백사도에 올라서자마자 그들은 마교의 두 강자와 만났다. 죽음을 각오한 사투를 벌였으나 결국 둘을 죽이지 못했다. 그 둘은 허를 찌른 후 도망쳤다.
이후 분노를 삭이지 못한 두 사람은 대대적으로 수적을 소탕했다. 어차피 수적을 처리하려고 이곳에 왔고, 나쁜 사람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그들은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백단영이 잘못되었을 거라는 불길함이 더욱 그들의 손속을 매섭게 만들었다.
사실상 백사도를 완전히 박살 낸 후에 백단영과 무극서생이 도착한 것이다.
“낙혼혈부와 귀수탈혼이 도망쳤나 보군요.”
진중한 무흔의 물음에 남궁이화가 반대로 물어 왔다.
“그들이 낙혼혈부와 귀수탈혼이었어요?”
“마교 서열 이십일 위와 이십이 위에 해당하는 인물이죠.”
장후성과 남궁이화는 대결 장면을 다시 복기하며 마교의 능력을 가늠했다. 사실상 그 둘은 지금까지 상대해 본 최강자였기에 두 사람에게 많은 공부가 됐다.
“그럼 수적을 다 죽였어?”
백단영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니. 일부는 배를 타고 도망쳤어. 거기까진 도저히 쫓아가지 못하겠더라.”
도망친 배는 몇 척 되지 않았기에 사실상 장사수채는 괴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다행이야. 모두 무사해서.”
많은 시체를 보고 놀랐던 백단영도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어서 남궁이화가 그녀에게 어떻게 살아났냐고 물어 왔으나, 그녀는 적당히 둘러 댔다. 조각난 널빤지를 잡고 강물을 떠돌다가 우연히 무극서생을 만났다고.
어느새 시간이 흘러 해가 느릿느릿 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이 강물에 드리워진 모습은 장관이었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핏물을 연상시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돌아갈 시간이야. 그런데 구 소협은 어떻게 되었을까.”
남궁이화의 질문에 모두가 잊었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같이 물에 빠졌던 백단영에게 모두의 시선이 모였으나, 그녀는 고개만 저었다. 다른 사람과 달리 백단영은 구진광에 대해 조금의 동정도 느끼지 못했다.
수적이 사용했던 조각배 하나를 풀어 네 사람은 떠났던 나루터로 되돌아갔다. 강물을 건너는 동안 어둠이 점차 내리고 있었다.
***
나루터에서는 구진광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수많은 장사꾼과 여행객이 강을 오가며 많은 배가 떠나고 들어왔다.
구진광은 어제 보았던 강태공이나, 혹은 강태공의 전갈을 가져올 사람을 기다렸다.
배가 침몰하자 목숨을 걸고 배가 떠났던 나루터로 헤엄쳐 돌아왔다. 물살이 만만찮게 세어서 자칫 목숨의 위협을 받았으나, 하찮은 수적에게 걸려 목숨을 잃고 싶지 않았다.
동료들의 생사는 관심도 없었다. 이 모든 일에 무시무시한 마교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로지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됐다.
해가 지고 점차 어둠이 몰려올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설마…….”
그는 불안한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마교의 인물인 그 강태공이 실패했으리란 생각은 아예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처럼 늦어지는 이유는 그의 생각에 단 하나뿐이었으나…….
“아냐, 그 강태공 녀석은 여색을 밝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어.”
그렇다면 늦어질 이유는 없었다.
강태공이 백단영을 죽이고 이미 떠나버렸을 가능성이 제일 농후했다. 아니면 강태공이 수적에게 백단영을 던져 줬거나.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닭 쫓던 개꼴이었다.
“하, 답답하군.”
구진광이 나루터를 오가며 불안해하고 있을 때 멀리서 휘파람을 휙휙 불면서 진풍이 나타났다.
“이놈아, 뭐가 그렇게 재밌냐?”
“아, 형님, 잘 다녀오셨어요? 같던 일은요? 수적은 잘 때려잡았어요?”
진풍은 구진광이 마교 쪽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잡긴. 배가 뒤집혀서 죽는 줄 알았다. 넌 뭐 하다 온 거냐?”
“헤헤! 여기 좋더라구요!”
“흐이그.”
그렇게 시답잖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을 때 무흔이 다가왔다.
무흔을 알아본 진풍이 먼저 말을 걸었다.
“어이, 무흔! 넌 뭐하다 왔냐? 너도 어디 좋은 곳 다녀왔냐?”
무흔은 내심 한숨을 내쉬며 응수했다.
“내가 넌 줄 아냐? 그런데 구 소협께선 언제 오셨어요?”
조금 전까지 무흔은 무극서생 신분이었기에 백사도에서 백단영 일행을 배로 먼저 보냈다. 그는 그러고서 백단영이 탄 배를 피해 수상비로 강가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무흔으로 변해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난 낮부터 와 있었다. 작전에 차질이 좀 생겨서.”
구진광이 대수롭지 않게 변명했다.
그러는 가운데 배가 들어왔고, 놀랍게도 백단영 일행이 배에서 내렸다.
백단영을 본 구진광의 안면이 확 바뀌었다. 그녀가 살아 있음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남궁이화가 찜찜한 얼굴로 물었다.
“구 소협, 언제 왔나요? 물에 빠진 줄 알았는데…….”
“하하, 마침 운이 좋았습니다. 모두 무사했군요.”
너스레를 떠는 구진광의 어깨를 장후성이 툭 쳤다.
“우린 장사수채를 아예 박살 내고 왔다.”
“그래? 혹시 거기에 낚시하는 사람 못 봤어?”
구진광은 마교의 강태공을 떠올리며 물었다.
“낚시? 그런 사람 없었는데? 수적이 횡횡하는 동네에서 한가하게 낚시하는 자가 어디 있어.”
장후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젠장, 그놈이 안 갔나 보네. 백단영이 운이 좋았군.’
구진광은 제멋대로 상황을 파악했다.
상황을 마무리한 일행은 먹거리를 찾아 이동했다.
“자, 모두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일도 잘 끝났으니 제대로 좋은 요리 먹어야지.”
장후성의 제안에 뒤에서 따라가던 무흔은 찜찜한 눈으로 구진광과 진풍을 노려보았다.
***
늦은 밤 여관 뒤편 공터에서 남궁이화는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낙혼혈부와의 일전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무흔에게 비천삼검을 배우고 난 후 남궁이화가 상대해 본 마교인은 귀곡삼노와 낙혼혈부였다.
귀곡삼노와의 전투에는 백단영이 함께 하였고, 새로운 무공을 익혔다는 흥분 때문에 정신없이 전투를 벌였다. 자신과 상대방의 장단점을 미처 살펴볼 그런 시간이 되지 못했다.
반면 오늘 낙혼혈부와의 전투는 달랐다.
무엇보다 도끼를 쓴다는 특이성에다가 무공 수준 역시 지난번보다 월등히 높았다. 과거의 그녀라면 상대할 생각도 못해 보았을 그런 수준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오늘은 진 싸움이었어.”
무극서생이 상대의 무기를 박살 내주지 않았다면 오히려 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주목한 것은 도끼를 박살 낸 무극서생의 비천삼검이다. 같은 무공임에도 그녀와는 그 위력에서 확연히 차이가 났다.
“내공 탓일까?”
아직 숙련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답답함을 느끼며 수련에 매진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다시 검을 들고 비천삼검 초식을 하나씩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멀리서 백단영과 무흔이 나타났다.
그러잖아도 무공 연마의 상대자를 찾던 남궁이화는 반가움에 두 사람을 불렀다.
“단영? 나랑 비무할래?”
그런 남궁이화를 보며 무흔은 그녀야말로 정말 무공 수련을 좋아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럴까?”
이에 호응하는 백단영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무흔은 옆에서 구경했다.
막상 비무를 하려니 백단영은 연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실망하고 있자니 남궁이화가 무흔에게 요구했다.
“무흔, 네가 가서 검을 가져올래?”
“알겠습니다.”
그가 여관으로 돌아가려 할 때 백단영이 저지했다.
“아니, 내가 직접 갔다 올게.”
“뭘 직접 가? 무흔 시켜. 이럴 때 시키라고 데리고 다니는 거잖아?”
남궁이화가 백단영을 말렸다.
무흔은 공식적으로 백단영의 호위무사이기에 이런 명령에 불만은 없었다. 평소에 남궁이화가 그에게 개인적인 명령을 내린 적은 없지만, 설사 그렇다 하여도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그는 백단영의 아랫사람이고 남궁이화는 백단영과 동급인 친구였으니까.
무흔은 재빨리 방으로 뛰어가서 백단영의 연검과 자신의 묵천신검을 들고 왔다. 묵천신검을 들고 온 이유는 비무에는 연검이 다소 부적절할 것 같아서였다.
역시나 백단영에게 연검을 건넸더니 묵천신검으로 바꾸어서 달라고 했다.
남궁이화와 백단영의 비무가 시작됐고, 무흔은 옆에서 구경했다.
남궁세가의 검법을 사용하는 남궁이화와 백상검법을 펼치는 백단영이 어울렸다. 그렇게 이어진 비무는 비천삼검과 천상비연검법으로 이어졌다.
연검이 아닌 묵천신검으로 펼치는 천상비연검법은 다소 어색해서 오히려 남궁이화의 미숙한 비천삼검과 적절하게 잘 어울렸다.
“하아! 나쁘지 않네. 문제점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심코 소감을 표명하며 땀을 닦던 남궁이화의 눈에 백단영이 무흔에게 넘기는 묵천신검이 들어왔다.
순간 남궁이화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자, 수련 끝났으면 이제 들어갈까?”
방으로 들어갈 것을 권하는 백단영에게 남궁이화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 먼저 들어가. 난 무흔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
“무흔이랑?”
고개를 갸웃거리던 백단영이 먼저 발걸음을 돌렸다.
“무흔, 남궁 소저 잘 모셔라.”
무흔은 남궁이화랑 둘만 남게 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남궁이화가 특별히 그에게 이런 시간을 만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잠시 저리로 갈까?”
표정이 굳어진 남궁이화가 그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무흔은 그녀를 따라 구석진 곳으로 끌려갔다. 예전에 남궁이화는 성격이 불같아서 가끔 집적대는 남정네를 두들겨 패곤 했었는데 설마 오늘이 그날인가?
생각해 봐도 특별히 남궁이화에게 맞을 짓을 한 기억은 없던 무흔은 괜히 긴장하며 따라갔다.
커다란 나무 아래의 어두운 곳에 도착하자 남궁이화가 몸을 돌려 그를 노려봤다.
무흔의 몸이 절로 움찔했다. 어째 노려보는 분위기가 수상쩍었다.
“그 검 줘봐.”
남궁이화가 묵천신검을 받은 다음 요리조리 세밀하게 살폈다.
한참 검병에 달린 청색 수실을 만지작거리던 그녀가 화가 난 목소리로 물었다.
“이 검! 누구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