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8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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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80화
180화. 백사도 (4)
번쩍!
무흔의 일검이 허공을 갈랐다.
놀랍게도 수라조간과 부딪치자 충격파를 일으키며 검이 튕겨 나왔다. 역시 서열 십일 위는 지금까지 겨루어 본 다른 마두와 차원이 달랐다.
“이거 쉽지 않네.”
마음이 급해서일까. 수라조간의 낚싯줄이 검망을 뚫고 들어와 그의 팔을 스쳤다.
스스슥-
소매 한쪽이 싹둑 잘리며 옷자락이 나풀거렸다. 일반 강철 줄이라 생각했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저 낚싯줄에 잘못 걸려들면 그날로 사망이었다.
무흔은 무흔천상보를 펼쳐 수라조옹에게 접근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낚싯줄이 아닌 조간이 그의 접근을 막아섰다.
쾅-
묵천신검과 조간이 만나며 강기의 파편이 분수처럼 퍼져 나갔다. 조간의 탄력이 오히려 묵천신검을 압도했다.
마마환영비에 단련이 되어 있는 듯 수라조옹은 그의 보법에 전혀 현혹되지 않았다. 강력한 무기 하나를 잃어버린 셈이 된 무흔은 승기를 잡기 쉽지 않았다.
뭔가 적들의 노림수에 걸려 든 기분이었다.
아군이 셋인데 마교인도 셋이었다. 장후성은 우세인 것으로 보였지만, 남궁이화는 열세였다. 아직 완벽하게 비천삼검을 익히지 못한 그녀라면 예전의 무흔처럼 상대의 방심을 노려서 일격을 가해야만 승산이 있다.
그리고 무흔 또한 수라조옹을 처리하기에 애를 먹고 있었다. 만일 백단영이 이곳에 있었다면 그들의 압승이었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챙- 챙- 챙-
다급해진 무흔의 마음이 검법에 그대로 드러났다. 물 흐르듯 유연하게 펼쳐지던 잔백수라십이검의 초식이 중간중간에 흐름이 끊어졌다.
수라조간이 춤을 췄다. 마치 검법을 펼치는 듯 조간의 움직임이 변화무쌍했다.
예상외로 강력한 조간의 움직임에 무흔은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흐흐, 마음이 급하구나?”
수라조옹이 무흔의 내심을 꿰뚫어 본 듯 빈정거렸다.
“그럴 리가. 때가 도래하기를 기다릴 뿐이다.”
무흔은 앞에 들었던 수라조옹의 말을 되돌려줬다.
“흐흐, 어느 때를? 내 귀에는 벌써 천향무후의 교성이 들려오거늘.”
상대의 교란작전에 말려들 수는 없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불리함을 자초할 뿐이다.
상대를 쓰러트릴 가장 손쉬운 방법은 혈우파천만겁공을 사용해서 잠력을 격발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 경우 수라조옹을 처리하더라도 바로 백단영을 구하러 갈 수 없다. 내공이 탈진된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다. 천마패나 천마류 같은 압도적인 무위로 상대를 억압하는 방법이다.
‘천마패다!’
방향을 정한 무흔은 묵천신검을 휘두르면서 천마패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그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뻗어 나가며 주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조간으로 검초를 방어하던 수라조옹은 갑자기 가중되는 주위의 압력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이? 어디선가 봤던 무공인데?”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수라조옹은 공력을 폭발시키며 조간을 더욱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그 틈을 노리고 무흔의 왼쪽 손에서 천강무흔비가 펼쳐졌다.
강력한 강기의 파편이 사혈 곳곳을 노리고 몰려오자 수라조옹은 황급히 낚싯줄을 이용해 날아오는 파편을 깨트렸다.
“헉?”
문제는 낚싯줄의 움직임이 이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억누르는 주변의 압력 때문에 제대로 초식이 펼쳐지지 않았다. 낚싯줄의 변화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천강무흔비를 깨트릴 수 있었다.
공세를 전환하려던 수라조옹은 점차 가중되는 강력한 기운에 절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얼핏 내공으로 압박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내공이 아님은 명확했다.
“무슨 이런 무공이…….”
순간 그의 뇌리를 강타하는 장면이 있었다. 언젠가 보았던 사마극의 무공 연마 장면. 그때도 이와 비슷한 압박을 느낀 적이 있지 않았던가.
“설마?”
수라조옹이 의혹의 눈으로 무흔에게 시선을 던지는 순간 무흔의 천마패가 폭발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세상의 사물을 짓눌러서 붕괴시킬 듯한 압박이 수라조옹에게 가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묵천신검에서 뻗어 나온 강기가 천마패와 섞여 천하를 갈랐다.
번쩍!
힘에서 밀린 수라조옹의 반격은 미흡했다.
조간으로 검격을 막으려 했으나, 천마패에 짓눌린 육신은 제대로 힘을 발하지 못했다.
서걱-
내기를 제대로 뿜어내지 못한 조간이 묵천신검의 위력에 잘려 나갔다.
“하하! 네가 생각한 바 그대로다. 바로 그 무공일지니!”
무흔의 외침 속에 비천삼검 이식이 전개됐다.
번쩍!
쾌속한 변화가 세상을 지배하며 수라조옹을 난도질했다.
지금 자신을 압박하는 무공이 바로 천마패라는 어이없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수라조옹은 대항하지 못했다. 마교의 무공 천마패의 위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서걱-
수라조옹의 사지가 절단됐다. 무흔은 피 분수를 뿜어내는 수라조옹을 뛰어넘으며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은?”
낙혼혈부의 거대한 도끼를 사력을 다해 방어하면서 남궁이화가 간신히 소리쳤다.
“은공! 일행이 강에 빠졌어요. 찾지 못하고 우리만 이곳에 왔어요!”
대충 어떻게 돌아간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곧바로 무흔은 떠날 수 없었다. 이대로는 그녀의 승산이 높지 않았다.
낙혼혈부는 마교의 강자답게 남궁이화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의 독문병기인 도끼는 묵직한 기세를 뽐내며 엄청난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자칫 한 방 맞으면 그날로 황천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궁이화에게 선물을 주면 된다. 무흔은 강으로 뛰어들면서 남궁이화와 상대 중인 낙혼혈부를 향해 비천삼검의 삼 식을 가볍게 휘둘렀다.
번쩍!
묵천신검에서 뻗은 강기가 벼락처럼 낙혼혈부를 공격했다.
콰앙-
강기는 전혀 대비하지 못한 낙혼혈부의 도끼를 그대로 직격했다.
“헉!”
남궁이화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같은 비천삼검인데 마치 다른 무공을 보는 듯했다.
비천삼검을 맞은 낙혼혈부의 도끼가 절반으로 쪼개졌다. 상상할 수 없는 무위에 남궁이화뿐만 아니라 낙혼혈부 역시 경악했다.
상대의 검강을 차단하려고 검강에 맞선 것이 전부인데, 그 단단한 도끼가 절단 나버린 것이다.
당연히 무기가 박살이 났으니 낙혼혈부는 전처럼 신바람을 낼 수 없었다.
“아아!”
그 와중에도 남궁이화는 감탄하며 무극서생을 눈동자에 담았다. 무극서생은 마치 물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미끄러지며 강 저편으로 사라졌다.
상상치 못할 무위에 그녀는 감탄사만 연발했다. 방금 선보인 무극서생의 신위는 감히 그녀가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였다.
남궁이화는 힘을 냈다. 무극서생의 제자인 그녀가 이처럼 도끼나 쓰는 산적 같은 놈에게 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낙혼혈부를 무시무시한 검격으로 몰아붙였다. 도끼가 깨진 낙혼혈부는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몇 초식 지나지 않아 낙혼혈부는 사경을 헤매는 상태에 빠졌다.
***
백사도에서 멀지 않은 작은 섬에 한 장한이 나타났다.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장한은 물속에서 한 여인을 건져 백사장에 던져 놓은 후 가쁜 숨을 내쉬었다. 장한도 여인도 물에 완전히 젖은 모습이었다.
남해수신은 널브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백단영을 쳐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흐흐, 역시! 물속에서는 나를 이길자가 없다.”
남해수신은 방금 물속에서 싸웠던 접전을 떠올렸다. 수공을 익히지 않은 자의 치명적인 약점은 단순했다. 호흡을 못하게 하면 된다. 물속에서 밖으로 얼굴을 내밀지 못하게 방해한다면 아무리 천하고수라도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남해수신은 백단영을 물속으로 끌어내리며 그녀가 물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다. 물속에선 그녀가 휘두르는 무공의 위력이 대폭 감소하여 충분히 대항할 수 있는 수준.
불과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녀가 축 늘어졌고, 그는 더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 그녀를 물속에서 오랜 시간 끌고 다니며 물을 더 먹였다.
그가 추정하기에 딱 죽지 않을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그는 이곳으로 그녀를 끌고 왔다.
그녀를 죽이기 전에 할 일이 있었으니까.
“우와! 정말 예쁘긴 예쁘군.”
남해수신은 백단영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배를 몇 번 눌렀다. 백단영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코에 미약한 호흡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아직 죽지는 않았다.
사실 죽었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이 즐기기에 더 낫다. 여차하면 광불에게 넘겨 이익을 취해도 되고.
남해수신은 음탕한 미소를 머금으며 백단영을 쓱 훑었다. 물에 젖은 옷가지가 몸에 짝 달라붙어 있었다. 늘씬한 몸매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들러붙어 있는 모습 또한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크크, 대막혈사 그 자식은 원통해서 어쩌나. 이렇게 끝내주는 여자를 두고 황천길로 갔으니.”
그는 진심으로 동료였던 대막혈사를 애도해 주었다. 대막혈사가 실패했었기에 그에게 기회가 왔으니 은인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의 손이 다가올 환희에 덜덜 떨렸다.
그때 백단영의 의식이 천천히 돌아왔다.
반 가사상태에 빠졌던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원래의 기능을 회복했다.
물에 빠져 죽음을 앞두었던 순간 그녀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무애잡아함경이었다. 무애잡아함경은 불가의 심법이다 보니 일반 무공과 다른 부분이 존재했다. 바로 무념무상에 이르면서 신체 기능이 일시 정지되는 특이한 경지다. 이른바 불가에서 말하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의 걸림돌이 사라지는 무소과애의 경지다.
무애에 함몰하면 사실상 가사 상태에 이르러 물속에서도 최소한의 생체활동을 통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 단계는 귀식대법의 전 단계와 유사했다. 그동안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마치 잠에 빠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된다.
백단영은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 무애잡아함경을 일으켜 스스로를 가사상태에 빠트렸다. 남해수신이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고, 물 밖으로 끌고 나가기를 바란 것이다. 설사 예상과 달리 물에 빠진 상태로 남겨지더라도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물 밖에 던져질 것이란 희망을 품었다.
그녀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녀를 탐낸 남해수신이 그녀를 부근에 있는 섬으로 끌고 간 것이다.
가사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신체회복은 빨랐다. 그녀는 무애잡아함경을 거두고 반야금강선공을 일으켰다. 엄청난 내공이 집중되자 그녀의 손이 하얗게 물들었다. 절정의 수강이 펼쳐진 것이다.
푸욱!
백단영의 몸을 음탕한 눈으로 훑어보던 남해수신은 갑자기 들어온 그녀의 수강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놀라서 벼락처럼 상체를 젖힌 순간 수강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어깨가 마비되는 듯한 충격이 왔다.
“크윽!”
한쪽 어깨를 붙잡고 남해수신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제야 백단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너…… 너! 어…… 어떻게?”
방금까지 사지를 헤매던 여인이 갑자기 공격한 것을 남해수신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대응은 역시 명성만큼이나 노련했다. 본인이 육지에서는 백단영의 상대가 아니란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선택은 빨랐다. 남해수신은 백단영을 공격하지 않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뒤쪽에는 언제든지 그가 뛰어들 수 있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백단영은 상대를 노려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더러운 놈!”
그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익히 알기에 그녀의 눈에서 서슬이 시퍼렇게 빛났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자신의 옷매무새로 보아 아직은 저 녀석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백단영의 몸에서 살기가 솟구치자 남해혈신은 지금은 후퇴하는 것이 이롭다는 생각을 굳혔다. 영웅은 물러설 때를 아는 자다.
“흐흐, 다음을 기대하거라. 제대로 운우지락을 보여 줄 테니.”
백단영을 포기한 남해수신은 몸을 돌려 강물로 뛰어들었다.
이대로 보낼 그녀가 아니었다. 백단영이 막 뒤따라가려는 순간 그녀의 눈에 멀리서 다가오는 검은 점이 보였다.
놀라웠다.
그것은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을 미끄러지듯 활강하며 다가오는 검은 점은 죽립을 쓴 남자였다. 하나둘 셀 틈도 없이 순식간에 커진 점이 뚜렷한 외형을 드러냈다.
“무극서생!”
정체를 알아본 그녀의 입에서 환호성이 새어 나왔다. 물 위를 걷거나 달리는 무공이 있다고 말을 들었지만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그 놀라운 신위에 놀라지 않을 무림인이 과연 누가 있을까.
“우오오오!”
무극서생이 우렁찬 함성을 터트리며 순식간에 백사장으로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