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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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76화
176화. 새외고수 (4)
갑자기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지.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 봤지만 특별히 할 말이 없었다. 엄밀하게는 이곳으로 방금 돌아왔기에 아직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무흔은 책상에 책을 내려놓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생글생글 웃는 그녀가 정겹긴 한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무흔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전 모르겠는데요. 아가씨께서 할 말이 있으신 거죠?”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백단영이 그에게 또박또박 주지시켰다.
“내일 내 생일이야. 기억하고 있지?”
“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흔이 백단영을 쳐다봤다.
사실 그가 그녀의 생일을 알 리가 없지 않은가. 생각해 보니 그녀와 만난 것이 벌써 일 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그동안 생일이 주제가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 시기상으로 본다면 생일을 만날 때가 되긴 했다.
“선물은 없어?”
“선물요?”
그녀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번졌다.
“하하, 제대로 챙겨드려야죠.”
무흔은 멋쩍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문득 무흔은 자신의 생일이 궁금해졌다. 그의 생일은 과연 언제일까?
“저, 그런데…… 아가씨?”
“응?”
“혹시 제 생일 언제인지 아세요?”
진지하게 묻는 그를 향해 백단영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너 생일?”
“네.”
“네가 생일이 어디 있어?”
응? 이건 또 무슨 이야기일까. 사람이 하늘에서 뚝딱 떨어진 것도 아니고 생일이 없는 경우가 어디에 있지?
멍한 표정을 짓는 무흔에게 백단영이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넌 고아라 생일이 없잖아. 보통 매해 첫날을 생일이라고 가정하고 가끔 챙겨 주긴 했지만. 올해도 내가 챙겨 줬는데?”
무흔은 자신이 고아이며 아주 어릴 적부터 백가상단에 들어가 그녀와 함께 길러졌다는 설정을 떠올렸다. 그런데 챙겨 줬다고?
“올해 첫날에 무엇을 했었지…….”
이곳에서는 워낙 날짜 개념이 없어서 새해 첫날이 언제였는지 전혀 기억이 없었다.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백단영과 함께 무림다루에 들러 차를 마신 기억이 났다. 함께 차를 마신 것이 그녀가 그에게 해 준 생일선물이었나 보다. 그날 그녀가 길거리에서 당과도 하나 사줬던가…….
생일날 케이크를 놓고 촛불 켜고 노래 부르지 않는 이상 기억이 날 리가 있나. 그래, 케이크다.
***
다음 날 저녁, 용봉대 연공실에 백단영의 지인들이 모두 모였다.
물론 백단영의 의도는 아니고, 무흔이 그녀와 가까운 사람들을 불렀다. 마땅하게 모일 장소가 없어 연공실을 선택했다. 무공 수련이 아닌 용도로 연공실을 사용하는 것은 금지였으나 어차피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장후성, 남궁이화, 모용예, 남궁천기, 제갈수 등을 불렀는데 구진광과 진풍이 딸려왔다. 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축하하겠다고 우기는 손님을 내칠 수는 없으니.
이래저래 친우들이 백단영에게 오래 살라고 축하 인사를 했다. 어찌 보면 무척 의례적인 축하 인사였다. 하긴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것이 무림인의 인생이니 오래 사는 것만큼 절실한 바람은 없는 것일까.
무흔 역시 이곳 인생 최고의 목적이 백단영이 오래 사는 것이니 마찬가지 축하를 했다.
“선물은 없어?”
백단영이 무흔을 향해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흔이 손을 내저으며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하하, 당연히 있죠.”
숨겨 두었던 꽃다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중매. 겨울이 지나가는 요즈음 볼 수 있는 꽃이다. 한 다발 꺾어서 천으로 묶고 장식하니 그럭저럭 볼만했다.
“와아, 예쁘다.”
모용예가 가장 먼저 반응했지만, 털털한 남궁이화는 예상대로 시큰둥했다.
다행히 백단영이 환하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았다. 꽃에 싸인 그녀의 얼굴이 마치 꽃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오늘 무흔이 준비한 회심의 역작.
무흔은 한쪽에 준비해 둔 종이 상자를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커다란 둥근 원판처럼 생긴 떡 비슷한 것에 딸기가 잔뜩 올라가 있고, 그 위로 색색 밀랍초를 놓았다.
“이게 뭐야?”
백단영이 킥킥 웃으면서 물었고, 다른 사람들도 처음 보는 낯선 음식을 궁금해 했다.
목소리를 쫙 깔고서 무흔이 설명했다.
“이게 바로…… 케이크…… 아니, 떡판 요리란 겁니다. 이렇게 초에 불을 붙여서…….”
무흔은 백단영에게 불을 붙일 것을 요구했다.
물론 무흔이 삼매진화로 불을 붙여도 된다. 다만 그럴 때 뜻하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주목받는 문제가 생긴다. 삼매진화는 엄청난 고수임을 드러내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것도 모양이 안 나니 백단영에게 미뤘다.
그의 의도를 눈치챈 백단영이 가볍게 손을 튕기는 것으로 응답했다.
확-
떡판 위에 놓인 초에 불이 붙었다.
“오오!”
모두가 백단영의 놀라운 무공에 감탄했다. 그동안 그녀가 초강고수로 성장했음을 듣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체감하게 되리라고는 아무도 몰랐다.
무흔은 떡판 요리를 앞에 두고 감회에 잠겼다.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하루 동안 동분서주했다. 현대와 달리 이곳에서는 재료를 구하기 쉽지 않다. 케이크 내부에 들어가는 빵은 떡으로 대체했다. 만들고 오래지 않아 먹을 것이니 떡이 굳어 먹지 못할 일은 없다.
문제는 생크림. 염소젖에 달걀과 꿀을 넣어 열심히 휘저었다. 당연히 젓는 수고는 개봉사걸이 번갈아 가면서 했다. 날씨가 추워 차가운 곳에서 숙성시키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케이크를 만들고 여기에 딸기까지 올리니 그럭저럭 괜찮은 작품이 탄생했다. 맛도 꽤 괜찮았다. 물론 이 모든 정보는 마침 현대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열심히 유튜브로 검색한 내용이다.
손뼉 치고 촛불을 끈 다음 비수를 이용해 떡을 잘랐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입 베어 문 백단영의 눈매에 절로 장난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무흔, 고마워.”
딱히 칭찬을 듣겠다고 준비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퉁명스럽게 한입 물던 남궁이화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우와아! 이게 무슨 맛이냐!”
다른 사람들도 달콤하고 오묘한 맛에 난리가 났다.
“무흔, 내 생일 때도 만들어 줄 수 있어?”
모용예의 요구에 무흔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곳 무림 세계에서도 생일 케이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무흔은 색다른 재미를 느꼈다.
***
뜻하지 않게 원정 명령이 떨어졌다.
대상자는 장후성, 남궁이화, 구진광에 백단영까지. 목표는 호남성 장사수채. 장강에서 배를 타고 오가는 상선을 주로 털던 수적이었다.
여기에 무흔과 진풍이 붙었다. 무흔이 낀 이유는 백단영이 데려가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무흔이 따라가게 되자 자연스럽게 구진광이 진풍을 끼워 넣었다.
급하게 결성된 원정대에 의견이 분분했다. 무엇보다 정리해야 할 대상이 장강에서 날뛰는 수적이라 물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수라 해도 물속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물에 빠지면 고수도 별달리 수가 없다.
급하게 이동하던 도중에 들린 객잔에서 장후성이 일행에게 원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장사수채가 사마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나 봐.”
최근 장강 중류에 있는 장사에서 수적 출몰이 유독 심해졌다고 했다. 이곳은 장강을 이용한 물동량이 많은 곳이라 그 피해가 막심했다. 관부에서도 수적을 제거하려고 힘을 기울였으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보다 못한 지역 정파 문파에서 나섰으나 오히려 수채의 습격으로 문파가 박살 났다. 과거라면 있을 수 없는 사건에 그제야 사람들은 사마련에서 장사수채를 작정하고 지원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최근에 사마련이 공격 형태를 바꾸었거든.”
장후성의 설명을 구진광이 이었다.
무당산 대전 이후 정파와 사파는 전면전을 양쪽 모두 기피 하게 됐다. 대신에 곳곳에서 크고 작은 소규모 전투가 자주 발생했다. 장사수채의 경우도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했다.
용봉대원들은 어쨌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파인을 한 사람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장후성이나 남궁이화는 전투 의욕을 불태웠고, 백단영은 무덤덤하게 그들에 동조했다.
“수적이야 솔직히 녹림보다도 못한 녀석들이잖아?”
수적에 관한 전체적인 평가는 높지 않다. 그들은 물에서는 힘을 쓸지 몰라도 육지에서는 녹림보다도 못한 삼류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지. 배에 익숙하고 수영 좀 한다는 것 빼면…….”
“배를 타고 멀리 나가지만 않으면 돼. 어차피 수채도 진지는 강변이 아니겠냐? 육지라고.”
남궁이화가 대수롭지 않게 장담했다.
무흔 역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제 그와 백단영은 산적이나 수적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됐다.
정작 평소와 달리 구진광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고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
장후성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진광, 오늘따라 조용하네?”
“아, 난 물과 별로 안 친해서.”
예전에 청담호에서 물에 빠졌을 때 구진광이 백단영을 내버려 두고 홀로 도망쳐 나온 것을 기억하는 무흔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자자, 얼른 먹고 떠나자고.”
밥을 먹은 사람들이 먼저 객잔 밖으로 나갔다.
가장 늦게 밥을 먹은 구진광은 마지막으로 객잔을 떠나면서 점소이를 불렀다.
점소이가 달려와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 동네에 대륙전장이라고 있지?”
“아, 마을 중앙에 가면 한 곳 있지요.”
“거기에 이걸 좀 전해 주게나.”
구진광은 자신의 표식을 겉에 표기한 접은 쪽지를 점소이에게 넘기고, 수고비로 은자 한 냥을 함께 올렸다.
돈을 본 점소이가 함박웃음을 머금으며 다시 꾸벅 절을 했다.
구진광은 서둘러 일행에게 합류했다.
***
마극삼비의 일인인 풍은 중원에서 전달된 소식을 받았다.
중원 각지에서 취합한 여러 정보는 사천에 자리한 마교의 비밀 지부에서 한차례 가공되고, 그 가운데 쓸만한 것만 천마산의 본산으로 전달됐다.
이렇게 사마극에게 전달되는 각종 정보를 사마극의 최측근인 풍이 다시 한번 걸러냈다. 그렇지 않으면 정보가 너무 많아 사마극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 때문이다.
오늘 급하게 들어온 정보가 풍을 자극하고 있었다.
“용봉대 일부가 장사로 이동 중이라…… 거기에 백단영도 포함되어 있다고?”
풍은 백단영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녀와 한번 겨루었던 전투 탓이다. 거기에 사마극이 백단영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절대자를 보좌하고 있는 신하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여자는 대업에 방해되는 요물일 뿐이다. 특히 백단영처럼 아름다운 여자는 고려할 필요도 없이 확실하다. 사마극의 행보에 방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보탬이 될 리가 없다.
그는 자신과 겨루었던 여자가 주군의 총애를 받는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백단영을 어떻게 처리하지?”
풍은 고민을 거듭했다. 사마극에게 알리면 분명히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할 것이 뻔했다. 목표 인물이 무림맹에서 벗어난 이런 기회는 흔치 않다.
게다가 다른 정보 또한 엉켰다. 다른 경로로 들어온 장사지역 정보에 따르면 남해수신이라는 새외고수가 사마련을 등에 업고 장사에 입성했다고 했다. 최근 용봉대가 파견된 이유도 이것과 관련된 문제 때문일 것이다.
“남해수신! 적어도 물속이라면 만만치 않은 자이지.”
남해수신을 포함한 사마련과 백단영이 속한 용봉대원.
용봉대원에 장후성까지 포함되었으니 당연히 용봉대의 압승이다. 하지만 물에서라면?
풍은 사마련과 남해수신의 짙은 음모를 직감했다. 어쩌면 백단영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되려나.
이런 문제는 그의 손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풍은 원로인 마심노야를 찾아갔다. 마령파파와 함께 마교 이대 원로에 속하는 마심노야는 중립을 유지하는 마령파파와 달리 예전부터 사마극에게 기울어 있는 자였다.
사실 마심노야의 반응 또한 충분히 추측 가능했기에 손수 찾아 나선 것이다.
역시 마심노야의 일성은 단호했다.
“수라조옹을 보내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어떤가?”
수라조옹은 서열 십일 위의 최강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