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173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173화
173화. 새외고수 (1)
고목 아래까지 다가온 노인이 허탈한 표정으로 씩씩댔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노인의 행동은 확실하게 백단영을 쫓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것도 좋은 의도가 아닌 것이 확실했다.
얼른 노인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백단영의 기대와 달리 노인은 고목 아래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더운 여름이라 땀이라도 삭인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추운 겨울에 고목 아래에서 뭔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시비에 말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백단영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녀의 기다림은 멀리서 등장한 두 남녀에 의해 끊어졌다. 그 둘을 알아본 그녀는 깜짝 놀랐다.
바로 대호와 양이설이었다.
두 사람은 연연의방에서 막 나온 것으로 보였다. 둘 사이가 요즘 심상치 않더라니! 아마도 대호가 무림맹으로 돌아가자 양이설이 바래다주려고 따라 나온 듯했다.
두 사람은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백단영이 올라가 있는 고목에 도착했다.
대호와 정담을 나누며 걷던 양이설은 고목 아래에서 기분 나쁜 광경을 목격했다.
웬 노인이 그들을 쳐다보며 음흉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양이설을 보면서 실실 쪼개는 모습이 영락없는 색마로 보였다.
양이설 역시 노인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는 과거의 사건 때문에 색마를 매우 싫어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사람을 뭐라 할 수 없어 노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두 사람이 막 노인의 옆을 지나려 할 때였다.
“흐흐, 꿩 대신 닭이라더니…… 예쁜 아이로군.”
양이설의 눈매가 바로 찌푸려졌다. 하지만 꾹 참은 그녀는 화를 내려는 대호의 팔을 끌어당겼다.
노인이 옷을 털면서 벌떡 일어났다.
“역시 중원 처자들이 예쁘단 말이지.”
무시하고 지나갈지 말지, 고민하던 양이설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오늘은 네년으로 해결해야겠다!”
노인이 혀를 날름거리며 입술을 적셨다. 순간 노인의 손에서 강력한 기운이 뻗어 나와 양이설을 옥죄었다.
“으윽!”
엄청난 기력이 몸을 억누르자 양이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놀란 대호가 검으로 노인을 공격했다.
대호의 공세는 예상 밖으로 강력했다.
느긋하게 상대의 공세를 뿌려지려던 노인은 화들짝 놀라 양이설을 누르던 기운을 거두고 대호의 검격에 대항했다.
챙-
노인은 장력을 이용해서 대호의 공세를 파훼한 다음 바로 역습을 가했다.
강력한 일장이 대호를 향해 몰려가는 순간 이번에는 양이설이 검을 들고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두 사람의 합공이 시작됐다.
양이설은 색마라면 이를 갈았다. 당연히 자신을 노리는 노인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분노가 폭발한 그녀는 상대를 향해 정교한 검을 날렸다.
노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찮았으나 두 사람은 물러서지 않았다.
채챙-
검과 장력이 뒤엉키며 어지러운 공방이 시작됐다.
정작 나무 위에 있던 백단영은 당황했다. 그녀가 나무 위로 올라간 이유는 노인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노인이 양이설과 만나면서 상황이 이상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그녀가 볼 때 양이설과 대호의 무공이 성장했지만 이 노인을 상대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정면 대결은 양이설과 대호가 불리했다. 다만 두 사람이 연합했기에 그나마 버틸 수준은 되리라 예상했다.
두 사람이 위험해지면 바로 구하러 내려가고, 그렇지 않으면 두 사람이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잠시 두고 보는 것으로 방침을 정한 백단영은 눈을 떼지 못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노인의 다소 어눌한 말투에서 백단영은 상대가 북서쪽 지방인 대막 출신이란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특정되는 인물이 있었다.
대막 지역에서 수십 년에 걸쳐 일인자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었다. 대막에서는 피를 몰고 다니는 독사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별호가 대막혈사다.
중원에서도 적수를 찾기 쉽지 않을 만큼 무공이 고강하지만, 성정이 지극히 포악하며 색을 밝히는 인물이란 평이 붙었다.
문득 예전에 용봉대주인 풍사검객으로부터 들었던 정보가 생각났다. 사마련에서 새외로 사람을 보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사마련의 요청으로 중원에 들어온 것일까.
문득 얼마 전에 사마련의 핵심 간부 둘을 죽였던 일이 생각났다. 멸겁방주와 광혼곡주다. 사파에서는 그 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보기에 둘의 무공은 대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마련주인 혈각마신 또한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원수라 할 그녀를 처리하려는 사마련의 행동이 예상됐다. 마교나 새외 쪽 고수에게 의뢰하는 수순이 떠올랐다.
비교적 매끄럽게 전후가 맞추어지자 백단영은 안면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대막혈사?”
채챙-
다행스럽게도 양이설과 대호의 연합공격이 위력을 발휘했다.
두 사람이 최근에 익힌 무상벽라검법은 최상승 무공에 속한다. 당연히 대막혈사에게도 큰 위협이 됐다.
정작 당황한 것은 대막혈사였다.
우연히 만난 중원의 두 무인이 자신을 압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이다.
대막혈사는 두 사람의 검초를 피하면서 일장을 뿌렸다. 그의 날카로운 일장은 양이설의 검에 의해 바로 깨졌다.
“내 실력이 줄었나?”
대막혈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더욱 맹렬하게 공세를 취했다.
퍼펑-
그의 장력이 대호와 양이설을 번갈아 가며 노렸다. 두 사람은 힘껏 보법을 펼쳐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고 바로 반격했다. 평소 합을 맞추어 왔던 두 사람인지라 실력보다 한층 위협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슬슬 대막혈사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백단영을 잡으러 왔다가 엉뚱한 여자에게 눈독을 들였는데, 하필 그 여자에게 곤경을 당하고 있으니. 몸이나 풀겠다는 생각도 바뀌었다. 이 둘을 잡으려면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진 대막혈사가 공격 수위를 한층 높이려 할 때였다. 난데없이 머리 위에서 강력한 암기가 쏟아졌다.
“허억!”
놀란 대막혈사가 이리저리 뛰며 암기를 피하는 순간 옆에서 양이설의 검격이 그의 몸을 쪼개버릴 듯 들어왔다.
어쩔 수 없이 어설픈 일장으로 양이설의 검격을 막는 순간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대호의 날카로운 공격이 들어왔다. 동시에 다시 머리 위에서 무형의 암기가 쏟아져 내렸다.
“크헉! 웬 놈이!”
대막혈사는 무형의 암기가 쏟아진 나무 위를 흘겨봤다. 자신이 미행하던 백단영이 그곳에서 보이자 그는 이빨을 부드득 갈았다.
천강무흔비가 대막혈사의 집중력을 깨트려 접전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자 백단영은 계속해서 틈만 나면 천강무흔비로 강기의 파편을 쏟아 냈다.
순식간에 대막혈사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비록 대막혈사가 한 지역의 패자로 오랫동안 군림할 만큼 노련했지만, 양이설과 대호의 합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여기에 백단영의 적절한 찌르기가 들어가니 대막혈사 또한 우위를 점하기 어려웠다.
“잡것들이!”
대막혈사의 입이 점점 거칠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된 사실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침내 더는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대막혈사가 전력을 다해 독문신공인 혈사신공을 끌어올렸다. 대막혈사의 몸 주위로 시뻘건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죽어라!”
마침내 그를 최강으로 만들었던 혈사신마권이 펼쳐졌다. 양손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교차하며 무시무시한 권격이 시뻘건 기운을 동반한 채 양이설에게 날아갔다.
양이설은 직감적으로 감히 자신이 대항할 수 없는 공격임을 눈치챘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도 없는 일. 그녀는 무상벽라검법의 최후 초식을 펼쳤다.
아직 완성도가 떨어졌으나 상대의 공격을 파훼할 방법은 이 초식밖에 없었다.
콰앙-
죽음의 혈사신마권과 무상벽라검법이 엉키면서 사방으로 폭음이 퍼져 나갔다.
양이설의 내력은 대막혈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초식보다 내공이 문제였다.
“아악!”
양이설은 그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몸을 휘청거렸다. 그 순간 대막혈사의 혈사신마권이 재차 그녀를 공격해 들어왔다.
시뻘건 기운에 잠긴 대막혈사의 주먹이 그녀의 가슴을 강타하려는 순간 하얀 수강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실로 적절한 개입이었다.
서걱-
수강이 혈사신마권의 기운을 가볍게 잘라 냈다.
대막혈사는 갑작스러운 기습에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수강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고 곧바로 방향을 틀어 심장을 비수처럼 찔러 왔다.
“허억!”
다급한 신음과 함께 붉은 기운이 폭풍처럼 수강을 향해 밀려 갔다. 놀랍게도 대막혈사의 한쪽 손이 수강을 깨트리고 다른 한 손이 상대를 가격해 들어갔다. 사력을 다한 대막혈사의 반격이 펼쳐진 것이다.
하얀 수강의 정체는 바로 백단영이었다. 그녀는 양이설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싸움에 개입했다.
그녀의 천강십이수와 대막혈사의 혈사신마권이 뒤엉키며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벌어졌다. 한 치만 삐끗하면 저승으로 갈 수 있는 위험한 대결이 계속됐다.
퍽- 퍽- 파팍-
흰 강기와 붉은 강기가 만나 상대방 기운을 깨트리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보기 힘든 장렬한 광경이 펼쳐졌다.
백단영은 대막혈사와의 정면 대결에서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압도했다. 공세가 계속될수록 그녀의 우세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거…… 검을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가짜 정보였나…….”
대막혈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공격을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당연하게도 내력 면에서 백단영이 대막혈사를 압도했다.
상대를 몰아붙이던 백단영은 대막혈사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어에 몰리자 공격을 늦추며 질문했다.
“사마련에서 사주했나?”
대막혈사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만으로도 백단영은 자신의 추측이 옳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이제 굳이 이 녀석을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백단영의 수강이 더욱 길어졌다. 하얗던 수강의 색상이 투명하게 변했다. 그녀의 능력이 한층 향상되었음을 드러내는 증거였다.
“끝이다!”
백단영은 번개처럼 발을 박차고 대막혈사에게 쏘아졌다. 그녀의 손끝에서 뻗은 수강이 마치 작은 비수처럼 날카롭게 상대를 파고들었다.
대막혈사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폭사되면서 혈사신공이 눈부시게 방출됐다. 위기를 직감한 대막혈사의 임기응변이었다.
백단영의 호신강기와 혈사신공이 충격파를 일으키는 순간 그녀의 수강이 상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크으윽!”
붉은 피가 쏟아지며 대막혈사의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
비틀거리던 대막혈사가 마침내 쓰러졌다.
백단영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을 뒤덮은 하얀 수강이 아름답게 보였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감이 느껴졌다. 검이 아닌 다른 무공도 궤도에 올랐다는 기분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양이설이 뛰어 와서 그녀에게 인사했다.
“백 소저, 구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의 감사에 백단영은 내심 켕기는 바가 많았다. 사실 그녀 때문에 양이설이 위험에 빠진 것이니까. 오히려 미안해해야 할 사람은 그녀였다.
그렇다고 어떻게 해명하기도 힘들어 백단영은 양이설의 감사 인사를 받아들였다.
양이설이 대막혈사의 시신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백 소저의 무공은 정말 대단해요. 나도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 아직 멀었나 봐요.”
오늘 대호와 둘이서 합공을 했음에도 대막혈사에게 밀렸다는 사실에 그녀는 사기가 꺾인 듯했다.
“저자가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백단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양이설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그냥 강호를 떠도는 고수일 것 같긴 한데…….”
“저자는 대막혈사란 자예요. 대막에서는 수십 년간 최강으로 군림한 자죠. 그런 자를 상대로 그만큼 버텼다는 것은 소저의 무공이 많이 향상되었다는 증거예요.”
백단영의 칭찬에 양이설이 뛸 듯이 좋아했다.
단순히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실제로 양이설의 무공은 꽤나 높아졌다.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백단영의 질문에 대호가 대신 대답했다.
“전 무림맹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양 소저는 바래다주려고 여기까지 나왔어요.”
“그럼 같이 들어가면 되겠네요.”
백단영은 귀의를 만나는 것을 다음으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했다.
“귀의 어르신께 안부 전해 주세요.”
백단영은 양이설에게 안부 인사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