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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205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05화

205화. 반란의 날 (3)

 

 

 

사자의 갈기처럼 보이는 치렁치렁한 머리, 각이 진 턱, 고요하고 깊은 눈동자. 바로 교주 일가를 제외하면 마교의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는 혼천마도 갈무량의 특징이다. 바로 그 남자가 지금 은옥상의 눈앞에 있었다.

혁무휘를 상대하느라 많은 내공을 소모했던 은옥상이 숨을 갈무리하며 갈무량을 의문의 눈으로 바라봤다.

“당신이 여기에 왜?”

“은 소교주, 이곳도 마교 영지인데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물론 그렇게 말했습니다만.”

갈무량은 죽은 혁무휘의 시신과 위협받고 있는 암영이군과 혈풍쌍검 등을 쭉 훑었다.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한 갈무량의 음성이 차갑게 식었다.

“예상과 다르게 오히려 혁 소교주께서 죽음을 맞으셨군요. 승자가 은 소교주였다니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차분한 그의 말에 은옥상은 알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마교 권력투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던 갈무량이었기에 이곳에 나타날 이유 또한 없어야 했다.

갈무량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혁무휘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잠시 시신을 점검한 갈무량이 이번에는 주위를 포위한 남혼북령과 옥소마희 등을 살폈다.

“은 소교주님의 무공이 실로 놀랍군요. 최근에 큰 성취가 있으셨던 듯합니다?”

빙그레 웃는 갈무량의 표정에서 은옥상은 칭찬이 아니란 사실을 눈치챘다.

점차 그가 이곳에 온 이유가 짐작됐다. 갈무량 역시 권력투쟁에 뛰어든 것이다. 다만 그것이 특정인을 밀어주는 형태가 아닐 뿐.

역시 그녀의 짐작을 벗어나지 않았다.

갈무량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암영이군과 혈풍쌍검을 향했다.

“내가 보기에 그대들은 거의 목숨을 건지기 어려울 것 같군. 어떤가? 내가 목숨을 구해줄 생각이 있는데.”

암영이군이 반색해서 그를 주시했다. 하지만 표정으로 보아선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다.

“내가 여기 은 소교주를 없애면 나를 따르겠느냐?”

드디어 갈무량의 내심이 드러났다.

애초부터 갈무량은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 역시 마교의 교주가 될 능력이 충분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교주인 혈천마종은 굳건했고, 그 아래로 세 소교주가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어 그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수련에 매진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인생을 살다 보면 적어도 한번은 하늘이 기회를 내린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다.

혈천마종이 죽고 사마극이 다른 두 소교주를 쳐내기 위한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 과정을 보며 그에게 유리해질 시점을 기다렸다. 역시나 사마극뿐만 아니라 위험해진 두 소교주마저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연히 기회를 노리던 갈무량은 중립을 선언했다. 이인자의 지위는 혈천마종 아래에서 경험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의 세력으로는 이들 셋을 상대하기 쉽지 않았기에 소교주들이 서로 상잔하여 힘이 빠졌을 때를 노리기로 했다.

그리고 예상이 적중했다.

은옥상이 사마극에게 잡히고 변화가 생겼다. 사마극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은옥상이 탈출하고 혁무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소교주가 서로 싸우면서 힘이 빠졌을 때가 그가 일어설 시점이었다. 마침 사마극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본산 내부만 확실하게 거머쥔다면 사마극이 돌아오더라도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의외로 혁무휘가 무너지고 은옥상이 살아났다. 어차피 상관없었다. 은옥상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평소에도 그러한데 지금처럼 내력이 소모된 상태에서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 그게…….”

암영이군이 갈무량과 쓰러진 혁무휘를 바라보며 대답을 주저했다.

주군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만일 원수인 은옥상이 이런 제안을 했다면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갈무량은 다르다. 무공만으로 서열 일위를 거머쥔 그는 마교 내부에서의 무게감이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아라. 지금 이곳의 상황을.”

갈무량이 자신이 데려온 십여 명의 부하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의 의사는 명확했다. 이 인원만으로도 은옥상을 처리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고민하던 암영이군은 결국 결심을 굳혔다.

“알겠습니다.”

암영이군을 비롯한 혁무휘쪽 인원들이 한쪽으로 물러섰다.

자신만만해진 갈무량이 은옥상에게 몸을 홱 돌렸다.

“은 소교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무엇을 말이냐?”

“나를 밀어주면 목숨만은 살려드리리다. 향후 사마극과의 싸움에서 공헌해준다면 특별대우까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은옥상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대답은…….”

은옥성은 내력을 끌어올리며 갈무량에게 산악 같은 장력을 날렸다. 어차피 상대는 강하고 자신은 내력이 정상이 아니다. 시간을 끌수록, 정상으로 맞부딪칠수록 불리하다.

은옥상의 기습은 갈무량의 예상 범주 내였다.

갈무량은 가볍게 손을 뒤집었다. 정상이 아닌 은옥상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기에 전력을 다할 필요도 없었다.

콰릉-

가벼운 폭음과 함께 은옥상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밀렸다. 옥소마희가 급히 그녀의 뒤를 받쳐 간신히 바닥을 나뒹구는 것을 면했다.

하지만 무리한 덕분에 내상이 작지 않았다. 은옥상은 한 모금 피를 울컥 내뱉은 다음 옥소마희의 품에 안겨 간신히 몸을 지탱했다.

“하하, 너무 무리하셨소. 권주를 마다하니 이제 벌주가 내려질 때요.”

갈무량이 힘껏 발을 내디디며 두 여인을 향해 다가왔다.

쿵- 쿵-

땅바닥에 깊게 새겨지는 발자국이 장내의 모두를 위협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갈무량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은옥상은 입술을 깨물며 한차례 경련을 일으켰다. 혁무휘를 없애고 본산에 있는 마교인의 동요를 수습하면 사마극과 좋은 승부가 될 거로 생각했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갈무량이 비웃음을 날리며 은옥상의 앞에 우뚝 섰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상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을 던진 갈무량이 은옥상을 노려볼 때였다.

“뭘 어떻게 해? 네놈만 없애면 되는 거지.”

지극히 장난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바로 무흔이었다.

갈무량은 무흔을 모른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갈무량이 눈을 번쩍 떴다.

“넌…… 누구냐?”

갈무량은 무흔이 범상치 않은 자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무흔은 빙그레 웃으며 장내로 들어갔다. 그를 알아본 은옥상과 옥소마희의 안면에 생기가 돌았다.

“글쎄…… 누굴까?”

빈정대는 듯한 말투에 갈무량이 표정에 금이 갔다. 적어도 마교 내에서 그를 이런 식으로 대접할 사람은 없었다. 설사 마교 교주라도 그에게는 예의를 갖추었으니까. 분위기로 보아 은옥상 쪽 사람이 분명한데 짐작 가는 바는 없었다.

“본교 소속이냐?”

“그렇진 않지만 전혀 연관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아리송한 대답에 갈무량의 안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가 막 상대를 응징하려 할 때 무흔이 다시 대답했다.

“알려줄까? 가빈! 내가 누구냐?”

무흔이 옥소마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 주군이십니다.”

옥소마희의 답변에 장내의 모든 사람이 놀랐다. 무려 서열 칠 위인 옥소마희의 주군이라니. 옥소마희는 은옥상 지지를 선언하지 않았던가?

“이만하면 답변이 되었나?”

여전히 아리송한 무흔의 정체에 갈무량은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을 한 그는 무흔을 향해 손을 쭉 뻗었다.

“언제까지 주둥이를 놀리는지 두고 보자.”

섬뜩한 예기가 무흔의 사혈을 엄습했다. 무흔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느긋하게 손을 저었다.

파파팍-

두 사람의 손이 갑자기 수백 개로 분화하며 어지러운 잔영을 형성했다. 순식간에 수십 초의 공방이 벌어졌다.

“제법이구나!”

갈무량의 탐색전은 그것으로 끝났다. 어둠 속에서 하얀빛이 번쩍였다. 갈무량의 허리에 메여있던 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순식간에 도기가 엄습하자 무흔 역시 검을 들었다.

도와 검이 만나면서 금속음과 함께 그 여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두 사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십여 장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도기와 검기가 충돌했다.

채채챙-

갈무량의 별호는 혼천마도다. 마교에서 도에 관한 한 일인자이자 무림사에서 도법에 일가를 이룬 고수다. 그의 도는 대적할 자가 없을 만큼 묵직하고 날카로웠다. 갈무량과 함께 온 사람들은 그가 도를 뽑아 들자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갈무량의 도 앞에서 십 초를 버티는 자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

휘몰아치던 도기가 어느새 도강으로 바뀌었다. 상대를 찍어 누르는 살벌한 기운과 예리함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적어도 상대가 무흔이 아니었다면 그러했다.

콰아앙-

강기의 폭발과 함께 갈무량이 한발 물러났다.

뜻밖에 만난 만만찮은 상대였기에 자신의 도를 다시 점검했다. 놀랍게도 도의 날이 듬성듬성 빠져 있었다. 십여 년 동안 그의 손에서 천하를 제패했던 보도의 이빨이 빠지다니.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는 상대의 검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무튀튀한 색상이 시중에서 흔히 보는 싸구려 검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상대가 들고 있는 검은 멀쩡했다.

“이, 이게 어찌 된…….”

갈무량은 도와 검을 비교하며 실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도강을 다루는 그에게 도의 예리함이나 날이 빠진 것 자체는 그리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빴다. 이것은 단순히 병기의 이빨이 빠진 것이 아니라, 상대와 강기를 겨루어서 자신의 강기가 깨졌다는 의미니까.

“이놈이!”

분노한 갈무량이 마침내 전력을 다해 도를 휘둘렀다. 도강에 동반된 거대한 압력이 무흔에게 밀려갔다.

예전이라면 무흔은 꽤 긴장하며 상대의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빙소를 다녀온 지금은 달랐다. 그의 눈에는 갈무량이 발버둥 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번쩍!

가볍게 비천삼검을 휘두르자 주변의 공기가 확 달라지며 검강이 폭죽처럼 갈무량을 타격했다.

콰아앙-

무흔이 작심하고 휘두른 검강은 갈무량의 도강을 종이처럼 짓이기고 급기야 그의 도를 토막 냈다.

“헉!”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엄청난 무위에 갈무량이 헛바람을 내뿜었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미처 놀랄 틈도 없었다. 그의 도를 반 토막 낸 후에도 무흔의 검강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그의 목을 찔러왔다. 당연히 갈무량은 반응하지 못했다.

무려 십여 년간 서열 일위를 지키며 쌓아온 무공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별거 아니잖아?”

갈무량의 목에 묵천신검을 댄 채 무흔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목에 닿은 검 때문에, 그리고 전혀 막을 수 없는 무흔의 신위 때문에 갈무량은 꼼짝하지 못하고 눈만 껌벅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갈무량은 쉽게 깨달을 수 없었다. 서열 일 위에 등극한 이후 자신이 이처럼 무기력하게 허물어지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 어떻게 이런 일이…….”

“그래서 초보가 설치면 안 된다고.”

무흔은 상대의 목에 검을 걸친 채 은옥상에게 시선을 돌렸다. 은옥상에게 처리 여부를 묻는 것이다.

무흔의 놀라운 무공에 정신이 나갔던 은옥상이 눈빛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무흔이 쓴웃음을 지으며 압박했다.

“난 너 같은 자식이 제일 싫어.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면 가만히 있던가. 왜 뒤로 꿍꿍이를 벌이냐 말이지. 왜 한 입으로 두말하냐고.”

갈무량은 할 말이 많았으나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가 움직이려는 순간 목이 섬뜩했다. 목 일부를 검날이 파고들었다.

“허억!”

“내가 살려주고 싶어도 네놈이 두말할까 봐 살려주질 못해.”

“제, 제발…….”

속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었던 갈무량의 눈동자에 공포가 일었다.

서걱-

가벼운 움직임에 갈무량의 목이 떨어졌다. 무려 십여 년간이나 와신상담해왔던 마교 서열 일 위 치고는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갈무량 부하들과 혁무휘 쪽 인사들이 넋이 나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무흔이 싸늘하게 경고했다.

“불복하는 자는 나와라!”

아무도 함부로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순간 옥소마희의 신형이 장내를 휘감았다.

“커윽!”

암영이군 둘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혁무휘에게 충성했던 그 둘은 은옥상으로 노선을 갈아타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이어서 서너 명의 사람들이 추가로 쓰러졌다.

그제야 무흔은 검을 회수하고 은옥상의 옆에 대기했다.

은옥상이 살아남은 자를 향해 단호하게 외쳤다.

“지금부터 이곳은 우리가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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