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00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00화
200화. 한빙소 (1)
사마극은 어둠 속에서 불타오르는 산봉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곤륜산.
새외에서 중원으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사천의 요지에 자리한 이 산은 옛날부터 도사들이 수련하는 곳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 명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구대 문파에 속한 도가 계열 문파인 곤륜파가 저곳에 자리 잡았다.
그 곤륜파가 지금 불타고 있었다.
“이것으로 마교의 위엄이 중원 전체를 압박하리라!”
사마극은 만족스러운 일성을 발했다. 불빛에 비쳐 붉은빛을 띤 그의 얼굴이 마치 악마처럼 느껴졌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중원 각 지역에 산재한 유명 문파를 하나하나 지워가며 중원을 손아귀에 넣을 거대한 야망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실상 마교는 그의 손에 들어왔고, 머지않아 중원도 마찬가지 운명에 빠질 것이다.
“교주님!”
뒤에서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에 입꼬리를 올리며 사마극은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그를 보좌하고 이끌어주는 핵심 인물인 마심노야가 눈앞에 나타나 있었다. 실제 나이가 거의 백 살에 이른다는 마교의 산 역사가 바로 마심노야다. 중립을 지키는 마령파파와 달리 예전부터 그를 보좌해 온 최측근이다.
“무슨 일입니까?”
인자한 미소를 띠며 다가온 마심노야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은 소교주가 탈출했다는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사마극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마치 예상한 일이었다는 듯 입가에는 여전히 잔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은옥상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까. 조력자는?”
“옥소마희와… 귀령신이라고…….”
“그 귀령신은 아니겠군. 귀령신을 죽일만한 인물이라…….”
사마극은 귀령신이란 말이 나왔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얼마 전 혁무휘 휘하에 있던 귀령신을 포섭하기는 했으나, 주 전력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귀령신을 없앨 정도라면 마교 인물은 아닐 테고, 은옥상과 가깝다면 생각나는 인물이 하나 있긴 했다.
“그리고……”
마심노야가 중요 정보 몇 가지를 추가로 전달했다.
그 가운데 남궁이화를 포함한 일행 넷이 매화곡을 찾았다는 것과 그 뒤로 무림맹의 용봉대가 따라오고 있으며, 그 너머로 무림맹의 주요부대인 현무대와 주작대가 몰려오고 있다는 정보가 포함됐다.
“무림맹에서 작정한 모양이군. 차례로 줄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교주 자리가 비었으니 기회라 이거지. 클클, 그래서 내가 곤륜을 쳤거늘…….”
“자칫 위기가 닥칠 수도 있습니다.”
안에서 은옥상과 혁무휘가 반란을 도모하고 밖에서 무림맹이 몰려온다면 큰 위기로 번질 수도 있다.
“어차피 잔당을 뿌리 뽑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일 아니던가.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렇습니다만…….”
마심노야는 사마극의 생각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었기에 굳이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마교 교주로 등극하려면 대외적으로 커다란 업적이 필요하다. 방금 곤륜파를 지웠으니 하나 정도만 덧붙이면 된다.
그리고 내부의 적도 억압하는 것보다 빈틈을 보여주어 표면으로 끌어내는 것이 길게 봐서는 더 유리하다. 이 기회에 적끼리 상잔해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을 일이 없고.
다만 그 과정에서 이쪽 편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 가든 절대마령이 있는 한 우리가 압도적이다.”
사마극은 곤륜과의 전투에 처음으로 절대마령을 시험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곤륜에서는 세 절대마령에게 손도 대지 못했다. 절대마령만으로도 곤륜을 충분히 무너트릴 수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도망치는 적군을 죽이는 뒤치다꺼리만 하면 충분했다.
이 한 번의 전투로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래도 주작대와 현무대를 본산에 들일 수는 없지. 우리의 주력 병력인 혈사대와 암사대를 동원해서 그들을 차단하라. 굳이 먼저 싸움을 걸 필요는 없고. 그리고…… 본산에는 은옥상과 혁무휘가 더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우리 편 일부를 밖으로 빼내어 간섭하지 못하게 유도하라. 어떤가?”
사마극의 뜻대로라면 무림맹의 주작대, 현무대는 마교의 혈사대, 암사대와 대치 국면에 들어갈 것이다. 본산에서는 사마극 지지 세력이 일부 빠져나가면서 은옥상과 혁무휘가 발톱을 드러낼 것이고. 나쁘지 않은 그림이다.
“그럼 교주님께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
잠시 고민에 잠기던 사마극이 하얀 이빨을 어둠 속에서 드러냈다.
“난 백단영을 비롯한 용봉대와 만나보도록 하지. 어찌 되었든 그쪽이 무림맹의 핵심이자 미래가 아니던가.”
노련한 마심노야는 사마극의 생각을 읽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
어둠 속에서 두 인물이 나타났다. 바로 무흔과 은옥상이다.
그들은 천마산 비탈을 올라가고 있었다. 이 비탈에는 숨겨진 동혈이 있고, 그 동혈 내부엔 한빙소라는 신비한 연못이 자리했다.
무흔과 은옥상 모두 한빙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아니, 방문한 것만 아니라 그곳에서 죽을 뻔했다. 그랬기에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섬뜩한 추억의 장소이기도 했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장담한다.”
은옥상의 질문에 무흔이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은옥상을 구한 후 지지 핵심인력이 모여 향후 대책을 논의했었다. 사실 대책이랄 것도 없었다.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것이 첫째였다. 사마극 쪽에서 탈출을 알게 되면 곧바로 잡으러 올 것이라는 주장을 무흔이 손쉽게 만류했다.
그는 사마극이 먼저 은옥상을 치러 올 일은 절대 없다고 그들을 설득했다. 물론 무흔은 예전에 읽었던 소설을 기반으로 주장한 것이다. 그때도 사마극은 먼저 은옥상과 혁무휘의 세력을 치지 않고 반대로 그 둘의 싸움을 유도하는 편이었으니까.
그렇게 본다면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그 틈에 무흔이 은옥상을 끌고 이곳 천마산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한빙소에 몸을 담근 적이 없지?”
“절대마령이 잠든 그 끔찍한 연못에 누가 몸을 담가?”
무흔의 의문은 여기부터 출발했다.
마교인들의 엄청난 내공은 한빙소와 무관했다. 그렇다면 북령이나 은옥상의 공력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무흔은 자신의 추측이 어긋나자 새로운 가능성을 살폈다.
은옥상의 말을 참고해서 찾아낸 단서는 바로 식수였다.
마교 본산의 교주가 머무는 천마궁 한쪽 구석에는 교주의 은혜가 담겼다는 우물이 존재했다. 유달리 물이 파란색을 띠는 이 우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주가 마교 내 주요인물에게 식수로 하사했다.
마교에서는 이 우물을 교주에 대한 충성심 강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물을 하사받은 자는 교주의 은혜를 입었다는 식의 논리였다. 실제로 이 물을 마시고 나면 매우 기분이 상쾌했기에 이 전통은 자연스럽게 이어 내려왔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무흔은 마교 내공의 원인을 일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그 우물의 물이 바로 한빙소의 물과 같은 기원일 것이다.
은옥상이 소교주였기에 어릴 때부터 많은 영약을 섭취한 것도 사실이지만, 교주가 하사한 물도 자주 마셨다. 이 모든 것이 영향을 주고받아 지금의 공력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그래서 네 말을 들으면 사마극을 능가할 수 있다고?”
은옥상이 솔깃해서 무흔을 따라 나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당연하지. 내가 거짓말하는 것 봤냐? 지난번에 내가 천마합 무공을 장담했었지?”
은옥상은 무흔이 가르쳐주었던 천마합을 떠올렸다.
그날 절대마령을 뚫으려고 전력을 다해 펼쳤던 천마합은 상상 이상의 위력이었다. 확실히 그녀가 익혔던 천마류보다 월등했다. 만일 사마극과 대등한 공력만 지니고 있었더라면 사마극의 천마패를 압도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은옥상이기에 무흔의 장담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아, 천마합! 대단했었지. 좋아, 강해질 수 있다면 내가 뭐라도 한다.”
은옥상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들은 곧바로 동혈로 들어갔다.
혹시라도 절대마령이 대기하고 있을지 몰라 두 사람은 절로 숨을 죽였다. 강호 최강이라 할 두 절대 고수가 이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경우도 보기 드물 것이다.
어둠에 잠긴 동굴을 끝없이 내려간 그들은 한빙소 앞에 도착했다.
갑자기 확 차가워진 기온과 눈앞에 펼쳐진 어두컴컴한 물이 절로 몸을 떨리게 했다.
“다행히 예상대로 절대마령은 없네.”
은옥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마령이 없어 느긋해진 기분을 안고 두 사람은 주변을 둘러봤다.
일반 동굴과 비슷하지만 살아있는 생물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점이 특이했다. 동굴 벽도 대부분 단단한 암벽이라 사람의 손이 가미되었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곳이 언제부터 외부에 알려졌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어떻게 해?”
강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은옥상이 눈을 반짝였다.
“귀혼마령대법을 알아?”
“아니.”
무흔은 한빙소의 물이 귀령마혼대법에 공명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그런데 은옥상은 이 대법을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슨 심법이 통하는 것일까.
은옥상이 그동안 익혀왔던 심법이 관련 있으려나? 아마도 그럴 것 같았다. 적어도 교주가 내린 물에 반응했다면.
무흔은 은옥상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이제 여기서 목욕을 해야 해?”
“응?”
어둠 속에서도 화등잔만 하게 벌어진 은옥상의 눈동자가 보였다.
“여기서?”
놀란 표정으로 한빙소를 다시 쳐다보는 은옥상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저 시커먼 물속에, 그것도 한때 절대마령이 잠겨있던 저곳에 몸을 담그는 것은 생각만으로 끔찍했다.
한빙소와 무흔을 번갈아 보며 은옥상이 다시 물었다.
“지금 바로?”
“물론.”
“으억!”
은옥상이 당황해서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붉혔다.
뭔가 오해했다고 생각한 무흔이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뭐…… 내가 있는 게 싫다면 나가 있을 수 있긴 한데……. 웬만큼 간이 크지 않으면 너 혼자 여기 있기 쉽지 않을 건데?”
그 말도 사실이었다.
어둠에 대한 공포도 공포였지만 언제 절대마령이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무흔의 예상으로는 아마도 은옥상은 이 한빙소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절대 안전함을 보장할 수 없다.
주저하는 은옥상에게 무흔이 다시 말했다.
“뭐라도 한다며?”
“그게 이런 것일 줄은…….”
은옥상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여기에 몸을 담근 후 심법을 운용해봐. 확실하게 뭔가 느껴질 거다.”
무흔의 장담에 은옥상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고수에게 어둠이야 아무것도 아니려나.
“아, 알았어.”
결심한 은옥상이 말했다.
“동굴 밖에 나가 있을까?”
“아니, 그건 절대 안 돼!”
이곳 특유의 공포가 절로 이런 말을 입 밖에 내게 했다.
무흔은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났다.
“됐어.”
고개를 돌려보니 은옥상이 한빙소에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검게 보이는 물은 그녀의 몸을 완벽하게 감추었다. 그는 한빙소의 물을 밖에서 보면 천상문의 한담과 비슷하리라고 예상했다.
“자, 이제 운기를 시작해봐.”
은옥상이 눈을 감고 진기를 끌어모았다. 불과 열을 셀 시간이 지나자 번쩍 눈을 떴다.
“뭔가 이상해. 내력이 꿈틀대는 기분이…….”
역시 효과가 있었다.
“자, 지금부터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진기를 일주천해 봐. 꽤 오랜 시간 계속해야 할 거야.”
무흔을 완전히 믿고 있는 은옥상은 눈을 감고 운기를 시작했다.
무흔은 은옥상이 진기를 일으키는 동안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한빙소 내부로 이어진 동굴 안쪽이 궁금해졌다.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동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