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 속의 엑스트라 229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9화
229화. 지하 광장 (2)
무흔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지만 전각에서 들었던 바로 그 현상이었다. 목소리가 무흔의 것이고, 몇 번 반복되었기에 그녀는 이제 의심하지 않았다.
“중앙 광장이라…….”
미로는 좁은 통로가 무수히 겹쳐져 있지만, 곳곳에 다른 곳보다 약간 넓은 지역이 존재했다. 여러 통로가 모여 분기되는 그런 중심점이다.
은옥상은 이곳 지하 미로를 처음 들어왔지만 그 기본 구조가 만혈대의 지하 미로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혈대는 가본 적 없으나 수색 참여를 대비해 예전에 공부를 많이 했었다.
당연히 중앙 광장이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고 있었다.
은옥상은 이동 방향을 틀었다.
“소교주님? 지금 방향은…….”
옆에서 옥소마희가 살짝 우려를 드러냈다. 그녀도 중앙 광장의 특성을 알고 있었다. 미로를 헤매다 보면 결국 만나는 곳이 그곳이니까. 그 말은 그곳에서 사마극을 만날 확률도 증가한다는 뜻이다. 비록 은옥상은 사마극에 자신감을 비치지만, 옥소마희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언젠가 만날 일이다. 무흔도 그쪽으로 오겠다니까…….”
그나마 무흔 이야기가 나오자 옥소마희의 불만이 쑥 들어갔다. 그날 혼천마도를 처리하던 무흔의 신위는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통로를 몇 차례 가로질러 광장에 도착했을 때, 역시나 예상대로 사마극 일행이 그곳을 선점하고 있었다.
사마극을 확인한 은옥상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양쪽의 분노가 서로 엉키며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자아냈다.
“크하하, 결국 여기에서 만나는군.”
사마극의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은옥상은 사마극 쪽의 병력부터 확인했다. 그녀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창백해졌다. 몇몇 서열 권의 강자와 함께 절대마령인 음천마령까지 붙어 있었다.
이래서야 상대가 되지 않는다.
설사 음천마령이 없다고 해도 쉽지 않을 만큼 적의 수가 많았다.
‘지금 맞선다면 득보다 실이 많은데…….’
짐짓 여유로운 모습으로 은옥상은 광장 곳곳을 시선으로 훑었으나 무흔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내심을 눈치챈 것일까. 사마극이 다시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핫핫,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거냐?”
은옥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기세를 잡은 사마극은 목소리를 높였다.
“무흔을 기다리는 것이라면 포기하는 것이 좋을 거야. 염귀팔군이라고 들어봤나?”
염귀팔군(閻鬼八君)는 마교 교주 직속 친위대로 알려진 집단이었다. 모두 여덟 명으로 평소에는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교주가 위험에 빠졌을 때만 현신한다는 마교의 전설적인 무력. 그 개개인의 무공은 서열 십 위권에 들고도 남는다고 했던가.
“염귀팔군을 네가 어떻게?”
은옥상도 지금까지 염귀팔군을 본 적은 없었다. 단지 그런 존재가 있다고 듣기만 했을 뿐. 마찬가지로 사마극 또한 정식 교주가 아니므로 염귀팔군을 부릴 권한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비웃음을 흘리면서 사마극이 대답했다.
“마화령이면 못할 것도 없지.”
마화령은 마교의 신물이자 교주의 상징이니까. 은옥상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금방 이해했다.
“그 무적의 염귀팔군이 무흔을 맞이하러 떠났다. 무흔이 이곳에 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겠지. 지옥으로 가면 모를까.”
어째 일이 꼬인 느낌이었다. 사마극과 단판 승부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이처럼 세력 싸움으로 전환되면 당연히 불리했다.
그녀의 불안감을 사마극의 목소리가 바로 깨고 들어왔다.
“항복해라.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시신마저 제대로 보존하지 못 할 거야.”
최후의 통첩이 들어왔다.
은옥상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무흔을 기다릴 수 없다면 최후의 도박이라도 해봐야 했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광장 중앙에 들어섰다.
위험을 감지한 옥소마희가 그녀를 제지하려 했으나 그녀는 담담히 걸어갔다.
그녀를 따라오던 옥소마희와 난세마동 일행이 뒤로 물러서고 은옥상 홀로 사마극 앞에 섰다.
자연스럽게 사마극 측의 인사들도 뒤로 물러서자 두 사람을 중심으로 커다란 공간이 만들어졌다.
“우리 둘이 해결하는 것이 어떤가?”
은옥상의 도발이었다.
사마극은 담담한 눈동자로 은옥상의 모습을 담았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물론 은옥상이 익혔다는 천마합이란 무공이 거슬리긴 했다. 하지만 무공 하나로 결정이 날 만큼 그들의 무공 배움은 미흡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음천마령으로 그녀를 죽이면 된다. 물론 그전에 자신이 이길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를 바라보는 은옥상의 자신감에 찬 모습이 심히 거슬렸지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죽기 전엔 뭐라도 잡고 발버둥 치는 법이니까.”
***
무흔은 백단영과 남궁이화와 함께 중앙 광장으로 이동했다.
미로가 바뀌었다고 해도 그에게 큰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이미 기관진식에 나름 통달한 덕분이다.
은옥상이 들었을지 모르지만 중앙 광장에서 만나자고 전음을 보냈으니 서둘러야 했다. 그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거기 가면 사마극도 있을까?”
백단영이 무심코 사마극을 입에 올렸다.
순간 무흔은 현실에서의 사만국이 떠올랐다.
현실에서 사만국은 자신과 백다연을 위협하고 있다. 백다연이 검사이기에 큰일이야 일어나지 않겠지만, 상대가 소설에서의 사마극이다 보니 안심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백다연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제는 백단영과 백다연의 구분이 거의 모호해졌다. 아마 이런 느낌은 백단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사마극도 그곳으로 올 겁니다.”
“음천마령도?”
“아마도요.”
무흔의 거침없는 말에 백단영은 고민에 빠졌다. 사마극과 음천마령의 조합은 그녀에게 가장 골치 아픈 상대였으니까.
정작 무흔은 다른 근심에 잠겨있었다.
다시 현대로 돌아가기까지 나흘 동안 선도물산 사무실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처럼 막막한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곳과 현대의 고민이 겹치며 머리가 찌근거리고 있을 때 그는 통로 앞에서 이상한 흔적을 발견했다.
흐릿한 검은 연기랄까.
문제는 접근할수록 그 연기 같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질주하던 그의 신형이 자연스럽게 늦추어지고 그를 따르던 백단영과 남궁이화도 검은 연기를 인지했다.
“저게 뭐지? 심상찮은 분위기인데.”
남궁이화가 미간을 찌푸리며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재빨리 무흔은 머릿속에서 과거에 읽었던 천향무후 내용을 더듬었다. 절대마령과는 다른, 마교 최후의 보루였던 저 검은 기운이…… 그리고 저들의 존재가 선명하게 기억났다.
“염귀팔군!”
무흔의 외침에 백단영의 걸음이 뚝 멈추었다. 그녀도 과거에 천향무후를 읽었으니 염귀팔군의 공포를 떠올린 것이리라.
그때 염귀팔군은 사실상 무적이었다.
염귀팔군은 용봉대를 맞아 큰 타격을 입혔다. 당시 염귀팔군에 의해 용봉대는 절반이 목숨을 잃고 사실상 붕괴했다. 무엇보다 대주인 풍사검객이 염귀팔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던 것은 충격이었다.
무흔과 백단영이 걸음을 멈추는 순간 통로 앞쪽에 포진하고 있던 검은 연기가 서서히 짙어졌다. 그 연기는 모두 여덟 개의 뭉치를 형성하더니 이윽고 윤곽에 불과한 사람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염귀팔군의 모습은 그야말로 끔찍했다. 마치 귀신을 보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절로 오그라드는 몸을 간신히 쭉 펴면서 무흔이 물었다.
“염귀팔군?”
“흐흐, 잘 아는군. 우리가 그렇게 유명했었나?”
염귀팔군 가운데 맨 앞에 있는 녀석이 입을 열었다. 시체에서 풍기는 음습한 내음이 무흔에게까지 흘러들었다.
“예상보다 더 대단한 놈들이네.”
무흔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대적해보면 아예 그런 소리 자체를 하지 못 할걸…….”
마치 저승에서 울리는 듯 염귀팔군의 목소리는 단조롭고 묵직했다. 말은 똑똑하게 했으나 속도가 대단히 느렸다.
무흔은 염귀팔군이 등장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사마극이 그의 접근을 방해하려는 것이다. 아마 은옥상과 담판을 지으려는 수작 때문이겠지.
이대로라면 사마극의 의도에 휘말리고 만다.
비록 그가 백단영, 남궁이화까지 함께 있지만 염귀팔군을 상대하기는 만만치 않다. 내공 소모도 심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사마극도 이를 알고 이들을 이쪽으로 보내어 그를 저지하려 하는 것이다. 덕분에 예전 소설에서 치명타를 입었을 용봉대는 무사히 비켜 가겠지만.
염귀팔군을 상대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들의 특이성 때문이다. 이들은 존재 자체가 연기와 같다. 검으로 베려고 해도 쉽지 않다. 이들은 특이한 마공을 익혀 자신의 존재를 연기처럼 흩뿌려서 사방으로 퍼지게 한다. 일종의 분신술과 비슷한 것이지만 분신술의 경지를 한 단계 벗어난 사이한 무공이다.
무흔은 백단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들의 약점이 뭐였죠?”
예전 천향무후에서 풍사검객까지 죽였던 염귀팔군은 결국 장후성과 백단영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악전고투를 치른 후에. 그때 이들을 제거했던 방법이…….
백단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흔의 질문 의도를 이해한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도 그 부분 내용이 오락가락했다. 단지 염귀팔군이 매우 힘든 상대였다는 것만 기억날 뿐이다.
당연히 염귀팔군은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마교의 이름으로 그대들을 제거한다!”
염귀팔군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다시 검은 연기로 화했다.
“뭔 개소리야!”
남궁이화가 벼락처럼 도약하여 일검을 날렸다.
쐐액-
검이 검은 연기를 갈랐건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실제 연기를 허공에서 가른 듯했다.
그 순간 예전 소설의 기억이 무흔을 강타했다. 그때 백단영은 염귀팔군과 상대하면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염귀팔군은 오로지 장후성의 몫이었다. 장후성이 남주답게 성과를 올렸었다.
염귀팔군 역시 내공의 기본 속성이 한빙소와 같다.
한빙소와 비슷한 성질의 내력을 지닌 백단영은 염귀팔군을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 반면 한빙소와 상반되는 열담의 기운을 가진 남궁이화는 다르다. 당연히 무흔 또한 열담의 기운 또한 갖고 있어 염귀팔군과 능히 대적할 수 있다.
무흔의 신형이 번개처럼 튀어나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연기로 화한 염귀팔군은 미처 막지 못했다.
그들을 지나친 후 몸을 돌린 무흔은 재빨리 남궁이화에게 소리쳤다.
“남궁 소저! 비천삼검 일 식!”
비천삼검은 천단비화신공을 기반으로 한다. 당연히 열담의 기운을 밖으로 뿜어낼 수 있다.
동시에 무흔도 천단비화신공을 극으로 끌어올리며 패천마혼장을 펼쳤다. 패천마혼장은 천단비화신공과 잘 어울리는 장법이었다.
극양의 기운인 천단비화신공이 통로의 양쪽에서 염귀팔군을 밀어붙였다.
염귀팔군은 극성인 기운이 양쪽에서 몰려오자 경악했다. 상성에서 최악인 기운이었으나 상대는 고작 둘이었기에 그들이 밀리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고오오오-
무흔에게서 뿌려진 패천마혼장이 남궁이화의 검에서 퍼져나온 검기와 조화를 이루며 통로를 진동했다.
염귀팔군은 장력을 펼쳐 천단비화신공의 압박에 저항했다.
콰아앙-
서로 상극인 기운이 엉키면서 미로 내부에 격동이 발생했다. 그 틈에 백단영의 연검이 길게 뻗었다. 앞뒤로 압박하는 천단비화신공의 위력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염귀팔군은 미처 백단영의 연검을 막을 수 없었다.
서걱-
순식간에 팔다리가 절단됐다. 염귀팔군 가운데 서너 명의 사지가 절단되자, 그들은 일순간 공포에 빠졌다. 대처 방법을 잃고 혼란함을 보이는 순간 무흔과 남궁이화의 검이 재차 불을 뿜었다.
묵천신검에서 무흔검법이 펼쳐졌다. 남궁이화는 비천삼검을 두 번째 초식으로 전환했다.
서걱-
다시 살과 뼈가 베어지는 기분 나쁜 소음이 미로를 메우고 이어진 처절한 비명이 상황의 끝을 알렸다.
마교가 자랑하던 전설 속의 교주 호위대, 염귀팔군이 허무하게 날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