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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속의 엑스트라 227화

무료소설 무림 속의 엑스트라: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4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무림 속의 엑스트라 227화

227화. 접속자 (2)

 

 

 

선도물산 새 사옥은 멋졌다.

새 단장을 하고 입주한 때문이겠지만, 오늘 다시 보니 그날 입주하던 날과 또 달라 보였다. 그날은 이래저래 간판이라든가 잡다한 것들이 아직 미완성이고 분주해서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탓이다.

이곳 역시 지난 사옥과 마찬가지로 선도물산은 세 개 층만 사용했고, 다른 회사랑 빌딩을 공유했기에 빌딩 입구 출입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정당당히 올라가지는 못하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고역을 치러야 했지만.

“그래도 무공 수련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계단을 오르다 중간에서 다리를 두드리고 있자니 백다연이 핀잔을 줬다.

무흔임을 모를 때에는 쌀쌀한 냉기가 뚝뚝 흐르더니 무흔임을 알게 된 후로는 눈빛에 다정함이 한가득했다. 무림 세계가 마냥 환상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박무훈은 감격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저예요? 밑에 수사관도 많잖아요?”

입을 한 사발 내민 박무훈을 향해 백다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런 일에 수사관 동원할 수는 없어. 그러려면 수색영장을 받았어야지. 불법하면 심부름센터잖아? 그리고 난 무흔과 일하는 게 편하고.”

이제는 그녀도 박무훈과 무흔이 혼동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내심 뿌듯해진 박무훈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화제를 바꿨다.

“직원들 퇴근하고 없는 것 맞아요?”

“그 정도는 알아봤어. 오늘 직원 회식이라 모두 일찍 퇴근했으니까. 오늘이 접속 날인데도 이렇게 일을 벌이는 이유가 있다니까. 시원하게 일 끝내고 우리 둘이 나란히 접속. 어때? 괜찮지?”

그녀 말대로 진행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일이 없어 보였다.

백단영 아가씨랑 나란히 앉아 함께 무림을 들어간다니. 어째 PC방에서 여자 친구와 나란히 앉아 게임에 몰두하는 광경이 그려졌다. 그것도 무려 검사이자 여신인 그녀와 말이다.

박무훈은 슬그머니 백다연을 살폈다. 보고만 있어도 절로 마음이 뿌듯해졌다. 

“예상대로라면 빨리 끝나겠네요?”

“그렇지.”

“그런데 우리 사무실에 들어갈 수는 있는 거예요?”

“물론이지.”

백다연이 품속에서 마스크를 꺼내 하나는 자신이 하고 하나를 그에게 넘겼다.

박무훈도 그녀를 따라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에는 장갑을 꼈다.

“CCTV는?”

“걱정 안 해도 돼. 건물 전체 CCTV가 있긴 한데 내일 검찰에서 나와서 회수해버리면 되니까. 이런 곳은 검찰에 협조 잘해주거든.”

그녀가 그렇다니 믿어보기로 했다.

계단을 올라 선도물산이 입주한 층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사장실은 세 개 층 가운데 가장 위층이다.

복도는 어두컴컴했다. 불이 모두 꺼지고 비상구 표시등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자신감 있게 복도를 척척 걸어가던 백다연이 커다란 입구 유리문 앞에 멈췄다. 당연히 출입통제장치가 붙어 있어 밀어봐야 열리지 않았다. 직원 키가 있어야 가능하다.

“들어갈 줄 알지?”

태연스럽게 말하는 그녀를 박무훈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심부름센터에 있으면 이런 일을 쉽게 한다고 생각하나?

백다연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한숨을 내쉰 박무훈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놀렸다.

그동안 김 센터장을 따라 다니면서 이런 경험을 많이 하긴 했다. 그 놀라운 솜씨가 재미있어 보여 배워두긴 했지만 어떻게 그것까지 알고…….

약간 시간이 지나고 난 후 유리문이 철컥 열렸다. 출입기록에는 흔적이 남지 않을 것이다.

“금고는 아니랬죠?”

“응, 금고 아니고…… 저기 저 캐비넷.”

캐비넷 여는 방법은 그날 이사하면서 눈어림으로 기억해둔 바가 있었다. 저들이 그 사이에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면 열 수 있을 것이다. 원래 회사는 그런 번호를 절대 바꾸지 않으니까.

예상대로 캐비닛도 쉽게 열렸다.

“자, 이제 찾아보자.”

백다연이 주머니에서 소형 랜턴을 꺼내더니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박무훈은 옆에서 그녀를 보조했다. 서류가 많고 이사한 후로 위치에 조금 변동이 있어 곧바로 찾을 수 없었다.

“옆 캐비닛인가 봐.”

한참 만에 고개를 저으며 실망한 표정으로 백다연이 허리를 폈다.

그럼 그렇지, 바로 될 리 있나. 박무훈은 힐끔 사무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접속시간은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빨리 서두른다면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오늘 자료 하나만 찾으면 사만극도 끝이야.”

백다연이 무훈을 보며 옆의 캐비닛을 가리켰다. 금방 캐비닛을 열자 그녀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는 환상적인 호흡의 도둑인가 봐. 킥킥.”

“어휴, 빨리 찾기나 해요.”

무안해진 박무훈은 그녀에게 핀잔을 주고는 캐비닛 속의 서류를 쏟아냈다.

그들은 바닥에 서류를 흩트리고 서류를 하나씩 살피면서 필요한 자료를 찾았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 어려움 없이 문제 서류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게 그 나라에서 환전한 서류잖아. 이거랑 부동산 매입 증서가 있으면 빼도 박도 못해.”

서류를 찾은 다음 두 사람은 허리를 한차례 쭉 폈다.

다시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꺼냈다. 그 순간 갑자기 형광등에 불이 확 들어왔다.

“헉?”

두 사람이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누군가가 어깨를 찍어 눌렀다.

누르는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 신음을 토하며 박무훈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시커먼 양복을 입은 자들이 넷이다. 얼핏 보기엔 이 회사 직원인 것 같은데 어째 조폭 느낌도 슬슬 났다.

“흐흐, 오랜만이네. 백 검사.”

사만국의 목소리였다. 넷 중 한 사람은 선도물산 사장인 사만국이었다.

박무훈은 사만국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정말 사마극이랑 많이 닮았다.

곧바로 녀석들이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겼다.

얼어붙은 그와 달리 다행히 백다연의 표정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지난번에도 불법을 저지르더니 오늘 또 이러네. 검사가 불법을 자꾸 쓰면 되나?”

사만국이 짜증난다는 듯 두 사람을 노려봤다. 사만국은 박무훈도 검찰 직원으로 여기는 것일까.

백다연이 일어서려니 직원이 그녀의 어깨를 다시 눌렀다. 그녀는 포기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자꾸 이러면 재미없다고. 내 말을 뭐로 듣는 거야?”

두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자 사만국의 목소리가 더 흉흉해졌다.

“계속 이러면 두 사람을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리는 수가 있어. 못할 것 같아?”

이젠 협박이 나왔다.

예전이라면 벌벌 떨었을 텐데 검사인 백다연이 옆에 있어서인지 아니면 무림을 오가느라 간이 부어서인지 박무훈은 생각만큼 두렵지 않았다.

“날 미워하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사만국이 불만을 토로하며 백다연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휴대폰을 쓱 살펴본 사만국이 이번에는 박무훈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잠시 화면을 살펴보던 그는 금방 휴대폰을 돌려줬다.

“어차피 그대들은 나를 이길 수 없어. 시간도 없잖아?”

응? 이건 또 무슨 이야기지? 박무훈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사만국을 노려봤다. 직원 세 사람이 박무훈과 백다연을 위협하는 가운데 사만국이 두 사람을 노려보며 얘기했다.

“이제 그쪽도 짐작하겠지만…… 백단영, 무흔. 오랜만이다.”

역시 추측대로 사만국은 사마극이었다.

사만국이 눈짓을 보내자 직원들이 두 사람을 일으켰다.

박무훈과 백다연은 사장실로 안내됐다.

직원들이 사장실 밖에서 감시하는 가운데 사장실 내부 회의 탁자에 세 사람만 둘러앉았다.

사마극, 백단영, 무흔. 마치 무림인 듯 세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시간이 흘렀다.

“이미 서로 알 것은 다 아니까 긴말은 하지 않겠어. 천향무후에서 두 사람은 나, 사마극을 죽이는 것이 목표일지 모르지만, 나는 반대로 백단영을 죽이거나 무력화하는 것이 목표야. 물론 이 세상이 아니고 무림에서. 백단영을 죽이거나 내 사람으로 만들면, 그것도 가장 극적으로 달성하면 내가 얻는 이익은 어마어마하지. 그래서 지금까지 백단영을 죽일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살려 두었고.”

예상했던 바였다. 사마극 또한 현대에서 넘어간 자라면 분명히 최종 목적이 저것 외에는 없을 테니까.

피식 비웃음을 떠올리며 사만국이 말을 이었다.

“무림에서도 이곳에서도 나의 승리라는 최종결과는 달라지지 않아. 무림 최강고수인 나를 누구도 꺾을 수 없잖아. 특히 음천마령이 옆에 있는 한. 그리고 여기에서도 말이지, 내가 강자야. 강자가 살아남는 법이거든.”

박무훈과 백다연은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야. 내가 두 사람을 억압해서 오늘 접속을 못 하게 하면? 큭큭.”

박무훈은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봤다. 자정이 되기 10분 전이었다. 10분 후면 접속을 해야 한다. 접속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두 사람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소설 천향무후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그래서 연재할 때 중반부터 ‘하차합니다.’란 댓글을 남겼지. 그런데 GOD 작가란 자식이 전혀 반응하지 않더라고. 더 열 받지 뭐야. 그래서 끝날 때까지 계속 따라다니며 ‘하차합니다’란 글을 남겼어.”

정성이란 생각과 함께 박무훈은 GOD 작가가 말했던 끝까지 따라가 준 네 명의 독자에 사만국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럼 남은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난 후 천향무후가 리메이크되면서 나도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어. 당연히 난 사마극. 내 성격과도 맞았고, 무엇보다 짱짱하게 쎈 녀석이잖아? 무림이 정말 재밌더라고.”

아무래도 사만국이 느낀 재미는 박무훈이나 백다연과는 조금 다를 것이다.

사만국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냈다.

“아마 너희 둘이 접속하지 않으면 백단영이나 무흔은 결국 죽어갈 거야. 바로 나, 사마극의 대승리가 예상되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무기력한 백단영은 별로잖아? 내 이득도 줄어들고. 그래서 말인데 백 검사, 이 기회에 무림에서 사마극과 백단영이 잘 지내고 현실에서도 잘 어울려보는 건 어때? 검사와 재벌의 조합. 환상적이지 않겠어?”

백다연의 얼굴에 빈정대는 표정이 떠올랐다.

사만국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계속했다.

“생각해봐. 옆에 머슴보다는 마교 교주가 월등히 낫잖아? 심부름센터 직원보다 회사 사장이 더 낫고.”

사만국이 박무훈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나 보다.

“난 백단영과 백다연을 둘 다 꼭 차지해볼 생각인데…… 정말 흥미롭지 않아?”

사만국의 시선이 백다연을 집요하게 훑었다.

정작 백다연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했다.

“그래서 지금 접속할 시간이 되었는데 어떡할까?”

백다연이 휴대폰을 가리키며 응수했다.

1분 전.

1분 후에는 그들 셋 모두가 접속해야 한다.

만일 사마극 혼자만 접속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 박무훈은 매우 궁금했지만, 과감히 실행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차피 저절로 그렇게 되려나?

박무훈은 주먹을 꾹 쥐었다. 감히 백단영이나 백다연을 차지하겠다는 사마극의 도발에 분노가 치밀었다.

무시하듯 박무훈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사만국이 백다연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검사 아가씨, 불법으로 이곳에 잠입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엄청 곤욕을 치르게 될 거야. 나와 타협하는 것이 최선이야. 잘 생각해보라고. 거기에다 나와 맺어지면 현실적으로 인생에서도 팔자가 필 테고.”

사만국이 휴대폰을 까닥였다.

“내가 검사 나리를 너무 위협했나? 일단 접속해서 무림에서 다시 만나자고. 우리 즐겁게 무림을 다녀온 후에 다시 정다운 대화를 나누어볼까?”

박무훈과 백다연도 휴대폰을 열었다.

천향무후 접속 버튼이 깜박이고 있었다.

붉은색이던 버튼이 자정이 되는 순간 녹색으로 바뀌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평소처럼 접속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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